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8
97. 전쟁의 서막 >
태산이가 태주의 행동에 서운함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반려동물은 태산이가 처음인 데다, 예전 제피르를 데려올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그렘린들은 임시 보호라 때가 되면 돌려보내야 했다. 그래서 태주는 자신의 행동이 태산이의 경계심을 키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냐앙.”
“호호호.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요원 S는 정원사에게 호신술이나 무술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해서 아쉬웠다. 오늘 해나가 준비해준 무스 케이크와 차를 마시고 나니 더 그랬다. 그렘린에 너무 정신이 팔린 정원사는 무엇을 물어도 네, 네 대답할 뿐 모두 건성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해나와 다른 이들이 걱정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태산! 이놈 자식! 누가 소파에 구멍을 뚫으래? 어?”
“냐앙!”
– 두두두두.
“이놈! 거기 안 서!”
태산이는 그가 자는 사이 오두막에 침입해서 소파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미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태주는 바로 범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태산이 장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샤워하기 전에 챙겨둔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모두 물어다 창밖에 던져버리고, 태주가 아끼는 찻잔도 물어갔다.
“이놈 자식. 잡기만 해봐. 엉덩이를 팡팡 때려줄 테다.”
“호호호.”
태주는 태산이를 잡겠다고 난리였지만, 그 모습이 그렘린에겐 재밌는 놀이로 보였다. 그리고 그렘린에겐 커다란 인간을 놀리는 태산이 대단하게 보였다.
“깡.”
“카앙.”
“냥?”
태주를 피해서 야생화 수풀에 숨은 태산이에게 그렘린 새끼들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같이 놀자고 엉겼다. 약한 생물에게 너그러운 태산이 그렘린들을 데리고 과실수 사이사이, 미로와 연못 등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 정원을 돌아다니던 태산이와 그렘린의 시야에 비료구덩이를 파고 있는 태주가 들어왔다. 그는 그렘린이 과일을 좋아한다는 얘기에 상급비료를 제작하고 있었다.
– 사사사삭.
– 쫑쫑쫑쫑.
태산이와 그렘린들은 비료구덩이에 슬라임 진액과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있던 태주의 뒤로 다가갔다.
– 폴짝!
“억!”
“냐앙.”
“꺄앙. 캉.”
시끄러운 동물들의 울음소리 사이로 억눌린 태주의 비명이 들렸다. 그는 가까스로 땅을 짚어 엎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태산이와 그렘린 네 마리를 등에 업자, 바닥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깡깡.”
“카앙.”
“냐아앙.”
“컥. 좀 내려와 봐. 무거워.”
엎어질 뻔한 충격에 그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렘린은 그의 반응을 굉장히 재밌게 느끼고 있었다. 태산이는 원래부터 살금살금 다가가서 덮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렘린들은 방금 태산이에게 몰래 덮치는 재미를 배웠다.
“휴우. 너희들. 어딜 갔나 했더니…. 태산이 오빠랑 정원 구경 다녔어요?”
“깡.”
“하하하. 아유, 귀여워라. 대답도 잘하지. 착하다, 태산이. 동생도 돌봐주고.”
“냐앙.”
“하하하. 좋아. 아침의 소파 일은 잊어주지.”
의젓하게 동생들을 돌봐주는 태산이 대견해서 그는 소파에 구멍을 낸 것을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처음 태산이 그렘린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사람들의 걱정과 다르게 태산이는 그렘린과 아주 잘 어울렸다.
“자, 가서 놀아. 점심시간 잊지 말고, 알았지?”
“냥.”
“캉. 캬앙.”
‘하하하. 귀여운 애 옆에 귀여운 애라더니. 맙소사 다섯 마리 다 너무 귀엽네.’
그는 이게 그가 놓친 기회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처음 이런 행동을 했을 때, 하지 못하게 가르쳐야 했는데, 반려동물 훈육에 미숙한 그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 후 세 번이나 더 태산이와 그렘린의 습격을 받았다. 허브를 수확할 때, 텃밭에 비료를 줄 때, 마지막으로 창고를 정리할 때 태산이와 그렘린이 그를 덮쳤다.
“이놈들!”
– 두두두두.
“캉캉!”
“냐아앙.”
“요놈. 네가 하는 걸 아기들이 다 보고 배웠잖아!”
겨우 붙잡은 태산이 몸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린 후 따져도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말을 다 알아들었을 게 분명한데, 모른 척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이, 이, 이 말썽쟁이야!”
“냐아앙!”
“헐. 표정 봐, 표정. 지금 재밌지, 요놈?”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시치미를 떼는 태산이를 놓아주고, 옷을 갈아입으러 오두막에 들어갔다. 요리를 준비 중이던 해나는 그런 태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정원사 씨. 왜 이렇게 너덜너덜해?”
“너덜너덜. 읔.”
태주의 설명을 들은 해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투성이에 이파리까지 붙이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되자, 해나의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사실 그녀는 일이 이렇게 될 거란 생각은 못 했었다.
“호호호. 태산이가 질투해서 괴롭힐 줄 알았는데, 같이 장난을 치네.”
“다섯 마리가 장난을 치니 감당할 수가 없어요.”
“아직 태산이 분신 기술은 쓰지 않았잖아. 다행이지. 그리고 정원사 씨, 알아 둘 게 있어.”
“뭔데요?”
“그렘린은 종족 기술이 분열이야.”
“네?”
“어린 그렘린은 2마리로 분열할 수 있어. 시간은 길지 않지만.”
태주는 순간 정신이 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열한 그렘린 8마리, 분신 기술을 쓴 태산이 3마리. 11마리가 달려와 자신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을 상상하자,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식물! 정원사 협회에서 의뢰한 식물을 키워야겠어요. 어서 환경을 복구시켜야죠.”
“호호호.”
“아니, 왜 하필 기술이 분열인 거야.”
태주는 피곤한 기분에 바로 현실로 돌아가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의뢰받은 식물을 따로 정원 한쪽에 마련한 화단에 심기 시작했다. 그의 삽질은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단 한 순간의 낭비도 없었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태주는 태산이 다리를 붙들고 쭉쭉이를 했다. 아니 사실 심술이 나서 마사지를 핑계로 괴롭히는 것에 가까웠다.
“냥!”
“마사지야. 마사지.”
“냐앙!”
“에이. 눈치 빠른 녀석.”
쿠첼루스는 자다가 그런 둘의 실랑이에 깨고 말았다. 그걸 알아채고 태주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일찍이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네?”
주인인 태주가 연예인이라서 그는 꽤 많은 연예 뉴스를 본다. 아마 태주보다 그가 더 많은 기사를 봤을지도 몰랐다. 쿠첼루스는 기억을 떠올려, 한 달 전쯤 봤던 연예면의 기사를 찾아봤다. 기사에서 봤던 것과 어제 미튜브에서 본 영상이 관련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계속 쓰였다.
“역시.”
“왜 그러세요?”
씻고 온 태주가 폰을 보며 분노하는 쿠첼루스에게 물었다. 쿠첼루스는 태블릿과 폰을 붙여놓고 번갈아 가면서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걸 좀 보시겠습니까?”
“음, 뭔데요? 온더탑 메인 래퍼 김성진 반려 묘 콩이와 데이트. …김성진은 촬영현장에서 반려 묘 콩이와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것도요.”
“헐. 냥줍.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진 고양이를 줍다? 어? 같은 고양이인가요? 콩이?”
“네. 같은 고양이 같습니다. 어제 올라온 미튜브 영상인데, 너무 닮은 고양이라서 신경 쓰여서 찾아봤습니다.”
태주는 지금 본 게 사실이 맞는지 쿠첼루스처럼 화면을 붙이고 비교해 봤다. 같았다. 콩이였다. 온더탑의 김성진이 촬영장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 고양이를 휴게소에 버린 것 같았다. 등에 콩알 같은 검은 털이 동그랗게 세 군데에 있는 게 얼핏 봐도 같아 보였다.
“잃어버린 걸까요? 아님, 설마 버렸나?”
“여기 보시지요?”
“무지개다리를 건넌 콩이. 너무 보고 싶다? 이게 무슨?”
“여기요.”
“콩이 닮은 아이를 데려왔어요. 뭐?”
콩이라고 불린 고양이는 미튜버가 휴가에서 돌아오다 휴게소에서 주웠다. 일 년 넘게 꾸준히 자신의 강아지 영상을 올리는 미튜버였다. 그는 휴게소 화단에 숨어있는 콩이를 데려와 밥을 먹이고 씻겼다. 영상 마지막에는 고양이를 찾고 계시면 연락하라는 자막이 있었다.
“이 래퍼가 버린 고양이를 미튜버가 주워서 주인을 찾는 중인 거죠?”
“혹시 이 사람을 아십니까?”
“아뇨. 아이돌은 사실 잘 몰라요.”
“드라마를 찍는다고 기사가 나와서 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요?”
태주는 쿠첼루스의 말을 듣고 바로 김성진의 기사를 찾아봤다. 김성진이 SBC 금토 드라마 ‘아스타’에서 신입 국정원 직원 역할을 맡았다는 기사였다. LT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11월 방영 예정 드라마였다.
지난번 ‘도깨비 무사’ 일로 LT에는 감정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 좀 전에 쿠첼루스가 보여준 기사까지, 태주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더 노블레스에 자리가 있나?”
“박지헌 주연의 더 노블레스 말입니까?”
“어? 지헌 형이 주연을 맡았어요? 다른 배우가 아니고요?”
놀란 태주에게 쿠첼루스가 어제 올라온 기사를 보여주었다. 금토 대전 예정. 김동현 대 박지헌, 승패의 향방은? 금토 10시, 공중파와 케이블의 정면 대결 등등의 기사가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바뀌었네. 지헌 형이 이때 정확하게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더 노블레스의 주연은 아니었어.’
“우 팀장님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가져온 대본 중에 더 노블레스는 없었는데….”
그가 기억하는 더 노블레스에선 그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았다. 그룹의 차기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내용이라 배우들의 연령대가 높았다. 아마 태주가 들어가도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수행비서나 경호원 정도의 역할밖에 없었다.
“트리즈 배우 아무나 출연하면, 카메오로라도 잠깐 출연할 텐데. 몸값이 비싸서 섭외를 못 하나?”
아쉬웠다. 사실 조연, 그것도 분량이 작은 역할은 태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만약 신조선 사또 전에서 주연을 찍고 나서였다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조연을 맡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 Trrr~
“네, 선배님. 태주예요.”
– 드라마 엎어졌다면서?
“네, 그렇게 되었어요.”
– 그럼 시간 좀 비지?
해외에 가족을 만나러 갔던 김윤선이 오랜만에 태주에게 연락을 줬다. 태주는 그의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 한 3주 정도만 빼줘.
“누구 작품이에요?”
– 눈치는. 자식. 김혜숙 선배 은퇴작품이야.
“할게요. 하게 해주세요. 시간 비었어요.”
– 하하하. 알았다.
작년 김윤선이 선율을 찍기 전에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적이 있었다. 김혜숙이라는 원로 배우의 은퇴작품이 될 뻔한 영화였는데,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김윤선의 분량을 늘리려다 판이 깨졌었다.
회귀 전 태주가 데뷔하기도 전에 은퇴한 분이라 아쉬움이 컸었다. 이렇게 같이 촬영하게 되다니 너무 좋은 기회였다.
‘헐. 너무 흥분했다. 무슨 작품인지, 감독이 누구인지도 물어보지 않았어.’
– 띠링!
[박창환 감독. 9월에 촬영.]김윤선이 보낸 문자를 본 태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연신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의심했다.
‘올해 영화는 안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찍어도 올해 개봉은 못 하겠지만. 그런데 정말 박창환 감독이 맞나? 리벤지 시리즈 찍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400만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한 감독이었다. 지금이야 그보다 더 많이 관객이 든 영화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구동성으로 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성공했다.
“태주 씨, 괜찮으십니까?”
이미 꺼진 폰 화면을 계속 쳐다보는 태주가 이상했는지, 쿠첼루스가 그를 불렀다. 그는 여전히 조금 얼빠진 모습이었지만, 착실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좋은 소식이에요. 쿠첼, 혹시 여행 일정을 좀 조정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 김성진인지 뭔지 하는 아이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우리가 잘못 안 걸 수도 있으니까요.”
“네.”
사실이라면 태주는 그를 그냥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원의 물품을 사용하든 현실의 인맥을 사용하든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
태주는 지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을 사용 중이었다. 그는 우 팀장님에게 더 노블레스에 혹시 조연 자리라도 없냐고 물은 후, 김혜숙 선생님의 은퇴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계속 우 팀장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듣고 계세요? 이미 저하고 얘기를 다 끝내셨었죠? 주연으로 빨리 자리매김하자고요. 그런데 지금 어딜 출연하시겠다고요?”
“…영화요. 박창환 감독님.”
“네, 영화 맞죠. 독립 영화를 겨우 벗어났지만, 영화죠. 흥행은 바랄 수도 없겠지만…. 그래요, 좋아요. 영화까지는 그렇다고 쳐요. 좋은 기회니까요. 그런데 아까 뭐라 하셨죠? 무슨 드라마?”
“팀장님. 진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봄에 도깨비 무사가 방영된 이후로 방송출연이 뜸해서 걱정이었다. 기껏 운 좋다는 꼬리표를 달아놨는데, 주연 맡은 드라마가 밀리면서 별 재미도 못 봤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배우가 조연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화는 일정 바로 알아봐 드릴게요. 드라마는….”
– Trrr~
“후우. 받으세요.”
“여보세요. 지헌 형?”
-….
“10월에 일정 없는데요.”
-….
박지헌의 이름을 듣자 우 팀장의 눈에 불이 붙었다. 태주는 어마 뜨거라 하는 심정이었다. 좀 전에 더 노블레스의 얘기를 꺼냈다가 한 소리 들은 상태였는데, 그 작품의 주연과의 통화였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 Brrrr.
“받, 받으세요.”
“여보세요. 네, 작가님.”
– 우 팀장. 이태주 배우 10월에 일정 비었다면서요?
“네? 비긴 비었는데요.”
– 호호호. 우 팀장, 내가 퀵으로 지금 대본을 보냈거든요. 한 번 봐줘요. 부탁해요.
곁에서 통화 소리를 듣던 태주는 미소를 짓지 않으려 조심했다. 우 팀장님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아! 주름 개선 크림 만들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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