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00)
13. 학기말 평가
“…….”
“아, 안녕?”
나는 굳은 채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리지를 바라봤다.
솔직히 1초 만에 쫓겨나는 미마를 보고 당황하긴 했다.
미마가 용족이 맞긴 하지만, 어떻게 보자마자 알았지?
첫 번째 대형 보급을 뱀파이어 진영에서 먹었으니 그녀의 손에 [역할 확인 키트]가 들려 있긴 할 거다.
하지만 그건 기록지침에 태그해서 상대의 종족을 판별하는 아이템. 무슨 관심법 쓰듯이 얼굴을 보자마자 정체를 파악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오오오오랜만이다, 그렇지?”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죄지었어?”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예상한 것 같긴 한데. 난 용살자야. 굳이 양쪽에 피해 안 주고 용만 잡으러 다닐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 그렇구나.”
“몰랐어?”
“아니! 알았지….”
“몰랐다는 표정인데?”
“……예상은 했어.”
계속해서 묘한 태도를 취하는 걸 보아하니, 뭔가 사고를 치긴 한 것 같은데… 뭔지는 감이 잡히질 않는다.
나는 추리를 포기하곤 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나저나 미마가 용족인 건 어떻게 알았냐?”
“그… 러셀은 몰라도 돼….”
“똑바로 말 안 할래?”
미간을 좁히며 타박하듯 묻는 말에 리지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사실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
하고 고해성사하듯 냅다 사과를 박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그럼 왜 쫓아냈는데?”
“그게, 감이랄까… 어쩐지 용족일 것 같고 응, 꼭 틀림없이 용족이어야만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적인 느낌 있잖아.”
“여자의 직감, 뭐 그런 건가?”
“그렇지!! 바로 그거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냐고.”
마치 용족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에 나는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똘똘했던 놈들이 갈수록 하나씩 나사 빠진 사람처럼 구는 게 걱정이다.
정말 이런 애들을 데리고 멸망을 막을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영웅을 알아봐야 하나?
“뭔가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얼굴인걸….”
“확실히 감이 좋긴 하네. 감에 의지할 만하겠다.”
“야아!”
리지가 냥냥펀치를 휘둘렀다. 당연히 대미지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유약해 빠진 공격으로는 내 털끝 하나 스칠 수 없다, 이 말이다.
그나저나 자기만 해도 루트비히의 뒤통수를 거하게 쳤으면서, 내가 사실 용족인데 거짓말을 하는 거면 어떡하려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구나 싶다.
역시나 나사가 좀 빠져 있긴 한 것 같다.
“참, 실은 이게 있는데.”
리지가 이부자리 안쪽에서 키트를 꺼냈다.
그래. 언제 쓰나 했네.
나는 말없이 기록지침을 찬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왼손을 내 오른손 위에 올려놓는다.
“……?”
“……??”
“……???”
“뭔데 이거.”
“손 달라는 거 아니야?”
“네가 개야? 손을 왜 줘. 역할 검사하라고. 그러려고 꺼낸 거 아니었어?”
“아닌데. 주려고 한 건데…….”
“그럼 키트를 줘야지 손을 왜 올려놓는데?”
“그, 뭐랄까.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후다닥 팔을 빼내고 고개를 푹 수그리는 것이었다.
혹시 먼 조상 중에 개 수인이 살짝 섞인 건가…?
나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무리 막 나가는 나라도 귀족가의 조상님을 탈룰라하고 싶진 않았다.
그나저나….
진짜로. 진짜로 이 세계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 * *
미마는 입술을 앙다문 채로 인간 진영으로 돌아왔다.
뭔가 홧김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막상 돌아오고 나니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러셀은 들어오고, 미마는 돌아가. 너는 용족이잖아.”
짧은 순간이었지만 미마는 분명히 보았다.
러셀을 보고 활짝 웃었다가, 자신을 보자마자 털을 세우듯 날카로워진 리지의 표정을.
용족이라고?
아니.
그래서 내쫓은 게 아니잖아.
이건 비겁해.
단순히 러셀과 자신을 떨어트려 놓겠다는 음습하고 고약한 심보가 훤히 보이는데, 그걸 시험의 규칙을 악용해 변명하는 게 얄미웠다.
분하다….
아끼던 도토리를 빼앗긴 것 같은 박탈감에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기분이다.
이마를 만져 보니 기체에서 열이 올라와 순간 고장이 난 줄 알았다.
[신체 상태 점검-정상 수치입니다.]혹시 몰라 [자가 수리] 권능을 발동해 봤지만, 정상이다.
역시 7월은 조금 더운 모양이다.
‘러셀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인간 진영에서 뱀파이어 진영으로 넘어갔으니, 한동안 그곳에서 용살자로서 행동을 이어 나갈 거다.
아마도. 시험이 끝날 때까지.
리지 로즈 뎁의 옆에서….
몇 날 며칠 동안…….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찾아오는 극심한 박탈감에 ‘이 시험을 그냥 끝내 버리고 싶다.’라는 결론에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이었다.
미마는 자꾸만 오작동을 일으키는 신체를 바로잡으며 왕의 회랑으로 걸음했다.
그곳에는 대반격의 결과에 축배를 드는 루트비히와 인간 진영의 생도들이 기쁨에 젖어 공치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미마?”
휴고가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인간 진영의 시선이 우수수 쏟아졌다.
시선의 정체는 대부분 경계심이었다.
가만히 좌중을 둘러보니 격리되듯 한쪽에 쏠려 있는 몇몇 생도들이 보인다. 그들을 감시하는 인원까지 있다.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루트비히는 미마에게 그 격리 지역으로 가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자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조금 전 기습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싸우거나 자리를 비우는 등 의심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에요. 염탐꾼이나 용족일 가능성이 크죠.”
격리되어 있던 아카샤가 ‘그냥 탈락하기 싫어서 조심한 것뿐이라니까요!’라고 항변했으나 루트비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러셀 님은 아예 뱀파이어 진영으로 넘어갔나요?”
“응. 아마도.”
“그렇군요. 미마 님도 굳이 변명할 필요 없이 저쪽으로 가서 앉아 계시면 됩니다.”
“괜찮아.”
“…부탁이 아닌데요.”
루트비히의 말에는 저항하면 강제하겠다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그녀가 저항한다면 타격이야 크겠지만, 어차피 싸워야 할 적이라면 지금 색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용족이야.”
“……?”
그 청천벽력 같은 고백에 회랑 안의 모두가 멍청한 얼굴로 미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예? 아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대놓고 그걸 말한다고?
……왜?
“동맹을 맺자. 먼저 뱀파이어 진영을 끝내고 그다음에 차후 일을 생각할래. 어차피 200명이 넘으니까 저쪽만 정리해도 대부분 성적은 확보되잖아.”
“솔직히 흥미로운 제안이긴 한데… 갑자기 왜요?”
“이유는 묻지 마. 할 건지 말 건지만 정해.”
“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나신 건지….”
“할 거야, 말 거야.”
다른 건 몰라도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미마는 지금, 뱀파이어 진영에 단단히 화가 났다는 사실.
“흐음…… 좋습니다. 다른 용족분들도 정체를 밝히고 나서 주신다면 여기서 동맹을 체결하기로 할게요.”
적의 적은 동료다.
그리고 루트비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잠시간의 침묵.
“용족들 빨리 나와.”
미마의 독촉에 격리 구역에 있던 장학생 생도 두 명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얼굴에는 탐탁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차마 같은 진영이자 학년 수석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그 둘의 정체는 나름 A급 정령사라고 평가받는 아이아나와 10위권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전사 클라슈였다.
“다른 두 명도.”
두 번째 독촉.
이번엔 루트비히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데나스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와, 전혀 몰랐네.”
데나스는 이번 전투에서 뱀파이어 12명의 수급을 벤 일등 공신이었다.
그 공으로 진영의 주축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이대로 게임이 지속되었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정체는 더더욱 놀라웠다.
빌레나 모르비안. 마법부 3등을 꿰찬 모르비안 가문의 서녀.
그녀가 대외적으로 알린 역할은 시민이었다.
설마 용족이 시민으로 둔갑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에 그녀 또한 시민 조의 지휘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던 것이다.
“동맹을 제안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야겠네요….”
루트비히가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빌레나는 미마를 쏘아보며 비난 아닌 비난을 던졌다.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할 거면 차라리 사설 용병단에 들어가.”
“동감하는 바다. 제 강함만 믿고 오만하게 굴다간 언젠가 큰코다칠 거야. 날다람쥐.”
데나스도 이에 질세라 비난 한 숟가락을 얹었다.
그들은 미마가 모든 생도를 아래로 깔아보았기 때문에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군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중요한 시험에서 이렇게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얼굴이야 무슨 나라를 뺏긴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긴 했다만, 설마 뱀파이어 종족의 수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기행을 벌인다는 건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쟤 왜 저래? 뱀파이어 진영 애들한테 부모 욕이라도 들었나?”
“호메르, 넌 좀 닥쳐.”
깐죽거리는 호메르는 빌레나의 일갈에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 순간에도 전투력 측정기 호메르의 서열은 나날이 낮아지는 중이었다.
“이길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미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쫓겨나는 자신을 향해 리지 로즈 뎁이 짓던 그 음험한 미소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게 두 생도 간의 신경전은, 사관학교 학기 말 평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대사건으로 일파만파 커져 갔다.
* * *
인간 진영의 주요 일원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 진영 생도들.
불편하더라도 어젯밤처럼 각자 흩어져서 자는 게 아니라 회랑에 모여서 자라는 왕의 지시가 있었다.
염탐꾼들이 뱀파이어 진영으로 넘어가는 걸 방지하고, 혹시 모를 적군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비록 편하게 잠을 청하긴 어렵겠지만, 어차피 하루만이다. 내일은 시험의 결착을 낼 예정이었다.
식량이 부족해 벌써부터 지친 이들이 속출한 것도 큰 이유였고, 동맹이 견고하게 유지될 내일 차라리 전쟁의 판도를 결정짓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내일 저희는 성역 경비를 위한 최소 인원만 빼고 전부 출정해 적들을 기습할 겁니다. 경비병분들은 여기서 격리자들을 감시하시다가 혹여라도 제가 탈락하면 성역으로 이동해 2차 농성을 이어 가세요. 경비 조장은 건페이 님이 맡아 주시고요.”
“예썰!”
A반 중상위 성적의 생도 건페이는 두 주먹을 툭툭 두드리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번 시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꼭 큰형님 러셀이 있는 특별반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물론 러셀은 모르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마 님과 용족 분들은 저쪽의 주요 인물들을 맡아 주세요. 리지, 파, 주디, 체이서, 이스칸다. 이렇게 다섯 분을 맡아 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응.”
미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다.
“그래요. 명색이 동맹인데 그 정도 활약은 보여 주시겠죠. 그럼 세부적인 진형과 전술을 짜 보려는데, 혹시 전술학 전공하신 분이 계시면 도와주세요.”
루트비히의 요청에 몇몇 생도들이 앞으로 나섰다.
“나 전술학 1등인데, 좀 끼면 안 될까? 이번에 증명해 보일게.”
그중에는 의심 분자로 분류되었던 호메르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트비히는 “그러세요.” 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띤 토론은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