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9
98. 조연 출연 >
우 팀장님의 머리에서 훅훅 스팀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태주는 그런 상상 때문에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만약 지금 웃는다면 잔소리만으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태주는 우 팀장이 전화를 끊은 순간부터 대표님과 태산이가 놀고 있을 대표실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단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신경을 많이 거슬리게 했다. 여기서 더 했다간 사무실에 지옥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팀장님 예능 목록 확인해볼까요?”
“어, 그럼. 광고 목록?”
“…후우. 여기요. F/W 화보 목록은 이쪽이에요. 이건 전부 하기로 하셨던 것들이에요. 그리고 이쪽에 보시면, 잡지사에서 진행하는 기획 화보예요. 이 중에 세 개 만 고르세요.”
“네. 와! 엄청 많네요.”
태주에게 들어오는 괜찮은 화보 일은 전부 받아들인 우 팀장이었다. 태주 역시 이런 일정에는 불만이 없었다. 방송 노출이 적은 대신 잡지나 지면 광고에 많이 나가는 것은 그도 바라는 것이었다.
조금 진정된 우 팀장과 일정에 관해 얘기하는 중에 퀵이 왔다. 두툼한 문서 봉투를 받아든 우 팀장의 이마에 다시 주름이 갈 것 같았다. 그녀의 기색을 살피던 태주는 그녀가 화를 내기 직전에 바로 봉투를 채갔다.
“이건 제가 먼저 볼게요.”
“이태주 배우님?”
“아하하. 이제 더 하실 얘기 없으시죠?”
태주의 행동에 그녀의 표정이 샐쭉하게 바뀌었다. 태주는 우 팀장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바로 일어나서 대표실로 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표님 책상 위에 건방진 포즈로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태산이와 헤벌쭉해서 시중을 들고 있는 대표님을 발견했다.
“흠흠. 이 배우 왔어요. 잠깐 기다려요.”
“전 여기서 이것 좀 볼게요, 대표님.”
“흐흐홈. 편하게 봐요, 편하게. 아주 느긋하게.”
“하하하. 네.”
그는 대표님을 모른 척하며 소파에 앉았다. 퀵으로 받은 봉투 속 내용물이 궁금했다. 봉투 속에는 시놉시스가 아닌, 6화까지 완성된 대본이 있었다. 작가는 떠보는 것은 아예 생략하고 바로 그에게 대본을 보내왔다.
대표님이 태산이와 노는 사이 태주는 더 노블레스의 대본을 봤다. 더 노블레스의 대본은 태주가 회귀 전에 본 내용과 다른 점이 상당했다. 예전엔 지금과 달리 박지헌보다 나이 많은 배우가 주연을 맡았었다. 현재는 박지헌이 맡으면서 배역의 나이가 전보다 어려졌다.
그리고 없었던 배역이 생겼다. 아니 원래 있었는데, 대본에서 빠진 것 같았다. 6화까지였지만, 이 배역 덕분에 진행이 더 자연스러웠다.
‘이 이복형제 역할에 날 쓰고 싶다는 건가? 외국에서 자랐고, 주식을 꽤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네.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물론 승마, 골프, 요트 같은 것을 즐긴다고?’
“흠.”
“괜찮군요.”
“헛! 언제?”
조용히 생각에 잠겼던 태주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랐다. 언제 소파로 왔는지, 최 대표가 그가 읽고 내려놓은 1화, 2화의 대본을 보고 있었다. 최 대표는 나머지도 다 읽었는지, 태주 손에 들린 6화 대본도 가져가서 읽었다. 받은 대본 전체를 훑어본 그가 작가의 이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화 작가는 마무리를 잘하는 편이지요. 중간에 무너지는 일도 적고요. 소재가 흔하긴 한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괜찮네요. 특히 이 재벌들 주변에 모인 사람들 얘기가 좋아요.”
“네, 저도 그렇게 봤어요. 재벌보다 더 욕망에 철저한 사람들이에요.”
“흐흐. 이거 보고 찔끔한 사람들 좀 나오겠어요.”
아마 대표의 뜻은 대본이 꽤 사실적이라는 것 같았다. 태주는 최 대표의 반응이 좋아서 마음이 놓였다.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하는 데 대표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이 하고 싶으세요?”
“네. 마음에 들어요.”
“하하하. 그럼 하세요. 우 팀장한텐 내가 얘기해 둘게요.”
‘표정관리! 표정관리 해야지.’
태주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대표에게 딱 걸렸다. 그는 작품에 들어가게 되어 좋아하는 태주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최 대표와 태주의 흐뭇한 분위기는 금세 사라졌다. 태산이가 장난감을 물고 최 대표의 발치로 왔기 때문이었다. 태산인 물고온 장난감을 내려놓고 대표를 향해 귀엽게 ‘냐옹’ 하고 울었다. 최 대표는 입을 귀에 걸고 바로 장난감의 손잡이를 잡고 흔들었다.
“흐흐. 태산이 이거 갖고 놀고 싶었어요?”
“냐앙.”
“자, 자. 이거 잡아보세요.”
“냥. 냥.”
‘태산이 녀석. 회사에서 제 인기를 아주 제대로 만끽하고 있구나.’
태산이는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공원, 골목길, 촬영장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에 특히 좋아하는 것은 태주의 소속사인 트리즈에 들르는 일이었다. 아마 자신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지금처럼.
“아이고. 잘 잡네.”
– 폴짝.
“하하하. 잘한다. 이건 상이에요.”
“냐아앙.”
태주는 정원에서 자신을 몇 번씩이나 바닥을 구르게 한 태산이, 귀여움을 떨며 대표님에게 과자를 얻어먹는 게 좀 얄미웠다.
*
태주는 오랜만에 김은형에게 연락했다. 온더탑이라는 아이돌 멤버에 관해 같은 아이돌인 그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은형 씨도 별로 안 친하세요?”
– 네, 그쪽은 어울리는 무리가 따로 있어요.
“누구누구랑 어울리는데요?”
– 김성진, 박승후, 이덕수, 김영준. 이렇게 넷이 잘 어울려요.
“허, 김영준이 혹시 보이식스의 김영준인가요?”
– 네. 아세요?
‘알죠. 마약사범.’
회귀 전의 김영준은 소속사의 주가를 반 토막 내는 거로도 모자라, 아이돌에 대한 평판 자체를 낮춘 사람이었다. 그는 알려진 것으론 연예인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연습생에게 몹쓸 짓을 한 일이 있다. 그 외에도 많았을 테지만, 수사가 조기 종결되어 버렸다. 아마 알려지지 않은 범죄가 더 있을 것이다.
김은형과의 통화를 끊은 태주는 김성진이 고양이 콩이를 버린 게 사실일 거라는 생각을 굳혔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와 어울리는 무리 중 김영준이 있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을 버리기 힘들었다.
“보이식스면 6인조 남자 아이돌 아닙니까?”
“네, 그중에 김영준이라는 멤버가 김성진과 친하대요. 제가 알기로 김영준이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끼리끼리 어울리는군요. 감히 고양이를….”
‘아! 쿠첼루스 화났다.’
태주는 쿠첼루스가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는 태산이가 괴롭혀도 웃고 말 정도로 성격이 좋았다. 지구 생활이 불편할 텐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화를 내고 있었다. 김성진이 반려동물을 무책임하게 유기한 것에도 화를 냈지만, 아마 그 동물이 고양이여서 더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태주는 쿠첼루스가 고양이 모습을 한 바스테트 신의 신관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실하게 느꼈다.
아마 자신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를 혐오하는 것처럼, 쿠첼루스도 고양이를 괴롭히는 일을 혐오하는 것 같았다. 그런 쿠첼루스에게 태주가 오늘 정해진 얘기를 꺼냈다.
“더 노블레스에 출연하게 될 것 같아요. 김성진이 나오는 드라마랑 같은 시간대에요.”
“꼭 이겨주십시오.”
“그럴 생각이에요. 주연 맡은 지헌 형하고 사이도 괜찮아요. 잘 찍어볼게요.”
태주가 두 주먹을 꼭 쥐고 시청률로 눌러주겠다며 다짐했다. 그 사이 쿠첼루스가 태블릿에서 미튜브 화면을 찾아서 보여줬다. 아침에 봤던 미튜브 영상이었다. 그 밑에 댓글 창에 김성진의 기사와 파랑새 주소의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기사도 봤는지 댓글 창에 난리가 났다. 김성진을 비난하는 댓글에 온더탑의 팬이 몰려와 싸우고 있었다.
“혹시 이 링크들?”
“네. 제가 올렸습니다.”
가볍게 긍정한 쿠첼루스가 그에게 다시 댓글을 하나 짚어서 보여줬다.
“성진 오빠가 콩이를 얼마나 아꼈는데요. 콩이 보고 싶다고 얼마 전엔 콩이 닮은 고양이도 데려왔어요. 혹시 이 댓글도?”
“네. 이렇게 논란을 만드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감싸주는 것처럼 욕먹게 하는 그거 말하는 건가?’
확실히 쿠첼루스가 두둔하는 댓글을 단 밑으로 욕이 가득 달려있었다. 고양이 버리더니 또 데려왔냐는 글부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많이 달려있었다.
“자, 잘하셨어요.”
“아직은 제가 이쪽에 익숙하지 않아서 약합니다. 곧 완벽한 안티가 될 겁니다.”
“그, 그래요, 쿠첼.”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힘내라고 얘기했다. 그는 완벽한 안티가 되겠다는 쿠첼루스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불법적인 일만 하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
박창환 감독의 영화는 이미 촬영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영화는 연출진도 꾸려진 상태였고, 촬영장소 섭외까지 모두 끝났다. 출연진의 일부만 채우면 되는 상황이었다.
김혜숙의 은퇴작품이 될 거란 얘기에 많은 배우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김윤선 역시 그런 배우 중 하나였다. 그 역시 조연으로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로인 김혜숙을 도와주겠다 나선 배우 중에 젊은 배우가 거의 없었다. 출연을 희망한 배우들은 모두 나이가 좀 있었다. 젊은 직원 역을 맡을만한 배우가 없었다.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김윤선이 태주의 이름을 꺼냈다. 같이 영화를 찍었었던 김윤선은 태주라면 흔쾌히 도와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태주는 바로 출연을 약속했다.
영화는 아내를 죽인 남편이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새벽에 감옥에서 나오는 남자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아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믿고 사랑하던 사람에게 살해당한 딸을 한시도 잊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한때 아들같이 여겼던 사위는 지금 그녀에겐 원수였다.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었다. 그녀는 딸을 죽인 남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럴싸한 계획도 능력도 없었다.
그녀는 그 상황에 절망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그녀를 동사무소의 젊은 직원이 돌본다. 그는 여러 방법으로 그녀를 위로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녀를 달랠 방법은 딸을 죽인 남자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는 우연히 살인범을 해치는 계획을 세울 때 그녀가 의욕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그녀와 놀이처럼 살인범을 죽이는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그녀가 살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끝난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이미 미쳐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주변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매일 같이 그녀를 보러 오는 동사무소 직원 청년도 모른다.
그와 세우는 계획이 구체화 될 때마다 닫힌 방에 범행에 필요한 물건이 하나씩 쌓인다. 방안이 가득 차면 범행이 벌어질 거란 암시가 계속 나오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섭지만, 슬픈 영화야. 특히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거울 앞에서 웃는 모습을 연습하는 장면은 너무 슬프다.”
영화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담백하게 푼다. 화가 나고 슬플 때마다 그녀는 계획에 필요한 물건을 쇼핑한다. 그 물건을 방에 가져다 둔 후엔 웃는 모습을 연습한다. 주변 사람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웃으면서 정상인을 연기한다.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 좋아. 연습하자. 연습.”
태주는 받은 대본을 덮은 뒤, 처음부터 다시 펼쳤다. 촬영이 머지않았다. 수십 년간 연기 외길이었던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연기를 업으로, 천직으로 여기고 산 배우였다. 이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게, 그 역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태주는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든 그렘린 네 마리를 몸에 매달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를 격하게 반겨줘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렘린들은 작은 발로 태주의 몸을 타고 올라서는 ‘캉캉’거리면서 연신 무언갈 전하려 했다. 그는 흥분한 그렘린을 달래며 오두막으로 갔다.
‘따가워라. 고양이보다 앞발이 발달해서 그런가, 몸을 엄청 잘 타고 오르네.’
“호호호. 정원사 씨 보기 좋은걸.”
“해나. 얘네가 절 엄청 반겨주네요. 혹시 이 녀석들 무슨 사고 쳤어요?”
“사고? 사고는 제피르가 쳤지.”
“네? 제피르가요?”
장난꾸러기 네 마리 그렘린은 태산이가 현실로 가버리자, 같이 놀 다른 상대를 찾았다. 해나는 커다란 덩치라 무서웠는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제피르와 희는 날아다니니 같이 놀기 힘들었다. 그런 그렘린의 눈에 띈 것은 정원수에 물을 주던 단단이었다.
덩치는 크지만 순한 단단은 네 마리 그렘린이 놀자고 들러붙자 그대로 받아주었다. 태산이는 힘도 세고 움직임도 날렵해서 네 마리가 덤벼도 당해내지 못했다. 그에 반해 단단은 순하고 겁이 많아서 그렘린이 놀리기 좋았다. 단단은 그렘린들이 거칠게 굴어도 순하게 굴어서일까, 어느 순간 그들에게 만만하게 여겨졌다.
순식간에 단단을 향한 그렘린들의 장난이 심해졌다. 나무 위에서 단단의 몸으로 뛰어내리거나, 달려가서 부딪혔다.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 바닥에 굴리고 이빨로 물었다. 단단이 아파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흥분한 그렘린들은 멈출 줄 몰랐다.
그 모습을 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제피르가 나섰다. 제피르는 단단에게 보호막을 둘러주고 말썽꾸러기 녀석들을 한 마리씩 찾아내 발로 찼다. 일어선 녀석들이 도망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제피르는 그렘린이 지칠 때까지 찾아내서 바닥에 여러 번 굴렸다.
단단이 그런 제피르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제피르는 가차 없이 그렘린들을 응징했다.
“단단을 물었다고요?”
“응. 그래서 제피르에게 혼이 났지.”
“이놈 자식들이. 착한 단단을.”
어쩐지 태주에게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했더니, 아마도 제피르가 무서워서 그런 것 같았다. 태주는 자신의 어깨와 팔에 매달린 그렘린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임시 보호라지만 제대로 돌봐야 했다. 나쁜 버릇이 든 상태로 돌아가게 되면 큰일이었다.
“어휴. 이 말썽쟁이들. 해나, 이 녀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정원의 평화를 찾으려면, 이 문제아들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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