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52)
천마님 안마하신다-52화(52/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52화>
조찬혁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 의식이 혼미해질 정도였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증상들이 완화된 것이다.
물론 아직 몸 상태가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고 식은땀도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방금 전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쾌차.
조찬혁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 목덜미에 손을 얹어두고 있는 청년.
잘은 몰라도, 이 기적 같은 현상에는 이 청년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란 직감이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시죠. 도움이 될 겁니다.”
반면 그 청년, 강태한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초조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고양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
만약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이 상황에 이런 표정이 맞냐’라고 연기를 지적했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잔잔한 표정에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정말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게다가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중후한 무게감마저 실려있어, 묘한 신뢰감이 차분하게 전해졌다.
“후우우···”
“좋습니다.”
청년의 말에 따라 조용히 심호흡을 쉬는 조찬혁.
강태한은 그때에 맞춰 손을 올린 뒷덜미의 혈자리를 지그시 압박하여, 상단전에 고여 있는 탁기를 마저 뽑아냈다.
곧이어 조찬혁의 얼굴에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면서 점차 안색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얼추 마무리가 됐나.’
심장박동도, 거칠어졌던 혈류의 흐름도, 탁기로 어지러워졌던 상단전의 기운도 모두 안정이 됐다.
물론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에 불과했고, 근본적인 부분까지 치료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발작으로 인해 나타난 급박한 증상들은 대부분 해결이 되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한편, 옆에 서있는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내려 놓은채로 멍하니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찬혁이 바닥에 주저앉고, 옆으로 막 쓰러지려할 때쯤···
갑자기 어느샌가 저 청년이 다가와 있더니, 옆에서 조찬혁을 부축하며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한 삼십초 정도가 지나니 지금의 상황.
카메라맨은 조찬혁이 쓰러질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수 있는 건 아니었다.
‘편두통에 약간 공황장애가 오셨던 거 같은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119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저기요.”
“아, 예!”
그때 강태한이 카메라맨을 불렀다.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일까, 괜히 긴장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혹시 물 좀 있습니까?”
“물이요? 예, 있습니다.”
예능 카메라맨은 항상 출연자를 쫓아다니고 상황에 따라선 뜀박질까지도 강행해야한다.
충분한 수분섭취는 기본 중의 기본.
그는 조끼 주머니에서 아직 뜯지 않은 생수 한 통을 꺼내들었다.
“감사합니다.”
강태한은 눈인사를 건네며 생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조찬혁의 목덜미에서 혈을 짚고 있던 손을 떼며 말했다.
“보아하니 급한 일은 지나간 것 같습니다. 물 좀 마시면서 쉬고 계시면, 구급차가 오지 않을까 싶네요.”
“아, 예.”
본래 공황장애 발작이 왔을 땐 섣불리 물을 마시면 안 되지만, 조찬혁은 얌전히 강태한이 내민 생수를 받았다.
“하아아.”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자, 입에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식은땀이 줄줄 새어나갔던 몸에 다시 활력이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살았다···.’
목을 좀 축이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갑자기 찾아왔던 위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말이다.
조찬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음?”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귀신이라도 봤단 말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다행히 은인의 뒷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진즉에 자리를 떴었는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선생님! 잠깐만요!”
아직 기력이 완전히 되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조찬혁은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은인에게 걸어갔다.
다행히 부르는 소리가들렸는지 강태한이 제자리에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가시다뇨! 아무런 말도 없이.”
“제가 운동을 하러 가고 있었던 중이라.”
조찬혁의 말에 강태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 반응에 조찬혁은 저도 모르게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을 수있었다.
그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자길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냥 길가다가 잠깐 도와주는 수준의, 간단한 일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보상을 운운하거나 감사를 받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겠지.
조찬혁은 감탄을 터트리기에 앞서 그 넓은 마음에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선생님,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알려주시죠.”
“아. 생각해보니 그러는 게 좋겠네요.”
조찬혁이 부탁하듯이 말하자, 강태한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작은 지갑 하나를 꺼냈다.
스무 장 정도의 명함이 들어있는 명함지갑.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본인의 명함을 건넸다.
“오늘은 시간도 없고 장소도 애매해서 도중에 끊었지만, 도움이 더 필요하시면 여기로 오시죠.”
“···안마사셨군요.”
조찬혁이 명함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강태한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덧붙이듯이 말했다.
“아마 한동안은 예약이 힘들 것 같긴 한데··· 음, 미리 연락 주시고 7시 이후에 오시면 따로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강태한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뒤로 돌아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조찬혁은 벙 찐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방금은 상황 때문에 조금만 봐줬다는 뜻인가?’
마치 그렇게 들리는 뉘앙스.
조찬혁은 멍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긁적이다 손에 쥐어진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강태한이라···.”
강태한, 강태한.
그는 대본을 외우듯이 그 이름을 서너 번 반복해서 중얼거리더니, 조심스레 지갑에 명함을 집어넣었다.
* * *
[태한 씨! 혹시 어제 조찬혁 선배 만났어요?] [촬영 중에 쓰러졌다는 말 듣고 깜짝 놀랐는데, 물어보니 어떤 귀한 인연 덕분에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왠지 태한 씨가 떠오르던데, 맞나요?]그 아래에는 분홍빛 토끼가 재촉하고 있는 이모티콘이 달려있었다.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아마 그럴 겁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전날, 조찬혁과의 만남 이후로 강태한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한 다음, 집에 가서 영약 하나 먹고 잠든 것이다.
허나 자고 일어나서 평소처럼 인터넷 뉴스를 쓱 훑어보는데, 어제 있었던 일이 기사로 올라와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배우 조찬혁, 컨디션 난조? 길거리에서 혼절.] [조찬혁, 블미션 촬영 중 공황장애 재발. 지나가던 시민 도움으로 가까스로 정신 되찾아]대충 이런 내용의 기사들.
메인에 올라올 정도로 화제가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서너 개쯤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강태한은 제목만 보고 곧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 기사화된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긴 했었지.’
일반 사람이 길거리에 쓰러져도 사람이 모이는데, 연예인이 쓰러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굳이 확인은 안 해봤지만 SNS 같은 곳에서도 좀 퍼졌을 테니, 기사가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래도 뭐, 시끄러워지는 일은 없을 테니.’
기사들은 조찬혁이 쓰러졌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강태한은 그냥 길을 가다 도움의 손길을 건넨 용기 있는 시민 정도로 나오고 있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해석이긴 했다.
무슨 본격적인 안마를 한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는 쓰러진 사람을 옆에서 부축해주면서 목을 받쳐준 정도로만 보일 테니까.
강태한이 의도하기도 했었던 부분.
어쨌거나, 강태한에게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뿐이다.
강태한은 운전석에 등을 기대며 팔을 뻗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127번 손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덧 자기차례.
창문 너머로 커피 두 잔이 담긴 테이크 아웃 캐리어가 건네졌고, 강태한은 그걸 받아 조수석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으로 이용해보는 드라이브 스루라 그런지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가볼까.’
지금 강태한의 위치는 대전, 서울에서 내려오는 도중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보니, ‘가게에 있으니 먼저 집에 가있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차가 있으면 가게는 그냥 집에 가다가 들르는 수준에 불과하니, 아버지 좋아하는 커피라도 한 잔 사다드리려고 잠깐 들렀던 것.
그렇게 가게에 도착해서, 별 생각없이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버지, 저 왔···”
“야! 태한이다! 태한이한테 직접 물어보자고, 어?”
들어가자마자 낯이 익은 아저씨 한 명이 강태한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명도 이쪽을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씨와 최씨.
지난번 누가 태한이랑 더 친한지로 언쟁을 벌였던 두 사람이, 하필 지금 이자리에 또 다시 모여 있었던 것이다.
“태한아, 오랜만이다! 아저씨 기억하지? 너 첫 휴가 나올 때 용돈도 주고, 입학식 때 피자에 치킨도 사줬었잖아!”
“하하. 물론 기억하죠.”
강태한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억은 당연히 나지 않았다.
다만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왠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였기에 눈치껏 분위기에 맞췄을 뿐이다.
“아저씨도 휴가 날 용돈 줬었는데, 기억하냐? 민수랑 네가 같은 유치원 기린반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새 세월이 참 많이 지났어. 안 그러냐?”
“그···렇네요.”
본인도 잊고 지냈던, 육십년 전에 다녔던 유치원의 반 이름을 다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강태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조그맣게 한숨을 쉬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뭐에요, 아버지?”
“미안하다. 네 자랑 좀 했더니, 서로 안마를 받고 싶다면서 이러지 뭐냐.”
“아하···”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아버지 지인이라면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는데.
대충 상황이 읽힌 강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첫 휴가 용돈은 각별하니까.’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덕분에 좀 풍족한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받은 만큼은 갚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누구부터 봐드리면 될까요?”
강태한이 가까운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를 쭉 빼며 말하자, 김씨가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호감 가는 사람 먼저 해줘.”
“그럼 나지.”
“나지 뭔 소리여.”
“어허, 이 사람 참.”
“그냥 가위바위보 하시죠.”
보다못해 한 마디 던지는 강태한이었다.
* * *
“제수씨, 요즘 몸 상태는 어떠세요?”
대전 백병원 근처에 위치해있는 작은 카페.
박호연은 방금 막 받아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맞은편의 일행에게 넌지시 물었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치고는 약간 걱정이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단아한 옷차림의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병원의 병원장을 맡고 있는 박호연과, 그의 친우 신준호의 아내인 채서윤.
채서윤은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박호연의 얼굴에는 안쓰러운 미소가 맺혔다.
‘항상 같은 대답이시란 말이지.’
채서윤은 만성적인 관절통과 척추측만증, 골반 틀어짐 현상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곳곳이 시큰거리고, 증상이 중복될 경우 진통제를 복용해야할 정도 였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에겐 이렇게 좀처럼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본인 성격이 원래 아쉬운 소리를 잘 꺼내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박호연 자신을 배려해서 하는 말일 터였다.
그녀는 이년 전부터 이곳, 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런 유형의 병들이 으레 그렇듯 좀처럼 진척이 없었고, 박호연이 나름 신경을 기울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다.
박호연 본인에게는 나름 마음의 짐이 되는 부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허나 기껏 환자가 밝은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본인이 망칠 수는 없다.
박호연은 싱긋 미소를 지은 뒤,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아, 그런데 호연 씨.”
“예?”
“혹시 태한 학생이랑 만나보신 적 있어요?”
···어.
순간 그녀가 말한 이름을 듣고,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떠올리는 박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