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66)
19. 그게 아니라요, 아버님
“그건 코리의 뜻이야?”
생각을 정리하다가 던진 물음에 로하스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해 주시거나 직접 여쭈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작금의 상황을 미루어 추측하건대 그러합니다. 감히 수하로서 주인의 뜻을 가늠해 보자면… 굉장히 고민에 빠져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상단 연합 내에서 자리를 잡기에 너무도 중요한 시기니까요.”
“그렇긴 하겠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비단 연애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상인 연합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아무리 최근 맹활약으로 기반을 잡았다고 한들, 사브와라를 떠나 사관학교로 와 버리면 그 지지기반은 모래성이 될 터.
코리 녀석의 처지에서도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싶을 거다.
사관학교 생활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비운 순간 재괴들은 다시금 코리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누런 이빨을 들이밀 테니까.
코리가 상단 연합의 핵심이 되는 건 다행인 일이지만, 내 기준에서 생각하면 어쨌든 코리가 사관학교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편했다.
필요한 물건이야 수족들에게 직접 받는다고 쳐도… 사관학교 내외부 정보 수집 역할은 코리 외에 대체자가 없으니까.
‘녀석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사브와라에 남는다는 선택에도 기회비용은 있다.
녀석이 사관학교에서 벗어나면 그동안 양념 쳐 놓은 사관학교 내 아피흐 상단의 영향력은 천천히 사라질 거다.
내부자들에게 보인 정성은 일시적이니까.
정성이란 지속적으로 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각 상단은 또다시 훈련소에 내부자를 집어넣으려 할 거고, 그러면 패권 싸움이 재개된다. 아피흐 상단에는 제법 아쉬운 타격이다.
‘뭘 택해도 아쉬움이 남는 선택지네.’
사실 정보 수집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 농장 운용이라는 면만 볼 때, 코리는 거의 쓸모를 다했다.
상단이 구해 줘야 하는 영약 재료들은 거의 다 수급했고, 사브와라 에피소드도 무탈하게 끝났다.
앞으로는 사브와라의 거상이 되어 주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도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손익을 재는 건 상인 놈이 할 몫이니까.
“뭔가 소식이 있다면 빠르게 전달 부탁해.”
“네. 그러잖아도 제가 앞으로 그림로어로 향하는 상단은 전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리는 사관학교로 복귀했다.
나는 얼굴이 반쪽이 된 상인 놈의 ‘역시 사관학교가 편해….’라는 말에,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고생했다는 말만 해 주었다.
***
폭풍 같았던 필기고사 주간이 지나갔다.
어느 때보다도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차라리 마신군과 싸우던 때가 그리워질 만큼.
밤새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려 새벽녘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날 본 생도들 사이에서 ‘프리마관 유령설’이 흉흉한 소문으로 돌았고.
개인 교습을 핑계로 내게 여러 인체실험을 자행하려던 리지를 상대로도 무사히 버텨냈으며.
인성교육이라는 이유로 교수동에 끌려가 다이크에게 몰매를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온 세상이 날 억까했으나, 난 견뎌냈다.
이게 군필 빙의자의 위험이다…!
강의들이 하나둘 시험이 끝나고, 사관학교는 본격적인 방학 느낌이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성적이 공개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사관학교는 특별반 장학생으로 시작하여 장학생으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그마치 2주 가까이 자리를 비웠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수석의 건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 성적, 실력 만능주의의 세상에서 일 년에 단 두 번 공개되는 성적 발표는 학사 전체의 뜨거운 감자였다.
게다가 2학기 성적은 사실상 1학년 전체 성적이나 다름없다.
내가 1학기 수석을 먹었어도, 2학기 때 수석을 빼앗긴다면,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1학년 수석은 그 녀석이 되는 것이다.
입학성적, 1학기 성적보다도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게 2학기 성적이니까.
상식적으로 세 성적을 골고루 취합해서 전체 성적을 평균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혓바닥이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성적표 때문이다.
나는 처참한 표정으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러셀 애시그린 (프레스티지 카뎃 클래스) 2학기 성적표]◎ 학기말평가(교류전): 200/200
◎ 학년필수
「기갑병기의 이해 (중급)」:86/100(결석 -4)
「권능의 이해」:96/100(결석 -4)
「마신군 분석 총론」:92/100(결석 -4)
◎ 전공필수
「소울 연공법 (중급)」:89/100(결석 -4)
「무기술 (창술-중급)」:100/100
「체술 (중급)」:100/100
◎ 전공선택
「살수학 (중급)」 : 100/100
◎ 교양필수
「실전전투」:50/50
◎ 교양선택
「특강:예쁘게 말하기」:50/50(PASS)
◎ 특별가점
동아리 활동 +1
교류전 시범대련 +1
◎ 특별벌점
교칙 위반(음주 적발) -1
[총점 : 954/1000(점)] [등수 : 카뎃 보드에 공지함]‘젠장…….’
결석으로만 자그마치 -16점을 해먹었다.
1학기 수석 커트라인이 960점대인걸 감안하면, 사실상 결석을 빼면 총점 자체는 1학기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뼈아프다…….’
상대평가였던 1학기 학기 말 평가보다, 절대평가인 교류전 평가가 좀 더 수월하긴 했을 거다.
그러니 아마 각 부 1, 2, 3등 커트라인은 970점쯤 되지 않을까.
나는 모든 일의 원흉인 여우를 한번 흘겨보았다.
-으갹?
그러고는 녀석의 목덜미를 들어 목도리를 만든 뒤 방문을 나섰다.
제 딴에는 신성을 회복하는 중이라는데, 내 눈에는 그저 내 소울에 기생하며 게으르게 잠만 자는 식충이에 불과하다.
별로 쓸 데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
-또 그런 상처 주는 눈빛을….
그런 주제에 눈치는 겁나게 빠르단 말이지.
이 녀석, 언제쯤 밥값을 하려나….
유일한 쓸모는 쌀쌀해진 날씨엔 딱 좋은 목도리라는 거다.
체온이 높은 편이라 감고 있으면 포근하니 좋다. 냄새도 안 나고 적당히 말랑말랑해서 목베개 삼기도 좋고.
학사 주요 공지가 올라오는 카뎃 보드 앞에는 이미 순위를 기다리는 생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년 농사의 결과물은 초미의 관심사. 아직 게시판에는 아무것도 붙지 않았는데도, 생도 대부분이 빨리 성적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러셀!”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휴고가 손을 번쩍 들고는 날 부른다.
동료들은 벚꽃축제에 돗자리 펴듯 아예 게시판이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가로막는 생도들을 좌우로 헤치며 애들이 맡은 자리로 파고들었다.
그곳엔 미마를 뺀 모두가 모여 있었다.
“미마는?”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라고, 나중에 한가할 때 확인한대.”
“그러게. 바글바글하네. 뭘 이렇게 다 모여 있냐….”
“이미 한번 겪어 봤다고 다들 참기 힘든가 보지.”
“하긴.”
나만 해도 성적표가 나오자마자 시간 맞춰서 튀어나왔으니까.
그나마 장학생들은 성적표라도 미리 나오지, 일반 생도들은 게시판에 순위표가 공개된 뒤 방학식 직전에나 되어야 상세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성적 공개 순간을 놓칠 수 없는 게 당연한 수순.
“너네, 총점 몇 점이야?”
나는 떠보듯이 동료들을 향해 물었으나, 하나같이 실없이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등수 나오면 알게 될 텐데, 기다려 보자고.”
파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치사한 놈들….
잠시 후, 조교 중 한 명이 두루마리 양피지를 들고선 교수동 방향에서 걸어 나왔다.
조교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쌍의 눈동자에 일견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으나, 선배 된 자의 품위를 선보이며 꿋꿋이 걸어 들어왔다.
이윽고 기다리던 순위표가 공개됐다.
그러자 곧바로 ‘꺅!’ 소리가 들려왔다. 아카샤였다.
나는 ‘적당히 높은 등수를 얻었나 보네.’하고 귓등으로 듣고 넘겼다.
중요한 건 저런 한낱 A클래스 생도의 성적이 아니다. 내 성적이지.
[전투부 순위표]수석-미마
차석-휴고 엘클레어
차차석-파
차트아웃 됐다.
‘…….’
예상은 했다만, 그래도 아쉬운 결과였다.
역시 결석으로 인한 -16점이 타격이 컸다.
나는 왼손을 들어 손가락 튕기기로 고로롱거리고 있는 여우 자식의 콧잔등을 때렸다.
-끼아악? 무슨…?!
그러고는 모른 척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마법부 순위표]수석-리지 로즈 뎁
차석-루트비히
차차석-빌레나 모드리안
“우아앗!”
때마침 리지의 하이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그녀가 마침내 처음으로 마법부 수석을 차지한 거다.
나는 루트비히를 힐끔 바라봤으나, 녀석은 표정 변화 없이 담담했다.
“내가 한다고 했지!?”
리지는 방긋방긋 웃으며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는 축하한다고 말한 뒤 몇 번 그녀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학교는 안 잘리겠네.”
“헤헤.”
다음은 대망의 종합 순위.
[종합 성적 순위표]수석-미마
차석-리지 로즈 뎁
차차석-루트비히
수석은 미마, 차석이 리지.
시험이 모두 끝난 뒤, 리지는 농담 삼아 ‘거의 만점인 것 같다.’라고 했으니, 미마도 만점이거나 한두 개 차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계처럼 공부하는 녀석과 기계 그 자체인 녀석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싸움이다….
나는 다음 시험부터는 미마의 시스템 중 [메모리얼 장치]를 제거해 달라고 건의하는 건 어떨까 고민하며 시선을 내렸다.
[순위표]4. 휴고 엘클레어
5. 파
6. 빌레나 모드리안
7. 러셀 애시그린
8. 이스칸다
9. 로벨리아
10. 주디
내 종합 성적은 7위.
나름대로 잘 방어하긴 했다만, 이번 학기 부상은 물 건너갔다.
입학 이후 성적이 꾸준히 상승세인 휴고와 반대로 꾸준히 하향세인 빌레나의 등수가 인상 깊다.
빌레나의 약세는 아마도 교류전에서 야심차게 제라토와의 승부를 요청했다가 대패했던 게 큰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닐까.
내가 싸우는 걸 보고서도 도전한 녀석도 진짜 보통은 아니다.
“우오오!! 형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우리 주변에 서 있던 건페이였다.
“드디어!! 큰형님과 같은 강의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
나는 건페이의 신난 목소리에 놀라 장학생 커트라인 점수대로 시선을 내렸다.
26. 체이서
27. 건페이
28. 아이아나 몬차
29. 아카샤
30. 호메르
또 턱걸이로 살아남은 불사신 호메르나 예상보다 빠르게 특별반에 합류한 건페이보다 더 놀랄 만한 이름을 발견하곤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카샤가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뭐야? 뇌물 썼냐?”
“흑흑… 내가 그 소리 할 줄 알았어….”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무슨 노벨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아카샤였다.
그런 그녀를 주디와 로벨리아가 토닥거리는 중이었고.
“기나긴 모멸의 시간이었어요….”
“무슨 모멸까지. A클래스도 나름 괜찮잖아.”
“‘장학생도 아닌 게 진짜 말이 많네.’라는 말을 들을 땐 얼마나 서럽던지….”
“뭐? 누가 그런 심한 말을.”
내 말에 동료들의 시선이 우르르 날아와 꽂혔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탈퇴는 무슨 탈퇴, 일반 생도가 장학생 동아리에 받아 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어진 아카샤의 성대모사에 날아온 시선들이 모멸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했다고?
사실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힐량도 쥐꼬리만 한 게 무슨 장학생이냐. 꿈 깨고 빨리 머라고라나 키워.’”
“내가 진짜로 그랬다고?”
“기억도 못 한단 말이야? 이 쓰레기…. 「특강:예쁘게 말하기」를 당신이 패스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요.”
“그건 니들이 나한테 좋은 강의가 있다며 억지로 끌고 들어간 교양이잖아. 내가 저런 게 뭐가 필요하다고.”
내 말에 아카샤는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금 얼굴을 가리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어…….”
“그나저나 너 진짜 어떻게 했냐?”
“농장 일을 계속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권능 성급이 높아졌어요… 그리고 로벨리아 님이나 주디 님한테 많이 도움받았고요.”
“입학 때 B클래스에서 2학년 만에 특별반이라…. 진짜 파죽지세 같은 기세구만. 아무튼, 내 덕도 아예 없는 건 아니네?”
나는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맹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과해야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