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12)
14. 와이번 토벌전
공포를 부르는 비주얼은 마수에게 꽤 중요한 요소다.
지네의 모습을 한 마수, 글라타는 그 외형부터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마수였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체절과 독기로 번뜩이는 100쌍이 넘는 다리.
인간을 한입에 뜯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빨.
뚝뚝 떨어지는 침과 피에서 진득하게 흘러나오는 독기까지.
한때 인간이었던 것은 순식간에 녹아 마수의 입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반쪽의 얼굴마저도 주변을 잠식하는 독기로 녹아 사라진다.
“아, 아으…….”
눈앞에서 전우를 잡아먹힌 고학년 생도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글라타의 주홍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죽음의 기운이 성큼 다가온다.
공포에 잠식된 팔다리가 빠르게 굳고 바지 사이에선 누런 액체가 흘러나온다.
마수의 주변에는 너덧 명의 생도들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쉽사리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수하게 전력만 따졌을 때, 그들도 막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정규 교육을 받은 생도들이다.
심지어 고학년이 된 이후로는 마신군과의 전투도 심심찮게 있었다.
비록 다수의 전력으로 찍어누르는 일방적인 사냥에 불과했지만.
그게 문제였다.
그들의 실전은 가짜였다.
단 한 번도 죽음의 위기에서 치열하게 싸워 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영웅 후보생들이다.
그렇기에 선연한 죽음 앞에서 공포에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었다.
포식자를 눈앞에 둔 초식동물처럼.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지면을 박차려 했다.
웬만하면 저 마수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수가 없다.
혹시라도 저놈이 진영 깊숙이 들어가 폭사라도 한다면… 전장 한복판에서 독으로 가득한 폭탄이 터지는 셈이었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그 순간 반대쪽에서 예비대를 지원하던 알렉사가 날아왔다.
그래. 날아왔다.
거의 십수 미터를 도약해 순식간에 글라타의 지척까지 접근한 그녀의 몸이 회전하듯 검풍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저런 얇은 무기로 마수의 껍질이나 뚫을 수 있을까 싶은 두 자루의 사브르.
하지만 사브르에 실린 패기는 진짜였다.
몸을 회전시키며 글라타의 눈동자를 쌍검으로 두 번 베고 지나가자 마수의 비명과 함께 독기가 퍼져 나간다.
“다들 떨어져요!”
알렉사가 내지른 고함이 귓가를 때리고 나서야 멍청하게 서 있던 생도들이 부랴부랴 거리를 벌린다.
글라타의 머리에 매달려 있던 알렉사가 또다시 몸을 뒤집는다.
마치 회전하는 팽이처럼 글라타의 두꺼운 등갑이 점점 패어 들어가고 독기 섞인 핏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알렉사 경!”
“괜찮습니다. 전열 흩트리지 마세요.”
알렉사는 다급히 저를 부르는 생도에게 괜찮다는 듯 핏물을 털어냈다.
순식간에 독을 뒤집어쓴 모양새가 되었지만, 방독 코팅이 된 전투슈트는 뚫을 수 없었다.
이것이 전투슈트를 허락받은 영웅의 힘.
웬만한 독성, 냉기, 화염 등등의 상태이상에 면역을 갖추게 해 주는 전천후의 무장이었기에.
“후우―”
깔끔하게 상급 마수를 처치한 알렉사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를 응시했다.
주변에 쌓인 마물 사체들을 일견한 뒤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 전부 셋이서…?”
확실히 저학년 셋이 처치했다기에는 좀 많은 수이긴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조금 민망해지는데….
“이쪽은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네요. 역시나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생도들이라니까요.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상급 마수들이 나타나면 대응하지 말고 절 불러 주시구요.”
그렇게 말한 뒤, 알렉사는 지친 얼굴 속 희미한 웃음을 그린 뒤 곧바로 뛰쳐나갔다.
곧바로 전투에 합류해 전열을 무너트리려는 상급 마수를 찾아 발 바쁘게 뛰어다닌다.
‘생각보다 많은데.’
마수들의 수준은 둘째치더라도 그 수가 너무 많다. 정규군이 아닌 예비대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성검기사단 두 명과 우리, 그리고 몇몇 눈에 띄는 사관생도와 용병대가 아니었다면 진작 전멸했을 거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통에 찬 신음이 울려 퍼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 한 명씩 몰아치는 마의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차디찬 대지 위에 파묻히는 중이었다.
숨이 멎지 않아 꿈틀거리는 시체를 마수들의 발굽이 짓밟고 다가온다.
공중에서는 계속해서 힐과 버프를 뿌려 대는 지원 부대를 향해 수많은 마수가 낙하하는 중이다.
사정없이 터져 나가는 와중에도, 제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그 때문에 카케트의 부담이 막중했다.
거의 매 순간 한계까지 소울을 끌어올려 공중 마수들의 공습을 막아내곤 있었지만, 한계였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성검 기사단급 정도 실력자라면 죽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저 사람만 죽었나 했더니.’
나는 그저 토벌대에 참여한 성검기사단 4명 중 한 명이 전사했다고만 서술했을 뿐이다.
내가 모르던 곳에서 완성된 세밀하고 정교한 개연성에, 나는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못 버텨.’
시간이 모자라다.
이세리아와 체르미아는 강하다.
분명 두 영웅은 무사히 와이번과 마인을 잡아내겠지만, 시간이 끌리는 만큼 이쪽의 피해는 원작 수준을 피해 가기 힘들 거다.
절대적인 머릿수가 부족했다.
왕실이 처음 토벌대를 구성했을 땐, 이세리아와 체르미아 두 사람이 협공으로 와이번을 빠르게 잡아내는 전략을 상정했을 터.
최정상급 영웅 둘이면 토벌급 마수 정도는 몇십 분 안에 토벌이 가능할 테니 충분히 여유 있는 인선이었다.
하지만 마인의 출몰로 상황이 달라졌다.
마인과 와이번을 두 영웅이 각각 감당하게 됐고, 그 때문에 미묘하게 균형이 맞아 버린 대치는 시간을 꾸준하게 잡아먹었다.
‘이대로라면, 90% 이상은 죽어 나가.’
대충 예상한 내 계산치였다.
이래서야 기껏 참여한 토벌전의 수지가 맞지 않는다. 정사대로 싹 다 죽으라고 이 개고생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적어도 최소한의 피해로 깔끔하게 승리하고, 와이번 시체 정도는 해체해서 돌아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만한 여정이 될 거다.
어떻게든 균형을 깨고, 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와이번이든, 마인 퀼튼이든.
둘 중 하나라도 먼저 쓰러진 순간 균형은 무너진다.
누군가 마수 밭을 뚫고 저 치열한 싸움에 결정적인 균열을 낼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었다.
‘가능…한가?’
나는 달라붙는 마수의 아가리에 창을 꽂아 넣으며 머리를 굴렸다.
시선은 전방과 영웅들의 전쟁터를 왔다 갔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세리아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몇몇 부대원에게 공략의 키를 맡긴 채 전면에서 와이번의 어그로를 붙잡고 있다.
체르미아는 거의 불 쇼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이며 마인과 단독으로 대결을 펼치는 중이다.
나머지 정규군들은 쉽사리 싸움에 끼지 못한 채 최소한 그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나가와 드라고나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중.
‘와이번 쪽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한다면 마인 쪽인데….’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체르미아와 퀼튼의 전투는 그냥 저세상 싸움이다.
화염을 다루는 두 전사의 싸움에 인근은 완전히 불바다였고, 잘못 끼어든 마물들은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몸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정규군들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싸움이었으니, 내가 합류한다고 한들 다가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끄아아악!”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또다시 비명이 쏟아졌다.
트롤의 거대한 양팔에 사지가 반으로 갈라진 생도가 눈에 들어온다.
하필이면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해 있어서 마치 원망하는 것만 같다.
이제 막 졸업을 앞두고 꽃피우려던 삶이 그대로 침몰한다.
개 같은 기분이다.
‘…염병할.’
나는 입안에 들어온 흙먼지를 퉤 뱉어냈다.
“잠깐 다녀올 테니 버티고 있어. 무리하지 말고.”
“……?”
“예?”
나는 두 사람에게 말을 남기고선 첫발을 뗐다.
나와 체르미아 사이의 길목에 있는 마수는 나가와 드라고나들.
이미 서펜섬에서 먹잇감 풀스택을 쌓은 종족 놈들이다.
저 두 종류의 마수로는 내 돌파를 막을 수 없을 거다.
[먹잇감 등록] 권능은 양학이라는 차원에서는 어마어마한 효율을 내는 권능이니까. 쫄작 속도로는, 빌트레드 삼촌도 날 당해낼 수 없을 거다.내 몸이 튕겨 나갔다.
“러셀!”
에뜨랑제가 후배님 호칭을 생략할 정도로 깜짝 놀라 외쳤으나, 이미 내 몸은 예비대에서 한참 멀어진 뒤였다.
태양 빛이 들지 않는 대지.
[그림자 걷기]가 발동한다.영웅의 무덤에선 어느 장소든 [그림자 걷기]를 켤 수 있다.
이곳은 나를 위한 무대다.
모든 환경이 나보고 해결해 달라고 득달같이 외치고 있다.
패기를 담아 창을 휘두른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한 무더기의 도마뱀들이 추풍낙엽처럼 휩쓸려 날아갔다.
길을 뚫고, 달린다. 태풍을 뚫고 출근을 위해 전진하는 K-직장인들처럼 비장하고, 엄숙하게.
그 단순하디 단순한 작업의 반복 끝에 마침내 후끈한 열기가 안면을 때리고, 확 트인 전장 한가운데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두 검귀가 보인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린다.
이세리아가 와이번을 차근차근 공략하고 있다.
병사들이 와이번의 시야를 단축시키는 디버프를 걸고 있기에, 가장 인근에 있는 이세리아만을 끊임없이 쫓아다닌다.
그녀가 와이번의 공격을 흘리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는 사이, 특수부대 병사들이 화력을 쏟아붓는 방식이다.
고전적인 와이번 사냥 방식이지만, 병사들의 화력이 모자라다.
저쪽은 내가 낀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내 패기는 아직 와이번을 뚫을 위력이 없으니까.
다시 내 눈이 체르미아를 향한다.
여기는 완전한 화염지옥이다.
주변의 모든 걸 피아 구분 없이 태워 버리는 불길들.
나는 스티그마 포션을 꺼내 입에 털어 넣어 머금고는 이를 앙다물고 앞으로 나아간다.
전투의 중심지로 다가갈수록 염화는 더욱더 거세진다.
[화염 저항] 권능이나 전투 슈트가 없다면 이 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몸뚱어리가 강렬하게 외쳐 댄다.뜨겁다.
내 살에서 오징어 타는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살이 타고 검은 연기가 피부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
‘모자라.’
자칫 위험해 보이는 지점까지 다가왔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소울 족쇄]를 걸 수 있을 만큼은 접근해야 했다.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잠깐의 틈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체르미아는 분명히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거다.
잠깐의 틈, 그것만 만들어 낸다면.
화르륵!
열기를 버티지 못한 피부에 불이 붙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통에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나는 도저히 화염을 견디지 못하고 온몸을 투지로 감쌌다.
하지만 온도가 내려가는 것도 잠시, 불길은 내 소울 에너지마저도 녹여 버렸다.
계속해서 걷는다.
소울 에너지가 바닥나더라도, [소울 족쇄]를 딱 한 번 발동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디딘다.
소울이 사라지는 속도를 버틸 수가 없어 점점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사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괴롭힌다.
그럼에도,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놈이 사정거리에 닿은 순간, 치열하게 맞붙던 두 초인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일별한다.
네가 왜 여기서 나오냐는 눈빛.
그리고 이건 웬 조무래기냐는 눈빛.
하지만 그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나는 내 5개월간의 노력을 보상받듯 권능을 발현했다.
[소울 족쇄]순간적으로 퀼른이 뿌려 대고 있던 모든 에너지가 사라진다.
퀄른은 제 몸을 감싼 이물질을 확인하고선 곧바로 소울 에너지를 분출해 족쇄에서 벗어났지만, 내가 원했던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양쪽을 지탱하고 있던 균형의 추가 무너진 그 짧디짧은 단 1초.
체르미아의 검이 정확하게 마인의 몸을 수직으로 갈라냈다.
거기까지가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