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7
96. 임시 보호 >
태주는 갑자기 생긴 시간을 이용해서 쿠첼루스와 태산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직 휴가철이 끝나지 않아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았지만, 쿠첼루스의 마법이 있는 한 전혀 상관없었다. 태주는 이번 기회에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쿠첼루스에게 제대로 한국을 구경시켜 줄 생각이었다.
‘태우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고3은 역시 방학이고 뭐고 없구나.’
여행 후기가 나온 블로그 등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태주와 쿠첼루스는 서해안을 따라 남해로, 남해에서 동해로 이동하는 코스를 골랐다.
쿠첼루스는 몇 달 되지 않는 사이에 지구의 문물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 사이에 PC, 태블릿, 스마트폰을 태주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지구 출신 태주는 숙소 예약 앱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었는데, 쿠첼루스는 할인에 포인트 적립까지 따지면서 순식간에 예약을 마쳤다.
태주가 숙박비를 내려 하자 쿠첼루스가 말렸다. 태주를 말린 그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숙박비를 결제했다. 그때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지급하는 DP가 한화로 환전되어 계좌로 이체되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쿠첼루스는 그가 모르는 사이에 정원에서 만들어준 신분증으로 계좌도 만들고, 신용카드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얼마 전엔 면허 학원도 등록했지. 쿠첼은 진짜 적응이 빠른 것 같아.’
자신과는 다른 적응 능력을 보여주는 쿠첼루스에 감탄한 태주였다. 그는 최근 쿠첼루스가 태우 대신 태산이 파랑새도 관리하고 미튜브 영상도 올리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 사실도 알았다면, 자괴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이 앱에서 바로 호텔하고 관광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동반 입장이 가능한 곳만 필터링해서 예약할 수도 있습니다.”
“우와! 쿠첼, 어떻게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후후후. 이 정도는 왕실마법사의 기본 소양입니다.”
“네?”
“후후후.”
태주는 관광코스 이용권이나 음식점 할인권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쿠첼루스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고만 있었다. 자신은 아직도 SNS에 사진 올리는 방법이 햇갈리는 데 그는 정말 대단했다.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웠어요?”
“미튜브에서 배웠습니다. 강좌도 많고, 거의 모든 것의 리뷰가 있더군요.”
최근엔 프로그래밍과 주식 강좌를 주로 본다며 상큼하게 미소 짓는 쿠첼루스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오늘 정원에 가면 해나와 희에게 해줄 얘기가 참 많겠다고 생각했다.
*
태산이를 품에 안고 잠든 태주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정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온 희와 오두막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게시판에 붙은 낯선 종이 색이 눈에 띄었다.
“게시판에 언제부터 녹색 종이가 붙어있었지?”
“으응? 녹색?”
“응. 녹색은 처음 본다. 뭐지?”
의뢰 게시판엔 흰색의 납품 의뢰서만 붙기 때문에 새로 생긴 녹색 종이는 눈에 확 들어왔다. 희와 태주는 홀린 것처럼 게시판에 다가가서 녹색 종이를 확인했다.
[길잡이 협회의 협조 요청.전쟁으로 멸종 위기를 맞은 생물의 보호를 위한 길잡이 협회의 협조 요청입니다. 도움을 주실 정원사님께서는 정원사 협회에 답신을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생물은 전쟁이 끝난 후 환경이 복구되면 본래의 장소로 돌아갑니다.
정원사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1. 칼바람 새: 날카로운 부리가 있습니다. 일정 수준의 무력이 필요합니다. (56/120)
2. 동굴 코보츠: 동굴에서 생활합니다. 생활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30/104)
3. 붉은 털 해태: 발화 능력이 있습니다. 해당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과 지도가 필요합니다. (23/78)
…
44. 흰털 그렘린 : 매우 활동적입니다. (201/340)
45. 초목인(草木人): 식물형 이종족입니다. 온대와 열대 기후에서 생활합니다. (90/170)]
짧은 설명과 긴 목록이었다. 전쟁으로 멸종위기에 빠진 생물을 보호하다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평화롭고 정적인 정원에 어울리는 협조 요청이었다. 하지만 태주는 자신이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생물을 돌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 태주?”
“해나하고 상의해 보자.”
희와 태주, 둘은 녹색 의뢰 종이를 떼서 오두막으로 가져갔다. 아는 것이 많은 해나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와, 정원사 씨. 응? 표정이 왜 그래?”
“이거 때문에 그래요. 녹색 의뢰예요.”
“녹색? 아아. 길잡이 협회구나.”
“해나, 알고 있어요?”
길잡이 협회의 길잡이들은 수많은 차원을 다닌다. 가끔 길 잃은 자들을 목적지로 안내하지만, 보통은 여행자를 안내한다. 그렇게 차원과 차원을 옮겨 다니는 중 가끔 이렇게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생물이나, 멸망한 세상의 생존자를 구조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을 정원사 협회에 부탁한다.
“요정 숲에 사는 종족 중 절반은 그렇게 넘어온 이들이야. 그들이 살던 차원이 멸망해서 돌아갈 곳이 사라져 정원사 협회에서 받아 준 거야.”
“그건 너무 슬픈 일이네요.”
“그렇지. 그래도 녹색 의뢰는 괜찮아. 고향이 안정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태주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하지만 해나는 그런 그를 보지 못하고 녹색 종이에 적힌 목록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는 목록에 나온 생물의 종류와 숫자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있었다.
“해나?”
“이건 정말 대단한 걸. 숲 하나를 통째로 구조해온 것 같아.”
“네?”
“단순히 계산해도 수천이야. 엄청난 길잡이가 나섰다는 소리야.”
수천의 생물을 정원사 협회로 안내할 정도로 능력 있는 길잡이가 나서서 구해왔다. 아마 구조된 생물의 상태 역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길잡이라면 분명 환경 회복을 위한 조치도 해두었을 테니 귀환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요?”
“응.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어. 베테랑 길잡이가 나서서 숲 하나를 통째로 옮겨왔었어. 호호호. 정원사 씨 바빠지겠어.”
“네?”
“내가 아는 그 길잡이라면, 구조자들이 살던 곳의 식물이나 곡물의 씨앗과 모종을 챙겨왔을 거야. 아마 생물을 돕는 것과 별개로 정원사들에게 협회에서 협조 공문이 올 거야. 식물을 키워달라고 말이지.”
“아! 그럼 더 빨리 돌아갈 수 있겠네요.”
그리고 해나의 말대로 정원사 협회에서 협조 공문이 왔다. 파괴된 환경의 회복을 위한 정원사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태주는 공문을 받고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바로 보냈다.
*
그날 오후 태주와 일행은 오두막 앞에 모여있었다. 태주와 해나, 희가 모여있자 궁금했는지, 제피르와 태산이, 단단까지 모두 모였다.
“언제 올까요?”
“정원사 협회는 일 처리가 무척 빠른 편이니, 곧 올 거야.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어휴. 정원사 씨. 난 분명 말렸어.”
‘태산이가 질투할 것 같은데 말이지. 제피르는 어른스러워서 괜찮을지 몰라도, 태산이는 아직 아기라고.’
해나는 태주가 보호해주기로 한 생물들을 생각하고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동물도감에서 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이미 마음을 뺏긴 상태였다.
복슬복슬하고 커다란 귀에 까만 콩 같은 검은 눈, 조금 뾰족한 주둥이에 풍성한 꼬리까지. 지구의 사막여우와 닮은 모습의 흰털 그렘린을 상상하는 그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정원사 협회에서 흰털 그렘린 사형제를 데려온 것은 정원 식구들에게 익숙한 요원 S였다. 그는 그렘린을 내려주고 바로 정원사인 태주에게 모종과 씨앗을 넘겼다. 모종과 씨앗은 그 양이 상당했다.
“여기 리본 뭉치도 받으십시오.”
“이건 뭔가요?”
“성장이 끝난 식물에 묶으시면 됩니다. 나중에 협회에서 리본만큼 DP를 보내드릴 겁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쪽 안내서를….”
“네, 고마워요.”
태주가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지만, 요원 S의 눈은 이미 그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말은 태주에게 건네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해나를 쫓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태주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요원 S, 바쁘신가요?”
“아! 제가 맡은 정원은 전부 돌았습니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오! 그럼 잠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빨라! 대답하는 속도가. 킥. 초대 안 했으면 슬퍼했겠다.’
태주의 정원을 마지막으로 들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하얀 깃털의 해나일 게 분명했다.
“호호호. 안 그래도 한 번 대접하자, 생각하고 있었지. 최고의 티파티를 준비해줄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요원 씨.”
“천, 천,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레이디 해나.”
요원 S는 듬직한 체격과 달리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희와 태주는 눈을 맞추고 키득거렸다.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요원 S의 얼굴이 붉어졌다.
‘새 얼굴인데도 붉어진 게 보이네. 신기하다. 하하.’
“캉. 캉캉. 캉.”
“어이쿠.”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심심했는지 그렘린들이 요원 S에게 달려들었다. 정원사 협회에 있는 동안 친해졌는지, 거리낌 없이 그의 몸을 타고 올랐다.
“하하. 이 녀석들 장난치는 것 좀 보세요.”
“하하하. 원래 장난을 많이 치는 친구들입니다. 그래도 아직 유아기라 괜찮습니다. 성체가 된 녀석들은….”
“와아. 너무 귀여워요. 귀 좀 봐요. 아! 움직였다. 어이구.”
“정원사님?”
“하하하. 조심해야지. 그러다 떨어진다. 아이고.”
“….”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정원사의 모습에 그를 부르는 것을 포기한 요원 S였다. 아마 지금은 정원사에게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그렘린들을 보는 정원사에게서 고개를 돌려 정원을 돌아봤다.
그가 이 정원에 들른 것은 한참 전의 일이었다. 백호 태산이 성장할 때였으니 이미 정원 시간으로 1년도 넘었다. 그 사이 정원이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거나 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건강한 나무와 꽃이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 같았다.
“하하하. 아이코. 조심해야지. 떨어질 뻔했잖아. 오빠가 받았으니 다행이지.”
‘사형제입니다만. 네 마리 모두 수컷의.’
요원 S의 눈에 정원 한쪽에 새로 생긴 활터가 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하자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무력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던 정원사가 어쩐 일인지 무술을 익힌 것 같았다.
만약 정말 정원사가 무술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라면 그가 지도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핑계로 잠시 정원에 머물러도 좋고, 협회의 일을 보면서 가끔 들러도 좋을 것이다.
“티타임! 정원사 씨, 정신 차려!”
“헛! 이 아이들 왜 이렇게 귀엽죠?”
“쯧쯧. 아이들은 두고 차를 마시자고. 오늘은 초콜릿 무스야.”
“해나, 좋아.”
“호호호. 희 아가씨는 이미 먹을 준비를 마쳤네.”
다들 해나의 말에 오두막 앞 테이블에 앉았다. 해나는 초콜릿 무스 외에도 과일 타르트와 육포까지 준비해두었다. 태산이와 단단을 위한 것이었다.
“아기들은 뭘 먹어요?”
“과일 약간하고 우유를 먹이면 됩니다. 그렇게 먹이다, 3개월이 지나면 과일을 먹이면 됩니다.”
“흐흐홈. 아기들은 어떤 과일을 좋아하려나.”
“냐앙.”
“응?”
태산이 테이블 위가 아닌 태주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를 보며 냥냥 울기 시작했다. 육포를 먹지도 않고 우는 소리를 내는 태산이를 태주가 달랬다.
“태산이는 이제 오빠잖아. 혼자 먹을 수 있지?”
“냥!”
“어휴. 이 어리광쟁이. 자, 먹어.”
육포를 잡고 태산이에게 먹이면서도 그의 눈은 아기 그렘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렘린들이 과일 조각을 앞발로 쥐고 먹는 모습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정원사 씨 그러다 태산이가 삐뚤어질지 몰라.”
“에이. 우리 태산이는 이제 다 컸어요. 혼자서도 얼마나 잘 노는데요.”
“호호호. 정말 그럴까?”
“그보다. 얘네 잠자리를 어디에 만들까요? 제 침실에 요람을 둘까요? 아니면, 오두막을 확장해야 하나?”
아기 그렘린에 홀딱 반한 태주는 주변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태산이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지만, 그것도 보지 못했다.
태주는 태산이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태산이가 말썽도 부리지 않고 얌전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새로 생긴 부하, 쿠첼루스에게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고 얌전히 굴었던 것뿐이었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렘린들이 놀 수 있게 놀이기구를 만들어줄까요? 미끄럼틀이랑 정글짐 같은 걸 만들면 될까요?”
“호호호. 이 아이들은 자연에서 사는 아이들이야. 굳이 그런 기구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정원의 나무나 바위, 풀숲을 뛰어다니면서 놀 거야.”
“아아. 귀여운 놀이터를 만들어줄까 했는데.”
“냐앙.”
“이제 혼자 먹어. 평소에는 혼자서 잘 먹더니, 어리광은.”
태산이 그를 올려다보며 울음소리를 한 번 더 냈지만, 태주가 육포를 잡아주지 않았다. 그뿐일까, 태주가 그의 몸을 들어서 육포 접시 앞에 내려놨다. 그 후 다리에 매달린 그렘린을 안아 올려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을 먹여주었다.
“아이. 잘 먹는다. 맛있어요?”
“캬앙.’’
“하하하. 대답도 잘하네.”
태주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태산이가 아닌 아기 그렘린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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