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42)
17. 도망치치 않는 소녀
파의 상태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그나마 미리 챙겨 주었던 스티그마 포션을 통째로 들이부어 출혈을 최소화했기에 지금까지 두 발로 서 있었던 것이다.
“치, 치료가 안 돼… 파, 어떻게 해….”
주디가 울먹이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파를 받아들고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안절부절못했다.
“마력 아껴.”
신체 일부가 아예 소실되면, 권능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의 행동에 신경질이 났지만,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냉정해야 한다.
적어도 나만큼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사이 마신군들이 특유의 하울링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그에 반응한 건 휴고. 그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뒤 지면에 대검을 꽂아 넣고 권능을 발동했다.
[철벽]그의 투지가 장벽처럼 뻗어 나가 ‘U’자 모양으로 일행을 감쌌다.
파의 선조 무덤을 찾다가 우연히 얻은, 휴고가 처음으로 얻은 탱커다운 권능이었다.
쾅! 쾅쾅!
앞길을 가로막힌 마물들이 신경질적으로 벽을 두드린다.
[철벽]은 특유의 잘 뚫리지 않는 휴고의 투지 특성과 어우러져 굉장한 내구도를 여실히 드러냈다.그야말로 지키는 데 특화된 권능.
나는 휴고가 잠깐 벌어 준 시간 동안 파에게 매달려 오열하는 주디를 떨어트린 뒤, 곧바로 유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래선 곤란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려 주어야 했으니까.
“움직여. 현자의 탑으로 간다.”
“……?”
충격에 휩싸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엉덩이를 차 버리기 전에 당장 일어나서 달려. 신수와 계약하고 사도에게 맞서야 하니까.”
“나, 나는. 아직―”
“리지, 몇 시야?”
나는 그녀의 말을 도중에 리지를 불러 시간을 확인했다. 리지가 황급히 회중시계를 꺼냈다.
“지금… 4시 45분.”
신호탄을 확인하고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유를 좀 둔다 치더라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리라.
나는 다시 유나를 바라봤다.
“들었지? 시간 정확히 기억해라. 4시 30분이야. 적어도 그 정도로 시간을 돌리지 않으면 파는 죽거나 영영 불구가 된다.”
“…으, 으으.”
“정신 안 차릴래? 저거 안 보여? 이 도시의 수십만 명을 모두 죽일 거냐?”
나는 죽어가는 파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신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전히 충격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유나를 향해 일갈을 내질렀다.
이해는 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학생이었던-설정의- 인물이니, 끔찍한 전쟁의 현장 앞에서 굳어 버리는 건 당연하다.
나조차도 처음 죽음의 공포를 접했을 땐 머저리처럼 굴었으니까.
하지만 유나가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이곳은 지옥이 된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걸 막을 힘이 있고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있다.
쓸데없이 시간을 끌어서 내 친구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면, 애정하는 게임 속 캐릭터고 뭐고 귀싸대기를 후려 줄 터였다.
나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현재 상황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행동을 시뮬레이션 했다.
너무 촉박한 상황이라 쉽사리 머릿속이 진정되질 않는다.
“페이즈 1 시작이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일단 미마, 유나를 업어.”
“응.”
미마는 군말 없이 유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덥석 들어 올린 채 어깨에 들쳐멨다.
“업고도 잘 싸울 수 있지?”
“응.”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견고한 대답에 나는 든든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을 바꾼다. 저 몸 상태로는 속도를 낼 수 없어. 파는 두고 간다.”
파를 버린다는 소리로 들렸는지, 동기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흑빛으로 물들었다.
이 새끼들,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건지.
나는 절대 파를 죽게 할 생각이 없다. 아직 녀석에겐 빚을 갚지 못했다.
“리지, 주디랑 같이 여기서 파를 지켜 줘. 유나가 빠져나가면 어그로가 우리 쪽으로 쏠릴 테니 한결 버티기 쉬워질 거야. 잘 버텨라. 만약 해가 질 때까지 페이즈 2가 시작되지 않으면 돌아보지 말고 파를 데리고 레인가르를 빠져나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상황이 꼬이면 각자 살아서 도망치라는 대답. 하지만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혼자서는 도망칠 수 없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됐다. 말해 뭐하냐. 주의사항이나 잘 기억해. 출발하자.”
나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유나의 전투 드론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는 미마에게 들쳐 업힌 채로 드론을 받아들었다.
저건 루트비히가 결계를 반전시키면 제 쓸모를 다할 거였다.
“돌파한다. 미마 중앙. 휴고 전위. 루트비히 우익. 로벨리아 좌익. 후미는 내가 본다.”
내 지시에 세 명의 동기가 빠르게 대형을 만들었다.
“앞만 보고 달려. 거리가 있는 적들은 신경 쓰지 마. 무조건 길만 뚫고 간다. 주디, 버프 줘.”
주디의 권능 [바람의 축복]이 일행을 감쌌다. 몸이 한껏 가벼워지면서 마치 바람이 등을 떠미는 듯한 효과가 느껴졌다.
현자의 탑까지의 거리는 대략 한 시간.
전력의 4할 가까이가 이탈했다.
5툴 마도사인 리지가 빠졌고, 유일한 정령사인 주디마저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뚫어내야 한다.
어떻게든 유나만 저 현자의 탑 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설령 누군가가 죽더라도 수습할 수 있다.
휴고가 지면을 박차고 내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대형이 움직였다.
출발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언노운들과 머시너리들이 몰려든다.
“하아아아!”
휴고가 기합을 내지르며 [광폭화] 상태에 돌입했다.
“멈추지 마!”
바로 코앞에서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머시너리 군단. 하지만 휴고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달려 어깨로 가장 정면의 머시너리에 부딪혔다.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휴고가 길을 가로막는 머시너리를 한 방에 박살 냈다. 그 틈에 길을 막고 있던 양쪽의 마물들이 묵직한 철체를 휘둘렀다.
“마력 아껴!”
내 외침에 휴고를 엄호하려 권능을 발현하던 루트비히가 몸을 움찔한다. 나는 곧바로 1호, 2호기를 연달아 투창해 머시너리의 핵을 꿰뚫었다.
만들어진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1차 포위망을 돌파.
나는 대형의 최후미를 지키며 머시너리에 박혀 있던 창들을 회수했다.
툭, 투둑.
무언가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고개를 드니 하늘에 거대하고 소름 끼치는 모양의 균열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게이트’에 가깝다.
저건 [그믐달의 악몽]이라는 사도 테네브리아의 권능.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 폭격처럼 마신군을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전에 막을 수도, 예상할 수도 없는 일종의 재앙이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신군은 거의 한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다.
계승자 후보 유나가 있는 곳이다.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지는 포위망에 거침없이 진격하던 휴고마저 발을 멈칫거릴 수밖에 없다.
이걸 과연 뚫을 수 있나? 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휴고, 뭐 해!”
나는 곧바로 그를 질타했다.
뚫을 수 있다.
정사 속 휴고는 이보다 더 열약한 조건, 열약한 전력으로도 마침내 이 길을 뚫어냈으니까.
내 외침에 정신을 차린 휴고가 대검을 땅바닥에 찔러 넣는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휴고의 신체 표면에서 용솟음치듯 회전하는 소울이었다.
‘소울 번인가….’
주인공은 위기 상황에서 각성한다.
휴고는 동료 중 미마만이 다다를 수 있었던 경지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바위 가르기]지면이 갈라지고 솟아올라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어냈다. 소울 번으로 강화한 권능의 위력은 대단했다.
흡사 다른 권능인 것만 같다.
2선, 3선까지 둘러쌌던 마신군의 포위망에 점점 구멍이 드러난다.
포위망이 뚫리고 우리의 움직임을 놓친 머시너리들이 이제는 뒤쪽에서 포탄 세례를 쏟아 부었다.
이걸 막는 것은 나의 몫.
나는 홱 뒤로 돌아 아머드 건틀릿을 앞으로 뻗고는 투지를 최대한 넓게 개화시켰다.
연달아 포탄이 날아들고, 대지가 걸레짝이 되며 제 원형을 잃어버린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흙먼지는 시야를 가린다.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굉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댄다.
말 그대로 세상을 혼돈에 빠트리는 악귀들의 공격이었다.
* * *
날아드는 포탄을 얼마나 쳐냈는지 모르겠다.
포위망을 돌파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선두다.
추격을 따돌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후미다.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 다른 세 사람의 힘은 최대한 아끼고 또 아꼈다.
그 반대급부로 나와 휴고는 너덜너덜해질 대로 너덜너덜해진 만신창이였다.
“러셀! 다리가 보여!”
그럼에도 우리는 기어코 첫 번째 목표인 숲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눈앞에 레인가르섬을 가로지르는 강이 흐르고, 강 너머로 넓은 평원이 보인다.
다리 하나를 기점으로 숲에서는 끝도 없이 득실거리는 마물들이, 도시 방향의 평원에는 그 수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건방지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한 마리의 마수가 보였다.
놈은 마치 수문장을 자처하듯, 홀로 서서 우리를 향해 한 발자국씩 전진한다.
토벌급 마수, 제트 콜로서스.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 거기에 있었다.
놈은 커다란 덩치에 걸맞은 큰 보폭으로 빠르게 우리와의 거리를 좁히는 중이었다.
“루트비히, 다리 좀.”
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루트비히에게 다릴 부숴 달라고 한 뒤, 후미에서 선두로 튀어 나왔다.
“저건 내가 맡을게. 우회해.”
“뭐? 혼자서?”
누군가는 남아서 저놈의 시선을 끌어 줘야만 한다.
첫 번째 페이즈는 동료들을 하나씩 적의 아가리에 던져 주고 유나를 어떻게든 현자의 탑에 밀어 넣는 게 공략법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버려질 사람은, 바로 나였다.
왜냐하면, 앞으로 녀석들의 앞을 가로막을 적들 중 이놈이 가장 흉포하고 강하니까.
내가 사라지면 남은 동기들은 더 간절하고, 더 치열하게 나아갈 테니까.
휴고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건 이만하면 됐다.
내가 없어져야 녀석은 비로소 주인공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남에게 의지하는 건 주인공이 아니다.
“만약 지금처럼 유나를 데려가는 데 위협이 될 만큼 강한 적이 나타나면 한 명씩 떨어져 시선을 끌어줘. 두 번째는 루트비히, 세 번째는 로벨리아. 그리고 최후엔 미마까지. 유나를 탑에 집어넣는 건 휴고, 너야.”
휴고, 네가 성화봉송의 마지막 주자다.
나는 거의 랩을 하듯 최대한 빠르게 큰 작전의 틀을 전달하고선 토벌급 마수를 향해 내달렸다.
가까이 접근하니 체급 차이에서 오는 위압감이 더욱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나는 창을 들어 올리고, 집중을 개화해 빠르게 투척했다.
목표는 놈의 눈.
하지만 거대한 말 머리의 마수는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날 얼마나 무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봬도 이쪽은 준 영웅급 유망주란 말씀이다.
“따끔하지?”
날아간 창은 깔끔하게 녀석의 눈에 틀어박혔다.
큰 대미지는 주지 못했지만 신경은 제대로 긁은 듯, 포효가 이어졌다.
놈은 가소로운 듯 콧김을 푹푹 뿜어대더니 이내 양손을 모으고 지면을 내리쳤다.
콰과과광!
지면이 순식간에 벼락 모양으로 쪼개졌다.
공격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허공으로 도약했는데도 느껴지는 파장이 몸을 울려 댔다. 저걸 맞으면 딱 한 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쥐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근접전은 포기다.
나는 곧바로 녀석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제트 콜로서스의 손바닥이 펴지고 머리통만 한 구멍에서 칼날처럼 예리하게 다듬어 놓은 철편들이 나를 노리고 쏟아진다.
파바바박!
황급히 투지를 온몸에 둘렀으나, 단단함이 부족했다.
철편들은 대부분 투지를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와 내 몸을 갈기갈기 갈라놓았다.
한순간 빈혈기가 찾아올 만큼 많은 피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내 발밑이 피로 물들었다.
“시발, 체급이 맞아야 싸우든가 말든가 하지….”
나는 스티그마 포션을 원샷한 뒤 힐끔 본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기들은 전력으로 내달리는 중이었지만, 아직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적어도 5분. 아니 3분이라도 더 버텨야 했다.
이놈이 애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그림자 걷기]마신군을 쏟아내는 게이트가 햇빛을 가려 준 덕분에 평원임에도 이곳 전체가 흐릿한 그늘이었다.
나는 바람처럼 빠르게 치달려 나갔다.
어차피 놈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무리다. 그러니 최대한 귀찮게라도 할 생각이었다.
휴고 일행이 저 관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때는 줄행랑을 칠 작정이다.
지면을 내리치는 주먹이 내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를 풍비박산 낸다.
‘어쩌면 피해 없이 빠질 수도―’
찰나 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안이한 생각이었을까.
단순한 타격으로는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판단한 제트 콜로서스가 움직임을 멈추고 한쪽 눈의 시선으로만 날 따라오기 시작한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생물 같은 그 눈빛에 섬뜩한 살기가 담겨 있다.
제트 콜로서스가 양손을 뻗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등 뒤를 향해 빠져나가려 했다.
모기처럼 주변을 왱왱거리면서 최대한 얍삽하고 비열하게 너를 괴롭혀 주마.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놈이 내 머리 근처 허공에서 갑자기 손뼉을 힘껏 친 것이었다.
거대한 양손에 끼워진 철제 링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두개골을 쩌렁쩌렁 울리는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고 정신이 아뜩해진다.
‘상태이상-기절’에 걸린 것이었다.
내 설정집에서도, 강의 중 배운 총론 교재에서도 본 적 없는 유형의 공격 패턴이다.
‘…조졌네.’
연이어 머리 위로 거대한 손바닥이 드리운다.
말 대가리를 한 거대 마수는 마치 나를 비웃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손바닥을 뒤로 크게 당긴 뒤, 그대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움직여, 제길, 움직이라고.’
온몸의 소울을 터트리듯 회전시켜 상태이상을 풀려고 발악했다.
마침내 손바닥이 지면과 다다르기 직전 나를 감싸던 상태이상이 사라졌고, 나는 그대로 다이빙하듯 공격을 피하려 했다.
쿵!
‘어?’
기이한 감각이었다.
마치 잠깐 머릿속이 정전된 듯한 기분.
몇 초간 끊어졌던 이성을 붙잡은 뒤에야 내가 정신을 잃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뒤이어 내가 알게 된 건 하반신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로 죽었다.
* * *
시간이 돌아간다는 느낌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그 어떤 활자로도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과학의 순리와 인과를 어긋내고 지나간 것을 거스르는 비과학의 총체.
시간 역행.
나는 죽었고, 되살아났고, 거꾸로 내달렸으며, 마침내 돌아왔다.
비디오테이프가 되감기듯 부서졌던 지면이 복구되고, 날아간 다리가 재조립되며, 처치했던 마물들이 다시금 생성되어 게이트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영체가 된 듯 이지러지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땐, 내 눈앞에 파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이 서 있었다.
여기는 숲이었다.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시간이 되감기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동기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
누군가는 눈물범벅이 된 채 히끅거렸고, 누군가는 마치 나처럼 신체 어딘가를 만져 본다.
각자가 서로 다른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죽었던 시간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리지, 시간!”
“4시, 40분….”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선 파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그곳에는 사라졌던 왼팔과 왼쪽 견갑골 일부가 완전하게 복구된 파가 서 있었다.
“하, 하하. 난 분명 죽었는데…. 이게, 신수의 힘…?”
결국, 유나가 신수와 계약에 성공하고 [시간 역행]을 전개한 것이었다.
내 시선이 휴고를 향한다.
그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듯 뿌듯해하는 얼굴로 두 손을 불끈 그러쥐고 있었다.
“잘했어, 휴고.”
“…응!”
우리의 주인공 휴고가 해냈다.
이제부터 반복되는 시간과의 싸움.
페이즈 2의 시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