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54)
천마님 안마하신다-54화(54/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54화>
“흐음.”
작은 봉우리에 올라선 강태한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지도로 봤을 때도 느껴졌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큰 산이란걸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저 언덕 쪽으로 올라가볼까.”
산삼을 찾을 때를 제외하면, 강태한은 그동안 되도록 비슷한 구획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왔다.
다만 해당 구획은 오늘 작업으로 얼추 마무리가 됐고, 슬슬 다른 장소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지만.
적어도 ‘약초를 어디서 캐야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봉우리 위에서 봤을 때, 강태한이 그동안 약초를 캐고 돌아다녔던 구획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면적 대비 약초의 채집량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산의 면적이 넓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각 잡고 씨를 말리지 않는 한 여유는 있겠어.’
이 넓은 곳에서 나는 약초를 혼자서 독식할 수 있다니. 이곳이 개인의 사유지고, 또한 신준호와의 인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태한은 빙긋 웃으며, 벌써 네 번째로 가득 채워낸 배낭을 매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아마··· 이쯤이었었지.’
강태한은 차를 몰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주택가가 모여 있는 조용한 골목.
좌우로 늘어선 집집마다 꽤 널찍한 마당이나 정원이 딸려있는 것이, 꽤나 한적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약간 부촌 느낌이 있단말이지.”
물론 서울 인근의 진짜 부촌과는 비교할 수없겠지만, 그래도 제법 풍족한 느낌이 난다고할까.
하긴, 지금 찾아가는 신준호만 해도 산을 몇 개씩 갖고 있는 땅부자였으니 그럴 만도했다.
“태한 학생! 오랜만이야!”
“어서 오세요, 태한 씨.”
근처에 차를 대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신준호와 그의 아내 채서윤이 문을 열고 나오며 그를 맞이했다.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당이 참 예쁘네요.”
“하하, 뭘. 저번에도 봤으면서.”
“이런 건 몇 번을 칭찬해도 아깝지 않죠.”
강태한이 슬쩍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꽤 널찍한 앞마당은 과장을 좀 보태면 정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었다.
“고마워요, 태한 씨.”
“사모님 솜씨셨군요?”
“후후. 집에서 소일거리로 하는 거죠, 뭐.”
강태한의 칭찬에 채서윤이 싱긋 웃으며 입가에 손을 올렸다.
말은 소일거리라고 하지만 꽤나 신경 써서 꾸며놓은 마당이기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거, 선물입니다.”
“선물? 에이··· 뭐 이런 걸 다.”
“빈손으로 올 순 없잖아요.”
손님이 가져온 선물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신준호는 두 손을 저으면서도, 강태한이 내민 종이가방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사실 선물이라 하기엔 좀 애매할 수 있는데··· 직접 담근 도라지청이랑, 오늘 캔 더덕 좀 몇 뿌리 가져와봤습니다.”
강태한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은 딱히 겸손 같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 도라지와 더덕, 둘 다 신준호의 산에서 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허허, 참··· 항상 고맙네.”
허나 선물을 받은 신준호는 그저 고마워 할 뿐이었다.
앞서 받았던 도라지청은 다 먹은 지오래였기에, 안 그래도 내심 아쉬워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렇게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일 뿐이다.
“뭐야. 당신이 저번에 가져왔던 도라지청 아니야?”
“태한 학생이 참 센스가 좋다니까. 마침 다 먹어서 고민하고 있었던 걸 어떻게 알고.”
종이가방 안쪽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꽤나 맘에 든 눈치였기에 강태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근데 제가 요리를 하고 있던 중이라, 먼저 좀 들어가 볼게요.”
채서윤은 뒤늦게 떠올린 듯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끝을 모으더니, 강태한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모님이 참 고우시네요.”
“그렇지? 나도 복 받았다고 생각해.”
신준호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들어가지. 내가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우리 와이프 요리 솜씨가 제법 훌륭하거든.”
“그런 거 같네요.”
강태한이 집 안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먹음직스러운 향이 입맛을 당기고 있었다.
* * *
잘 차려진 밥상을 묘사할 때,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밥상의 다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창하고 푸짐한 상이라는 뜻.
‘그 말이 딱 어울리는군.’
채서윤이 준비한 상 앞에 앉았을 때, 강태한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그 상투적인 표현이 떠올랐다.
물론 상다리가 휘어져있진 않았지만, 꽤 넓어 보이는 식탁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차려져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치만 네 종류에 젓갈도 세 종류.
방금 무쳐낸 나물은 척 보기에도 싱싱함이느껴졌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불고기는 이것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순식간에 비울 수 있을 것처럼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둥그렇게 공간이 비어져있는 식탁 중앙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냄비받침이 있었으니.
“자, 이걸로 마무립니다.”
그 위로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큼직한 전골냄비가 올라왔다.
딱 봐도 깊이 우러나온 뽀얀 닭고기 육수와, 칼칼한 맛을 더하는 대파와 향긋한 표고버섯.
허나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가지런히 나열되어 냄비를 가득 덮고 있는 전복과 낙지, 새우와 가리비를 비롯한 푸짐한 해산물이었다.
“해신탕? 간만에 힘 좀 썼네?”
“귀한 손님 오신다는데 대접은 제대로 해야지.”
신준호의 말에 채서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한편 강태한은 팔팔 끓는 냄비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海神)탕이라.
과연 그런 거창한 이름이 붙을만한 요리다.
“그럼 여기··· 태한 씨 먼저.”
채서윤이 안쪽부터 국자로 떠올리자, 푸짐하게 올라와있던 해산물이 고스란히 그릇에 담겨 강태한의 앞으로 내려왔다.
큼직한 전복과 탱글탱글하게 연분홍빛으로 익어있는 낙지.
딱 봐도 먹음직스러운 게 벌써부터 입맛을 살살 북돋는 느낌이다.
“자, 다 같이 먹읍시다.”
채서윤도 자리에 앉고 식사준비를 마치자, 본격적인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강태한은 가장 먼저 앞에 놓인 해신탕의 국물을 맛봤다.
‘생각보다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데.’
깔끔하면서도 감칠맛이 깊게 우러난 국물.
해물탕 특유의 칼칼한 감칠맛에 표고버섯이 깊은 맛을 담아내고, 여기에 닭 육수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며 완성된 걸작이었다.
“닭고기는 닭다리랑 넓적다리를 쓰셨나보네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손님의 반응을 확인하고자 아까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기에, 채서윤은 강태한이 아직 국물만 맛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귀신같이 알아맞히다니.
감탄한 채서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편 강태한은 눈웃음을 지으며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이렇게 제각각인 재료들로 맛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데··· 신 사장님 말씀대로 사모님 요리 솜씨가 장난 아니시네요.”
“어머나··· 아까 마당에서부터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딱딱 짚어서 골라 해주시네.”
“하하. 내가 괜히 복 받았다고 하는 게 아니지.”
서로 간에 미담이 오가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신탕이 바닥을 드러내고 상 위에 빈 그릇의 숫자가 한참 더 많아졌을 무렵.
“잘 먹었습니다.”
강태한은 만족한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개인적으로, 현대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간짜장을 처음 먹었던 이후로 가장 인상 깊은 식사라 할 수 있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어요?”
“아. 이렇게 먹고 입에 안 맞았다고 하면 안되죠.”
강태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얼핏 식사 내내 손을 느긋하게 움직인 것 같았지만, 알고보면 셋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먹은 강태한이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차는··· 어디보자, 오늘 태한 학생이 새로 가져온 청으로 도라지차를 한 번 끓여볼까?”
채서윤과 함께 빈 그릇을 치우던 신준호가 말했다.
“나는 좋아. 태한 씨는 뭐 마실래요?”
“저도 같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도라지차 세··· 윽.”
싱크대로 빈 그릇을 나르고 있던 채서윤.
그러던 와중 순간 짧은 신음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더니, 들고 있던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릇을 놓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으며 뒷걸음질을 치는 채서윤.
그릇은 사기그릇이고 바닥은 돌로 되어있으니, 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어라?”
바닥이 좀 지저분해졌을 뿐, 다행히 그릇들은 하나도 깨지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왠지 소리도 조그맣게 난 느낌.
“이 접시들이 근성이 좋나보다. 애가 들고있다가 떨어트린 컵도 깨지는 곳인데.”
“그, 그러게··· 다행이다.”
“태한 학생이 와서 운이 좋아진 걸지도 모르겠네.”
“그럴 리가요.”
신춘호의 말에 강태한은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야구장 반대편에 있는 공의 궤도도 바꾸는데,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접시의 속도를 줄이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강태한의 시선이 채서윤에게로 향했다.
“사모님, 혹시 몸에 불편한 곳이 있으신가요?”
“아···네. 제가 관절통 때문에 가끔 이래요.”
채서윤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강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안마 일을 하고 있거든요.”
“네. 그건 남편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좀 봐드려도 괜찮을까요?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것 같은데.”
그녀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건 처음부터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다짜고짜 안마를 해드리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어설프게 오지랖을 부리는 꼴이 될 수 있으니 가만히 있었을 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는 수준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라도 증상을 고쳐주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신준호 씨와의 인연도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 방금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았으니, 적어도 이 정도의 보답은 해주고 싶은 것이다.
“어, 안마를 지금 해주시겠다고요?”
다만 채서윤은 다소 당혹스러운 반응이었다.
갑자기 안마를 해주겠다니.
물론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서 꺼낸 말이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네. 하지만 부담스러우시다면 사양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부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강태한 또한 손을 저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허나 옆에 서있던 신준호의 반응은 달랐다.
“당신, 이번 기회에 태한 씨한테 안마 한 번 받아봐. 그게 좋겠어. 혹시 모르잖아?”
어느새 꽤 진중해져있는 목소리.
그는 자신의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다시 강태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태한 학생한테는 이미 많은 걸 받았고, 아직 다 갚지도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안 그래도 아내의 일로 부탁 하나만 꼭 좀 하고 싶었었어.”
만성적인 관절통과 뒤틀려있는 골반.
채서윤은 본래 결혼 전에는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출산 이후로 위와 같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는 출산하고 난 뒤, 산후조리원에 다녀오고 난 후로 생긴 후유증이다.
조리원에서 퇴원한 이후 그녀는 골반의 통증과 관절통을 주기적으로 호소했고, 머지않아 신문 기사에 해당 산후조리원의 이름이 ‘부실 산후조리원’이라며 오르내렸다.
출산 후 몸이 제대로 회복되기를 바라며 보냈건만, 오히려 관리미흡과 어설픈 관리사의 치료요법 때문에 후유증만 떠안게 된 것이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
관리미흡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 소송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의 병이 낫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소리 한 번 안하면서 열심히 내조를 해왔으니···
신준호로서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우면서도 미안했고, 마음에 큰 빚을 지고 지내왔었다.
“오늘 보자고 했던 것도, 실은 이 일을 좀 부탁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네. 염치가 없어서 미안하네.”
신준호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염치가 없다니요. 별 말씀을.”
그 말에 강태한은 손을 젓더니, 어깨를 으쓱이면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그저 받은 만큼 보답할 뿐입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맛있는 식사.
그동안 신준호에게 받은 것들은 다 제쳐둔다고 해도, 오늘 대접받은 식사만으로도 이 정도 보답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강태한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