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56)
18. 신수 하니앤
슈트가 박살 날 정도의 타격을 입었는데도 다이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났다.
약간의 내상을 입긴 했지만, 표정은 평온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을 믿기 어렵다는 듯 놀라움만 담고 있는 얼굴.
그는 철걱거리며 떨어지는 슈트 파편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아끼던 장난감이 부서져 버린 어린아이를 보는 듯해 죄책감이 고개를 디밀었다.
‘설마 변상하라고 하진 않겠지…?’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은 정당방위다.
누가 애들 가르치는 실전 수업에 슈트 입고 오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전력을 다하라고 호언장담한 건 그 아니던가.
하지만 전투슈트 앞에 붙은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떠올리면, 저절로 뭔가가 쪼그라들고야 마는 것이다.
“러셀 애시그린.”
“예에….”
다행히 다이크가 꺼낸 말은 부서진 슈트에 대한 변상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에 묶어 두기 아까울 정도로군. 당장 전장에 투입해도 되겠어.”
그것은 담담한 인정과 칭찬이었다.
차가운 자본주의 앞에 쪼그라들려던 나를 스승의 기품이 일으켜 세웠다.
“훌륭하다. 가르친 것이 없어 청출어람이란 표현을 쓰기 난망하다만, 혹 누군가가 너를 가르친 적 있다고 묻거든 자랑스레 대답할 수 있겠군.”
“과찬이십니다….”
짐짓 지엄한 표정을 지으며 대인배처럼 말을 꺼내곤 있다만,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표정으로 부서진 슈트 파편을 그러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 탓을 차마 생도에게 돌릴 수 없는 참 스승의 마음에 탄복할 따름이다…!
진짜로 죄송합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군. 더 늦기 전에 무장을 점검해야 하니.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다.”
생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든 커리큘럼 중 가장 거칠고 힘든 수업이 절반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이에 반발할 만한 사람은 훈련에 진심인 자학변태 파나 휴고 정도뿐이다.
생도들이 감사와 선망 섞인 눈빛을 내게 보내온다.
나는 애써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다이크에게 따라붙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받을 건 받아야 했으니까.
“저, 교수님.”
“말해라.”
“저는 이 수업, 이수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내 질문에 다이크가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교수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먼저 이수를 운운한다는 건 명백히 선을 넘은 행동이었으니까.
특히나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방금 자신을 이긴 생도라면, ‘너 나한테 졌잖아. 근데도 계속 날 가르칠 거야?’라는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빠르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무래도 슈트 수리비가 좀 걱정되는데요… 혹시라도 다음번에 또 부서질 수도 있고.”
다이크가 슈트를 입지 않는다고 내가 그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 내 콤보를 몇 번 당하고 나면 그때부턴 적응한 그에게 이기기 힘들겠지.
하지만 아무리 다이크라도 슈트의 도움 없이 몇 시간 동안 전 생도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즉 나는 이렇게 묻고 있는 거다.
너 슈트 벗은 채로 이 수업 진행할 수 있겠니?
근데 너 슈트 입고 나랑 싸우다 부서지면 피똥 싼다?
강사 월급을 생각해…!
여기서 다이크가 날 붙잡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음번에는 부서지는 일이 없을 거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이번엔 실수였다. 처음 상대해 본 권능이라 당한 거지 다음엔 안 질 거다.’라고 떼를 쓰는 것과 같다.
꼭 제자와 장기를 두다 한 수만 물려 달라고 하는 수준의 졸렬함이다.
완벽한 외통수.
결국 다이크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수 처리 해 주지. 게으름 피우지 말고 훈련에 정진하도록. 네가 그럴 일은 없겠다만.”
“네. 감사합니다. 많은 걸 배웠습니다. 교수님.”
나는 거드름 피우지 않고 공손하게 제자로서 예를 보였다.
슈트 파편을 꼭 끌어안고 교수동으로 걸어가는 다이크의 뒷모습이 어쩐지 서글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내 건틀릿을 누군가 부순다? 그럼 곧바로 오체분시해서 농장 가장자리에 하나씩 걸어 둘 거다.
그리 생각하니 역시 다이크 교수님은 아량이 넓으시다….
* * *
“폐기물은 1번 웨건으로!”
“갑니다!!”
“재활용 가능한 버림치는 2번으로!”
“예!”
“음식물 찌꺼기는 4, 5번 웨건이라고 했잖아 이 멍청이야!”
“가요!!”
“밀봉 똑바로 안 할 거야?! 네놈 가다가 오물 뒤집어써 볼 테냐!”
“죄송합니닷!!”
시설동 후미.
입이자 배설기관이라 할 수 있는 상·하차장은 아피흐 상단의 인부들로 북적였다.
사관학교에 들어오는 모든 물자는 이곳을 거친다.
상단이 납품하는 물건의 상태, 기일, 품질, 수량들을 확인하고 승인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동시에 사관학교에서 생긴 모든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과 각종 처리 쓰레기들이 상단을 통해 배출된다.
이곳은 흡사 헤엄치는 오리의 수면 아래와 같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고 모든 게 풍요로운 사관학교이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선 이들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리발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오리발 틈에 숨어 있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한 짐마차이지만, 딱 하나. 상행의 총책이 타는 마차는 짐이 실린 마차다.
나는 자그마치 상행의 총책이라는 거물이 된 코리에게 정보를 받아 어제저녁 미리 만들어 둔 짐들 사이에 숨어 시원하게 한숨 잠들었다가 깨어난 참이었다.
“슬슬 출발하려나 보네.”
주변이 잔뜩 시끄러워진 걸 보면 본격적인 쓰레기 수거가 시작된 모양.
곧 마차 행렬은 출발할 거고 사브와라의 사막지대로 나아가겠지.
‘좀 더 자야겠다.’
한동안은 숨어 이동해야 하니 제대로 훈련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며칠 빡세게 무리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나는 기지개를 크게 켠 후 다시 건초 속에 몸을 파묻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마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중이었다.
나는 손을 더듬어 코리가 준비해 둔 나무상자 안의 물통을 꺼내 들었다.
갈증을 해소하고 짐마차 포장 천을 살짝 들어 보니 좌우로 펼쳐진 커다란 활엽수 사이의 대로를 지나는 중이었다.
왼쪽으로는 산맥이, 오른쪽으로는 지평선 멀찍이 소도시들이 보인다.
티렐 성도의 남쪽에 있는 남부 산맥을 지나 사브와라 국경선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다 좋은데 하도 덜컹거려서 골이 울리는 느낌이다.
이 짓을 장장 왕복 열흘이나 해야 한다니.
일정은 열흘이었지만 대부분 이동하는 시간일 뿐, 정작 할 일은 간단했다.
사브와라에 도착해서 수도 ‘기 루브란’의 지하수로에 갇혀 있는 신수 하니앤을 구출한 뒤 상단 연합에 인계하고 되돌아온다.
신수 하니앤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12월 보름, 그러니까 사브와라에 도착할 때를 기점으로 사나흘 뒤다.
잡힌 위치도 알고 있겠다, 잡히는 시기도 알겠다, 심지어 소설 기준으로는 메인 에피소드도 아니니, 큰 문제 없이 클리어 가능한 서브스토리일 거다.
내가 사관학교를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사관학교 밖에서는 코리뿐.
녀석이 딴마음을 품거나 입을 함부로 놀리지만 않는다면, 다른 사건에 연루되거나 쓸데없는 등장인물들과 엮일 일도 없을 테지.
나는 생각난 김에 상인 놈 입단속도 할 겸, 몇 가지 물어볼 겸, 코리가 있는 조수석 천막을 톡톡 두드렸다.
잠깐 와 보라는 신호다.
“잠시 짐칸에서 쉬다 올게요.”
코리는 내 신호를 기민하게 눈치채고는 달리는 마차에서 능숙하게 매달려 짐칸으로 넘어왔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어디 불편한 거 있어?”
“아니. 딱히 편한 건 아니어도 이 정도면 나름 쾌적하네. 어디쯤 왔냐?”
“출발한 지 6시간 지났으니까… 이제 남부 산맥 초입이야.”
“갈 길이 멀구만….”
“심심하지? 그러게, 한 명 더 데려왔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서 두 명이 어떻게 며칠 밤낮을 보내냐 이 자식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미마와 리지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거의 마트 장난감 전시대에 온 어린아이처럼 애원했으나,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일단 공간의 협소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장기간 학사를 무단으로 이탈해야 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코리가 준비한 공간은 성인 한 명이 딱 몸을 뉠 수 있을 만한 공간이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둘이 씻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을 같이 지낸다? 남남이 들어와서 부부가 되어 나가거나, 부부가 들어와서 원수가 되어 나갈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인 것이다.
학사 무단 이탈도 문제다. 나야 최대한 많은 강의를 이수한 채였고 그럼에도 이번 학기 성적은 포기한다고 각오한 일정이었으나, 두 모범생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할 순 없었다.
학기 우등생 보상도 문제다. 설령 내가 받지 못하면 적어도 우리 동료 중에서 받아야 했으니까.
“다른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구.”
“그냥 일정 물어보려고 불렀다. 아,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내 얘기 어디 가서 하지 마라. 뒤통수치면 알지?”
내가 짐짓 으르렁거리듯 코리에게 엄포하자 녀석은 서운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하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속 시커먼 상인 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는 상처받은 듯 과장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뭐야,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봐?
“미리 말하는데. 나 여자 좋아한다. 취향은 연상이고.”
“……?”
미안한 말이지만, 시커먼 사내놈이 열렬한 눈빛으로 쳐다봐 봤자 생리적으로 주먹이 먼저 나갈 뿐이다.
“진짜 너는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나도 여자가 좋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냥 예전처럼 친구로만 받아 줘. 나는 너한테 필요한 일이라면 사람도 죽일 각오가 된, 쓸모 있는 사람이니까.”
“그건 네 경쟁자 죽인 거잖아. 이 자식아. 어딜 덮어씌우려 하고 있어. 사이코패스 상인 놈이….”
나는 사뿐히 코리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쓸모 있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다시 말하는데, 나한테 영향을 줄 만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공유하고 움직여. 사고 치면 그 뭐냐, 후시드인지 후시딘인가 하는 애 옆으로 보내 줄라니까.”
“에시드잖아….”
“그래, 그놈.”
“알겠어. 명심할게. 원래 신뢰라는 건 잃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잘해라.”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고, 코리는 터덜터덜 조수석으로 되돌아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점점 환경이 변해 가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고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사막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막이라….’
흔히 콘텐츠에서 사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래바람, 모래언덕, 지렁이 모습을 한 웜 몬스터, 상인들. 상인들을 약탈하는 도적들 등등이다.
사브와라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사막 도시지만, 근본이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막에 상단이 발달하는 이유는 사막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서다.
전문적인 상단이 아니고서는 일반인의 왕래가 불가능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화 차이가 ‘교역’이 성립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
하지만 주변은 사막이요, 밑으로는 바다뿐인 대륙 남부의 사막지대에 상단이 발달한 건, 바로 ‘사멸의 땅’이라는 지역 때문이었다.
마신전쟁이 끝난 뒤 마수들은 점점 숨어 들어갔다. 그로 인해 많은 용병과 모험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생물체가 살지 못하는 ‘사멸의 땅’에 카오스게이트가 주기적으로 생겨났고, 덕분에 그곳은 마수와 마물이 범람하는 지역이 됐다.
유일하게 하늘석을 주기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지역이란 뜻이다.
고효율 에너지원인 하늘석을 얻기 위한 용병단, 그중에서도 특히 떠돌이 수인들의 활동.
그런 용병들에게 필요한 물자 보급.
용병들이 얻어온 전리품과 하늘석으로 다시 대도시에 판매하는 상행.
상행을 노리는 도적들.
도적들로부터 상행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호위무사들.
이러한 조건들이 모여 거대한 상단 도시가 발달한 것이었다.
이왕 용병과 상인들의 도시에 가는 김에 하늘석도 좀 수급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네.’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필기시험 주간이다.
최대한 별 탈 없이, 문제없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일 없이 빠르게 신수만 구출하고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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