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67)
19. 그게 아니라요, 아버님
「이번 1학년 2학기에는 제적 생도가 없습니다.」
학사 공지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은, 역사를 헤아려 보면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 시국에는 합리적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레인가르 교류전 중 발생한 인명피해로 생도 상당수가 사망하여 전체 재직 생도 인원이 줄어들었음이 첫 번째 이유요,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현 1학년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역대 최고라 평가받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그리고 전시 상황인 만큼 한 명의 전력이 아쉽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였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21기는 제적자 없는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름방학 때보다 학사 분위기가 더 들떠 보이는 데에는 그러한 뒷사정이 깔려 있었다.
학사 부지는 모처럼 북적거렸다.
전장에 나가 있는 4학년들을 뺀 2, 3학년 생도들이 복귀했기 때문이다.
장기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온 2학년들, 4학년들의 임무까지 도맡아 전 대륙의 의뢰를 처리하던 3학년들이 방학식을 맞아 돌아왔다.
더불어 전장에 나가 있던 몇몇 교수들도 사관학교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통은 당연히 코리였다.
“전황은 지지부진해. 마신군들이 일정한 선을 그어 놓고 전선이 그 선 뒤로 밀리면 엄청난 공세를 퍼붓나 봐. 반대로 아군이 전선을 물리면 공세가 약해지고. 그래서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모양이야.”
“시간을 끄는 거지.”
“어째서?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불리해지기라도 하는 거야?”
“저기는 사도와 군주들이 20년 전에 잃어버린 힘을 회복하는 중이거든.”
“아…….”
마신군의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4명의 사도. 그리고 군주급 마신군들. 그들은 20년 전 전쟁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었다.
그래서 20년 동안이나 숨죽이고 살았던 거고, 아직도 그 힘을 100% 회복하지 못했다.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시도한 세 번의 공격 중 한 번을 성공시켜 전대 대장군이자 검성을 사살했지만, 나머지 두 번이 허사로 돌아갔다.
레인가르에서, 사브와라에서.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이어질 시도들도 모두 철저하게 설계해 막아낼 작정이었다.
그래야만 마지막 전투에서 승산을 점쳐 볼 수 있다.
“그리고 제3 서부전선에서 큰 타격 입었다는 소식이야.”
“……흠.”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 소식이 들려왔다는 건, 슬슬 4막 ‘마인 준동’을 신경 쓸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제3 서부전선은 현 사관생도 4학년들이 후방 지원군으로 있는 곳이다.
마인 레몬이 마신군에게 내부 정보를 팔아넘긴 곳이기도 하고.
상대가 맵핵을 켜고 싸움을 하는 중이다 보니,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었다.
‘마인 준동’은 후배인 22기가 입학하고 대략 한 달 후.
교육 기관에 침투해 있던 마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도들의 요람을 공격하는 사건이지만…. 나는 이미 그 사건을 일으키는 마인 중 절반가량의 리스트를 알고 있었다.
이제 왠만한 마인은 1:1로 상대할 전력도 키웠겠다, 지금부터 천천히 놈들의 꼬리를 잡고 증거를 모아 한 놈씩 암살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마인 준동’이 아니라, ‘마인 사냥’으로 만들 것이다.
“그나저나 매번 이쪽으로 나오려니 귀찮아 죽겠네.”
“하하. 어쩔 수 없지.”
코리와의 접선 장소는 생활동 중 F클래스 생도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지역이다.
시설도 가장 낙후되고, 가장 외진 곳에 있어 통행이 불편한 곳.
굳이 이런 외진 곳에서 만나는 이유는 코리가 동료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나와도 굳이 용건이 없으면 따로 만나려 하지 않았다.
성도로 호송되었던 사관생도 살해 용의자 프란츠 델 메슈의 재판이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녀석은 커리큘럼에서 낙오되어 학사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 소식을 접한 루트비히가 코리를 향한 미미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굳이 일행 내에 분란의 씨앗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코리는 자신을 격리했고, 나 또한 동의했다.
“어차피 내가 지저분한 일을 도맡게 될 건데, 큰일을 할 친구들에게 먼지를 옮길 필요는 없잖아.”
“허세는. 제 손으론 개미 새끼 하나 못 죽이는 게.”
“……그 정도는 아니야.”
“뭐, 그래서 말인데. 네가 해 줄 일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 둘이서 할 일이지만.”
“응. 뭔데?”
“이 명단의 사람들이 마인이라는 증거를 찾아내. 그리고 신상정보와 약점 등등 정보를 모아 줘.”
나는 미리 정리해 둔 명단을 코리에게 건넸다. 주의사항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심해라. 꼬리 밟히면 넌 변사체가 된다. 알겠지?”
“…….”
한눈에 보기에도 빼곡하게 이름이 적힌 리스트였다.
코리는 어째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다음엔 어쩌게?”
“죽일 거야. 한 명씩.”
“…네가 직접?”
“어중이떠중이를 보내서 처리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잖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현직 교수, 사관학교 경비대, 고학년 생도들, 훈련 조교까지 그 면면이 다양했다.
하지만 코리를 경악하게 한 건, 가장 위에 쓰여 있는 이름.
‘레몬 애시그린’이었다.
그 이름을 확인한 코리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이번엔 내가 직접 집도한다. 판은 네가 짜라. 지난번처럼.”
* * *
“어머, 러셀 생도. 오랜만이에요.”
나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을 향해 펄쩍 뛰듯이 착지했다.
“알렉사 누님, 아니 교수님!”
“아하하. 여전하네요.”
“불초 제자, 교수님에 대학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나날이었습니다. 심신 평강하셨습니까.”
“……왜 이러는 거죠, 무섭게.”
“혹시 완전히 복귀하신 거라면 나중에 소울 번 사용법에 대해 지도편달을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소울로 자진모리장단까지 칠 줄 아는데 소울 번은 절대 안 써지더라고요….”
“미안하지만 저는 훈련소 차출 건으로 잠깐 들른 것뿐이에요. 새 학기와 신입 생도들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으으….”
“그래도 짧게나마 조언을 드리자면, 세 개의 소울 개화를 모두 사용하는 사람은 워낙 소울 에너지에 대한 감응도가 좋기 때문에 소울 번의 사용이 어려울 리 없어요. 만약 소울 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외부적인 요인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가령 수면 부족이나, 컨디션 악화, 또는 정신병이라든가….”
“…교수님?”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예요. 후후. 파이팅해요? 참, 에뜨랑제 생도가 찾고 있던데, 프리마관으로 가 볼래요?”
“에뜨랑제 선배가요?”
나는 알렉사로부터 소울 번에 대한 힌트를 곱씹으며 발걸음을 돌려 곧장 프리마관으로 향했다.
어쩌면 내 경지가 막혀 있는 것도 저주의 영향이 아닐까?
도착한 기숙사 입구에는 익숙한 2학년 선배들의 얼굴,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에뜨랑제가 있었다.
“이야, 오랜만이네.”
에뜨랑제는 날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특유의 푸른 단발머리가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후배님.”
표정 관리를 하고는 있었으나, 얼굴에 만연한 반가움을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나는 반가움이라는 색다른 기분에 마주 웃어 주었다.
“그건 새로운 취미인가 봐요.”
그녀는 내 목도리를 보고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됐어.’라며 간단히 대꾸했다.
에뜨랑제의 하얗던 피부가 살짝 그을려 있다.
아무래도 햇살 강한 남부에서 야외 미션을 수행하다 보니 조금 탄 모양이다.
게다가 그녀의 손에는 못 보던 아머드 건틀릿까지 장착돼 있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에뜨랑제 본인이 풍기는 기세였다.
이제 3학년에 올라가는 생도일 뿐인데도, 영웅들이나 풍길 법한 묵직한 기운이 느껴진다.
못 본 몇 개월 만에 꽤나 큰 성취를 이룬 모양이다.
슬그머니 전투력을 확인해 보니 근 700대.
각종 영약과 권능으로 떡칠해 놓은 나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이니, 그녀를 위해 남겨 둔 영약까지 섭취한다면 나와 겨뤄 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깨달음을 얻었네.’
에뜨랑제의 [중급 왕궁 비전 검술]이 대성까지 성장해 있었다.
이 정도의 급성장은, 영약이나 깨달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삼 주연들의 성장 버프가 시샘 나는 순간이다.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는데, 원작자 버프로도 약간 앞서 나가는 게 전부인 수준의 성장력이라니….
‘전력이 높아지면 좋은 일이지, 뭐.’
그냥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케어 없이도 알아서 잘 성장해 주면 나야 편하고 좋지.
잠깐 걷자며 산책로로 향한 에뜨랑제를 따라 걸으며 [간파의 눈]으로 그녀의 알맹이를 속속들이 훑어봤다.
결론적으로, 그저 감탄했다.
“이 정도면 압도적인 격차로 수석 먹었겠는데.”
“그게 느껴집니까? 역시 후배님은 대단하네요.”
“부정하지 않네.”
“확실히 저희 기수에서는 상대가 없다고 느낍니다. 물론 아직 성취가 목마르긴 하지만요. 그래서 말인데요.”
에뜨랑제가 걸음을 멈추고서 고민이라는 듯 말했다.
“차라리 유급 신청을 할까 싶습니다.”
“그것참 재미있는 농담이네.”
“네?”
나는 피식 웃으며 받아쳤지만, 에뜨랑제는 되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심이라고?”
“네. 1년 동안 휴학계를 내고 동아리에서 폐관 수련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왜?”
“21기와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좋은 경쟁자가 좋은 성취를 끌어냅니다. 이대로 3학년이 되면 실전 임무 투입으로 대부분 학사 밖에서 생활하게 될 텐데… 친한 이들과 함께할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경쟁자가 없어 도태될까 걱정됩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고….”
“진심입니다. 후배님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진했으나, 지금 후배님을 보니 이걸로도 부족한 것 같네요.”
“좋은 마음가짐이지만, 안 돼.”
“어째서죠?”
“지금도 수석 경쟁 빡세. 미마에 리지에 루트비히에 휴고에. 괴물 같은 놈들이 내 수석 자리를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침을 뚝뚝 흘리는 중인데, 거기에 선배까지 가세한다고? 경쟁자가 늘어날 거라면 미리 제거하는 수밖에.”
“……후배님답네요.”
“그리고 수련 강도가 걱정이면 더 빡세고 험한 곳으로 다니면 되잖아. 지금처럼 우리가 달려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긴장하면서 말이야.”
“맞는 말이에요. 2학년 2학기 일정은 확실히 견문을 넓히는 데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고된 환경을 찾아 나서는 것도 뒤처진 간격을 좁히는 방법일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너무 위험하게 돌아다니진 말고. 등을 맡길 동기 선배들이랑 잘 붙어 다녀.”
“하지만 미션에 나가 연애나 하는 동기들이 있는 환경에선 성장에 도움이 안 돼요.”
“이 한심한 선배 놈들이.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내 거침없는 폭언에 에뜨랑제가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어?
연애질이 가당키나 하냐. ‘나이트런’ 한번 당해 볼 테야?
우리의 휴고나 파는 아예 짝꿍이 정해져 있는데도 훌륭한 연애 고자답게 별다른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한결같이 더 무거운 무게로 쇠질만 반복할 뿐이지.
“3학년이 되면 거의 만나지 못할 것 같네요. 아쉽겠어요.”
확실히 에뜨랑제는 어른스럽다는 게 느껴졌다.
아쉬움이 커 보이는데도 표정을 잘 갈무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미련을 버리는 걸 보면.
“그래도 역시 유급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후배님 주변에는 사건 사고도 많이 터지고, 마신군과 싸울 기회도 많을 테고요.”
어른스럽다는 건 취소다. 그냥 그녀는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정신 차리시죠, 선배님.”
“레인가르에서의 활약상은 정말 인상 깊게 들었어요. 더러운 마신군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기회였는데 아쉽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선배가 있었다면 더 수월하긴 했겠지.”
“유급이 안 된다고 하니, 저는 제 나름대로 적을 찾아다녀야겠네요.”
“애초에 왜 나한테 허락을 받으려 하는 건데.”
“그야, 미래의 제 주군이니까?”
“…….”
저놈의 주군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오그라들고 창피하다.
어쩌겠냐. 내 잘못된 캐빨 조형의 소치인 것을….
“오랜만에 검을 한번 섞어 줄 수 있나요?”
산책로가 끝났는데도 계속 걸어간다 싶더니, 자연스럽게 야외 대련장으로 날 데려온 에뜨랑제였다.
요것 봐라?
그거 조금 성장했다고, 성취를 보이고 싶다 이거지?
“좋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