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48)
천마님 안마하신다-48화(48/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48화>
“······.”
안마를 받고서 잠까지 푹 자고 일어난 뒤.
이병호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점혈(點穴)이나 마찬가지네.”
안마가 끝나고 양쪽 어깨가 쿡, 하고 눌리는 순간, 마치 스위치라도 내려간 것처럼 이병호의 의식이 툭 끊어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무려 한 시간이 지나있었던 것이다.
짚는 순간 상대방을 잠재울 수 있다는 수혈(睡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개념이었지만, 마치 그곳을 짚인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체험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뿐인가.
자고 일어나니 온몸에선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의 활력이 솟아났다.
관절은 이보다 부드러울 수가 없고, 마치 없던 근육이라도 생긴 것처럼 곳곳에서 탄력이 느껴진다.
그동안 오랜 작가생활 때문에 피로로 찌들고 녹슬어있던 몸이, 어딘가 식기세척기에 넣었다가 빼내기라도 한 것 마냥 말끔하게 정리된 것이다.
“허, 참··· 신기하네.”
이병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른손목을 살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펜을 놓아본 적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터널증후군.
평소에 저려오는 것은 기본이고, 손목을 좀 오래 썼다 싶으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동반되어 연재 일정과 컨디션 관리에 지장을 주는 요소 중에 하나였다.
헌데 지금은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꺾어봐도 아프지가 않았다.
아프기는커녕, ‘원래 손목이란 게 이렇게 움직이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예전과 다르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꿈이라도 꾸는 것 같네.’
일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고 개운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소원이 이뤄진 셈이었다.
이병호는 작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집어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프지 않은 손목, 개운해진 몸, 거기에 따스한 차 한 모금까지.
낙원이 따로 없었다.
“추궁과혈(推宮過穴)을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어느 날 어떤 기인에게 갑자기 두들겨 맞았는데, 알고 보니 은둔고수가 막혀있던 혈을 뚫어준 거라 온몸의 혈이 열리고 무공에 큰 진취를 이루는 스토리.
무협지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일종의 클리셰다.
뭐 두들겨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과정이 있었으니 비슷한 느낌이 아니겠는가.
단순히 몸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머리도 맑아지고 혈액순환도 원활해진 것이, 딱 무협 속의 추궁과혈을 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점혈이나 추궁과혈 같은 건 현실에 없다.
그런 건 단지 소설 속에나 존재할 뿐.
이는 이병호도 잘 분간하고 있는 부분이다.
허나 정말 그렇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신묘한 경험이 본인에게 상당히 많은 영감들을 안겨줬다는 것이었다.
맑게 갠 머릿속과 새롭게 떠오른 영감들.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새로운 플롯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집에 가면, 한참동안 붙들고 있어도 지지부진했던 다음 편의 콘티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워.”
여태동안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신비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
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물론 그 남자가 본인의 상상처럼 무림인일리는 없고, 반로환동을 겪은 사람일리는 더더욱 없었지만, 그래도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무협이라는 장르의 이해도가 좀 더 깊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때문에 이병호는 잠시 강태한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로비에 좀 앉아있으려는 찰나··· 그는 때마침 대기실에서 나오고 있는 강태한과 마주쳤던 것이다.
* * *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것이 지금의 상황.
손을 저으며 딱 잘라 말하는 강태한의 반응에, 이병호는 뒤늦게 자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아으! 말을 해도 도를 가르쳐 달라는 게 뭐냐!’
주변에서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발언!
졸지에 눈앞에 있는 강태한을 어딘가의 사이비 종교주처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괜히 긴장을 잔뜩 하는 바람에 벌어진 불상사였다.
“아닙니다. 제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요, 저도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기운이 맑다고 해야 하나, 뭔가···”
허나 긴장된 상태에서 당황까지 해버렸으니, 상황이 호전될 리가 없다.
의심스러운 발언이 거듭 이어지면서 주변의 시선은 갈수록 수상해져만 갔다.
턱.
헌데 그 순간, 강태한의 오른손이 이병호의 왼쪽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목 아래쪽의 혈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하자.
‘어···?’
쓸 데 없는 조바심과 긴장으로 굳어있던 이병호의 어깨가 사르르 풀어지고,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후우.”
횡설수설을 멈추고 침착함을 되찾은 이병호.
그런 그를 보며, 강태한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다는 일이 뭡니까?”
“사실 제가 웹툰 작가를 하고 있는데, 혹시나 작품에 쓸 만한 소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질서정연한 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좋았잖습니까.”
“하하··· 죄송합니다. 헌데 역시 선생님 손길이 신통하군요. 어깨에 손을 탁 올리시니, 거짓말처럼 긴장이 가라앉았습니다.”
강태한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병호도 소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 있었던 ‘도를 가르쳐 주십쇼’ 사건은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나름 훈훈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래서,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뇨. 오늘은 안 되겠는데요.”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와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별개의 일.
강태한의 대답은 깔끔한 거절이었다.
* * *
“태한 씨. 여기에요.”
강태한을 발견한 유세아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대성 백화점.
평일에다 마감까지 한 시간 가량만 남은 상황이라 비교적 사람이 적은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뭐 무명배우 시절에 프리하게 풀어놨다가 다시 통제하긴 좀 그랬는지, 소속사에서 이런 부분을 터치하거나 나무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 이목이 쏠리는 일 자체가 불편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강태한과 단둘이 찻잎을 보러 나온 거였으니까.
되도록이면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평소보다도 더 많이 꾸몄네요?”
그녀에게 다가온 강태한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녀의 치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변장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었다.
얼굴의 반은 큼직한 선글라스가 가리고 있고, 깊게 눌러쓴 모자가 그녀의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거기에 목걸이나 귀걸이처럼 눈길을 끌만한 장신구도 하나 없었고 옷차림 또한 전체적으로 무난한, 연예인치고는 상당히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런 식으로 놀리지 마요.”
“후후, 하지만 세아 씨는 안 꾸민 모습도 좋아요.”
강태한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주로 나오는, 유세아의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도 좋지만, 이런 수수한 차림으로 있어도 느껴지는 세련됨이 있어 또 다른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놀리지 말라니까요?”
“이번 건 놀린 거 아닌데.”
짐짓 심술이 난 표정을 짓는 유세아와 강태한의 눈이 마주쳤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유세아였다.
“크흠. 그래서 찻잎은 어디서 파나요?”
강태한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일까.
유세아는 헛기침을 뱉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하 1층이었습니다.”
“아··· 하긴, 찻잎도 식품이니까요.”
자연스레 앞장을 서는 강태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조금 걷자, 동양풍으로 꽤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테마 이벤트관이 나타났다.
“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네요!”
유세아가 손끝을 모으며 감탄을 터트렸다.
규모도 규모지만, 행사장의 인테리어와 곳곳에 배치된 장식물들이 제법 화려해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음?’
그러던 와중, 문득 그녀의 시선이 다기들이 진열되어있는 곳에 머물렀다.
한쪽 진열대를 채우고도 한참 이어져있는 다양한 상품들.
단순히 찻잔만 놓고 봐도 거의 삼십여 개에 달하는 디자인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많은 상품들 중에서, 강태한이 자신을 생각하며 한 가지를 골라 선물을 했다고 생각하니, 새삼 쑥스러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유세아였다.
“찻잎은 저쪽에 있었을 거에요.”
“아, 음. 그래요?”
잠시 고개를 돌린 채 표정관리를 하고, 강태한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자 삼단으로 되어있는 진열장에 주욱 깔려있는 찻잎 통들이 나왔다.
그 시각적인 효과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향이 나고 있는 걸까, 단지 이쪽으로 몇걸음 왔을 뿐인데도 쌉쌀하면서 깊이 있는 차의 향이 느껴지고 있었다.
“녹차는 이쪽이니까. 여기, 이게 세아 씨가 마셨던 서호용정(西湖龍井)이네요.”
강태한이 통 하나를 집어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진열대를 꽉 채우고 있는 찻잎들을 둘러보던 유세아가 넌지시 물었다.
“근데, 이 찻잎들은 다 뭐가 다른 건가요?”
“음··· 일단 산화 정도에 따라서 녹차, 홍차, 우롱차 같은 종류로 크게 나누고, 같은 녹차 내에서는 생산지로 다시 분류를 하죠.”
“아··· 그럼 지금 이쪽에 있는 건 다 서호용정인 거 같은데, 왜 포장이 조금씩 다른 거예요?”
“언제 잎을 땄는지 다시 한 번 나누거든요. 등급도 매기니까 그걸로 또 나뉘어지고.”
대충 설명하고 넘어갈 법도 했지만, 강태한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유세아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했다.
그러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차 종류는 다 몰라요. 예전에도 말했듯이 편하게 마시는 게 제일이라 생각하고, 다 알고 있을 필요도 없거든요.”
강태한은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지만.
‘이런 부분이 참 세심하단 말이지.’
유세아는 그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히 생각하라’는, 저번에 찻집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배려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어떤 차가 좋을까요?”
“음··· 찻집에서도 추천해드렸듯이 일단 이거, 서호용정이 제일 잘 맞으실 겁니다. 처음이기도 하니까, 이거 한 통부터 먼저 드셔보시죠?”
“좋아요.”
유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한은 곧바로 상품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어··· 태한 씨, 제가 계산할게요! 제가 쓸 찻잎이잖아요.”
“괜찮아요. 원래는 다기랑 같이 선물해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빠트린 셈이니까.”
결국 유세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태한은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유세아에게 건넸다.
쇼핑백을 받아든 유세아가 불만이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도 태한 씨 선물 하나 살래요.”
“예? 왜요?”
“태한 씨가 사줬으니까, 저도 하나 사드려야 계산이 맞죠.”
그녀의 말에 강태한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다기 세트에 찻잎을 빠트려서 이렇게 한 건데, 그 계산이 왜 그렇게 된단 말인가.
그래도 일단 사준다니 잠시 고민은 해보는 강태한이다.
“필요하신 거 없어요?”
“딱히 없는데··· 아.”
그러다 문득 뭔가를 떠올린 강태한이 살짝 손뼉을 치며 말했다.
“캠핑용품이 좀 필요하긴 한데.”
“캠핑용품이요?”
“네. 종종 가거든요.”
신준호의 영산으로 영약을 구하러 갈 때, 여유가 좀 있다면 아예 캠핑 준비를 하고 가 느긋하게 운기조식까지 하고 오는 강태한이다.
캠핑용품까지 챙기면 배낭공간이 좁아져 좀 꺼려지긴 했지만, 이젠 차가 있으니 그런 걱정도 없어졌다.
“태한 씨, 캠핑도 해요?”
“네. 가끔 합니다.”
한편, 생각 외의 단어에 유세아 또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캠핑이라.
쌀쌀한 밤바람과 따뜻한 모닥불, 별빛이 알음알음 박혀있는 숲 속의 밤하늘, 그리고 옆에 같이 앉아있는···
“좋네요.”
“네. 좋더라고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
“우리 같이 캠핑장비 보러가요.”
그리고 본인의 찻잎을 사러 갈 때보다, 왠지 묘하게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세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