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11)
14. 와이번 토벌전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쯤 지나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혹시 중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토벌대가 와해되거든,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살아남아 왕실에 현재 상황을 보고해야 합니다.”
사뭇 엄숙한 그 말에 토벌대 대원들의 얼굴에도 비장한 기색이 들어섰다.
“저, 이세리아 아리스포델. 성검기사단 부단장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여러분이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믿고 따라 주세요. 체르미아 님. 후미를 맡아주세요.”
들어올 때보다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 이세리아는 진형을 사방형으로 변경했다.
중앙의 지원 부대를 4개의 부대가 감싸는 형국. 앞뒤를 2개의 본대가 맡고, 좌우를 예비대가 맡는다.
지금까지는 지원 부대와 예비대를 동시에 지키려는 의도였다면, 이제는 예비대마저 하나의 전력으로 보고 더 빠른 속도로 퇴각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곱게 보내주진 않을 거야.’
아무리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들, 이대로 마신군이 토벌대를 무사히 돌려보낼 리 없다.
우리가 돌아간다면 숨겨 둔 전력만 노출한 채 아무런 수확도 없이 적을 보내 주는 셈이니까.
와이번을 잡지 못한다고 공을 세우지 못한 게 아니다.
살아 돌아가기만 하면, 살아남아 소식을 이제라에 전달하기만 해도 대단한 전공이다.
“전투 준비해. 머지않아 전투가 시작될 거야.”
내 말에 에뜨랑제와 미마가 결연한 눈빛으로 각자의 무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봉우리에서 내려온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서서히 몸을 옥죄어 오는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역시나 놈들은 호락호락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가아아아아―!
귀를 찢는 듯한 마수의 포효와 함께 거대한 와이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지면을 고요히 바라보는 푸른 보석의 용족.
와이번 중에서도 유달리 큰 덩치를 자랑하고 워낙 토벌 난이도가 어려워, 한때는 토벌급이 아닌 군단장급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의 적이 흉흉한 기세를 펼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정상에서 지평선을 내려볼 때만 하더라도 하늘은 깨끗했는데, 산림을 통과하고 나오자 와이번과 가루라 떼가 하늘을 가득 메운 채로 선회하는 중이었다.
“저놈이군….”
거대한 와이번의 머리 위에는 마인 하나가 타고 있었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자 특유의 시커멓게 죽은 피부. 마기에 잡아먹혀 버린 듯 짙은 흑보랏빛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사내.
과거 군부의 장군 중 하나였던 마인 퀼튼이 모습이 보였다.
저 기세는 명백히 토벌급 이상으로 봐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
“체르미아 님. 준비 되셨나요.”
“으응. 오싹오싹한걸…!”
“어느 쪽을 맡으시겠어요.”
“내가 대머리 쪽을 맡을게. 혼자서 가능하겠어?”
“빨리 끝내고 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후후. 엄살 부리기는. 알겠어. 노력해 볼게. 근데 저거 떨어트릴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부대원 여러분. 공략법은 기억하시죠?”
부대원들 사이에서 기합 가득한 대답이 들려온다. 그들은 엄습하는 공포를 벗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더 힘차게 대답했다.
“디버프가 유지되어야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사전에 연습한 순서 틀리지 않도록 유념해 주세요. 그럼, 격추하겠습니다.”
차자자작.
아머드 슈트가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흰빛으로 물든 슈트, 황금색과 붉은색이 조화롭게 수놓아진 슈트.
마치 두 사람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한 슈트가 전신을 뒤덮고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이세리아의 권능 [만개하는 가시검]이 발동된다.
우우우웅!
여섯 개의 검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거대한 한 자루의 검이 되어 허공에서 피어난다.
천벌과도 같은 검은 그대로 내리 찍혀 와이번의 등을 가격했다.
와이번이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
순간적으로 용족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 곧바로 이세리아가 몸을 튕긴다. 그 뒤로 대마수전 특수부대가 뒤따랐다.
그때 그녀의 옆을 한 붉은 물체가 홱하니 지나쳤다. 체르미아였다.
어느새 속도를 내 이세리아를 앞지른 그녀가 애병을 발검하며 권능을 발현했다.
씩 웃는 그녀의 검을 들어 올리자 불길이 마치 날갯짓하는 공작새처럼 검신을 감싸 오른다.
[화조-발화검]“진지하게 가 볼까?”
뒤이어 검신 전체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도 검에 불붙이고 싸운다며. 그럼 내 짝퉁이네? 머리칼은 어떻게, 검에 불붙이다가 홀라당 타 버린 걸까나?”
목표는 대머리 마인 퀼튼.
체르미아는 퀼튼을 향해 비웃음과 도발 섞인 비아냥을 날려 준 뒤,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 * *
“카케트님, 공중을 부탁드려요!”
“그래!”
“예비대원 분들은 지상으로 오는 마수들부터 참수합니다!”
이세리아와 체르미아가 마인과 와이번을 상대하는 사이, 알렉사와 카케트는 예비대, 지원 부대를 지키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다른 마수들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대형 마수들, 그러니까 6성급 마수 트롤과 5성급 마수 적두 글라타가 문제였다.
특히 글라타는 지네 형태를 한 독성이 있는 마수였는데, 전투 스타일이 워낙 포악한 데다 치명적인 오공독을 시시때때로 뿜어대는 통에 꽤나 위협적이다.
더 문제는 상위 마수의 숫자다.
상위 마수들이 한둘이었다면 알렉사가 어련히 잡아 주었겠지만,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우리라도 손을 보태지 않으면 피해는 점점 커질 것이었다.
“선배. 우리 쪽으로 오는 하급 마물들은 최대한 커버해 줘.”
“네.”
“미마. 하급 마물들은 쳐다보지 마. 저기 보이는 징그러운 놈들 있지?”
“응.”
“네 임무는 저걸 잡는 거다. 저놈들이 가까이 붙어서 헤집기 시작하면 독 때문에 피해가 커져. 이 나무 꼭대기로 올라간 다음에 멀리서 요격하자. 우리가 엄호할게.”
“알겠어.”
“약점은 양쪽 더듬이야. 더듬이랑 대가리 사이의 마디를 쏘면 날아간다.”
“…과녁이 작아.”
“어렵지만 할 수 있단 소리지?”
“응.”
“좋아. 온다.”
마침내 마수의 떼가 예비대 대원들과 맞부딪혔다.
어마어마한 혈전과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나는 우선 무리하지 않으며 미마에게 접근하는 가루라들만 투창으로 격추시켰다.
에뜨랑제의 검이 마수를 베어 가른다.
그녀의 검술을 꽤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고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쾌검을 전개하니까.
틈틈이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아머드 부츠까지 활용해 모든 움직임에 유효타를 담는다.
지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갉아먹듯 진행했던 그녀의 훈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저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미마의 활약도 눈부시다.
그녀는 [건 체인지 모듈]을 저격총 모드로 변경한 뒤 백발백중으로 글라타의 수염을 잘라내는 중이었다.
수염을 잃은 글라타는 방향감각을 잃고 몸을 뒤튼다.
그 충격은 되레 같은 마신군 진영의 마물들을 짓뭉개, 팀킬의 현장을 만들어 냈다.
탕! 탕탕!
탄환 한 발에 5성급 마물 한 마리를 무력화시키는 효율은 정말이지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완전히 처치한 건 아니고 잠시 무력화시킨 것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말도 안 되는 활약인 셈.
거슬림을 느꼈는지 글라타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거칠게 포효한다.
마치 아군 가루라들을 향해 ‘하늘에서 뭐 해. 구경 났냐, 병신새끼들아.’ 하고 윽박지르는 것만 같다.
그러자 독수리 마물 가루라가 끼에엑! 비명을 지르며 나무 위에 꼿꼿이 선 날다람쥐를 향해 낙하한다.
“어딜.”
나는 곧바로 마물을 향해 투창했다.
기존의 투창 방법이 아닌, 파괴력을 좀 더 키운 방식의 투창이다.
집중 에너지를 남아 내 손에서 회전하며 날아간 월광쌍익이 [낙하 공격]을 시전하던 가루라를 터트리고 돌아온다.
팡, 하고 풍선 터지듯이 산산 조각나는 마물은 보기 좋은 구경거리다.
각인된 무기를 회수하자 창은 회전력 그대로 돌며 내게 돌아오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창을 붙잡았다.
가각, 철 긁히는 소리와 함께 월광쌍익이 건틀릿 안쪽에 안착한다.
찌릿찌릿한 감각이다.
다시 지상으로 눈을 돌리니 광기에 휩싸인 듯 무참하게 마물들을 도륙하고 있는 에뜨랑제가 보인다.
“죽어어어―!!”
평소 분노를 속으로 삼키는 일이 잦던 에뜨랑제는, 정말 화풀이라도 하듯 마음껏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성이 죽고 첫 전투구나.’
지난번 기습 때는 워낙 후방에 밀려 있던 탓에 거의 활약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튀어나온 마물들도 건틀릿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나와 미마의 방해에 번번이 무산됐었고.
그러니 그녀의 입장에선 이번이 제대로 된 첫 복수전인 셈이다.
다소 흥분하는 것도 당연했다.
자칫 보면 피에 미친 복수귀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으나… 뭐 아무렴 어떤가. 상대가 마물인데.
‘전황은?’
저학년 셋이서 꽤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전황도 긍정적… 하, 모지리 새끼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몇몇 예비대원들이 전장을 이탈해 도망치고 있었다. 토벌 내내 농땡이를 부리거나 요령을 피웠던 폐급 방랑자들이다.
‘병신들인가?’
여기는 영웅의 무덤 한복판이다.
설령 지금의 전장을 벗어나더라도 따로 떨어져 도망친다면 생존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인데, 눈앞에서 쏟아지는 마물들의 파도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었다.
단지 당장 목숨을 부지하고 싶단 생각 하나로.
‘어차피 도움이 안 될 놈들이야.’
급하게 모집한 예비대인 만큼 어중이떠중이들도 분명히 있다.
몇몇 방랑자들이 빠진다고 큰 영향을 줄 것 같진 않다.
다만 문제는 사기다.
혈전을 치르던 예비대원들의 망막에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전우의 모습이 똑똑하게 맺혔으니까.
“전장을 이탈하면 모두가 죽습니다! 자리를 지키고 본대가 와이번을 토벌할 때까지 버티세요! 그게 진정 살아남는 길이에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엔 예비대 지휘관 알렉사가 있었다.
그녀는 짧은 양손 사브르로 상위 마수들을 요격하는 한편, 타이밍 좋게 목소리를 높여 흔들리는 부대의 사기를 다잡았다.
가녀리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단숨에 마수들을 제압하며 전장을 누비는 모습에 가라앉을 뻔했던 사기가 단숨에 솟구친다.
단체로 참여한 용병대는 제 몫을 다해 주고 있다.
우리의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사관생도들도 제법 잘 버틴다.
지원 부대 안쪽에서 후방을 지키고 있는 카케트의 활약도 눈부시다. 그는 광역 버프를 쏟아내며 혼자서 수십 명에 달하는 후방 지원 부대를 지켜내고 있었다.
잘 버티고 있다.
문제는 체르미아와 이세리아의 본대가 얼마나 빠르게 적장을 베어 주느냐.
즉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봉우리 위에서 보았던 끝도 없는 마물의 본대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만약 놈들이 이곳까지 당도한다면… 살아나갈 방도는 없다.
마신군의 본대가 이곳에 닿기 전에, 예비대의 전력들이 몰살당하기 전에 본대가 적장을 끝장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마수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예비대의 전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리비툼!”
마침내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마의 사각에서 접근한 글라타를 맡아 줄 사람이 없었던 거다.
에뜨랑제에게 집적대던 물소 선배가 글라타의 이빨에 붙잡히고 말았다.
지네형 마수는 한번 붙잡은 먹잇감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기다란 체절 몸통을 수직으로 들어 올리더니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고.
우득, 우드득.
마물의 이빨이 뼈를 부수고 살점을 짓씹었다.
잠시 후 툭, 하고 머리 반쪽만 남은 리비툼의 사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관생도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순식간에 부대를 공포로 물들이는, 경악스러운 포악(暴惡)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