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55)
18. 신수 하니앤
일과가 모두 끝난 뒤의 개인실.
나는 환복도 하지 않은 채 경건한 마음으로 침대 위에 앉았다.
제법 길게 느껴졌던 1학기와는 달리 2학기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큰 사건이랄 만한 일이 3막 레인가르 교류전뿐이었던 게 한몫했다.
덕분에 2학기엔 커리큘럼 따라가기, 개인 훈련, 그리고 머라고라 재배에 시간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머라고라 영약 5병과 권능석 2개.
동료들에게 영약을 배분하고 남은, 딱 내가 보유한 모든 권능을 대성까지 끌어올려 줄 만큼의 양이었다.
‘우선 영약부터 먹고, 그다음에 새로운 권능을 얻어야겠지.’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새 권능에 영약을 투자하기보다는, 숙련되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권능들을 먼저 대성하는 게 중요했다.
성장한 머라고라는 배양용을 제외하곤 다 써 버렸고, 하늘석도 모두 소진했으니까.
한동안 영약 생산은 멈춰 있을 거란 뜻이다.
나는 차례대로 영약을 들이켜고 천천히 흡수되길 기다렸다.
영약을 섭취할 때 정해진 행동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가부좌를 틀고 흡수가 끝날 때까지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게 된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 탓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체내를 휘젓는 머라고라의 기운이 사라질 즈음, 나는 두 개의 권능석을 연달아 깨트려 흡수했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 나는 오랜만에 [간파의 눈]으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권능]애시그린 일족 비기(S)(전용) : ★☆☆☆☆☆
사냥의 시간(A) : ★★★★★
먹잇감 등록(B) : ★★★
개발자 노트(F)(전용) : ★
그림자 걷기(B):★★★★
무기 각인(C):★★★
소울 연공법(C):★★★
소울 족쇄(A):★★★★★
석섬광(B):★☆☆☆
백어택(C):★☆☆
“길기도 하다.”
나는 시야를 전부 가리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상태창에 혀를 내둘렀다.
숨겨져 있던 기연들을 닥치는 대로 처먹은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영웅들이 평생 살면서 새로 얻는 권능이 3개에서 4개에 그친다는 걸 고려하면, 진짜 닥치는 대로 처먹었다는 표현이 옳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정보력을 이용해 성급 대부분을 대성까지 끌어올렸다. (영약을 처먹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S급 권능은 영약으로 성급이 오르지 않는다. S급 권능 자체가 워낙 희귀하기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아무튼 그 결과물을 단 한 줄로 표현하면 이러했다.
전투 능력치 : 929
‘900대….’
이제 명실공히 영웅급 전투력이다.
영웅과 싸워 볼 만한 수준을 넘어, 실제 영웅들과 전투 능력치 수치가 대동소이하다.
차이가 있다면, 영웅들은 체능과 소울 양, 그리고 권능의 힘이 균형 있게 발달되어 있는 반면.
나는 능력치를 이루는 수치 대부분이 권능 쪽에 쏠려 있다는 것.
이건 어린 나이와 사관생도라는 환경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체능과 소울 양을 성장시키는 영약 재료들은 세계 여기저기에 퍼져 있었고, 자연 성장은 오랜 시간 꾸준한 단련과 실전 전투 경험이 필수적이었으니까.
나는 그대로 지하 단련실로 내려갔다.
생도 대부분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권능들의 효과를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체험 결과.
다른 건 모르겠고, [그림자 걷기]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게 너무 재밌어서 1시간 동안 권능을 남발하다 소울을 탕진해 기절해 버렸다.
덕분에 ‘1학년 수석이 새벽까지 남몰래 훈련하다가 탈진해서 메이드들이 의무실로 싣고 갔다더라. 진짜 독한 새끼다.’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앤 메이에게 전해 들었다.
차마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였다.
* * *
“다음 조 올라오도록.”
주 3회 진행되는 다이크 로필런의 「실전 전투」 강의.
생도들은 하루건너 진행되는 지옥의 실전 대련에 어느덧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비록 전투 한 번이 끝날 때마다 전신이 땀으로 젖고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는 건 똑같았지만, 적어도 탈진으로 쓰러지는 생도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먹인 영약들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는지 휴고 일행의 성장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돋보였다.
그 차이는 다이크 로필런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학기 초 여유 있던 모습과 달리 다이크가 휴고 일행이 섞인 조와 전투를 끝낼 때만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성장을 티 내지 않았다.
그저 조원들이 제 실력을 끝까지 발휘할 수 있게 적당한 수준에서 커버를 쳐 주고, 중간중간 다이크를 긴장케 하는 공격을 찔러 넣었을 뿐이다.
이번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전투가 진행되는 내내 시종일관 여유 있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마뜩잖았는지, 다이크는 손을 들어 전투 중지 신호를 주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땀을 흘리지 않는군.”
“그러게요. 날씨가 매우 선선해졌나 봅니다. 교수님.”
나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교수는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조원들을 곁눈질했다.
“하하….”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소문은 들었다만… 뭔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그 소문이라는 게… 조금 와전된 거긴 하거든요…?
아무튼,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거냐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영업 비밀을 말씀드릴 순 없죠.”
그 여유만만함이 불쾌했는지, 다이크는 얼굴을 굳혔다.
생도들의 전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실전 감각을 체득시키는 게 이 수업의 본질이다.
그런데 한 놈이 다른 장학생들과 실력 차이가 심하게 나(심지어는 교수와의 수준 차이도 좁혀져)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는 건, 다이크에게는 큰 모욕이었으리라.
“재개하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다이크의 호승심을 건드려 버린 모양이다.
다이크는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조원들을 하나하나 전투에서 탈락시켰다.
그간 볼 수 없었을 만큼 공격적인 움직임. 말 그대로 저항의 여지도 주지 않고 생도들을 치워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말하자면 일기토 신청이다.
방해되는 조원들을 빨리 치워 버리고 내 수준을 제대로 가늠해 보겠다는.
나는 그 의도에 답하듯 픽픽 쓰러지는 조원들을 일부러 보호하지 않았다.
잠시 후. 훈련장 위에는 나와 다이크만이 서 있었다.
“전력으로 덤비도록.”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다이크의 얼굴엔 마뜩잖음이 가득했지만, 따지고 보면 날 위해 굳이 1:1 대련 시간을 내어 준 것이었다.
저 정도 되는 실력자와의 실전 대련은 내게도 귀한 시간이었고.
나는 곧바로 [사냥의 시간] 5단계를 발동시켰다. 권능을 대성하면서 5단계가 해금됐고, 제약이었던 예열 시간이 사라졌다.
그런 다음 등 뒤에서 창을 꺼내 들려던 순간이었다.
다이크의 전투슈트에 불빛이 들어오며 눈 깜짝할 순간에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어지는 짧은 펀칭. 나는 얼굴을 살짝 비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부웅 하는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르고 강한 공격이었지만, 가볍게 반응할 수 있다.
뒤이어 양 주먹과 발뒤꿈치가 차례로 날아들었다. 나는 주먹은 상체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관자놀이를 향한 회축은 아머드 건틀릿으로 막아냈다.
그 후로도 다이크는 숨 쉴 틈도 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창 꺼낼 시간도 안 주시는 겁니까?”
내가 볼멘소리하며 구시렁거렸지만, 다이크는 대답은커녕 갑자기 패기를 두른 손날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뻗어진 패기.
다이크의 패기는 몇 번이나 투지로 막아 보고자 했지만, 번번이 소울 양 조절에 실패했었다.
비겁하게 체급으로 찍어 누르는 공격이란 소리다.
나는 소울 대 소울로 맞붙는 대신 곧바로 공격을 상쇄해 줄 권능을 발동했다.
[소울 족쇄]다이크의 손날에 실린 패기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의 손날을 어깨로 맞아 준 뒤 [포획안]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집중을 개화해 카운터로 그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소울 양이 부족하지만 다양하게 익힌 권능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전투 방법이었다.
전투슈트를 뚫고 들어간 충격에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 앙다문 입술에는 한 줄기의 핏물까지 흘러나왔다. 명백한 내상이다.
“……!”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다이크를 몰아붙인 조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몸에서 피를 보게 한 조는 없었다. 그런데 그걸 단독으로 일궈 낸 것이었다.
“놀랍군.”
다이크의 평가는 짤막했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마침내 월광쌍익을 손에 쥔 나는 창을 빙빙 돌리며 창격을 위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5단계라 그런지 [사냥의 시간]이 잡아먹는 소울 소모가 극심했다. 자동차로 따지면 연비가 극도로 나쁜 슈퍼카 같다.
물론 이 권능 덕분에 다른 생도들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찬 다이크와 근접전을 펼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시간 질질 끌 것 없이 끝내야 해.’
불의의 일격에 내상을 입었지만, 다이크의 기세는 여전히 흉흉했다.
속도도 여전히 빠르고, 공격의 위력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울 탈진으로 쓰러질 터.
나는 빠르게 투창하고선 2호기를 꺼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다이크는 화살처럼 날아온 창을 양손으로 틀어쥐고는 발밑에 끼워 붙들었다.
투창 정도는 통하지 않는 위인이다. 게다가 [무기 각인]으로 몇 번 재미를 봤기에 그 대처에도 익숙해 보였다.
‘좀 아쉽긴 하네.’
순수하게 체급에서 밀리는 상대와 싸울 땐 상대가 익숙해질수록 권능 빨로 이기기가 힘들었다.
만약 내 공격이 통해 오늘 승리한다 해도, 그다음 싸움에선 당해 주지 않겠지.
하지만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다.
[소울 족쇄]일단 족쇄로 저 거대한 양의 소울을 틀어막는다.
[석섬광]그런 다음 새로이 얻은 권능을 발현했다.
석(析), 섬광(閃光).
‘빛을 쪼갠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 창술은, 휘두르기의 일종이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당겨 누르면서 대각선으로 내리치는 창술. 다만 일반적인 창술과는 다르게 내리치는 궤적이 크게 변화한다.
창의 잔상은 지그재그, 혹은 벼락을 그린다.
궤적이 바뀐 순간 회전격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적이 예상한 타점과 전혀 다른 곳을 타격하는 것이었다.
쩍, 쩌적.
다이크는 내 창격을 막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으나 창끝이 향한 곳은 그의 팔을 지나친 허벅지였다.
허벅지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전투슈트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거… 수리비 비쌀 텐데.
다이크의 지갑 사정에 조의를 표하는 바다.
[소울 족쇄]가 풀린 틈을 타 다이크가 양손을 깍지 끼운 채 내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나는 곧바로 [그림자 걷기]로 내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
이건 몰랐을 거다.
꼭꼭 숨겨 두었던 내 마지막 비기를 가감 없이 꺼내 들었다.
이 한 방으로, 이 수업을 수료한다.
시야가 잠깐 흐려지는 듯하다가 내 몸이 불쑥 지면 위로 끄집어내졌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다이크의 등.
아마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다음 순간 다이크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거로 보였을 터.
무방비하게 드러난 교수의 등짝을 향해, 짧게 움켜쥔 창을 휘두른다.
다시 한번, [석섬광].
동시에 [백어택]이 터지며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력을 지닌, 폭발적인 일격이 쏟아진다.
모든 전력을 다 쏟아부어 내리친 단 한 번의 공격이 황급히 몸을 틀려던 다이크의 등짝을 내리쳤고.
전투슈트의 등판이 완전히 박살 나 깨지며 다이크의 몸이 지면을 뒹굴었다.
낙승이었다.
“…저 미친 새끼가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침묵 속에서 호메르의 경악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의 혼잣말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것이었다.
‘근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냐….’
생도가 수업 중에 교수를 1대1로 꺾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구하기도 힘든 고가의 전투슈트를 개박살 냈다.
…이거, 뒷수습 가능한가?
다이크가 알아서 하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