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58)
천마님 안마하신다-58화(58/309)
<천마님 안마하신다 58화>
강태한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사인을 내려다 보다가 다시 집어 들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필획에 힘이 들어가 있어 제법 역동적으로 멋들어진 사인.
그 밑에는 오늘의 날짜와 함께, ‘강호연 씨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함께 적혀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어요.”
“그러셨으면 좋겠군요.”
강태한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조찬혁도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를 표하는 강태한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제가 더 해드릴 건 없습니까?”
사인을 한 다섯 장만 더 해달라든가, 인증샷 한 번만 같이 찍어달라든가, 아니면 사인 밑에다가 ‘정말 시원해요. 추천합니다.’라고 써달라든가.
조찬혁은 가게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봤을 때 으레 받곤 했던 부탁들을 떠올렸다.
왜인지 가게 사장님들한텐 자신의 사진이나 사인들이 사업번창 부적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그런 부탁을 받으면 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지만.
강태한이 그런 걸 원한다면야, 얼마든지 따라줄 용의가 있었다.
“아뇨. 쉬시는데 여기서 더 방해할 순 없죠.”
하지만 강태한은 단호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사양한 뒤, 사인지를 들고 일어서고는 꾸벅 목 인사를 했다.
“정해진 절차는 다 끝났으니, 차 좀 드시면서 여유롭게 계시다가 편하실 때 나오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강태한은 그 말을 남기고선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사인 한 장만 받고서 되돌아간 것이다.
‘정말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
길거리에서 의식을 잃을 뻔했던 자신을 구해주고, 이렇게 완벽한 휴식까지 선물 받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강태한의 입장에선 좀 더 생색도 낼 수 있었고 더 많은 걸 부탁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냥 일반인을 상대로도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을 만한 일인데···
본인이 말하긴 좀 그랬지만, 자신은 나름 유명인에 속했고 자산도 부유한 편이었으니까.
속된 말로 ‘이참에 잔뜩 챙겨두자!’라는 생각을 하며 달라붙을 수도 있는 것이다.
헌데 강태한은 단지 사인 한 장만을 부탁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처럼.
애당초 그 사인조차도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강태한 본인은 정말 한 명의 안마사로서 조찬혁을 한 명의 손님으로 대했을 뿐인 셈이다.
“···여러모로 훌륭하신 분이로군.”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할까, 아예 사람의 그릇이 넓다고 할까.
기회가 된다면 식사라도 한 번 함께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칡차를 조용히 들어올렸다.
* * *
끼이이익.
“헉, 나오신다, 나오신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조찬혁이 들어있던 안쪽 방의 문이 열리자, 안마사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차렷 자세를 취했다.
‘사인지는··· 저기에 있다.’
그러곤 슬쩍 고개를 돌려 카운터 구석에 놓인 종이를 확인했다.
다른 게 아니라 직접 바깥에 문방구까지 다녀오면서 준비해둔 사인지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손님이 복도로 들어서자.
“안마는 잘 받으셨습니까.”
그 안마사, 최성현은 공손히 손을 모으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마치 고급 식당의 점원과도 같은··· 아니, 그걸 흉내 낸 듯한 인사였다.
“아··· 네. 정말 좋았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자 대본으로 짜여있기라도 한 듯, 카운터에 서있던 황 실장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받았다.
그는 오랜 세월 단련된 미소를 자연스레 머금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탕 하나 어떠십니까?”
“사탕··· 말입니까?”
“예. 안마 후에는 몸이 피로해지면서 당분이 필요해지므로, 저희 가게에서는 손님들을 위한 사탕을 항상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황 실장은 카드 사인기 옆에 있는 작은 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엔 딸기, 청포도, 박하 따위의 싸구려 사탕들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왜들 이러시나···.’
조찬혁은 꽤나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해온 몸이다.
어색하거나 과장된 연기는 곧바로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수상함을 느낀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카운터 구석에 놓여있는 몇 장의 사인지를 발견했다.
그러자 대충 어떤 상황인지가 파악되었다.
“혹시, 사인 필요하신가요?”
“하하하··· 네.”
여전히 웨이터마냥 서있던 최성현이 머쓱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모습에 조찬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말씀하시지.”
조찬혁은 원래도 팬들에게 친절하다고 알려진 배우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 어디서든 사인을 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컨디션이 좋다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헤헤, 최성현입니다.”
“크흠, 흠. 저는 황재환이라고 합니다.”
“최성현 씨랑··· 황재환 씨.”
조찬혁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사인펜을 움직였다.
“저기, 조찬혁 아니야?”
“뭐? 그 사람이 여기 왜 있··· 어?”
“그냥 닮은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안마를 받으려고 여기에 와있었던 다섯 명 남짓한 손님들이었다.
“대박, 여기 그럼 조찬혁이 다니는 안마샵이야?”
“여기 손맛 좋은 걸로는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였다고? 미쳤다, 미쳤어.”
연예인이 다니는 샵!
그 문장에 담겨있는 마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조찬혁이라니.
샵을 둘러보는 손님들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이야··· 사인 기깔나네요.”
한편 사인이 완성되자, 황 실장은 무슨 작품이라도 보듯이 이리저리 각도를 돌려가며 살폈다.
옆에 있는 최성현도 비슷한 반응.
조찬혁은 피식 웃으며 둘을 지켜보고 있다가, 문득 옆에 놓인 안마의 메뉴표를 보고서 말을 걸었다.
“저, 근데 강 선생님은 원래 7시까지만 하시는 거였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거기에 적혀있는 시간표 때문.
강태한이 담당하는 장인코스는 7시까지만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그가 이곳에 왔던 시간은 그것보다 살짝 늦은 시간이었다.
“네. 항상 그랬죠.”
“···그렇군요.”
따로 봐주겠다고 하더니, 나름 특별대우를 해주셨던 건가.
강태한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조찬혁이었다.
“저, 그럼 예약을 좀 해두고 싶은데.”
하지만 감사와 함께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지금 예약해둬야겠다’라는 것.
방금 안마를 받고 나온 참이었지만, 벌써부터 다음 안마가 기대되는 기분이었다.
“음. 그러면 일단 예약표 좀 보시겠어요?”
어디보자.
조찬혁은 황 실장이 꺼낸 차트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예약이 꽉 차있는 날에는 X자를 쳐두고 있었는데···
“이거, 설마 다다음 주까지 예약이 꽉 찬 겁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가끔 취소가 나오긴 하는데.”
X자는 2주 뒤까지 수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쳐져 있었다.
게다가 뒤에 X자가 없다고 해도 주요 시간대에는 얼추 예약들이 차있는 상태였다.
특히 주말은 3주 뒤에도 예약이 힘든 상황.
예약표를 확인한 조찬혁은, 자신이 나름 특별대우를 받은 게 아니라 상당한 특별대우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저, 실장님. 혹시.”
그리고 조찬혁은, 자기 명함 한 장을 꺼내 카운터 위로 슬며시 내밀었다.
“취소된 자리가 생기면 저한테 말씀 한 번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방금 전과 다르게 단호한 대답!
그러면서 황 실장은 받았던 사인을 괜히 등 뒤로 숨겼다.
조찬혁이 다시 돌려달라는 말을 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역시 안 됩니까···.”
조찬혁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조그맣게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으로 3주 뒤의 스케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찬혁도 예약해야 하는 건 똑같나봐···.”
“대박. 얄짤없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손님들 사이로 가게의 신뢰와 평가 또한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 * *
태안에 위치해있는 한 골프장.
전체적으로 잔디의 관리 상태가 아주 훌륭하고, 지형도 다양하면서 비거리도 괜찮게 나와 자잘한 대회에서부터 큰 대회까지 종종 열리곤 하는 장소다.
“으아, 오랜만이네.”
잔디 위에 선 채은비는 썬캡의 각도를 조절하면서 짧게 기지개를 폈다.
혹시나 하며 허리를 살짝 돌리더니, 느낌이 괜찮은지 이내 자신있게 좌우로 휙, 휙 돌렸다.
‘진짜 사흘이면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허리 상태를 확인하던 채은비는 새삼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골프는 충분히 회복기간을 둔 다음에 치도록 하고.’
‘음. 몇 주 정도요?’.
‘글쎄. 한 사흘 정도는 일찍 자는 게 좋겠네.’
그때도 웃음을 터트리긴 했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반신반의를 했었다.
자기 프로 생활을 접게 만들었던 그 부상이 어떻게 사흘 만에 낫는다는 말인가.
헌데 강태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채은비는 그가 말했던 사흘 뒤부터 조심스레 재활 운동을 시작했는데,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 다음 주부터는 곧바로 골프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직 젊은 덕분일까, 아니면 미련이 남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던 덕분일까.
잃어버렸던 감은 금방 돌아왔고, 그녀는 머지않아 잔디밭 위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 정회원 선발 예선 참가자 분들, 이제 홀로 이동하실게요.”
그녀는 하반기에 있는 여성프로골프협회의 프로테스트, 정회원 선발전에 참가하여 이곳에 와있었다.
본격적인 골프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시험.
말하자면 여성골퍼에게 투어 프로 선발전에 해당되는 대회라고 볼 수 있으리라.
채은비는 일전에 준회원 자격까지 따뒀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스윙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정회원 선발전에는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결국 그 상태에서 꿈을 접어두고 잊으려 했었는데.
이제 다시 그 출발선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
물론 한동안 쉬고 있었던 기간도 있고 대회의 감을 되찾는 게 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로서는 이 자리에 서있는 것 자체가 감회가 새롭다 못해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자, 그럼 순서 확인해주시고, 시작하겠습니다.”
안내를 따라 어느새 티박스 위에 도착하고 난 후, 채은비는 가볍게 필드와 바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자체가 오랜만이다 보니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어머, 은비야!”
그렇게 차례를 기다리며 좀 있었을까, 뒤쪽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아보니 꽤 낯이 익은 얼굴이 있었다.
“오랜만이다! 야, 여기 좀 와봐! 은비야 은비!”
“진짜? 걔가 여길 왜 와?”
그녀가 손짓을 하며 부르자, 익숙한 얼굴 한명이 또 나타났다.
둘은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비웃듯이 한쪽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너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제 스윙 가능해?”
“허리는 다 나은 건가? 어쨌거나 반갑다, 얘.”
“근데 어디서 소식 들은 적도 없는데··· 아, 혹시 아마추어 쪽에서 활동했나? 그럴 수도 있겠네.”
얼핏 오랜 지인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시선이 명백하다.
한편, 채은비는 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미안. 둘 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뭐?”
“미안하다니까. 내가 필드 떠난 지가 좀 됐잖아.”
얼굴은 기억이 난다.
대회에서 종종 마주쳤지만 항상 자기보다 성적이 안 나와서 수상을 못하던 애들.
심지어 준회원 선발전에서는 자기가 턱걸이로 올라가고 두 사람은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당시 자기한테 라이벌 의식을 갖는 것 같아 영 부담스러웠기에,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름은 아직도 떠오르지를 않았지만.
“너, 우리가 너보다 언니거든?”
“아··· 그런가? 미안하게 됐어요.”
채은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재차 사과를 건넨 다음, 자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대회라 기분이 설렜는데 별 거 아닌 사람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는 싫었다.
‘그럼 어디···’
이제 어느덧 그녀의 차례.
오랜만에 서는 대회의 티박스였지만, 신기할 정도로 긴장감이 없었다.
걱정보다는 설렘, 긴장감보다는 흥분이 앞섰다.
‘아하.’
그녀는 문득 알아차렸다.
지금 자기는 대회의 성적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상황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다.
바람도 좋고, 필드는 탁 트여서 상쾌하다.
그리고 허리는 기름이라도 칠해놓은 것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팡!
그녀의 골프채가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공을 쳤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라진 공은 큼직한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 그린 위로 떨어져 굴러서··· 깃발이 꽂힌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처음부터 이글?”
“홀인원을 때려버린다고?”
기선제압도 이런 기선제압이 없다.
웅성거리는 주변.
특히 아까 시비를 걸던 두 명의 표정은 점점 구겨져가는 것이, 특히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오늘 좀 되네!”
그러거나 말거나, 채은비는 상쾌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꽉 쥐며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 같아선 방금 전 샷을 강태한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