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will gives you a massage RAW novel - Chapter (92)
천마님 안마하신다-92화(92/309)
< 천마님 안마하신다 92화 >
강태한이 무림에서 지낸 세월은 대략 육십 년.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은 현대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무림에서 보내온 시간이 더 길었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자연스럽게 현대시대에 적응을 마쳤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그 시절의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었다.
상대방의 사람 보는 눈이 좋을수록 헷갈리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라든가, 풍채에 미묘하게 묻어나오는 연륜이라든가··· 그리고, 연애관이라든가.
‘으음···’
강태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가 유세아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리 적지 않았다. 식사도 몇 번하고, 시간이 맞으면 찻집에서 차도 자주 마셨고. 게다가··· 캠핑에 가서 손까지 잡았고.
‘이미 시작되어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물론 처음에야 연애 같은 사심 없이, 그저 좋은 사람이라 만났던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강태한이라해도 중간부터는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었고, 그때부터는 그도 두 사람의 관계를 염두에 둔 채로 만나왔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런 생각도 없는데 남녀가 단둘이서 캠핑을 간다면··· 그건 몹쓸 놈이거나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사람이 아닌가?
다만 강태한이 알고 있는 연애는, 알게 모르게 시작되어 서서히 조금씩 다가가는··· 무림에서 익힌 방식의 연애였을 뿐이다.
‘손까지 잡았는데 말이지···’
그렇기에 지난 날 텐트에서 단 둘이 앉아 유세아의 손을 잡은 것은, 강태한에게 있어서 꽤나 직접적인 호감표현이었다.
연인관계도 아닌데, 그런 분위기에서 여성의 손을 잡는다··· 무림이었다면 사실상 고백이고, 만약 그럴 의도가 없이 그런 것이라면 상대에게 호색한(好色漢)취급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 그런 거였어요?”
한편, 당황한 것은 유세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멋대로 오해하면서 혼자 연애를 했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혼자 연애를 안 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다.
“저는 그런 줄 알았죠?”
순간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던 강태한은, 머지않아 평소대로의 얼굴로 돌아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반면 유세아는 당황하고 있던 얼굴에 기쁜 것인지, 쑥스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를 표정이 섞여,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치만, 우리 둘 다 서로 고백을 안했잖아요.”
“서로 마음을 확인해야만 관계가 시작되는 거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죠.”
강태한은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 말에 유세아는 아. 하고 가벼운 탄성을 냈다.
‘이것이··· 마음이 성숙한 사람들의 연애방식인가?’
사실은 둘 다 연애경험이 지극히 부족해서 벌어진 일일 뿐이었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못 해본 유세아에게는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언뜻 로맨틱한 느낌이기도 했고 말이다.
역시 영화에서 보던 것과 현실은 다른 법이라고.
유세아는 그렇게 납득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세아 씨는 내키지 않으셨던 건가요?”
“예?”
청천벽력이라도 맞은 것처럼,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손을 저었다.
자칫하면 굴러들어오는 호박을··· 아니, 이미 알아서 집으로 굴러들어와 냉장고까지 들어가 있던 호박을 걷어차는 셈이 될 수도 있었다.
“아뇨! 절대 아니에요. 그냥···”
“그냥?”
“···헤헤헤. 그냥 갑작스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또··· 갑자기 너무 좋아서요.”
그녀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다, 쑥스러워졌는지 정면으로 시선을 피했다. 눈앞의 스크린에서는 아직 한참 영화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기대더니, 그녀와 마찬가지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놓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유세아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잔뜩 홍조를 머금고 있는 뺨과 붉게 물든 귀가 그녀의 마음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근데. 저희 기념일은 언제인 거예요?”
뭐라고 꺼낼 말을 생각하던 와중, 뒤늦게 떠올린 유세아가 말했다. 어쨌거나 서로 만나기 시작한 날이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기념일들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으음···”
그녀의 말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유세아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머금고 있는 은은한 미소. 공간이 좁은 탓일까, 지금의 이 상황 때문일까. 그와 눈을 마주한 유세아는 유독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세아 씨.”
“에, 예!”
“저는 당신과 함께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욱 깊은 인연들을 맺어가고 싶습니다.”
강태한의 진중한 목소리에 살짝 놀란 유세아. 허나 그는 계속해서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입에 담았다.
“세아 씨는 어떤가요?”
“···저도, 좋아요.”
잠시 동안 흐른 침묵. 그 속에서, 유세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겨우 입을 뗀 것처럼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기엔, 그녀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럼 오늘이 10월 24일이니까··· 이때가 저희가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한 기념일이 되겠네요.”
기념일은 언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강태한은 손가락 하나를 세운 채로 싱긋 미소를 지었고, 유세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천천히 끄덕일 뿐이었다.
* * *
“나 왔어, 엄마.”
“너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오니?”
“약속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영화 보고 저녁식사하고 들어올 거라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튀어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유세아는 이 상황에 익숙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약속 있어서 나간다고만 했지, 저녁 먹고 온다고 네가 언제 말했니.”
유세아의 어머니, 한주아는 꺼내놨던 반찬들을 집어넣으며 툴툴거리듯이 말했다.
“어라, 내가 그랬었나.”
“그랬어.”
“미안, 엄마. 좀 급하게 나가서 정신이 없었나봐.”
반찬을 다 집어넣고 거실로 돌아오던 한주아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딸의 말투가 아니었던 탓이다.
“너 그렇게 밖에 돌아다닐 시간 있으면, 엄마 카페에서 일이라도 좀 도우라니까.”
“알았어. 다음에 한 번 생각해볼게.”
돌아온 대답에 그녀의 고개가 더욱 기울었다.
평소에는 ‘내가 나가면 더 바빠져’나 ‘사람 좀 써’라는 답이 돌아왔을 텐데, 무슨 일인지 부드러운 대답이, 그것도 싱글거리는 목소리로 돌아온 것이다.
“너 밖에서 뭐 잘못 먹기라도 했니?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히히, 그래 보여?”
“그래. 어디서 김밥 쉰 거라도 주워 먹은 거 같다.”
한주아가 거실의 쇼파에 앉자, 외투만 벗어놓은 유세아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 옆에 앉았다.
“궁금해? 알려줄까?”
“안 그러던 애가 이러니까 좀 궁금하네?”
“한 번 맞춰봐, 엄마.”
한주아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배우한테 사인이라도 받았니?”
“이제 그럴 시기는 지나갔지.”
“그럼, 좋은 작품 제안이라도 들어왔어?”
“이번에 하나 들어온 게 있긴 한데, 땡이야.”
“에이, 안 맞출랜다.”
안 좋은 일만 아니면 됐지.
빠르게 식어버린 흥. 한주아는 아까 깎아놓았던 배 한 조각을 포크로 찍으며, 옆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아, 왜에!”
“별 일 아닌 걸로 이러는 거 같은데? 네가 어디서 사윗감이라도 찾아온 것도 아닐 테고.”
“오··· 근접했어!”
“잉?”
유세아의 말에 한주아는 들고 있던 포크를 다시 내려놓았다.
“네가 사위를 데려온다고?”
“아이! 엄마는 무슨 벌써부터 그런 얘기야. 그냥···”
“그냥?”
“남자친구야, 남자친구.”
그렇게 말하면서 유세아는 몸을 배배 꼬았다. 참으로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발음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한주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위경련이니? 왜 그리 몸을 꼬아.”
“안 꼬았어!”
“그래···”
그런 딸의 모습을 앞에 두고, 한주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기 딸이지만, 유세아는 연애에 대한 생각이 거의 결여된 것 같은 아이였다.
단순히 연애를 안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창시절에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았고 아이돌그룹에도 별 관심이 없어보였던 애다.
‘···하긴, 생활이 좀 빡빡하긴 했었지.’
지금이야 생활에 여유가 있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집안 형편은 빈말로도 유복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도 다니고 공부도 하면서 저렇게 성공까지 했으니··· 솔직히 말해 연애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언제 있었겠는가.
그런 애가 갑자기 싱글벙글하면서 돌아오더니,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는 것.
“···괜찮은 사람인 건 맞고?”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게 어머니의 마음이다. 유세아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딸이지만, 가끔 보면 신기할 정도로 맹하거나 허당인 구석이 있었다.
“그럼! 태한 씨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데.”
‘이름이 태한 씨구나.’
한주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일단··· 키도 크고, 목소리도 멋있고, 매너도 좋고, 그러면서 은근히 순진한 면도 있고··· 아, 지난번에 야외에서 불을 피우는데, 난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 지 처음 알았잖아. 그리고 또···”
‘불이라··· 같이 캠핑이라도 다녀왔나 보네.’
대화에서 하나둘씩 정보들을 캐내는 어머니의 모습.
다만 고개를 끄덕이는 한주아의 얼굴 또한 밝았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이야기로 전해 듣는 남자친구가 마음에 든 것이 아니라, 신나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 * *
“미스터 강, 벌써 돌아왔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영국 리버풀에 위치해있는 에버튼 FC의 훈련장.
그곳에서 앨버트 감독은, 방금 도착한 강주완을 맞이하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감독. 어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금방 돌아왔다는 건···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한 모양이야. 그렇지?”
지난 번, 그는 강주완에게 ‘스스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되면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었다.
그건 몸을 회복하고 팀에 복귀할 준비와, 마음을 정리하고 팀에서 나갈 준비.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강주완이 회복해서 돌아오길 바란 것이 앨버트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팀에 필요한 선수였고, 개인적으로도 왠지 마음이 가는 선수였으니까.
“아뇨. 저 훈련에 참가하려고 왔는데요.”
“아쉬워도 그게 자네의··· 뭐?”
“완치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발목이 나았거든요.”
강주완은 보란 듯이 왼쪽 발목을 휙, 휙 움직였다.
“정말이야? 강?”
“한 삼 주 뒤에 다시 한국에 갈 일이 있기는 한데··· 일단은 감각도 예전처럼 돌아왔어요. 솔직히, 컨디션만 놓고 보면 선수생활 중 최고 수준입니다.”
“···허세는 좋지 않아, 강. 나는 충분한 회복기를 주려고 했어. 그런데 지금 바로 뛸 수 있다고?”
강주완은 이대로 잃기 아까운 선수다. 앨버트는 그렇기에 휴식기를 준 것이었다. 그게 그나마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강주완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화를, 심지어 분노마저 느끼게 했다. 그가 영국을 떠난 지 2주가 지났을까 말까한데, 벌써부터 회복되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즌 중이라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내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잖아.”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알 것 같은데··· 게임 한 번만 뛰게 해주세요. 판단은 감독님이 해주시고요.”
앨버트는 잠시 강주완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있다가, 이윽고 코로 깊은 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좋아. 일단 한 번 보자고.”
앨버트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때마침 기초 트레이닝을 마치고 연습게임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후, 강주완은 오랜만에 입는 듯한 유니폼 차림으로 잔디밭 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강! 괜찮아진 거 맞아?”
“아까 보니 감독이 화가 좀 난 것 같던데. 쉬라고 해도 왜 말을 안 쳐듣냐고.”
오랜만에 보는 강주완의 얼굴에, 먼저 나와 있던 다른 선수들이 그에게 다가와 한 마디씩을 건넸다.
“뭐, 뛰는 거 보시면 오해가 풀리겠지.”
그 말에 강주완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독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말로는 믿게 하기 힘들었다. 본인도 믿기 힘든데 어쩌겠는가.
그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맞다.
사실상 그게 최선이었다.
“강!”
시합이 시작되자, 강주완에게 곧바로 패스가 들어왔다. 좋은 위치에 서있기도 했지만, 정말로 실력이 돌아왔는지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더 짙었다.
‘보여주면 되지.’
본인의 컨디션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강주완은 며칠 전 모교에서 후배들과 공을 찬 후, 시설에 방문해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본 결과··· 감각이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몸의 상태도 최고조라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공을 받는 강주완에게선 아무런 긴장도, 어색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패스를 받자마자 물 흐르듯 자연스레 공을 몰고 가더니, 상대편 수비수들 너머로 깔끔한 패스를 보냈다.
“···진짜로 돌아왔나 본데?”
패스 위치로 달려가는 건 같은 팀의 공격수 고드윈.
공을 보내기 어려운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곳에다 적절하게 패스를 넣어주는 게 딱 예전의 강주완 같은 솜씨였다.
달려 나간 고드윈이 패스를 받는 순간.
앞에는 골대까지 빈 공간이 탁 트여있었다. 연습게임이라곤 하나, 골을 못 넣으면 욕을 먹어 마땅한 수준의 어시스트였다.
“···Holy molly(맙소사).”
그가 여유롭게 슛을 때려 골 한 점을 기록하는 순간, 여태동안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 하나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