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307)
천마님 안마하신다-307화(307/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307화
“젠장, 또야?”
“위, 위험합니다!”
뒤쪽에서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연쇄적으로 다른 재해가 일어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허나 굳이 그 오해를 풀어 줄 시간은 없다.
강태한은 앞으로 살짝 손을 뻗어 내고는, 앞으로 걸어가며 양손에 강환(罡丸)들을 빚어 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넷, 여섯, 열.
차례차례 허공에서 빚어지는 칠흑빛의 구체들.
얼핏 보기에는 모두 허공에 뜬 상태로 미동도 않고 있는 듯했으나, 왠지 모르게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강태한의 발걸음이 장애물에 막히는 순간.
구우우우웅……!
다시 한번, 그의 발걸음이 대지를 울렸다.
이번에도 그의 앞길이 말끔하게 비워졌다.
물론, 이번에는 방금 전과 조금 다르다. 처음 입구를 날렸을 때보다 지금은 좀 더 깊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으며, 길이 뚫리면서 생긴 빈 공간으로 쌓여 있던 온갖 쇄설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태한의 손 위에 떠 있던 강환들이 하나둘씩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파공(破空)음.
어떤 것은 거대한 바위들을 구슬 꿰듯이 하나하나 박살 내었으며, 어떤 것은 일정 구간을 순회하면서 쏟아지는 쇄설물들을 산산이 분쇄하였다.
강태한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잘게 바스러진 흙먼지 따위뿐. 그조차도 몸 주위에 펼쳐진 보이지 않는 막에 막혀, 결코 닿는 일이 없이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 * *
최성현은 문득, 어느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초등학생 시절 유행하던 게임기를 사 달라고 어머니를 졸랐을 때, 한 과목이라도 백 점을 받으면 사 주겠다고 약속을 받아 냈을 때의 기억이다.
놀랍게도 최성현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게임기를 가질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백 점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름 열심히 노력도 했고, 공부 잘하는 친구랑 일부러 어울려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95점만 세 개를 받았을 땐, 울면서 시험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중학생 때는 사고 싶은 신발이 있어 얼마 안 되는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았었는데, 정작 돈을 다 모으고 가게로 찾아가니 바로 전날에 팔려서 재고가 없단 말을 들었었다. 저번에 단종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말은 덤이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랬었다.
최성현이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언제나 한 끗 차이로 놓쳐 버리게 되곤 했다.
고백 전날에 다른 놈이 채어 갔던 첫사랑도, 세 번이나 반수에 도전했던 대학교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준비했었던 바텐더 대회도… 전부, 전부 그가 진심으로 임했었고 실패했던 것들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최성현은 진심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임하면 임할수록, 실패했을 때의 반작용은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된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 평균 이상은 간다.
대학 생활이 그러했으며, 연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말투도 가볍게 하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군 생활도 그랬다.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임했을 뿐인데, 소대에서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바텐더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었고, 초반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었으나… 진심이 되었던 순간, 거짓말처럼 대회에서 떨어지고 슬럼프가 찾아와 그만두게 되었다.
바리스타는 바텐더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일이었지만, 진심이 되기 전에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안마사도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그냥 관련 있는 학과를 나왔으니, 전공을 살리는 일도 한 번쯤은 해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임했던 일이다.
“…….”
순간, 최성현은 정신을 차리고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힘이 하나도 없는 텅 빈 웃음이었다.
얼마나 멍하니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이것이 주마등이라는 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차례차례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그와 비슷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안마사로서의 자신은 어땠었나.
제법 괜찮았다. 어느 정도로 괜찮았냐고 묻는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봐줄 만한 모습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임했고, 노력도 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은 온전히 결과로 되돌아왔다. 아니,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들로 돌아왔다.
처음 아카데미 원장의 자리를 권유받았을 때.
사실 최성현은 그 자리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부담도 있었지만… 그동안 잘해 왔는데, 이것이 실패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처럼 모든 것이 수포로 되돌아가고, 무가치해져 버리는, 그 징크스의 시작이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강태한은 몇 번이나 그를 설득했고.
최성현은 마침내 그 징크스를 깨트릴 수 있었다.
원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변인들의 기대에는 부응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처음 맡는 중책치고는 제법 훌륭하게 수행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제법 익숙해진 지금은.
모든 것이 잘 풀려 가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름 자신감이 생겼던 참에, 운세 뽑기를 뽑아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점 같은 건 절대로 보지 않게 되었었지만, 어제는 왠지 좋은 운세가 나올 것 같았다.
결과는 대흉.
고작 자판기 따위에서 나온 운세에 불과했지만, 낙담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재밌는 농담거리라는 듯이 떠들고 다녔다. 그렇게 하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자판기… 제법 용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누가 여기서 이런 꼴이 될 줄 알았겠는가.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던 자신이, 굳이 이런 지방 산골까지 내려와서 이런 희귀한 재해에 휩쓸리게 될 거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아.”
최성현은 문득 직감했다.
곧, 자신의 힘이 다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다. 버티고 있던 도중, 어느 순간 산이 내려앉기라도 한 것처럼 중량이 확 늘어났던 탓이리라.
결국은… 이렇게 끝이 나는 걸까.
어쩌면, 그동안 진심으로 임했음에도 일이 잘 풀려 왔던 반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쌓이고 쌓였다가, 이렇게 한 번에 몰아서 되돌아온 셈인 것이다.
참, 가치 없는 결말이구나.
이것보다 진심일 수는 없었고, 안간힘을 다해서 버텨 냈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아무도 구해 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의미.
새삼스레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여력도 없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마지막 불꽃이 꺼져 가고 있었다. 최성현은 오랫동안 묵묵히 버텨 주고 있던 양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에 맞춰, 삐거걱, 하는 불길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구우우우우웅…….
터널의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장애물 너머, 그곳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또다시 터널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걸까.
다른 승객들의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하하.”
반면에 최성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 공허하게 새어 나오던 웃음과는 달리,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맴돌고 있는 웃음이었다.
그는 이 울림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수면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정신이 다시 또렷해지고, 시들어 가던 몸에 다시 한번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우우우우웅……!
구우우우우웅……!
울림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리는 틈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오랫동안 칠흑 속에 있었던 탓에 눈이 부셨지만, 최성현은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앞을 바라보았다.
쿠우우웅!
마지막은 차라리 폭발음에 가까웠다.
그 폭음과 함께 앞을 가로막던 장해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부신 태양빛이 정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직후, 버스 천장 너머로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파쇄음이 들려왔다.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깨지고, 부서지며 울리는 소리. 최성현을 짓누르고 있던 중량은 어느새 거짓말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최성현은 드디어 천장에서 두 손을 떼어 냈다.
마침내 임무를 완수해 낸 양팔은 힘없이 축 처졌다.
다만, 두 다리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비록 껍데기만 남은 몸이었지만, 최성현은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걸어 나갔다.
찌그러진 차체에서 문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문보다는 틈새에 가까운 느낌. 처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최성현은 앞에 서 있는 강태한을 볼 수 있었다.
최성현은 그를 바라보다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태한아.”
덕분에,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을 수 있었다.
가치 있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최성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앞으로 쓰러졌다.
* * *
“…그런가.”
앞으로 쓰러지는 최성현의 몸을, 강태한이 받아 들었다. 몸은 거짓말처럼 가벼웠다. 마치 안쪽이 텅 비어 있는 듯한, 전부 태워 버리고 재만 남아 있는 듯한… 사람 몸에서 느껴질 수 없는 이질적인 무게감이었다.
“너는, 그 힘을 타인을 구하는 데에 사용했구나.”
강태한이 보험으로 최성현에게 몰래 심어 두었던 힘.
그 힘은, 최악의 경우에서도 자기 한 몸 정도는 충분히 간수할 수 있을 만한 힘이었다.
물론 강태한도 이 정도 규모의 사태를 상정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성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분명해 존재했을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몸을 내빼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여차하면 연쇄 붕괴 같은 건 모조리 무시한 채 장애물을 뚫고 바깥으로 뛰쳐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스스로 선천진기마저 끌어내어, 정말 한 줌의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
그동안 수많은 이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강태한이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얄궂은… 일이로군.’
저쪽 세계에서는 스승을 잃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자를 잃게 되었다.
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를 한다면, 아무래도 자신에게 사제(師弟)라는 개념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스승을 잃었을 땐 무력감에 휩싸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힘이 있다.
강태한은 문득 고개를 들어 버스를 바라보았다.
잔뜩 찌그러지고 반쯤 주저앉아 있는 차체.
저 위에는 큼지막한 터널 지붕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고, 그 위에는 산이 무너지며 흘러내린 쇄설물들이 고스란히 올라가 아래를 짓누르고 있었다.
사실상, 홀로 산사태를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최성현은 그걸 해냈다.
그야말로 최선(崔善). 그 단어의 뜻 그대로, 자신이 다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힘을 쏟아 내어 이뤄 냈다. 자신의 목숨마저 힘으로 바꿔 가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그런 그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다.
억지라는 것은 강태한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를 부려야 할 때였다. 강태한은 어깨에 쓰러져 있던 최성현의 몸을 조심스레 아래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