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05)
14. 와이번 토벌전
어쨌든 방학식은 무사히 끝났다.
내 손에 쥐어진 권능석과 잘 포장된 아머드 파츠. 그리고 영롱한 빛을 뿜어대는 영약까지.
움직이기도 불편해 계속 꼼지락거리게 만드는 제복을 참고 견딘 보람이 있었다.
그나저나 손 부족한데 표창장은 꼭 들고 가야 할까… 어디다 버려두고 가면 참수당하겠지?
“축하해요, 후배님.”
“아. 선배도.”
“솔직히 말하면, 후배님 덕분에 이뤄낼 수 있었던 성과였어요.”
“그렇게까지 겸손할 필요가 있을까? 선배가 노력파인 건 2학년 전부가 알 텐데.”
내 말에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예의를 차린 건 아니다.
지분이 아예 없다곤 말 못 하겠지만, 내가 없었어도 그녀는 2학년부터 수석을 차지했을 테니까.
“정말 대단하네요. 8개월 전만 해도 검 쥐는 법도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정규 훈련을 받은 지 1년도 안 된 경력으로 전체 수석이라니. 대장군의 안목에 경탄할 지경이에요.”
“그래. 그놈의 추천장 때문에 엄청 열심히 했다니까?”
“직접 뜯어내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긴 하지.”
“재능, 노력. 어느 하나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결과라는 건 익히 알고 있어요. 존경스럽습니다.”
“낯 뜨거운 소리는 그쯤 하자. 피차 비슷한 상황인데. 그보다 선배, 방학 때 뭐 해?”
“성묘…를 갔다가 일찍 복귀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훈련에 정진할까 합니다.”
“자체 훈련보단 실전 경험이 나을 텐데. 나랑 와이번 토벌대나 가는 건 어때?”
“……토벌대…를요.”
“어어. 좀 위험하긴 하겠지만, 한 번 정도 미리 경험해 두는 게 좋지. 선배는 이제 곧 고학년이니까. 마침 곧 성검기사단에서 주최하는 토벌대 모집이 있을 거거든.”
성검기사단은 그녀가 존경하는 기사들이 잔뜩 있는 조직이다. 거절할 리 없다.
역시나 에뜨랑제는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며.
“너무 좋네요.”
하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번째 희생양 섭외에 성공했다.
* * *
“출발이 사흘 뒤라고 했죠? 그럼 서둘러서 다녀오겠습니다.”
“여유 있게 잡은 일정이니까 너무 서두르진 말고. 일단 오전 9시에 여기 정문에서 보는 걸로 하자.”
“그럴게요.”
사관학교 정문은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 그 자체였다.
자녀들을 마중 나온 부모들부터 동기를 찾는 생도들까지.
수백 명의 사람이 뒤섞여 북적거렸다.
“아, 아빠아!?”
그 와중에도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리지의 하이톤 목소리가 선명하다.
“여기까지 안 나와도 된다고 했잖아…! 어련히 잘 들어갈 텐데. 내가 어린애야?”
아마 적당히 집에 가는 척, 수행원으로 찾아온 가솔들을 따돌리고 여행 준비를 하려던 그녀였겠지만, 뛰어 봤자 딸바보 손바닥 위다.
하하. 예쁜 딸. 오래간만에 보는 아빠에게 그 무슨 서운한 소리니…
뭐? 바닷가로 며칠 놀러 갔다 오면 안 되겠냐고? 되겠니, 딸?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거라.
수영복? 몸가짐이 정숙해야 할 백작 영애가 그 무슨 망령된 발언이니.
혹여나 사내새끼 앞에서 맨살을 드러내려거든 그 자식의 눈이 뽑힐 각오를 하거라. 하하.
뭐? 그러면 와이번 토벌대를 가겠다고? 하하하 딸, 아빠의 시체를 짓밟고 가거라.
그리고 그 끝은 익숙한 질질 끌려가면서 내는 시원한 고성이다.
“아빠 너무해! 미워!”
초등학생 딸내미나 칠 법한 대사.
리지의 흑역사를 라이브로 구경하는 건 제법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아무튼, 힘내라 리지야…. 새 드레스 얻게 되는 거 축하하고….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새 무장 언박싱을 할 수 있었다.
당장 포장을 다 뜯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역시 개봉은 경건한 자세로 해야 한다.
개인실로 돌아온 뒤 몸을 정갈히 씻고 침대 위에 권능석과 아머드 건틀릿 케이스를 올려 두었다.
무장을 감싸고 있던 목재 케이스 뚜껑이 열리고 은색 건틀릿 한 짝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왕이면 양쪽 다 주지는….’
건틀릿은 오른쪽 하나뿐이었다.
아머드 파츠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직 내가 양손 파츠 컨트롤을 할 정도로 소울 양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물론 후자는 그럴듯한 핑곗거리일 뿐이고 내가 볼 땐 그냥 제작비 절감 문제였을 거다.
아무렴 좋다.
나는 곧바로 건틀릿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착용하는 순간에는 좀 널널하다 싶었는데, 착용을 마치자마자 내 소울과 반응하며 크기에 맞게 착 달라붙는다. 마치 고무장갑을 낀 것처럼 약간의 착용감 외에 불편한 점이 없다.
광택 처리한 와이번 뼈는 가벼웠고 질감은 피부처럼 부드러웠다.
높은 수준의 파츠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착용감부터 외향의 마감까지 마음에 쏙 든다.
답답하거나 땀이 차지도 않는다.
등에 메고 있던 월광쌍익을 꺼내 쥐어 본다.
한쪽 창날을 손으로 쥐었는데도 기스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아머드 건틀릿을 간절히 원했던 이유가 이거였다.
리치가 긴 무기를 사용하는데도 창날을 양쪽으로 쓰다 보니 리치의 이점을 이용하기 힘들다는 점.
하지만 손바닥을 보호하는 건틀릿이 있으면 창끝을 잡고 휘두르거나 회전시키며 회수하는 등 무기 활용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다.
투창을 한 뒤 맨주먹으로 공격할 때도 더 위협적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전력 증강이었다.
곧바로 두 번째 전리품으로 시선을 향했다.
반투명한 유리관 안에 받침대, 방석 그 위에 권능석을 예쁘게 올려 두었다.
마치 여느 연예 대상 시상식 트로피에서나 볼 것 같은 비주얼의 포장이다.
나는 고민 없이 권능석을 깨트리고 그 능력을 흡수했다.
[소울 족쇄(A):★☆☆☆☆]소울을 결박하는 족쇄를 펼쳐 대상의 에너지 흐름을 일시적으로 차단합니다.
어렵게 설명되어 있지만, 말 그대로 침묵이라는 CC기를 생각하면 편하다.
성급이 올라갈수록 사용 범위나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권능이라 범용성도 좋고 상대방을 당황시키기에도 훌륭한 권능.
안 그래도 처음 나를 상대하는 적들은 내 다양한 공격 패턴 때문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점점 오버 파워 스펙이 되어 가는 기분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 * *
딸랑.
목재 문에 달린 손님맞이 종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방학 후 처음 맞는 아침, 일찍부터 내가 찾은 곳은 그림로어의 웨폰 스트리트 중간에 위치한 무기상 ‘마리하’였다.
학기도 끝났으니 공짜로 무기를 상납해 준 카터 삼촌에게 감사 인사라도 할 요량이었다.
오다가 본 다른 무기점에는 무장을 점검하기 위한 손님들이 가득했는데, 여기는 여전히 손님이라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서 오… 아우. 개시 손님부터 재수가 옴 붙었구만.”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여기는 파리만 날리네요. 이래가지고 먹고 사실 순 있으세요?”
“남이사. 너는 좋은 밥 먹고 살더니 신수가 훤해졌구나. 지낼 만하냐?”
“그럼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니 더없이 좋죠.”
“그래. 뭔 볼일이냐? 뭘 살 게 아니라면 썩 꺼져라.”
“그냥 학기 끝난 김에 인사나 좀 하러 들렀는데… 이렇게 문전박대 하시깁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손님 접대용 의자에 엉덩이를 거리며 히죽 웃었다.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한 시선이 곧장 날아든다.
“퉷, 뭐 좋은 사이라고. 내 기준에서 너는 그냥 도둑놈이다. 이놈아.”
“으흐흐. 덕분에 재미 많이 보고 있습니다.”
“에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월광쌍익이나 줘 봐라. 본 김에 손질이나 해 줄라니까.”
“오. 정말요? 고맙습니다.”
나는 잽싸게 창집에서 무기를 꺼내 카터에게 넘겼다.
평소 관리를 잘해 둔 덕분인지, 상태는 제법 깔끔했다.
카터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아껴 주고는 있구나.”
“당연하죠. 지금은 제 분신이나 다름없으니까.”
카터는 들은 체 만 체하며 창날을 숫돌에 갈기 시작했다.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보니 내 말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사실 자랑도 할 겸,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들렀는데요.”
여전히 시선은 월광쌍익에만 향해 있는 카터.
나는 개의치 않고 할 말을 덧붙였다.
“저 종합 수석 먹었거든요. 여기, 여왕님 표창장도 있습니다.”
“뭣.”
카터는 순간적으로 손을 삐끗했는지 몸을 움찔했다.
몇 초 후, 손바닥 아래쪽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참나. 무기에 주인의 피를 먹이는 건 길들일 때나 하는 짓이에요. 조심 좀 해 달라고요.”
나는 첫 만남 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낄낄거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내가 들고 있는 표창장을 노려봤다.
“아니, 일단 지혈부터 좀….”
“진짜잖아?!”
“속고만 사셨나.”
“허…….”
바닥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그는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표창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허, 허허, 허……”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무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제가 이런 낯뜨거운 소린 잘 못 하는 성격이긴 한데, 약속 꼭 지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내가 만든 무기가… 학년 수석의 손에…….”
“카터 삼촌?”
“이걸 광고한다면… 드디어 까먹기만 하던 내 사업에도 한 줄기 빛이…….”
“아니 기껏 감동적인 대사 치고 있는데, 이 수전노가?”
“잠깐만 기다려라! 현수막 좀 만들고 올 테니!”
“아, 뭔 현수막이요!”
“대장장이 카터의 무기, 21기 수석을 배출했다! 당장 써 붙여야지!”
“진짜 노망나셨나… 배출하기는 뭘 배출해요. 컨셉인 줄 알았더니 진짜 장사가 안 되는 거였어?”
카터는 나를 붙잡고선 한참 동안이나 마이스터 대장장이의 횡포에 짓눌려 살았던 지난 몇 년을 회고하다가,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함으로 월광쌍익 앞에 걸터앉았다.
지구나 이 세계나 대기업들의 횡포에 소상공인이 죽어 나가는 건 똑같구나….
조금은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손질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월광쌍익은 처음 선물 받았을 때 모습 그대로 번쩍번쩍 광이 났다.
“자. 날이 무뎌졌다고 함부로 손질하지 말고 가능하면 전문가에게 맡겨라.”
“네. 감사합니다.”
“비록 땡전 한 푼 받지 못하고 착취당한 무구지만, 그래도 주인은 제대로 만난 것 같아 기쁘구만. 나중에 대성하면 꼭 은혜를 열 배로 갚아라.”
“좋습니다. 삼촌, 그래서 말인데 혹시 조카 용돈은 줄 생각 없으세요? 이왕 베푸는 김에 좀 더 은혜를 베푸시죠.”
예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아빠 친구면 삼촌이다.
사관학교에 있을 땐 딱히 돈 쓸 일이 없지만, 방학 시즌은 다르다.
일단 돌아다니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게 전부 다 돈이니까.
지금 가진 돈으로는 아마 턱도 없을 거였다.
“당연히 없지. 있겠냐? 먹고 죽을 돈도 없다. 월세 낼 돈도 없어서 건물주 집 가재도구들 날 갈아주는 거로 대신한 지가 어언 2년째다.”
아쉽게도 저쪽 대장군 삼촌이랑 달리 이쪽 삼촌은 너무 가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