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27)
16. 사관생도 살인사건
“잔월독입니다.”
수사관은 검독을 위한 아티팩트를 회수하며 짤막하게 언질했다.
간밤에 2학년 B클래스 생도 한 명이 살해됐다.
사망자의 신원은 에시드 레드위드.
사브와라 출신의 사막인으로 사인은 자살(刺殺). 독을 써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 뒤, 목젖에 짧은 칼날을 한 번에 찔러 넣었다.
첫 목격자는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던 클래스 동기.
발견자는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듯 오전 내내 눈을 뜰 수 없었고, 깨어나자마자 방 안에 가득한 피 냄새에 확인해 보니 이미 에시드가 숨진 뒤였다고 증언했다.
사건 발생 후 곧바로 사관학교 내에서 운영되는 범죄 수사팀이 움직였다. 사관학교는 성왕국 이제라의 통치를 받는 기관이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자체적인 수사권을 가진다.
조사와 수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한 뒤 왕실에 보고, 죄인을 이송해 처벌을 요청하는 것이다.
“잔월독?”
“네. 잔월화라고 부르는 독화에서 채취할 수 있는 독입니다. 피부에 닿거나 장기간 호흡하면 서서히 중독됩니다. 사람의 기운을 약화시키고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죠. 범인은 이 생활관의 두 생도를 무력화시켜 놓고 목젖에 15cm 정도의 단검을 찔러 넣어 일격에 살해했습니다.”
“흉기의 소재와 정확한 종류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길이는 추정 가능하지만, 자흔이 깨끗하지 않고 불규칙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징이 없어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휴… 작정했구먼, 작정했어. 생활관 동기는 어떠냐.”
“그 생도의 체내에서도 피해자와 유사한 양의 중독 반응이 나왔습니다. 증언 역시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활관 동기는 용의선상에서 배제해도 되겠나.”
“다만 사감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방문이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문단속 교육은 철저히 하는 편이니, 창문도 잠겨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가 조사를 나왔을 때도 잠겨 있었고요.”
“…밀실 살인.”
“네. 그러므로 생활관 동기를 완벽하게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중독 후 피살이라면, 중독시킨 방법이 있을 텐데.”
수사관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곧 생활관 한쪽에 있는 화병을 가리켰다.
“저 화병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건지 생존자에게 확인해 봐.”
그 말에 막내 수사관이 부리나케 뛰어나간 뒤 잠시 후 ‘어제저녁 있었던 난투 이후 돌아와 보니 있었답니다. 누군가가 병문안 왔다 간 줄 알고 그대로 뒀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화병에서 독의 잔흔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화병에 잔월화를 꽂아 둔 것 같네요. 이 정도로 밀폐된 공간이라면 5시간 안에 충분히 중독시킬 수 있습니다. 그 후 들어와 목표물을 피습한 뒤 화병에서 잔월화만 수거해 간 모양입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거군.”
“그렇게 봐야지 싶습니다. 문제는 출입 방법입니다.”
“마도사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추려 봐. 마법이라면 밀실 연출 정도는 일도 아닐 테니까.”
여러모로 마법을 이용한 살인이라는 게 유력했다.
불침번을 서던 사감의 이목을 피해 살인한 뒤, 밀실 살인을 가장하려면 그 외에는 방법을 특정하기 어렵다.
“학사 내 중범죄가 발생한 건 4년 만이다. 재단의 눈초리가 사나우니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할 거야.”
“네. 상단 쪽은 어떻게 할까요?”
“피해자가 상단 쪽 후원을 받는 생도라고 했나?”
“예. 네헨쿠이 상단입니다.”
“그 뾰족코 자식. 아주 건수 잡았다 싶겠군.”
“네. 범인을 색출하고 신병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항의를 할 거라고 예고했습니다.”
“상단의 자작극도 염두에 두고 조사해. 충분히 그럴 만한, 속 시커먼 인사니까.”
“예.”
상단들에 사관학교는 제법 중요한 거래처이지만, 사관학교도 마냥 갑의 위치에 있는 건 아니었다.
상단마다 조금씩 취급하는 물품도 다르고, 주력 상품도 다르다.
바사르 상단은 무구와 장비.
마이라 상단은 약재와 포션.
네헨쿠이 상단은 집기와 건설 자재.
아피흐 상단은 식자재.
이런 식이다.
워낙 소비하는 물품의 질을 따지고 소비 속도도 빠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거래처를 바꾸더라도 시간이 충분하다면 어떻게든 공급은 가능하겠지만… 중장기적인 가격 상승과 퀄리티 하락은 감수해야만 하는 일.
게다가 네헨쿠이는 지속적으로 왕실 귀족에 줄을 대고 있는 로비스트다.
실질적인 증거는 없지만, 배후를 바탕으로 인신매매나 거래 금지 품목들을 거래한다는 소문까지 무성한 안하무인인 상인.
결국 학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배상금을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출혈이 생길지도.
그렇게 되면 자신은 당연히 모가지다.
탈모는 더 심해질 거고, 요즘 통 히스테리가 심해진 부인에게도 버림받게 될 거다.
“에잇.”
수사관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공무원은 제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라와 정치적 상황까지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파져 온다.
“일단 범인부터 잡자. 그러면 50%는 해결된다.”
“예. 팀장님.”
* * *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휘말리게 해서….”
코리는 우리의 복수혈전, 그러니까 2학년들과 대차게 한판 붙은 그 날 저녁에 깨어났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무동 직원의 말에 당일 방문하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동기들이 병문안을 온 참이었다.
“걱정하진 마라. 선배 놈들도 쪽팔린 건 아는지 딱히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니까. 뭐, 죽은 사람도 없고.”
“그렇구나….”
“그나저나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
“별일 아니야. 원래부터 사관학교 내의 6대 상단 피후원인들은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거든. 기를 죽여 놓고 죽은 듯이 지내게 해야 새로운 사업을 따내기도 좋고… 어쨌든, 경쟁자이자 눈엣가시니까.”
재학 중인 생도는 자연스레 각 상단에서 사관학교 관련 사업의 사령탑 역할을 겸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사업이라는 건 현장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자가 가장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으니까.
특히나 코리는 성정에 비해 머리가 비상하고 똑 부러지는 경향이 있어서, 학사 내 다른 상단들의 거래 품목을 야금야금 집어삼키는 데 한몫했다고 들었다.
손익 계산을 확실하게 해 주는 권능 [황금손]의 영향일 거다.
“다들 입학 전부터 가급적이면 경쟁자들을 어떻게든 퇴소시키라고 교육받거든. 나도 그랬고…. 이번에 농장 공사하면서 남는 자재들을 조금 싸게 공급했더니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꼈나 봐.”
“이유야 알겠는데. 그래도 뭔가 명분은 있었을 거 아니야.”
“그냥 시답잖은 일이지, 뭐… 우연히 눈을 마주쳤는데 왜 노려보냐고 시비를 건다든가….”
“악질이네. 더 쥐어팰 걸 그랬다.”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히 몸 사릴 거야. 고마워….”
말문이 트인 코리가 사브와라의 기조와 6대 상단에 대한 정보를 설명해 주고 있던 차였다.
누군가 병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형님!”
들어선 생도는 A클래스 소속 생도, 건페이였다.
“넌… 카카오페이잖아. 오랜만이다?”
“건페이입니다 형님!”
“아, 그놈의 형님 소리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냐? 심지어 나보다 한 살 많잖아.”
“그럴 순 없습니다, 형님!”
목청은 얼마나 큰지, 정말 마주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게 하는 녀석이다.
주디도 그렇고 건페이도 그렇고. 아무튼 시끄러운 녀석한테는 쥐약이다.
“그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형님, 에시드 레드위드가 죽었다는데요?”
“……? 뭔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어젯밤에 그 사람이 죽었대요. 지금 2학년 기숙사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치고 난리에요!”
“…그 정도로 패진 않았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 멍청하게 되물었다.
죽었다고? 왜?
분명 좀 과하게 패긴 했지만, 놈도 일단 사관생도다.
아머드 건틀릿으로 한결 업그레이드된 [마족 펀치]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분명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렸단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열린 징계위원회에서도 분명 ‘사망자 없음’이라고 전달받았다. 치료도 대부분 당일 끝났고.
그런데 그놈이 왜 죽어?
“형님한테 맞아 죽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칼에 찔려 죽었다는데요?”
칼에 찔려 죽었다.
그 말에 내 머릿속에서 번뜩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사관생도 살인사건’ 에피소드.
슬슬 그 에피소드의 시작 시기가 가까워졌으니까.
타이밍과 죽은 대상이 공교롭긴 하지만… 일단 확인해 봐야 했다.
나는 곧바로 [개발자 노트]를 켰다.
변경 사항 : 에피소드-「사관생도 살인사건」
스토리와 상관없이 분량을 무의미하게 할애한 에피소드를 수정․보완․변경합니다.
변경 사항 : 피해자와 가해자를 변경하고 사건을 에피소드의 흐름 안으로 편입시킵니다.
[개발자 노트]에는 짧지만,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우려했던 대로였다. [개발자 노트]는 내가 날로 먹으려 했던 에피소드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피해자, 가해자를 모두 변경했다.
그렇다는 건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에피소드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사건을 에피소드의 흐름 안으로 편입시킵니다.’라는 문장이다.
해석하자면 이 사건이 그저 단발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는 하나의 스트림이 되었다는 거다.
‘살인사건과 엮일 만한 스토리가 뭐가 있지?’
머릿속이 핑핑 돌아간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는 극히 일부.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가해자가 마인인 경우. 아마도 4막 ‘마신 준동’과 관련 있을 거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브와라 출신의 ‘상인’이 후원하는 생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브와라 에피소드라면 올해 12월에 아직 계승자를 선택하지 못한 신수가 도난당하는 사건, ‘6대 상단과 도난당한 신수병기’와 관련 있을 거다.
메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분명 중요한 에피소드니까.
어찌 됐든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 * *
“러셀, 수사관이 찾아왔었어. 너에 관해서 묻더라. 널 범인이라 생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참고하라고 말해 준다.”
“고맙다, 파. 참고할게.”
그날 오후, 본격적으로 수사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 의심되는 용의자를 추려낸 뒤 그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전날 피해자와 한바탕 혈전을 벌였던 나 또한 당연히 수사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내게 직접 찾아오기보다는 내 주변을 휘젓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농사 동아리 부원들에게 각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농장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곳은 사건 현장.
B클래스 기숙사의 사건 현장은 추리물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경찰 통제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세계관에 대한 오류 지적은 이제 더하기도 지겹다. 그 와중에 통제선의 재질은 또 중세풍이라는 게 코미디였다.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라인 바깥에서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