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50)
천마님 안마하신다-50화(50/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50화>
채은비와 강태한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
그걸 본 순간, 유세아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녀가 해외에서 촬영대기를 하고 있다가 느꼈던 의문의 불길한 직감.
그 느낌의 정체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진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손으로 선글라스를 내리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리 어른스러운 대처라고 보긴 힘들었다.
더군다나 채은비는 이제 갓 스물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이었고, 태한 씨도 동생이라고 소개를 했으니, 순전히 자신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때로는 이성보다 직감이 옳을 때도 있는 법이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게다가 오늘은 태한 씨랑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럴듯한 분위기였었다고!’
강태한과 캠핑코너에서 있었던 일.
뭐 기껏해야 언젠가 같이 캠핑을 가자는 정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있어선 강태한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한 걸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하필 오늘 끼어든다?
용납할 수 없다.
그녀는 전에 연기했던 도도한 재벌 3세 아가씨의 연기를 떠올리며, 고고하면서도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 설마, 진짜 유세아 씨에요?”
허나 채은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연예인과 만난 소녀의 반응.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벌리더니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예?”
“아! 죄송해요, 쉬잇!”
그러다 뒤늦게 자기 입을 가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에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미안해요. 괜히 큰소리내서. 주위에서 알아보면 곤란해서 그렇게 하고 계신 거죠?”
“아, 네. 그건 맞는데.”
“어머, 어떻게 해! 저 진짜 팬이에요! 시크릿 프로페서도 재밌게 봤고, 재벌심판도 재밌게 봤고! 특히 재벌심판은 영화관에서 두 번 봤어요, 두 번!”
갓 스물이 된 소녀의 감당할 수 없는 활기!
그 분위기에 휩쓸려버린 유세아는, 방금 전까지 연기했던 표독스러운 눈빛은 어디가고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니, 오빠! 유세아 씨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길 가다 우연히 만났지, 뭐.”
길을 가다 우연히 목숨을 구해주면서 만난 인연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 근데 저 백화점 닫기 전에 쇼핑을 좀 끝내야 되서, 먼저 가볼게요. 두 분 좋은 시간 되세요!”
채은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앞으로 두어걸음 걸어가더니, 왔을 때처럼 종종 걸음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세아가 눈으로 쫓았다.
“활발한 친구네요.”
“착하고 귀여운 동생입니다.”
“예···”
유세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크릿 프로페서.
그녀가 무명배우였을 때, 비중없는 조연으로 잠깐 나오는 영화다.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진짜 팬이라는 것.
‘사인이라도 좀 해줄 걸 그랬나···’
아직 경계심을 전부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머쓱한 기분이 되는 유세아였다.
“태한 오빠 장난 아니네···”
한편, 한 매장에 들어가 골프장갑을 살펴보고 있던 채은비는 방금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썸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괜찮은 사람은 이미 주변에서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이며, 채은비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배우라니··· 스케일이 너무 크지 않은가.
놀란 나머지 억지로 텐션을 올렸다가 이상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후다닥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녀가 유세아의 팬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높은 텐션으로 있었던 건 그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건 아니라지만··· 그냥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저녁 약속이라도 잡았어야 했나.”
에휴. 채은비는 보고 있던 골프장갑을 괜히 툭하고 내려놓으며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다음 날.
예약된 손님들이 모두 다녀가고 퇴근하는시간, 강태한은 평소와 다르게 찜질방 인근의 카페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좀 늦었습니다.”
강태한이 앉은 곳은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는 구석진 자리의 테이블.
그 맞은편에선 한남자가 태블릿PC를 세워두고 뭔가를 열심히 작업하는 중이었다.
저번에 손님으로 왔다가 강태한에게 ‘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웹툰 ‘무림헌터’의 작가 이병호였다.
강태한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터치펜을 내려놓으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오셨습니까, 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카페에 와서 작업하고 있을 뿐이었는데요, 뭘.”
애초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을 한 건 자신이었기에, 이병호는 양손에다가 고개까지 저으며 적극적인 부정을 표했다.
“혹시, 음료는 어떻게···.”
“주문하고 오는 길입니다.”
“아이고,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탄식을 터트리는 이병호의 반응에,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날 이병호의 부탁을 강태한이 거절하긴 했지만, 그건 당일에 유세아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딱히 시간을 내기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싫다기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가는 편이었다.
일단 웹툰 작가라는 사람을 처음 만나보기도 했고···
이병호의 작품인 무림헌터를, 전전에 최성현과 황 실장이 본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예약을 미룰 수 없기에 늦은 시간에나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병호는 그런건 아무 상관이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
그새 음료를 받아온 강태한은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는 넌지시 말했다.
“근데,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는 겁니까? 저는 그림이나 글 쪽으로는 뭘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만.”
“음··· 사실은 제가 지금 장기휴재를 하고있는데, 휴재하기 바로 전, 그러니까 최신화로 올라와 있는 내용이···.”
이병호는 노트를 꺼내 설명을 시작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주인공이 강적을 만나 물리치긴 했는데, 큰 부상을 입어 쓰러진 상태라는 것.
여기서 주인공이 회복하고, 그걸 계기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한데···
“여기서 원래 생각해뒀던 그림이 있는데··· 그게 앞에 깔아뒀던 다른 설정이랑 부딪히면서 쓸 수 없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설정 오류가 너무 잦다, 무공의 위력이 들쭉날쭉 변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아졌다.
그런 의견들을 의식하며 기존 에피소드를 버리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짜려다보니, 갑자기 머릿속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흠··· 무협에서는 굉장히 흔한 상황이 아닌가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제 욕심이죠, 뭐.”
결국 스토리에 고민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강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런 식으로 풀어 가보면 어떻습니까?”
강태한이 손을 내밀자, 이병호가 그에게 볼펜을 건넸다.
이번엔 강태한이 노트에 단어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단전에 부상을 입어 생사를 헤매던 남자가, 어느 은거기인에게 큰 도움을 받고 겨우 살아나, 깨달음을 얻고 다시 힘을 되찾는 이야기.
크게 놓고 보면 그냥 무협지의 클리셰 같은 전개였지만, 강태한이 늘어놓는 세부적인 내용들은 묘한 디테일이 실려 있었다.
은거기인을 만나는 과정과 그의 괴팍한 성격이라든가, 어떤 약초로 어떤 약재를 만들었다든가, 기인이 머물던 곳은 어땠다든가.
마치 실제로 겪어본 것처럼 생생한 이야기.
이병호는 그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가방에서 다른 노트와 펜을 꺼내들더니, 강태한의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얘기를 현대에서 하게 될 줄이야.’
강태한의 이야기가 생생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본인이 직접 겪어봤던 일이었기 때문.
그리 긴 인연은 아니었고, 결국 은인(恩人)의 이름도 모른 채로 헤어졌지만, 그래도 그 기억과 그때 받은 은정(恩情)만큼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이 캐릭터 같은 경우는··· 최신화에서 단전을 다 쥐어짜고 혈도가 말라버린 상태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그럼 이 부분에서는 조금 더 가벼운 묘사로 바꿔도 되겠고, 이 약초는···”
물론 강태한과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그 정도 디테일은 강태한이 다듬어줄 수 있다.
머지않아 노트에는 다음 에피소드에 관한 상세한 플롯이 짜여있었다.
“선생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냥 무협지를 많이 봤을 뿐입니다.”
플롯을 다시 훑어보며 감탄을 터트리는 이병호, 그의 말에 강태한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한 핑계였다.
“드디어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갈 수 있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준비가 되어있었나 보군요?”
“예. 일단 동료들과 다시 합류한 다음, 예전에 자길 배신했던 원수를 찾아가 복수전을 치를 예정이었죠. 사실 얘도 나름 사정이 있는 놈이었는데···”
이병호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다음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강태한의 고개가 옆으로 갸웃 기울었다.
“자길 배신했던 놈을 살려 보내는 겁니까?”
“예. 나름 타당한 이유도 앞에서 깔아뒀고, 뒤에 이어질 떡밥도 있거든요. 사실 주인공에게 미안한 감정도 갖고 있고···”
“이 주인공은 굉장히 오만한 캐릭터인가 보네요. 생사를 넘어 돌아왔는데, 자비를 베풀 여유도 있고.”
순간 강태한의 입가에 냉소적인 웃음이 맺혔다.
마치 누군가의 우스운 꼴을 내려다보는 듯한···
잘은 몰라도, 보고 있으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 그럼 죽이는 걸로 바꿀까요?”
“어디 명문가에서 자란 도련님이라면 모르겠지만··· 산전수전을 겪어가며 성장한 무림인이라면, 그렇게 하는 쪽이 당연히 자연스럽겠죠.”.
강태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병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메모를 적었다.
‘확실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하지.’
그동안 ‘재미는 있지만 주인공이 좀 답답하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무림헌터에서, 주인공의 답답함이 한결 나아지는 순간이었다.
* * *
서울의 용산역 앞에 위치한 택시 승차장.
방금 기차에서 내려 역에 막 도착한 듯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지도 어플을 뒤적거리며 바로 앞에 멈춰있는 택시에 올랐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기사님.”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의 말에 남자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택시기사에게 보였다.
화면에는 방금 전 미리 찾아놓은 주소와 지도가 나와 있었다.
“여기로 가주실 수 있으세요?”
“뭐 못 갈 거 있나. 어디보자···.”
택시기사는 잠시 지도를 좀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남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괜히 왔나 싶기도 하고.’
남자의 정체는 대성 웨일즈의 트레이닝 코치인 송남섭.
얼마 전 한하와의 경기 이후에 있었던 회의에서, 관련 지인에게 들었던 내용을 말했다가 웃음바다를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땐 자기도 헛소리를 했다면서 웃어넘겼지만···
자꾸 찝찝한 느낌이 마음에 남아 신경에 거슬렸다.
그에게 그 내용을 말해준 지인이 딱히 평소에 흰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하 스탭 쪽의 지인이 알려준 건 단지 강태한이라는 이름뿐이었지만, 송남섭은 SNS에 강태한이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안마샵 하나를 찾아냈다.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는다는 거였는데.
연락을 해보니 마침 취소가 나서 예약 한 자리가 비어있었고.
더군다나 내일 경기는 잠실구장에서 하는 어웨이경기였기에 서울에서 합류를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송남섭은 잠시 고민하다 예약을 걸어놨고, 오늘 업무를 끝마치자마자 기차 위에 몸을 실었다.
사실 한하 선수들의 폼이 올라온 이유가 전부 안마 덕분이라고는 믿기 힘들고, 애당초 자기가 안마샵을 제대로 찾은 건지도 아직 확신할 순 없었지만.
‘뭐 나쁠 건 없지.’
이 정도로 신경 쓰이는 건 직접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설령 아니었다고 해도, 그냥 반차 내고 안마 받으러 온 셈 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송남섭은 긴 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