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50)
18. 신수 하니앤
“기다려.”
올망졸망한 눈을 빛내며 더 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두 두발짐승을 바라보며 단호히 손짓했다.
그 태도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리지가 곧바로 볼을 부풀렸다.
“잠깐만, 러셀! 솔직히 수인인 미마는 그렇다 치더라두, 나는 엄연히 귀족 레이디인데 이런 강아지 취급은 너무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안 먹는다고?”
“먹을래….”
나는 구시렁거리는 리지의 입에 쿠키 하나를 쏙 집어넣어 주었다.
굳이 내가 입에 넣어 주지 않아도 쿠키는 식탁 위에 잔뜩 있는데, 전투 후유증 때문인지 그거 집어먹는 것도 귀찮은 모양이다.
게으른 것들….
“이제 교류전 일정은 끝난 셈인가?”
파는 붕대를 감은 채로 찌뿌둥한 몸에서 뼈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렇겠지. 도시 복구하기도 바쁜데 당장 뭔가를 더 하기엔 정신없을 거 아냐. 적당히 회복되는 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아쉽네. 모처럼 학사 밖으로 나와서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았는데 말이야. 시간 나면 도시 구경도 하고 놀러 다니고도 싶었는데.”
“몸 괜찮아지면 좀 돌아다녀 봐. 아, 너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으하하, 또 그런 어린애 취급이야?”
파는 우스운 얘기를 들었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를 제외한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내가 미마와 리지를 양쪽에 끼고 ‘손 줘.’, ‘코 줘.’를 가르친 뒤 구르기까지 가르치려다 입질을 잔뜩 당하고 있을 때, 병실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안녕 얘들아?”
“유나?!”
등장한 사람은 계승자 유나였다. 어느새 그녀와 친해진 동료들이 그녀를 발견하곤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전투 드론을 타고 둥둥 떠 있는 채로 양손을 흔들며 웃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유나를 향해 기초 교육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영재 교육만 받느라 기본적인 초등 교육은 받지 못한 모양이다.
“잘 들어. 저건 문이야.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지. 네가 서 있는 곳은 창문이야.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지.”
“……나도 알아! 추격을 피해서 몰래 오느라 날아온 거야…! 너무 일이 많아서!!”
“그러냐… 레인가르도 장래가 밝지만은 않네.”
아무래도 밀린 업무를 쳐내고 또 쳐내다가 잔뜩 성이 나 도망쳐 버린 모양이다. 총책의 자리가 근 몇 년간 비어 있었으니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은 아니긴 했다.
“그보다 얘들아! 내가 뭘 갖고 왔게?”
유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튜나의 아래쪽 갈고리 부분에 걸린, 못해도 50L는 될 법한 묵직한 통을 가리켰다.
동료들의 시선이 우수수 향했지만, 통의 정체를 알기는 어려웠다.
유나는 잔뜩 신이 난 듯 통을 들어 올리고선 외쳤다.
“짜잔! 레인가르 특제 음료수입니다!”
“…그거, 술이잖아.”
그녀가 가져온 건 ‘레인가르 특제 음료수’라고 불리는 일종의 과일주였다.
레인가르 아카데미 주니어들이 시니어들의 눈을 피해 만든 주류인데, 발각될 때마다 특제 음료수라고 변명을 해대서 붙은 이름이다.
대한민국이나 이제라나 레인가르나, 학생들이 술 좋아하는 건 무구한 역사인가 싶다.
생각보다 떨떠름한 반응에 유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술 안 먹어? 너드 범생이들…?”
“뭔 소리야, 당연히 먹지. 가져와.”
자고로 내 술자리 좌우명은 ‘네가 산다면 나도 끼지.’다.
나는 유나가 마음을 바꿀세라 그녀가 가져온 술통을 받아들었다.
걸리면 벌점 정도는 받겠지만, 이 과일주는 오로지 레인가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천상의 맛으로 설정되어 있다.
심지어 학생회장이 직접 떠먹여 주기까지 하는데, 맛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래도 되나 싶은 얼굴이었으나, 술통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표정이 돌변했다.
“냄새 너무 좋지?!”
레인가르 특제 음료수는 설정대로 최상급 과일주였다.
뚜껑을 열자마자 향긋한 열대 과일 냄새와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병실 전체를 사로잡았다.
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지, 기미를 하겠다며 살짝 찍어 먹은 파가 ‘오, 오오! 미미!(美味)’를 외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유나는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이나 웃음을 터트렸다.
* * *
지금은 병실이 되어 버린 교류생 기숙사에 난데없는 술판이 열렸다.
레인가르의 학생회장님은 참으로 통도 크시다. 그녀가 가져온 특제 음료수의 양은 10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이곳은 그야말로 꿀과 술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적당히 조절하면서 먹기엔 특제 음료수는 너무나 맛있었고, 술판을 벌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몇몇 동료는 거나하게 취해 버렸다.
처음엔 ‘이런 일탈은 바람직하지 않아요.’라고 혀를 차던 루트비히도 내가 손가락으로 찍어 먹인 음료수 맛에 홀라당 넘어가 구석에서 홀짝거리는 중이었다.
유나는 그런 루트비히의 옆에서 ‘아무리 여기에 미성년자 음주 금지법이 없다지만, 어린아이는 이런 거 마시면 안 돼~’ 하면서 함께 마시는 중이었고.
“안 돼…! 로벨리아, 이제 그만…!”
휴고는 시동 걸린 로벨리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주디는 몇 잔 먹다가 그대로 자빠져 잠들었으며.
파는 주디가 잠든 틈을 타 안줏거리를 사 오겠다며 기어나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미마와 리지는 서로 경쟁하듯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중이었다.
미마가 알코올에 취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기체라는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렇게 덤비는 건가 싶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코리가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물어왔으나, 나는 내 술 챙기는 데 바빴다.
“내버려 둬. 원래 큰 싸움 뒤에는 축제가 벌어져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피로도 회복되는 거니까.”
“…바깥에 다 들릴 것 같은데, 이러다 교수님들이라도 들어오시는 게 아닐까 싶네.”
“그럼 뭐 같이 한잔하는 거지. 다이크 교수만 아니면 돼.”
1학년 담당 교수들은 대부분 융통성 있다. 거기에 워낙 장학생들을 편애하는 사람들이니 걸려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장학생들이 뭔 사고를 쳐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태반이니까.
유나는 즐거워 보였다.
레인가르에도 친한 이들이 제법 많은 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있긴 한 모양이다.
계승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 보니 마냥 편하게 대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선을 함께 넘으며 싸웠다는 전우애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워낙 친화력 좋은 애들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후에도 종종 힘을 실어 줘야 하는 계승자였으니, 친해진 건 참 다행인 일이다.
“외람되지만, 저 로벨리아. 노래하겠습니다…!”
저 녀석, 시동 걸려 버렸네.
나는 와이프 간수를 제대로 못 한 휴고를 질책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정뱅이 로벨리아’의 본모습을 이런 식으로 직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노래는 멋진 수녀님!”
“하지 마, 이 미친자야!”
“멋있는! 수녀님! 많고 많지만! 내가 바로 수녀님! 멋진 수녀님!”
나는 떨어지는 항마력에 기어코 이마를 붙잡았다.
로벨리아의 괴상한 노래를 듣고 있던 유나도 샌드위치 속에 반쪽만 남은 바퀴벌레를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2절도 하겠습니다!!”
“멈춰….”
“멋있는! 기사님! 많고 많지만! 내가 바로 기사님! 멋진 기사님!”
기어코 로벨리아는 3절에 4절을 넘어 뇌절까지 하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부끄럽지만, 추, 춤도 추겠습니다…!”
그러고는 괴상한 몸짓으로 이세계에서나 볼 법한 춤사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휴고야. 쟤 왜 저래? 대체 뭐가 문제냐.”
“그게… 키워 주셨던 할아버지가 열 살 때부터 술만 마시면 같이 노래 부르고 춤을 췄거든…. 그게 주사가 되어 버렸나 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동방예의지국 출신의 선비로서는 열 살짜리 애한테 술을 먹이는 이 세계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이 망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음은 불꽃놀이 갑니다…!”
로벨리아의 주사는 음주가무가 끝이 아니었다.
“좀 말려 봐라.”
“미안…….”
[블레이저]로벨리아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벼락이 반짝거리며 병실 안을 뒤덮었다.
취기가 싹 날아가 버릴 만한 대형 사고였다.
주디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변해 버린 머리를 하고선 번쩍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 습격이야…?”
“그… 뭐. 비슷하긴 해….”
개판 오 분 전이었던 술판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한 교수에 의해 끝장났다.
“동작 그만.”
운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 등장한 교수가 또 다이크 로필런이다.
피해 복구 작업으로 가장 바쁜 걸로 아는데, 저 양반은 몸이 한 세 개쯤 되나?
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눈앞에 그려져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짧게나마 즐거웠으니 되었다….
다이크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난장판을 한번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전원 교칙 위반, 특별벌점 1점이다. 회복하라고 일정을 비워 줬더니… 너희는 당장 내일부터 복구 작업에 참여해라.”
“교수니이임, 한잔하시겠습니까아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로벨리아가 혀를 배배 꼬며 다이크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다이크의 손가락 튕기기에 마빡을 맞고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유나 회장님. 도망쳐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발견했으니까요. 레인가르에 고발하지는 않을 테니 책임지고 뒷정리를 부탁합니다.”
다이크 몰래 슬금슬금 창밖으로 넘어가려던 유나가 그대로 멈췄다.
그녀는 고장 난 듯 삐걱거리며 다이크에게 고개를 돌리고선 헤헤 웃었다.
“아하핫… 그럴게요….”
“대륙의 운명이 참으로 걱정되는군.”
다이크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유나와 21기들은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으나, 차마 반박하지는 못했다.
* * *
아주 약간의 소란은 있었지만, 레인가르 교류전은 무사히 종료됐다.
일찍 회복을 마무리한 특별반 장학생들은 피해 현장에 끌려 나와 복구 작업에 고사리손을 보탰고, 그 공로로 특별상점을 받아 특별벌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솔직히 농담인 줄 알았는데, 다이크 로필런은 다음 날 바로 벌점 확인서를 날렸다.
참으로 한결같이 철두철미한 인간이다.
“그래도 후회 없는 맛이었어….”
특제 음료수의 맛을 떠올리며 몽롱한 표정을 짓는 주디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전원 도열. 오와 열을 맞추어 선다.”
착, 착착.
사관생도들이 다이크의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행렬 앞, 관문 위에는 유나와 레인가르 학생회 관계자들이 배웅을 위해 나와 있었다.
“편의를 제공해 주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준 관계자들께 경례하겠다. 일동, 경례.”
칼 같은 경례가 이뤄지고 이어서 유나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조심히 돌아가요! 레인가르 전체를 대표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해요. 함께 싸워 준 여러분의 용기, 도움, 노고를 절대 잊지 않을게요!”
인사는 짧았다. 아쉬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본 동료들의 표정도 뭔가 아쉬운 듯, 서운한 듯한 감정이 담긴다.
이맘때의 애들은 금방 친해지고 마음을 열어서 문제라니까.
나쁘지 않은 기분에 피식 웃고는 다이크의 목청에 따라 몸을 돌리려던 차였다. 관문 위에서 유나가 전투 드론을 타고 지면으로 휙 뛰어내렸다.
“……유나? 님?”
그러고는 우리 앞에 섰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휴고가 멍청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자 유나가 다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 3분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