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7)
3. 비루한 필력 속 고고한 꽃송이
전투훈련소 입소 4일 차.
나는 쩍 벌어지게 하품을 한 뒤 점심으로 배급된 육포를 담배 피우듯 꼬나물고 그늘 밑에 드러누웠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빡세게 훈련한 부작용이다.
“너는 부지런한 건지 게으른 건지 모르겠어. 러셀.”
“오후 훈련 시작하면 깨워.”
나는 짤막하게 대답한 뒤 여봐란듯이 코를 드르렁거렸다.
시스템상 직관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이 몸뚱어리의 ‘게으른’ 특성은 제법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흔한 웹소설에 등장하는 노력형, 성장형 주인공들처럼 잠도 안 자고 똥 쌀 시간까지 피 터지게 노력하는 건 몸이 거부한단 뜻이었다.
‘이거 이러면 나가린데.’
현재 직면한 목표는 두 가지.
하나는 전투훈련소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특전’을 가진 채로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
둘째는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해 훈련소 이수 타이밍에 맞춰 발생하는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 잠깐이지만 피폐 드리프트를 타는 ‘그 사건’을 대비하는 것.
쟁점은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강해지는가이다.
그러니 잠잘 시간도 아껴 수탉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몸을 굴려 댔으나…
‘그럼 뭐하냐. 굴린 만큼 쉬어 주지 않으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데.’
틈만 나면 쏟아지는 피로와 수마에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이름하여 ‘쪽잠 자는 바른생활 사나이.’
나는 학창 시절 맨 뒷자리에 앉아 맨날천날 엎드려 잠만 자는 학생에 빙의하듯, 틈만 나면 아무 데나 머리를 대고 드러누웠다.
훈련은 누구보다 일찍 시작해서 누구보다 일찍 끝냈는데, 훈련이 끝나자마자 씻고 처먹고 자는 일상.
우리의 하렘 라이프 주인공 놈이 각종 소소한 이벤트를 겪으며 히로인들과 친밀도를 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참으로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쪽은 아카데미 하렘 라이프인데, 한쪽은 눈물의 똥꼬쇼 생존물이라니.
인생….
“러셀, 일어나. 오후 훈련 시간이야.”
“뭐야, 벌써?”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매일 피곤한 이유는 이거다.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분명 한 시간은 잔 것 같은데, 실질적인 느낌은 그냥 눈만 감았다가 뜬 것만 같다.
‘뭐 이딴 페널티가 다 있지.’
솔직히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웹소설이나 웹툰이 있었다면 그건 망했을 거다. 잠꾸러기 캐릭터는 원래 주인공 주변에 등장하는 조연1이나 동료1 정도가 적당하니까.
그 있잖은가.
이불 들고 돌아다니고 남들 싸울 때 누워서 자다가 눈 감은 채 갑자기 칼 들고 활약하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그게 나라고 제길.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훈련장에 모였다.
훈련소 커리큘럼은 단체 훈련과 조별 훈련이 적절하게 뒤섞여 있었다.
일과는 총 8시간.
오전 4시간은 단체로 모여 제식과 진형, 단체 박투술 훈련을 진행하고 오후 4시간은 조별로 모여 개인 무기술 훈련과 조별 진형 훈련을 진행한다.
그리고 6시부터는 자유시간.
정확히는 자율 훈련 시간이지만, 사실상 훈련장에 남아 훈련하는 놈들은 거의 없다.
‘뭐, 당연한 일이지.’
여기 모인 대부분 훈련병은 그냥 강제 징병된 군바리들이고, 영웅 후보생들은 훈련소를 그냥 몸풀기 어린애 장난 정도로 생각하니까.
성약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의 주인공만 제외하고 말이다.
조연들은 각 지역, 가문에서 보낸 내로라하는 인재들로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태.
녀석들의 옹벽이 깨지는 건, 첫 번째 에피소드, ‘시험의 섬 습격 참사’가 터지고 난 다음이다.
그 에피소드에서 놈들은 처음으로 동료를 잃은 상실을 느끼고 자신들의 약함을 각인한다.
몇몇 주연들은 각성하기도 하지.
어쨌든 지금은 팬픽으로 따지면 도입부 2~3화 정도.
아이스 브레이킹? 한마디로 대가리 꽃밭 영웅 꼬꼬마들의 친목 도모 파트다 이거다.
물론 3주 차 때도 마지막 날은 여지없이 평가의 때가 찾아온다.
“3동 9생. 진형 점검하겠습니다. 훈련병들 위치로.”
“위치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창을 휘두르던 찰나, 조교 한 명이 우리 조를 봐주기 위해 다가왔다.
조원 4명과 조교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을 벌여 그간의 훈련 성과를 평가하는 시간.
탈락자가 발생하는 평가는 아니지만, 종종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는 최종 성적에 모두 반영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전투 능력치 : 518
나는 힐긋 조교의 상태창을 엿보았다.
전투력 500대.
미세한 차이는 있었지만, 훈련소 조교들의 평균적인 능력치다.
‘평범하게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얻는 수준인가.’
신체 능력이나 기갑 파츠를 다루는 능력 등에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사실 경력에 비해 대단히 눈에 띄는 실력은 아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조교 노릇이나 하고 있겠지만.
“대마전 훈련 조교 구영입니다. 실전 대련 준비되었습니까?”
“예!”
우리는 며칠간 연습한 진형대로 섰다.
어셔스가 거대한 방패를 들고 전위.
내가 중위.
그리고 눈알이 정수리에 달린 코리가 후위.
어린놈의 의자왕 녀석은 아예 멀찍이 떨어져서 보주를 던졌다 잡았다 하고 있다.
“특이한 진형이군요. 설명을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저 어린놈의 새끼가 말을 안 들어 처먹어요.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솟아올랐으나, 간신히 참아냈다.
훈련병들은 모르겠지만, 팀워크는 이 시험의 중요 평가 요소였다.
“히트맨 전술입니다.”
“오호. 설명을 부탁합니다. 훈련병.”
“저희의 전술을 이겨야 하는 대상에게 누설할 수는 없죠. 직접 한 번 보시는 게 빠를걸요.”
나는 적당히 그럴싸한 말로 둘러댔다.
“이겨야, 라고요.”
그러자 조교의 눈에서 이채가 서린다.
“그 말은 이번 대련에서 나를 잡겠단 말로 들립니다.”
“특별 가점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패기는 좋으나 다소 모욕적인 기분인데.”
그러고는 하하 웃는 조교.
그럴 만도 하지.
대련을 빙자한 테스트에서 조교를 잡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 그런 조교가 나온다면 조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회자될 정도로 치욕스러울 거고.
하지만 뭐, 그런 치욕 정도는 안타깝게도 이번 기수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마지막 주까지 세면 대충 스무 건쯤?
주인공 세대 놈들이 워낙 괴물들이라 말이지.
‘이놈들로는 턱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나는 고기 방패와 개눈깔을 한 번씩 바라본 뒤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폐급들, 진짜 어떡하지.
“특별 가점에 대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건방 떨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조교는 항상 훈련병에게 존대해야 한다는 규칙도 집어던진 채 우리를 향한 전의를 불태우는 구영.
“야, 도대체 왜 그래?”
코리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말렸으나, 이미 늦었다.
엎어진 우유고, 떠난 버스고, 깨진 유리창이며, 이미 잡힌 큐다.
‘상대 정글보다 탑 갱 늦으면 던짐’을 시전하는 탑신병자를 만나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단 소리다.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어.’
몸뚱이의 쓸데없는 페널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밀도 있는 훈련이 필요했으니까.
“다들 이 꽉 깨물어.”
“어쩌려고?”
소곤대듯 물어오는 말에 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어셔스. 너는 방패만 제대로 들고 있어. 정중앙에 딱 받쳐 놓고. 힘에서 밀릴 것 같으면 바닥에 박아서라도 버텨. 상대 움직임 볼 필요도 없어. 괜히 상대 눈이나 무기 바라보다가 움찔거리지 말고 그냥 버티기만 해.”
“…….”
어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리, 너는 쏘지 말고 계속 조준만 따라가. 언제든지 방아쇠 당길 것처럼. 절대 쏘지 마라. 끝까지 쫓아가기만 하는 거야.”
“그, 그래.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어차피 쏴도 못 맞추잖아, 자식아. 신경 거슬리게만 하라고.”
“……너는 진짜 너무해.”
“딱 한 방. 너는 아마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올 거야. 그때도 못 맞추면 그냥 나가 죽자.”
전략 같지도 않은 전략을 조원들에게 설파한 뒤 나는 준비되었다는 표시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조교의 눈동자가 훑듯이 일원 하나하나를 살핀다. 뭔가 꿍쳐 놓은 작전이 있으니 이리 당당하게 굴겠지, 라는 표정이다.
상대는 셋, 그리고 하나.
가볍게 훑어봐도 홀로 뒤쪽에 떨어져 있는 작은 소년이 이 조의 핵심이다.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훈련소 관계자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인이었으니까.
판단을 끝마친 조교가 뭉쳐 있는 셋을 지나 루트비히를 향해 곧바로 돌격했다.
에이스 카드로 보이는 훈련병을 먼저 제압한 뒤 나머지는 천천히 요리하겠다는 심산.
나는 천천히 전의를 끌어 올렸다.
내 의지를 따라 [사냥의 시간] 카운트가 발동된다.
“대형 유지해. 방향만 바꾼다.”
나는 기본 대형을 유지시킨 채 바라보는 방향만 조교를 따라가도록 지시했다.
꼬마 녀석에게는 지원도, 협공도 없다.
“너희는 팀워크라는 개념을 좀 배울 필요가 있겠다.”
“아이고, 조교 선생님. 무슨 말씀을. 이것도 다 작전이라니까요, 작전.”
조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기도 들지 않은 채 곧바로 루트비히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훈련용 아머드 메일 외에 다른 기갑 파츠는 안 끼고 있고. 주 무장도 없네. 맨손 격투파인가.’
기갑 파츠가 전력의 6할 이상인 영웅이 파츠를 벗고 온 건 실전에 가까운 훈련에서 병사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그 빈틈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실력을 보여 봐, 꼬맹아.’
마지막 밤의 일족, 7세대 계승자라는 타이틀답게.
루트비히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조교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귀찮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주변이 밤색 어둠으로 일렁거렸다.
한순간 녀석의 주변에만 밤이 온 것처럼.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됐다가 밝아졌다.
[달빛 강타]번쩍!
허공에서 만들어진 어두운 그림자 기둥이 달려오던 조교를 내리찍었다.
잠시 움직임이 멈춘 조교와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루트비히가 다시 손을 휘저었다.
[별빛 강타]이번엔 연보랏빛 그림자가 반짝였다.
루트비히의 전용 권능 2연타.
조교가 서 있던 자리가 작은 크레이터처럼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마도사 클래스 훈련병이었군. 벌써 권능을 두 개나… 쿨럭, 믿는 구석은 있었어.”
2개가 아니라 5개더라고, 조교 양반.
하지만 구영은 제법 멀쩡한 모습이다.
자신의 2연타가 아무렇지 않게 막힌 모습을 보자 루트비히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생겨났다.
“쯧, 차라리 후위로서 보호를 받으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나갔으면 좋았을 것을.”
부웅-!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조교의 주먹이 허공에서 멈췄다.
“……?”
마치 침대 매트리스를 때린 것 같은 반응이다.
그제야 루트비히 주변을 둘러싼 정체불명의 아우라를 확인한 조교.
[달빛 강타] 권능에 달린 물리 피해 무효 효과였다.애초에 저 두 권능은 살상력이 높은 권능은 아니었다. 단지….
‘살상력 대신 잡다한 보조 기능이 덕지덕지 달린 권능이라고. 저것들은.’
파바바박!
지근거리에서 [별빛 강타]가 다시 한번 작열했다.
조교의 얼굴에 선연한 당혹감이 떠올랐다.
공격과 동시에 방어 효과 전개.
즉, 저놈은 탱과 딜이 모두 되는 원거리 딜러다.
‘개씹사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