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39)
17. 도망치치 않는 소녀
교류전 진행 사흘째.
사흘 만에 처음으로 레인가르에서 얼굴을 마주한 코리가 핼쑥해진 얼굴로 다가온다.
“왔냐.”
“응. 정신없지?”
학생회장을 추적하기는커녕, 학사 일정을 소화하기도 바쁜 나날이었다.
개막식 날 시범 대련을 했던 경기장에서는 지금도 지목받은 학생들끼리 치고받고 결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자그마치 3주 동안 이어지는 교류전은 첫 주는 한 생도당 3번의 대련을 치르고 둘째 주는 학생들 간 자율교류를 진행하며, 마지막 주는 다시 1번의 최종 대련을 치른다.
그 과정이 모두 학기 말 평가로 반영되기에 무턱대고 일정을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피소드 시작이 2주 차인 게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러셀은 대련 일정 모두 끝낸 거지?”
“응. 후다닥 처리해 버렸지.”
내 성적은 제라토와의 시범 대련을 포함해서 3전 3승.
레인가르의 수석, 차석, 차차석까지. 모두의 도전을 받아들였고 깔끔하게 서열정리를 끝내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위권 생도들은 레인가르와의 교류전에서 깔끔한 3승을 거뒀다.
물론 1학년 전체로 따지면 승률은 20%도 채 되지 않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의 역량은 그림로어가 뛰어나지만, 전체 학생의 수준은 레인가르가 훨씬 앞서는군요.’
교류전을 빠짐없이 구경한 한 외부 인사의 정확한 평가였다.
“애들 경기는 다 끝났지?”
“응. 지금 주디가 경기 중인데, 그것만 끝나면 친구들 대련은 모두 끝나.”
재밌는 건 정령사들 간의 대련이었는데, 정령사 클래스는 전투형 머시너리를 대동해 2대2로 대련이 진행됐다.
정확히 같은 성능의 전투로봇을 파트너로 두고 벌이는 싸움이라 그림로어의 평가 방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정확했다.
대련을 지켜본 다이크 교수가 눈을 빛내며 이 시스템을 그림로어에 도입해야 한다고 재단에 역설했다는 건 소문 자자한 후일담.
“알아보라고 한 건?”
“으응. 우선 학생회장 유나는 보통 아일로 연구탑의 본인 연구실 아니면 겨울폐허 그늘숲, 두 군데서 출현한다고 해.”
“출현이라니. 표현이 웃기네.”
“그렇긴 한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 워낙 두문불출한 사람이라… 일단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면 곧바로 드론을 타고 사라져 버리니까.”
“나도 설마 사흘 동안 머리털도 보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가끔 지하심문소에도 나타난대.”
“거긴 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니까. 취미는 해안가에서 멍하니 바다 구경하는 거랑 기계장치 관련 연구. 두 가지 빼고는 딱히 관심사도 없는 것 같구.”
나는 코리가 수집해 온 정보와 내가 기억한 설정을 대조하며 [개발자 노트]를 틈틈이 확인했다.
특별한 변경 사항은 없었다.
“플럼 중위는 찾았어?”
“아니. 일주일 전부터 행방불명이라는데? 공안부 쪽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제법 난처한가 봐. 일주일 전에 구스마라는 상인이 레인가르에 들어오고, 플럼 중위가 그와 접촉한 게 마지막 행적이라는데… 그래서 구스마라는 상인을 조사해 봤거든?”
“사흘 동안 부지런히도 뛰어다녔네. 역시 유능하긴 해.”
“하하… 그자는 네헨쿠이 상단의 지원을 받는 상인이야. 그리고 이건 대외비지만, 양 상인 간에 흑마석이 거래된 정황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모두 정사의 영역이다. 사실상 두 사람은 마신군이 침략하기 전까진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을 거다.
미리 찾아 대비하는 건 불가능했다.
“흑마석 관련된 내용은 레인가르 측에 살짝 흘려 줘.”
“응. 그럴게.”
흑마석. 하늘석과 같이 소울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자원이지만, 여신의 힘이 아닌 마신의 힘이 담긴 오염된 광석이다.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점점 마신의 힘에 정신이 오염되어, 자칫 마인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
대륙의 모든 국가에서 발견 직후 신고와 폐기를 지시할 정도로 유통, 관리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물질이다.
“구스마는 됐어. 어차피 조무래기니까. 유나랑 플럼 쪽에 집중해서 위치를 파악해 줘.”
“응.”
“그리고 너는… 혹시라도 습격이 시작되면 절대 그림로어 기숙사 밖으로 나오지 말고 안에서 농성해라. 아카샤랑 어셔스 챙기고.”
“알겠어. 걱정하지 마.”
코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선 웃었다.
“눈 그렇게 뜨지 마라.”
“어?”
“앞으론 눈웃음 흘리지 마, 이 자식아.”
“이건 그냥 버릇….”
“콱 씨.”
* * *
코리와 헤어진 뒤,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교류전에서 성적을 챙기기 위해선 몇몇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되도록 첫 주 안에 모든 걸 해 놓기 위해서였다.
그중 하나가 신수병기 견학이다.
레인가르의 성역이라 불리는 현자의 탑 지하 격납고에는 신수 카즈란이 병기 형태로 잠들어 있다.
원래는 관계자 외 출입 엄금의 제한시설이지만, 양 교육기관의 긴밀한 협약으로 1학년 생도들에게 딱 한 번씩만 공개되는 공간.
당연히 경계는 엄청나게 삼엄했다.
“1개 조 10명 입장합니다. 신원 확인 모두 끝났고 5분 후 내려가요.”
까마득한 탑을 위아래로 이동시켜주는 이동 장치에 탑승한 나와 동기들이 지하로 내려갔다.
이중 삼중으로 잠긴 격납고의 문이 열리고, 영화에서 자주 본 익숙한 군사시설이 눈앞에 펼쳐진다.
“와….”
레인가르에 도착한 뒤 몇 번이고 감탄사를 뱉어낸 생도들이지만, 이번에는 나조차도 감탄사를 절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신수병기 카즈란.
내 상상 속에서만 그려 보았던 모습 그 자체의 기갑병기가 눈앞에 서 있다.
카즈란의 모티브가 된 동물은 갈까마귀.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흑색 빛 도는 기체와 깃털로 장식된 등판이 보였다. 한쪽에는 전용 무기인 거대한 큐브까지 따로 보관되어 있다.
그 웅장한 모습을 직면하고 나서야 이게 기갑물이었지, 하고 깨닫고 마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 빙의한 지 1년이 다 되어서야 깨달은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가까이 접근하면 안 됩니다.”
격납고 관리자의 말에 한 걸음 내디디려던 생도들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저게 계승자들의 기갑병기….”
휴고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확실히 기갑이라는 건, 이맘때 남자애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뭔가가 있다.
“카즈란은 좀 작군요.”
루트비히의 목소리에 온갖 시선이 몰려들었다. 녀석은 갑작스레 모인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왜 다들 쳐다보죠?”
“저게 작다고?”
“네. 크롬크루스는 저거보다 1.5배는 크거든요.”
“크롬크루스를 본 적이 있어?!”
가끔 이 녀석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의문이었다. 나는 황급히 끼어들어 중재했다.
“얘 출신이 뒤셀노크트잖아. 뭐 한 번쯤은 봤을 수도 있지.”
내가 팔꿈치로 녀석을 툭 치며 덧붙이자, 루트비히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그렇습니다.”
“근데 크롬크루스는 아무나 볼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주디가 짐짓 젠체하며 제 지식을 한껏 뽐내려다가 내 눈빛을 받고선 입을 다물었다.
우리 일행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 과거에 대해서는 굳이 캐묻지 않는다는 것.
워낙 과거사가 복잡한 놈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규칙이었다.
“너무 멋지다. 한번 타 보고 싶어~”
리지가 타이밍 좋게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출입 금지선에 매달려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리지를 제지한 관리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탑승은 금지입니다.”
“몰래 타 보면 어떻게 되나요?”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서 지하심문소에 구금되겠죠.”
“그건 싫은데…”
“잡담은 거기까지만 할까요? 제게는 여러분께 간단한 설명을 해 줄 업무가 있어서요.”
격납고 관리자의 말에 장학생들이 대화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신수병기 카즈란의 모델은 갈까마귀입니다. 전투 시에는 이렇게 아머드폼으로 있지만, 평시에는 노멀폼으로 계승자의 옆을 지키죠. 카즈란 님이 까마귀로 변신한 모습은 정말로 귀엽습니다. 신수 중 유일하게 인간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는데, 그 또한 잘생겼습니다. 시간을 다루는 능력을 지닌 신수이시기 때문에, 능력 또한 신수 중 가장 탁월하다고 할 수 있죠.”
주접스럽게 신수 카즈란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관리자의 모습에 생도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개중엔 관리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생도도 있었다.
“웃기지 말아요.”
“……?”
격납고 관리자의 말에 어쩐지 발끈한 루트비히가 퉁명스레 끼어든 것이었다.
이번에도 시선이 우수수 모여들었다.
“신수 중 가장 유능한 건, 크롬크루스예요.”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제 뜻을 똑똑히 전달하는 루트비히였다.
“…….”
격납고 관리자는 별 이상한 사람을 보겠다는 듯 빤한 시선을 보내다가 못 들은 척 설명을 이어갔다.
“과거 사도 중 하나인 피의 왕 티위그와의 전투로 크게 다치셨고, 지금은 유나 님과의 계약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 아머드폼을 유지하시는 중입니다. 변신을 위해서는 계승자의 막대한 소울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관리자는 거기까지 설명을 마친 뒤 시계를 힐끔 보고서는 “시간이 다 됐네요. 추방, 아니 퇴장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루트비히 녀석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하다.
* * *
“이제 공식 일정은 얼추 끝났지? 슬슬 수색 시작하자. 언제든지 습격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 긴장 풀지 말고.”
나는 본격적인 유나 수색 작업에 앞서 동료들의 경로를 다시 한번 점검해 준 뒤 가장 중요한 사항들을 재차 강조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었으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동료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귀담아들었다.
한 명이라도 제 몫을 못 하면 연쇄적으로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나비효과가 얼마나 많은 죽음으로 되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휴고, 로벨리아. 역할은?”
“계승자 유나를 지키고 그녀를 지원해 테네브리아를 잡을 틈을 벌어 주는 것.”
“주의할 점은?”
“‘카즈란의 시간 역행은 무한하지 않다’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리지와 미마를 바라봤다.
“리지, 미마. 역할은?”
“플럼 중위 사살.”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반드시 남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할 것!”
“죽지는 말고. 주의할 점은?”
“루트비히가 결계를 반전시킨 후에 진입해야 한다!”
“좋아. 잘했어.”
날 보며 눈빛을 빛내는 리지에게 가벼운 칭찬을 해 준 뒤 고개를 돌렸다.
“파, 주디. 역할은?”
“영웅들이 올 때까지 제트 콜로서스의 시선을 끌면서 도시 밖으로 유인하기.”
“파를 보호하고 죽지 않도록 지켜주기.”
“주의할 점은?”
“파가 길을 잃으면 안 된다.”
주디가 푸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그 반응에 파가 어깨를 으쓱하고선 구시렁거렸다.
“그 길을 잃는다는 건 왜 고정값으로 붙이는 건데?”
불만을 표하는 녀석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주디에게 몇 번이나 강조할 뿐이었다.
너, 길 잃으면 죽어. 이 자식아.
어쨌든 이 정도로 강조했으니 주디가 알아서 케어할 거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의 핵심, 루트비히를 바라봤다.
“루트비히.”
“결계 반전이요.”
“주의점은?”
“시간.”
“맞아. 부담스럽겠지만, 네 임무 수행 시간과 사상자는 비례할 거야.”
“……진짜 부담스럽거든요.”
그리고 내 역할은 전체적인 전황 조율이었다.
혹시라도 균형이 기울어지거나, 누군가 위험에 빠졌을 때 곧바로 백업해서 뒤틀린 전황을 바로잡는 역할.
나는 한 명 한 명의 경로까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반복 작업까지 마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리지야.”
“응?”
“아버님은 복귀하셨어?”
“응응. 오늘 낮 열차로 배웅했어!”
“좋아. 혹시라도 아는 사람들 있으면 도시에 남겨 두지 말고 모두 대륙으로 돌려보내. 괜히 휘말리게 두지 말고.”
내 말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깜빡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전투가 시작되면 머시너리는 되도록 상대하지 마.”
“왜?”
“나중에 결계 반전 성공하면 아군이 될 전력이야. 기껏 잡아도 하늘석 안 나와서 헛고생이고. 이번 전투 때 하늘석 최대한 많이 수급해 놔야 하니까 가능하면 마물들 위주로 잡아.”
당장 눈앞의 위기 타개도 중요하지만, 미래도 대비해야 했다.
최대한 많은 하늘석을 확보해야 다음 성장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절대 까먹지 말고 기억해. 목표물 발견하면 푸른색 신호탄. 습격이 시작되면 노란색 신호탄. 위급상황 시 붉은색 신호탄이야. 붉은색 신호탄이 오르면 10분 이내에 뛰어갈 테니까.”
나는 불안과 걱정, 그리고 염원을 담아 읊조렸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죽지 마라.”
부디, 누군가를 잃는 일이 없기를.
에피소드가 끝나고 지금을 회상할 때, ‘그때? 존나게 힘들었지.’ 정도의 말로 가볍게 추억할 수 있기를.
‘아니, 잠깐만….’
나는 쓸데없이 플래그를 꽂은 듯한 불쾌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래 3개는 아주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금지사항이다.
1. 해치웠나? 2. 살아서 만나~ 3. 죽지 마라.
결국 고개를 홱홱 젓고선 목을 양쪽으로 기울여 우드득 뼈 소리를 냈다.
“정정할게. 누구 하나 죽으면 장례는 예쁘게 치러 준다. 자, 출발.”
7명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