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25)
16. 사관생도 살인사건
내 호명에 루트비히가 보일 듯 말 듯 한숨을 내쉬고는 되묻는다.
“어쩌려고요?”
“뭘 어째. 2학년 훈련장 가서 에시드인지 뭔지 불러낸 다음 똑같이 패 줘야지.”
“그리고요?”
“다시는 개수작 부리지 못하게 단도리 쳐야지. 아니면 뭐, 승리의 깃발이라도 흔들까?”
요컨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복수를 하는데 동기와 방법만 있으면 되지 뒷감당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놈들도 딱히 뒷일을 생각하고 저지른 일은 아닐 터였다.
“그래요. 일단은 가 보죠. 저도 무슨 생각으로 후배를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궁금하긴 하니까.”
루트비히가 일어서자, 미마도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그녀는 두 녀석에게 빚이 있다.
폴리티아의 추격자들이 미마를 잡으러 왔을 때,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왔던 녀석들이다.
무표정하게 반응하는 중이었지만, 그녀도 살짝 화가 나긴 했을 거다.
성정이 그런 애니까.
“잠깐만! 우리는?”
두 부원만 데리고 출발하려는 우릴 붙잡은 건 리지였다.
그녀는 다급한 듯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는 말했다.
“우리도 데려가야지!”
“동아리 일이야. 나머진 빠져. 어떤 혈겁이 일어날지 모르니 너희에게 폐를 끼칠 순 없지.”
“누가 혈겁을 일으킨다고….”
“어허. 좀 더 전의를 불태우라니까?”
루트비히는 그냥 진상을 파악하러 가는 거라고 덧붙였지만, 나는 전혀 동의하지 못했다.
피는 피로써 갚는다. 그뿐이다.
“아무튼, 너희는 애들 잘 보고 있어.”
“그럴 순 없어! 나도 갈래!”
“왜. 재밌어 보여?”
“응! 아니?! 코리는 내 친구이기도 해!”
“너 방금 응이라 했지.”
“아니?! 아닌데?”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깔끔한 복수전을 원했는데, 얠 데려가면 어쩐지 개난장판의 테러 현장이 될 것만 같단 말이지.
“러셀. 그러지 말고 다 같이 가자. 혹시 시비라도 붙으면 셋이서는 좀 힘들지 않겠어?”
‘혹시 시비가 붙으면’이 아니라 줘패러 가는 거라니까….
이 순진한 녀석들은 대체 왜 원만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고민이 무색하게 파는 곧바로 휴고와 주디를 일으키며 따라붙었다.
“코리랑 어셔스는 우리 일족 어르신의 유해를 찾을 때도 열심히 도왔던 애들이다. 모른 척할 순 없어.”
“그래. 나도 도울게.”
평화의 상징인 휴고마저도 끼어들자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
같이 해변에 놀러 갔다 오더니 어느새 저렇게 친해진 모양이다.
“휴. 이 사고뭉치들. 어쩔 수 없지. 따라와.”
“네가 주도하는 거잖아….”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얌전히 따라붙는 주디와 당연하다는 듯 휴고의 등 뒤에 선 로벨리아까지.
고작 사관생도 2학년을 토벌하러 가기엔 너무 번쩍번쩍한 라인업이었다.
…이게 맞나?
“아카샤. 너도 갈래?”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선 마지막으로 여전히 앉아 있는 아카샤에게 물었다.
“저는 여길 지킬게요. 누군가는 간호해야죠. 애초에 병문안 온 것 아니었나요?”
“애초부터 아니었어. 하지만 본진 지키는 파수꾼도 필요하긴 하겠지. 애들 잘 지켜라.”
“네. 도움이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해요.”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네.”
“불한당.”
“…뭐라고?”
“아니에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째 점점 애들이 하나같이 거칠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8명의 원정대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시설동을 걸었다.
원래 에뜨랑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루트비히가 껴 있다는 것만 빼면, 내가 생각했던 최종 마신 토벌대 명단이었다.
이 멤버로 토벌하려는 게 마신이 아니라 사관생도 2학년, 그것도 B클래스의 모질이 선배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 모습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게,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에시드라는 놈 어딨어?”
“뭐야, 너 1학년이냐? 어디 건방지게 선배한테―”
에시드를 찾는 내 물음에 곧바로 발끈하려던 2학년 생도 한 명이 윽박지르려다 멈췄다.
우르르 몰려온 후배들의 기세가 뭔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그는 괜한 일에 엮이지 말자고 다짐한 듯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나도 몰라. 훈련장에 가 보든가….”
그렇게 물어물어 특정한 장소는 2학년 훈련장이었다.
실외 훈련장은 학년별로 나뉘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프리마관을 제외한 시설 대부분이 학년별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이라면 학사 관계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니 거사를 치르기에도 딱 적당했다.
그렇게 목적지를 설정하고 진격하는 우리의 앞에 익숙한 얼굴의 동기가 나타났다.
“저기…….”
같은 특별반 장학생이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휴고와 같은 조였던 건 생각난다.
“넌 특별반 애잖아. 뭔 일이야?”
“프란츠야….”
“알아. 그 힐 못하는 정령사.”
“너는 여전히 직설적이구나… 그게, 해 줄 말이 있어서.”
“뭔데. 빨리 말해라. 우린 지금 좀 급하거든.”
“너희, 에시드 선배를 찾으러 가는 거지?”
“어어.”
“그, 웬만하면 끼지 않는 게 좋아.”
“왜? 너, 이 상황에 대해서 좀 알아?”
소식을 듣고 계속 우리를 찾아다녔다며 서두를 연 프란츠는 더듬더듬 코리와 어셔스가 어떻게 이 사건에 휘말렸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코리가 휘말렸고 어셔스가 코리를 보호하려다 같이 휩쓸린 사건이었다.
이건 단순히 선배가 후배의 기강을 잡는 폭력 사건이 아니었다.
프란츠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사관학교 재직 생도 중에는 6대 상단이 각각 키우는 유망주들이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상단이 심은 유망주가 매년 사관학교에 존재한다고. 심어 놓은 유망주가 졸업하면 그 뒤를 잇는 생도를 집어넣기 때문에.
현재는 1학년의 코리와 프란츠, 2학년의 에시드, 3학년의 류사, 그리고 전선에 파병된 4학년 2명까지.
그들은 6대 상단에 사관학교 내부 소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상단의 유망주를 견제하는 게 오랜 세월 내려온 관습이라 덧붙였다.
“그러니까… 상단끼리 서로 괴롭힌다는 거지? 거기가 원래 사이가 안 좋나? 상단주들끼리는 나름대로 친하다고 들었는데.”
“상단주들끼리 사이가 좋아도, 그 안에 소속된 실무자들은 당연히 감정이 좋을 수 없지. 경쟁자이니까…. 특히나 에시드 선배가 소속된 네헨쿠이 상단 같은 경우는 대놓고 다른 상단의 유망주들을 포섭하거나 견제하는 게 공공연해. 나도 입학 후에 몇 번이나 괴롭힘당했고… 당장 에시드 선배 본인도 위 기수에게 엄청나게 시달렸을걸?”
“그렇구만. 넌 어느 상단 소속이라고?”
“마이라 상단.”
“그 귀여운 척하는 여자?”
“누님을 알고 있구나…?”
“어어. 소문으로만. 그나저나 그 사람한테 동생이 있었던가?”
머릿속에서 소설 설정과 게임 설정을 뒤적거려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친동생은 아니야. 어른들끼리 친해서, 누님이 날 품어 준 거지.”
“그렇군.”
이렇게 내 지식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참으로 껄끄럽다. 기억하기론 마이라도 뭔가 수상쩍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설정 밖의 이야기들엔 좀 쥐약이라니까.
나중에 한번 시간을 내서 세계관 복기를 하든지 해야겠다.
“아무튼, 잘 들었다. 별 도움은 안 됐지만.”
“응응.”
“가 봐. 우리는 하려던 일을 마저 하려니까.”
“이대로 끝내는 게 아니었어?”
“뭔 소리야. 반 죽여 놓을 건데?”
“이건 생도들 간 갈등이 아니라 상단 간의 싸움이라니까…! 외인이 끼어들면 일이 얼마나 커질지 몰라? 이건 불문율이야. 상단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구. 너희가 끼면 평생 네헨쿠이 상단의 미움을 사게 될 거야…!”
“어쩌라고.”
“어?”
“나와, 인마. 그딴 건 상관없어.”
“네헨쿠이 상단주가 개입하면 너희는 아마―”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면 이쪽도 어른들 부르면 돼.”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린가 본데, 뒷배는 이쪽도 만만치 않거든.
“얘들 뒷배가 누군지 아냐? 무려 현직 유일 계승자 크라우 님이시다.”
“……?”
내가 휴고와 로벨리아를 가리키며 덧붙이자 프란츠가 거짓말 말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러, 러셀. 크라우 님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팔면….”
“그리고 여긴 마법명가 로즈 뎁 백작님의 금지옥엽이시다.”
내가 리지를 가리키자 그녀는 ‘에헴’ 하고서 콧대를 세웠다.
“그리고 여긴 자그마치 성검기사단 부단장 이세리아 아리스포델 경의 먼 친척 되신다.”
“……? 그건 어떻게 알았어?! 파, 네가 말했어?!”
“으하하, 그럴 리가?”
내가 주디 아리스포델의 공공연한 비밀을 떠벌리자 주디가 사색이 돼서는 내 등에 주먹을 날리고 난리였다.
“그리고 여긴 여왕 디에네 폐하의 친구다.”
내가 이번엔 루트비히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번엔 동기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야, 그건 너무 나갔다.”
“거짓말은 나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루트비히를 바라봤다. 직접 설명하라는 듯.
“…진짠데요. 친구라기보다는 맹우에 가깝지만.”
“…진짜로?”
“에이, 설마.”
“근데 루트비히는 농담이나 거짓말을 아예 못하는데…?”
거봐. 맞잖아.
루트비히의 정체를 모르는 동기들이 놀라 뒤집히는 사이, 나는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나는 현직 대장군 빌트레드 경의 조카 되시겠다.”
삼촌, 이름 한 번만 더 팔겠습니다. 아빠 친구 좋다는 게 뭡니까.
“이래도 과연 그 새끼가 상단주 어쩌고 거들먹거리면서 어른 싸움을 붙일 수 있을까?”
씩 웃으면서 묻는 내 말에 프란츠는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지?’라는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릴 뿐이었다.
“나 같으면 그냥 얌전히 처맞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프란츠는 대답하지 못했다.
* * *
2학년 실외 단련실은 생도들로 북적였다.
2학년 2학기.
본격적으로 실전 임무에 투입되는 고학년이 되기 전 마지막 갈림길에 선 이들이다.
심지어 전시 태세까지 선포된 이상 언제 전장에 나서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생도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게 했다.
그런 이유로 프리마관 장학생을 제외한 2학년 전투부 대부분은 주말 훈련을 거르지 않고 훈련장으로 나온다.
네헨쿠이 상단에서 사관학교에 심어 둔 유망주 에시드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지금 한껏 기분이 올라온 상태다.
그 이유는 건방진 1학년 아피흐 상단의 꼬마를 교육해 주고 난 뒤라서 그럴 거다.
아피흐 상단과 바사르 상단에 밀려 늘 삼인자 자리에만 머물러 온 울분, 상단 전체의 숙원을 풀어 준 것만 같은 그런 웅장한 마음까지 들었으니까.
“아이고 바글바글하게도 모여 있네. 여기, 에시드가 누구야?”
하지만 한껏 고양됐던 기분은 2학년 훈련장에 등장한 8명의 후배가 등장하면서 부서졌다.
“뭐야, 1학년?”
“누가 선배들 훈련장에 들어오래?”
“에시드? B클 에시드? 걔는 왜 찾는데. 걔가 니 친구야?”
곧바로 2학년들의 적의가 쏟아졌다.
후배가 감히 선배들의 훈련장에 불쑥 찾아와 이름을 불러 대다니.
아무리 요즘 몇몇 사건으로 질서가 땅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닌가.
“에시드란 놈만 내주면 조용히 물러간다.”
“걘 왜 찾는데.”
“줘패려고.”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불한당 같은 녀석이 내뱉는 저급한 대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진짜 이 새끼가 미쳤나.”
“쟤 걔잖아? 1학년 수석.”
누군가 방학식에서 본 얼굴을 기억하고 내뱉은 말에 순간적으로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사관학교에서 수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만만찮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건방진 후배 놈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던 것도, 거기서 기인한 행동일 터.
“다시 말한다. 에시드란 놈만 내놓으면 얌전히 물러간다.”
“걔는 왜 찾냐고, 이 새끼야.”
“우리 친구를 반 죽여 놨거든. 내 사랑스러운 동기의 다리를 자른 다음에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 버렸어. 어쩌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몰라.”
“…그건 좀 심한데.”
“진짜 그랬다고? 미친놈인가? 마신도 울고 가겠네.”
러셀의 말에 2학년은 물론이고 함께 온 1학년들까지 괴상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후배 교육이라는 악습을 핑계 삼아 괴롭히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저 정도까지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몇 동기들이 의구심 담은 시선을 보내기 시작하자, 에시드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뭐? 내가 언제 그랬어? 이 사기꾼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그 순간 러셀과 에시드의 눈이 마주쳤다.
러셀은 입꼬리를 씩 끌어 올리며 속삭이듯 내뱉었다.
“찾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