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292)
천마님 안마하신다-292화(292/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292화
하라쉬는 사실 예전에 이미 깨달았었다.
안마라는 건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예전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는 기의 흐름 같은 것이 존재하며, 그것을 활용하여 기운을 북돋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안마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배움을 구걸하였었고, 새로운 깨달음을 갈구하였다. 안마사로서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홀로 연구와 수련을 계속해서 이어 왔다.
허나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자연의 기운이나 내공 같은 걸 운운하던 놈들은 전부 사기꾼일 뿐이었으며, 한때 배움을 얻고 진심으로 존경해 왔던 스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그저 그런 헛소리들을 믿어 왔을 뿐이었다.
물론, 그동안 배우고 쌓아 올린 기술이 아예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 훌륭한 안마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매우 호평을 받으며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지향해 왔던 목표가 사라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인생을 바쳐 걸어왔던 길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길이었던 셈이다.
그 허탈한 실망과 막연한 공허함.
배신감마저도 느끼게 된 그가, 내공 같은 헛소리의 낌새만 보여도 미간을 찌푸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랬었는데…….
“좀 찌릿할 수도 있는데, 잠깐만 참아 보세요.”
“흐그으윽!”
지금 자신의 몸을 휩쓸고 있는, 이 강렬한 느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난생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각에 하라쉬는 당혹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치 온몸에 고압 전류라도 풀어 놓은 듯한 감각!
허나 묘하게도 시원하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면 거짓이겠으나, 그마저도 막혀 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그 개운한 느낌에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느낌을 내는 것일까.
청년이 한 것은 그저 가까이 다가와 그의 등에다가 손을 대었을 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가락으로 허리 쪽 혈 자리를 가볍게 짚었을 뿐이다.
힘을 줘서 지압을 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다. 그냥 말 그대로 손가락을 얹어 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헌데 지금의 그는 온몸을 관통당하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건……!’
얼마 되지 않았던 고통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체내로 흘러 들어왔던 무언가는 서서히 따스하고 온화한 기운으로 바뀌어 가더니, 이윽고 그의 하복부를 따스하게 감싸듯 맴돌기 시작했다.
‘…설마.’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개념.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세상에 기(氣) 같은 비현실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라쉬는 애써 부정하려는 듯 미세하게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내심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왔던, 그토록 생각해 왔던 기(氣)를 다뤄 낸다는 것에 가장 가까운 느낌이라고.
“…그어어어어업.”
그렇게 한참 고뇌에 빠져 있었던 찰나.
하라쉬는 길게 트림을 뱉어 내고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평소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크고 긴 트림이 무방비하게 나왔던 탓이었다.
* * *
“…크흠, 흠. 적어도 효과는 잘 나온 모양이시네.”
한편 하라쉬의 등을 짚고 있던 청년, 최성현은 조금 당황해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애써 헛기침을 내뱉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쪽에 얹혀 있던 것을 내려보낸 건 다름 아닌 본인이었으나, 그래도 이렇게까지 거창한 효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어찌 보면 본의 아니게 수치스러운 상황을 연출한 셈이었고, 표정을 보아하니 트림을 한 당사자도 놀란 반응이다. 괜히 낯간지러운 상황이 될까 봐 자리를 피하려던 최성현이었으나.
“Wait! 어, 자, 잠깐만요!”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하라쉬가 그를 불러 세웠다. 혹시라도 알아듣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는지 한국말까지 덧붙일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도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바로 알아봤습니까?”
“체하신 거요? 그 정도는 대충 알아볼 수 있죠.”
“아니, 난 두통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체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상해요.”
하라쉬는 방금 전에 떠올렸던 의문을 다시금 되새기며 물었다. 아픈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아픈 부위로 손이 향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팔이 아픈 사람은 팔을 감싸 쥘 것이며,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가슴을 두드리거나 복부를 쓸고 있을 것이다.
물론 급체가 들면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만, 그렇다고 그걸 보고 곧바로 체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애초에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침을 먹고 체했다는 것, 그로 인해 점심을 걸렀다는 것, 이것들은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하라쉬는 물어볼 게 한참 남았다는 듯 당장이라도 보채려는 듯한 기세였다.
“어… 일단 진정하시고, 여기 수업 들으러 오신 분은 맞죠? 그냥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분이 아니라.”
반면 최성현은 한차례 입가를 쓸어 만지더니, 상대적으로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카데미 건물 바로 앞에서 만난 사람이긴 했지만, 혹시나 관계자가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은 확인해 보는 질문이었다.
“…예. 맞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냥 지나가던 행인이라면 설명을 해도 수상한 사람의 헛소리로 들을 수가 있다. 그런 적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반면 수강생이라면… 적어도 괜히 서로 민망해질 일은 없다. 설령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보면 예습을 좀 하는 모양새가 되니까 말이다.
“뭐 말씀을 드리자면, 아까 말했던 대로 눈치껏 알아본 거예요. 내부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은 전반적으로 기운에 약간 탁한 기색이 보이거든요.”
강태한처럼 한눈에 세세한 내용들을 단숨에 파악해 낼 수는 없으나, 그래도 대강적인 내용이라든가 분위기 같은 것은 파악할 수 있게 된 최성현이다.
“…기운이라고요?”
“예. 특히 급체한 사람한테는 특유의 낌새가 있는데, 선생님은 그게 좀 유난히 강하게 보여서,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죠.”
“그… 렇군요.”
하라쉬는 굳은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청년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본인이 오랜 세월 연구한 끝에 힘들게 인정하고 포기했던 것을, 이자는 당연히 존재하는 개념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 뒤에 진맥을 해 본 뒤에는 뭐, 확실해졌죠. 안쪽에 기혈이 막힌 채 탁기가 채워져서…….”
“아니, 잠깐, 잠깐만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최성현의 설명에 하라쉬는 겨우 말을 잘라 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 한 차례 침을 삼키고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기라는 것이 실존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까?”
“예… 그렇죠? 혹시 설명회에 안 오셨나요? 그때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도 최성현은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으로 답했다. 오히려 본인이 당황한 기색조차 보였다.
그 반응에 하라쉬는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앞머리를 천천히 쓸어 올리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다르다. 확실히 다른 반응이야.’
조금 우스운 말일지도 모르겠으나, 하라쉬는 자신만큼 사기꾼들을 많이 만나 온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내공이나 자연의 기운 같은 것들을 입에 담는 그런 족속들 말이다.
허나 이 청년은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무언가 궤를 달리한다고 할까. 말을 빙빙 돌리는 느낌도 없고, 거창하게 꾸미거나 포장하려는 느낌도 없다. 오히려 그리 복잡한 게 아니라는 듯이 담백하게 말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 사실 이미 어렴풋이 답을 알고 있었다.
의문을 묻고 답을 듣기에 앞서 이미 몸으로 직접 체험을 해 본 바가 있지 않은가.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던 그 전류 같은 무언가를, 하라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차라리 기(氣)라는 것이 실존한다 생각하는 것이 더 납득하기 쉬울 정도로 말이다.
“저…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확신까진 할 수 없다. 허나 오래전에 허구로 치부하고 포기했던 마음이 다시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라는 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 때문일까, 하라쉬는 묘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보물 상자를 다시 찾은 듯한, 그런 설렘이었다. 이미 예전에 자신의 꿈이 허구에 불과했음을 깨달았으나, 내심 허구가 아니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어… 아마 5주 차인가, 대충 그때쯤부터 관련 내용이 시작될걸요. 혹시 설명회 때 담당자가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해 줬었던가요?”
이번에도 최성현의 대답은 하라쉬의 예상을 깨트리는 것이었다. 굉장히 간결하다고 할까, 구체적이라고 할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냥 그렇게 전부 알려 준다는 말입니까?”
그동안 하라쉬는 다양한 유형의 사기꾼들을 만나 왔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쉽사리 뭔가를 알려 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
뭘 알려 주고 싶어도 내용이 있어야 알려 줄 수 있는 법이고,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는 오히려 사기꾼이라는 걸 더 빠르게 들킬 뿐이다.
최대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말하지 않아도 대충 느껴지지 않느냐, 이런 식의 말이 대부분이다. 그러고는 질질 시간을 끌면서 대가로 재물이나 노동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뭐, 그렇죠. 그러려고 여러분을 저 먼 인도에서 여기까지 모셔 온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최성현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라쉬는 이번에도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정말 자신의 상식선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뿐이었다.
“아, 죄송한데 먼저 좀 들어가 볼게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네요.”
한편 최성현은 슬쩍 시간을 확인하더니, 서둘러 이야기를 정리하고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하라쉬는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 이것 참.”
하라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볍게 위장이 있는 복부 위쪽을 쓰다듬어 보았다.
두통이 올 정도로 제대로 얹혀 있던 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원하게 내려가 있었다. 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뭔가 묘한 꿈이라도 꾼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둘 중 하나는 확실했다. 마침내 진짜를 찾아냈거나, 그동안 만나 온 놈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고도화된 사기꾼에게 잡힌 것이거나.
어느 쪽이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또한 확실했다. 하라쉬는 수업을 듣기 위해 최성현의 뒤를 따라 건물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하아아.”
한편, 스위스 서부에 위치해 있는 로잔 지방.
그곳에 위치해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본부, 올림픽 하우스의 한 사무실에선, 한 중년의 남자가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난감해하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또 왔다고?”
“예. 자료를 보완해 왔다고 합니다.”
남자는 다시 한번 손에 쥔 서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안 봐도 내용을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이 끝나고 난 이후, 그는 같은 내용의 항의서를 네 번째나 받고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안건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특정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거뒀다며, 그 안마사에게 선수들이 안마를 받는 걸 금지시켜야 한다는 이 이야기 말이야.”
그는 혀를 차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남자의 이름은 존 페르트. 올림픽 집행부에서 운영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총책임자였으며, 개최 준비나 대회 운영과 관련된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몸이었다.
원활한 개최를 위해 현지 올림픽위원회와 협업하는 것은 물론, 개최 중에 일어난 문제나 사건 사고, 그에 대한 항의와 건의들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것 또한 그의 업무 중 하나다.
지금 당장 그의 손에 쥐인, 이런 서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말이다.
“원래 올림픽 한번 치르고 나면 별의별 항의들이 들어오는 법이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기는 한데 말이지…….”
페르트는 곤란해하는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무시를 해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엄연히 한 국가의 올림픽위원회에서 공식으로 올려 보낸 문서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런 일이 드문 일은 아니다.
심판의 판정이라든가, 특정 선수의 도핑 검사 요구라든가 이런 것들은 일상다반사고,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경기에도 항의가 들어오는 일이 빈번하다.
그 외에도 이 약품은 금지해야 한다, 다시 허가해야 한다, 규칙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이걸 도입하고 저걸 빼라, 이래라저래라……. 개중에는 이런 게 공식 서류인가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떤 안마사가 안마를 너무 잘해서 선수들 성적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금지시켜야 한다… 이 당황스러운 내용에, 페르트는 심히 기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