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02)
13. 학기말 평가
과연 바깥세상은 치열하고 격렬하구나.
만월의 묘지에서 나온 뒤, 전투훈련소에서 사관학교에 이르기까지.
루트비히가 꾸준히 느낀 바깥세상에 대한 감상은 ‘맹렬함’이었다.
짧은 삶을 사는 필멸자들답게 바깥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단련했으며 정진했다.
지금만 해도 보라.
눈앞의 난관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은 성스러운 의무를 행하기라도 하듯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키세 님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 함부로 나가선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과보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죽어!!”
“힐! 정령사 없어?!”
처음에는 인간과 용족 연합이 유리해 보였으나, 단 한 사람의 개입으로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러셀 애시그린.
설마 단숨에 용족 생도 2명을 제압해 버릴 줄은….
다행히 나머지 두 생도가 달라붙어 그를 저지하고 있었으나, 안심하기엔 일렀다.
그가 느끼기에 러셀은,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외에 몇몇 전장에서 중요해 보이는 전투가 치러지고 있다.
가령, 미마와 리지의 싸움이라거나 휴고와 파의 싸움 같은.
-루트비히 사제! 염탐꾼들과 전투가 발생했어!
그때 염탐꾼 감시 역할을 주었던 경비대 조장 건페이가 다급하게 무전을 날려 왔다.
아무래도 격리해 놓은 염탐꾼들이 기회를 잡고 날뛰기 시작한 모양이다.
“제압할 수 있죠?”
-맡겨 두라고, 사제! 활약할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런데 제가 왜 당신 사제예요…?”
-같은 형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제 아니겠어?
“저는 누굴 모시고 그러지 않는데요. 그리고 굳이 따지면 제가 사형이 되는 게 맞아요. 왜냐면 저는―”
-아무튼, 상황 정리하고 보고할게, 사제!
“…….”
건페이는 제 할 말만 하고선 무전을 끊어 버렸다.
아무튼 이 생도들은 하나같이 괴상하기 짝이 없다.
그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짓던 루트비히의 기민한 감각에 정제된 적의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허공으로 뛰어오르자 발밑으로 마력 화살 한 발이 콱 날아와 박힌다.
‘기습?’
촉이 날아온 곳은 뒤쪽이었다. 아직 내부의 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수호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루트비히의 앞에 도열했다.
큰 키의 전사들 사이로 아깝다는 듯 비웃음을 날리는 호메르의 모습이 보였다.
“하앗!”
또다시 화살 세례가 쏟아진다. 집중 에너지까지 담고 있는 공격에 소울을 아직 개화하지 못한 수호자 한 명이 쓰러졌다.
“으하하하! 깜빡 속았지?”
역시나 호메르는 염탐꾼이었던 모양이다.
어젯밤 전략 회의 시간에 워낙 열변을 토하며 전략을 어필하기에 믿고 넘어가 주었더니 이 결과였다.
사실, 조금 얕보긴 했다.
루트비히가 손을 들어 올리자 권능이 발현된다.
[달빛 강타]쾅!!
고지를 점하기 위해 구조물 위에 올라타 있던 호메르가 곧바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그 위로 폭포수와도 같은 마력이 범람했다.
[별빛 강타]호메르를 제압하는 데 필요한 공격은 단 두 번이었다.
“호메르? 맛집이지.
타격감도 좋고 상대하는 데 부담이 없어서 맛도리 그 자체랄까?”
러셀이 괴상하게 웃으며 그렇게 평할 때는 타인에 대한 평가치고는 조금 신랄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상대해 보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루트비히는 진심을 담아 물었다.
“…특별반 장학생 맞아요? 왜 이렇게 약하죠…?”
결코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세 번의 공격 정도는 버텨야 장학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시팔… 괴물 새끼들…!”
하지만 호메르는 그 어떤 욕설을 들었을 때보다 더 굴욕적이라는 듯, 인상을 구기며 험한 말을 쏟아냈다.
루트비히는 귀가 더럽혀지기 전에 다시 한번 그를 돌무더기 안으로 파묻었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역시 표현이 너무 거칠다고 생각하면서.
* * *
후욱, 훅―!
숨 들이켜는 소리가 선명했다.
‘징그러운 녀석…….’
파는 체내의 소울이 거의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전의가 꺾인다.
휴고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러나 치명상만큼은 당하지 않으며 꼿꼿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녀석은 아예 반격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찔러 들어오는 공격은, 반격이라기보다는 검의 흐름을 끊기 위한 방해 동작에 가까웠다.
어설프게 맞공격으로 대응해 봤자 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공격을 막고 흘려보내는 데 집중한 것이었다.
전략은 유효했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빈틈을 잡으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휴고는 끝끝내 단 한 번의 빈틈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완패였다.
소울은 바닥났고,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 휴고가 반격해 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일만 남은 것이었다.
“졌다.”
“후욱, 훅!”
체력 소모가 극심한 건 휴고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했으나 휴고는 버텼고, 마침내 파가 패배를 시인했다.
그는 깔끔하게 승부를 인정하며 스스로 기록지침을 벗어던지고선 시험장에서 떠났다.
거의 동시에 시험장 다른 한쪽의 싸움도 승부가 결정 났다.
치열한 소모전 끝에 미마가 쏘아 올린 [건 체인지 모듈], 저격총 모드의 탄환 한 발이 리지의 손목에 적중한 것이었다.
리지는 아직 힘이 남았다며, 더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런다고 부서진 팔찌가 복구되지는 않았다.
“다음엔… 다음엔 꼭…….”
리지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기를 잃지 않던 그녀였기에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기려고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학년 수석이다, 천재다. 말로는 계속 들었어도 단단히 마음먹고 이기고자 한다면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저 적당히 가문 체면 살리는 정도의 성적이면 되지, 뭐!”
성적은 성적일 뿐이고, 재능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분한 거냐구…….’
평생토록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감정.
꼭 이기고 싶은 상대에게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만 하는 굴욕감.
그것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이었다.
리지는 입술을 짓이기듯 깨물고선, 부서진 기록지침을 한껏 눈에 힘주고서 노려본 뒤 미마를 지나쳐 빠져나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미마도 그제야 긴장이 풀려 힘이 빠졌다.
‘힘들어….’
러셀과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8종류의 기본 마법.
4종류의 원소 마법.
[마력 화살], [무력화], [실드], [인비저블]까지.이 정도로 다양한 마법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밀어붙이는 상대는 아마도 그녀 외에는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거다.
짜증 나는 상대지만… 그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마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쭉 뻗고 상체를 늘어트렸다.
리지가 탈락한 순간 뱀파이어 진영의 모든 기록지침이 소등됐다.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날 때 즈음에 이미 대부분 생도가 탈락한 뒤였으니까.
미마의 눈빛이 러셀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깜짝 놀라 바라보게 된 건, 얼굴에 대각선으로 길게 이어진 자상이다.
“……!”
러셀이 다쳤다. 그것도 얼굴을 다쳤다.
안면 뼈가 훤히 보일 정도로 깊게 팬 상처에 어쩐지 제 얼굴이 아려 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같은 진영인 데나스나 빌레나를 공격할 수는 없었기에, 미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미마 님, 더 싸울 수 있어요?”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러셀의 싸움을 바라보는 와중 루트비히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뱀파이어 진영과의 싸움도 끝났겠다, 그냥 기습적으로 공격해도 되는 걸 굳이 의사를 물어 온다.
겉으로는 투덜거려도 이럴 때마저 짐짓 배려가 보이는 게, 참 처음과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마는 고개를 저었다.
“힘이 없어.”
“그런가요.”
“조금만 구경하다가 내 발로 갈게.”
“…그러세요.”
루트비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남은 인간 진영 생도들을 수습해 그녀의 인근에 앉았다.
“교수들이 점수 매기기 좀 어렵겠어요.”
“응.”
“그래도 생도들이 원 없이 치고받았으니… 결과는 공정하게 나오겠죠.”
미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러셀의 주먹이 데나스의 안면에 틀어박히고, 동시에 튕겨 나갔던 창이 빌레나의 몸에 틀어박혔다. 치명상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러셀의 전투 방식은 정말로 잔혹하다.
손속에 사정을 전혀 두지 않는, 죽이지만 않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듯이 행동한다.
물론 지긋지긋하게 얻어맞고도 또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나스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좀 쓰러져 이 좀비 새끼야―!”
참다못한 러셀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분명 일방적으로 패고 있는데, 왜 패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보이는 걸까.
선 채로 기절해 있던 휴고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동료들의 곁으로 걸어왔다.
“으… 끝난 거야?”
“거의 끝나가요.”
“러셀이랑 데나스는 아직도 싸우고 있구나?”
“네. 저 사람, 진짜 튼튼하네요.”
“맞아. 나도 저번 탐사 때 보고 깜짝 놀랐잖아. 상처가 몇 초 만에 회복되어 버리는데… 무슨 트롤 보는 것 같았다니까?”
휴고의 방어력이 막고 흘려보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면, 데나스는 그냥 맞고 다시 일어나는 유형의 탱커였다.
베이면 살을 붙이고 찔리면 뽑아낸 뒤 재생한다.
어마어마한 회복력을 자랑하는 권능에서 기인한 우수함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통증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그의 진짜 재능이다.
휴고는 ‘데나스라면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가도 입도 뻥끗 안 할 거야.’라며 그를 극찬했다.
“하지만 저라면 포기하고 싶을 것 같네요….”
러셀은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데나스를 두드렸다.
“두드리라!”
퍽, 퍽퍽. 둔탁한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잔혹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면!”
성형 전의 빵 반죽처럼 뭉개진 얼굴 위로 무자비한 주먹질이 쏟아진다.
“열릴 것이니!!”
하도 쓰러지질 않으니 오기가 생기고, 오기는 집착이 되고 집착은 집념이 된다.
그러다 마침내 집념은 광기로 변했다.
“오냐, 안 열려? 그럼 그냥 오늘 제사상 차려 이 자식아!”
…말려야 하지 않나?
휴고와 루트비히가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러셀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제 손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데나스를 두들겼고, 마침내 기절해 늘어진 그의 손목에 달린 기록지침을 신경질적으로 부쉈다.
“후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피 맛을 알아버린 맹수처럼 본능적으로 다음 사냥감을 찾는다.
“남은 용족은 너냐, 미마.”
평소였다면 그의 입에서 제 이름이 불리었을 땐 뭔가 긴장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눈에선 광기 넘치는 안광이 번들거리고 입에선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흡사 [광폭화] 상태의 광전사와 같다.
저건 재해다.
도망쳐야 한다.
“나 항복할래.”
“뭔 소리야, 정정당당하게 싸워야지”
“진짜로 힘이 없어…!”
“변명하지 말고 일로 와. 승부를 가리자.”
미마는 오싹하게 소름을 불러일으키는 광인의 눈빛에 화들짝 놀라 기록지침을 잽싸게 벗은 뒤,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왜애애앵―
시험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신경전에서 시작되어 광기로 얼룩졌던. 학기 말 평가라는 이름의 대환장 파티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험 그 이면엔, 이 참사를 수습해야 하는 안타까운 희생양들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