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75)
20. 마인 학살자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달베르크 산맥.
그러니까 이제라와 타라노르 동부를 가르는 국경지대이자, 2막 ‘카오스 게이트 브레이킹’이 터졌던 그 험지에서는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적을 만난 생쥐처럼 산지를 가르고 도망치는 것은 6성급 마수 ‘철옹의 타라스크’. 그리고 그 뒤를 뒤쫓는 것은 나와 에뜨랑제였다.
놈은 상위 마신군이라는 타이틀이 아까울 정도로 천박하고 다급하게 도주하는 중이었다.
도주와 마신군이라는 두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외피와 사투의 흔적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것이다.
사실 생존을 위한 도주는 전장에서 이탈한 상위 마신군들에겐 의외로 흔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세계 전복과 인류 말살이라는 사명이 존재했고, 이런 외지에서 홀로 죽어 버리는 건 마신에 대한 불충이자 거악이었으니까.
6성급 마수를 사냥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
첫 번째 사냥 때는 목표물을 놓쳐 버렸다.
두 번째 사냥 때는 잡기는 했지만, 상당히 애를 먹었기에 세 번째에서는 확실하게 준비하고 대비했다.
놈은 앞선 두 마리의 마신군처럼 나와 에뜨랑제의 협공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 도주를 시도할 거라고 예상하고선.
하지만 아머드 부츠로 기동력을 끌어올린 나와 에뜨랑제로부터 도망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카샤―!”
이제 숨바꼭질을 끝낼 시간이다.
[고속 생장]퇴로에 매복해 있던 아카샤가 권능을 발현하자 억센 칡뿌리가 지면을 뚫고 솟아올라 타라스크의 발을 옭아맸다.
빌레나의 [속박]만큼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묶기에는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마수의 몸뚱어리가 기우뚱 기울고 놈의 그림자를 타고 나타난 내 창끝이 양쪽 눈 사이, 미간에 자리한 마수의 핵을 꿰뚫었다.
“여섯 개째다.”
발작하듯 포효한 마수는 신경질적으로 양팔을 휘둘렀다.
내가 빠르게 거리를 벌리자 놈의 손톱이 훑고 간 자리가 순식간에 엉망으로 부서진다.
그 틈을 타 아카샤의 [저속 회복]이 나와 에뜨랑제를 휘감았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포위된 타라스크는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6성급 마수, ‘철옹의 타라스크’.
멍청하지만 교활하고, 단단한데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부대찌개 잡탕 속성의 마수다.
코모도 도마뱀의 몸통에 지네의 머리통을 달아 놓은 마수인데, ‘부서지지 않는 육체를 지닌 미지의 괴수’라는 설명을 증명하듯 패기를 찐득하게 두른 공격에도 녀석의 피부는 뚫리지 않았다.
그저 너덜너덜해지고 끊임없이 생채기가 생겨날 뿐이다.
타라스크를 잡는 방법은 대가리에 셋, 등 뒤에 여섯, 그리고 양팔에 여덟 개씩 자리한 보석 같은 자주색 핵을 부수는 것.
부숴야 할 핵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자연히 사냥은 지지부진하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놈이 만약 공격력까지 수준급으로 갖추었다면… 토벌급으로 분류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카샤! 계속 힐 넣어라!”
“안 그래도 하고 있다고요!”
어쨌든 6성급 중에서는 공략 난이도가 상위권이라 여겨지는 마수다.
그런 만큼 철통같은 방어력을 믿고 날뛰는 눈먼 공격에 이쪽도 조금씩 피해를 보는 건 불가피한 일.
덕분에 힐러 주제에 힐량은 쥐꼬리만 한 아카샤만 사정없이 굴려지는 중이었다.
“더! 빨리!”
“으이이익!”
암석 파편이 튀고 부서진 나무와 흙먼지 사이로 치유 권능을 쑤셔 넣는 건 만만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움직임이 빠르기까지 하니, 마력은커녕 눈으로도 따라붙기가 힘들 터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싸우는 중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아아악!”
이겨내라.
그게 힐러의 숙명이다….
쾅!!
마수가 집어 던진 돌 파편이 아카샤를 향해 날아가다 [그림자 걷기]로 나타난 내 손에 붙잡혔다.
아카샤는 몸을 한껏 움츠렸다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마수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리기 시작한다.
나는 낄낄 웃어 준 뒤 마수를 몰아붙이는 에뜨랑제에게 합류했다.
벌써 세 번째 사냥.
한 달 동안 6성급 마신군과의 전투를 세 번 연달아 치르는 건 전장에서도 쉬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지만, 나는 강행했다.
주된 목적은 재료 수급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브 힐러인 아카샤를 키우는 것.
정령사는 귀하다.
어느 곳이나 힐러는 귀족 취급을 받지만, 특히나 이 세계관에서 쓸 만한 힐러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수준.
게다가 아카샤는 보기와는 다르게 집념도 있고 투쟁심도 강했다. 3막 ‘레인가르 교류전’에서 마신군과 싸운 뒤 보여 주었던 태도가 그 증거다.
그녀는 자신이 빠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코리와 어셔스와는 달리, 저를 빼고 공략을 진행했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여실히 드러냈으니까.
그런 기질은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된다.
정사에서야 본의 아니게 일찍 퇴장시키긴 했어도, 애초부터 주연급으로 기획하고 설정한 캐릭터인 만큼 원석인 것만은 확실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성격도 정상적인 것 같고.
그러니 뒤늦게라도 집중적으로 육성해 줄 필요가 있는 거다.
‘빠른 성장에는 실전만 한 게 없지.’
[분노 발산]마수 타라스크가 포효에 권능을 섞어 토해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녀석의 움직임이 기민해지며 공중에서 도약한 뒤, 양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는 [덮치기]를 펼쳐 나와 에뜨랑제를 튕겨냈다.
“조심, 조심.”
나는 열기에 취한 에뜨랑제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심호흡했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6성급 마수쯤은 혼자서도 사냥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도 고위 마수들을 상대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팔다리는 수백 번을 잘려도 붙일 수 있지만, 눈먼 공격에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관통당하면 여지없는 즉사다.
소설 정사에서 파는 3성급 마물들에게 둘러싸여 죽었었다.
이건 상대보다 전투력이 높다고 대미지가 1씩 박히거나 절대로 죽지 않는 RPG 게임 같은 게 아니다.
화려한 전투 슈트를 차려입은 영웅들도 물에 빠져 호흡하지 못하면 익사하고, 자다가 심장에 칼 맞으면 어린아이에게도 죽을 수 있는 현실이다.
대련에서야 위험천만하고 도발적인 수를 즐겨 둔다고 해도, 실전에는 최대한 안정적으로.
위험하지 않고 변수 없는 싸움을 이어 나가는 게 내 철칙이었다.
부활 같은 건 없다.
이 세계에서 죽은 자를 살려 줄 수 있는 건, 여신 진영의 시간을 지배하는 계승자 유나.
마신 진영의 네크로맨서 더스크 워커 카일론.
둘뿐이다.
물론 후자는 사람이 아니라 해골 쪼가리로 살아나게 되겠지만.
그러니 자나 깨나 비명횡사를 조심해야 한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욕심부리지 않고 마핵 하나씩만, 조심스럽고 안정적으로.
어느덧 마수의 몸에 남은 마핵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반면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작은 부상도 없이 멀쩡하다.
죽음을 감지한 타라스크의 움직임에서 점점 초조함이 드러났다.
포효는 괴성으로, 괴성은 점차 신음으로 변해 간다.
“마수가 불쌍해 보이는 건 처음이야….”
“동정하지 마라. 방심하면 언제든 너를 머리, 가슴, 배로 삼 등분해 줄 수 있는 놈이니까.”
“내가 무슨 곤충이냐고요….”
아카샤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오한이 들었는지 최대한 멀찍이 떨어졌다.
한참을 바닥을 구르며 공격을 버텨내던 마수가 이내 몸을 펼치고 마지막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마지막 패턴이었다.
“온다. 선배, 놈의 결정기 [치명적 광선]이야. 기억나지?”
“네. 후배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에뜨랑제는 단호히 대답하고는 타라스크를 향해 돌격했다.
녀석이 결정기를 숨기고 있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다.
놈과 마주하기 전 기술과 패턴을 확실히 분석하고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해 두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니까.
[치명적 광선] [흔들리지 않는 절개]타라스크가 생명을 불태워 내뿜은 광선과 에뜨랑제의 유일한 방어기가 맞붙었다.
어떤 공격이든 한 번은 반드시 막아낼 수 있는 필저(必沮)의 권능.
에뜨랑제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역공] [흔들리지 않는 절개]로 받아낸 적의 힘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데 더해 그녀의 패기까지 실어 내보내는 권능.철옹을 자랑하던 타라스크의 외피가 마침내 벗겨지기 시작하고, 견고함을 유지시켜 주던 핵이 모조리 바스러졌다.
타라스크는 선 채로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고 바짝 얼어붙었다.
“해체할까요?”
“잠깐만.”
에뜨랑제가 마수 해체용 칼날을 꺼내려는 걸 제지했다.
마핵이 잔뜩 박혀 있던 놈의 등허리가 쩍 갈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갈라진 등허리의 틈에서 원래의 모습보다 1/10은 작아진 날개 달린 드래곤이 튀어나온다.
알맹이 빠진 타라스크의 껍데기가 우리를 덮치고, 우리가 껍데기를 조각내는 사이 녀석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탈피.
이게 녀석이 생존하기 위해 택한 최후의 수단인 모양.
“진짜 가지가지 하네.”
나는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레인가르산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미마. 놈이 날아간다. 격추해.”
– 응.
짧은 응답과 함께 무전기 신호는 끊어졌다.
“미안하지만, 도망 못 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반대편 능선에서 날아온 소울탄이 레이저처럼 마수의 몸을 관통했다.
쾅!
단단한 외피와 몸을 보호하던 마핵을 모두 잃은 가녀리고 말랑말랑한 마수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땅에 떨어진 시신에는 정확히 이마 중앙에 관통상이 나 있었다.
미마는 근방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여기서 십수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마지막 덫이었다.
그런데도 단 한 방에 이 작은 표적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무전 너머의 저격수를 칭찬했다.
“나이스.”
– 그쪽으로 갈게.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덤덤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흉내도 못 낼 만한 신기네요. 이건 흡사 예술이에요.”
“대단하긴 하지.”
“관통상과 양 눈과의 거리가 정확히 똑같아요.”
“……그건 좀 변태적인데.”
한국에 있었으면 사격 금메달리스트로서 수없이 많은 메달을 목에 걸고 평생 연금으로 놀고먹었겠네….
이번 사냥에서 나는 미마를 철저히 원거리 저격수로 활용했다.
근접전도 웬만한 전위만큼 해내는 미마지만, 이런 초장거리 사격은 그녀 외에는 할 사람이 없다.
이런 식의 역할 분담은 시나리오가 진행될수록 더 명확해질 거다. 멸망을 막으려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에뜨랑제와 전위를 구성할 때 패기를 사용하는 그녀에게 주공을 맡기고, 투지를 사용할 수 있는 내가 방패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나는 전투를 복기하며 해체용 단검으로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늘석과 부서진 마핵을 챙기고 권능석을 꺼내 확인했다.
“꽝이네.”
녀석에게서 나온 권능은 [덮치기].
별 볼 일 없는 E급 권능이다.
“이건 카로한테 팔아야겠다.”
“왜요? 뭔데요?”
“[덮치기]. 거인족들이나 쓸 만한 권능이야.”
아카샤의 물음에 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왕이면 [치명적 광선]이나 [분노 발산]이 나오길 바랐는데.
어째 이번 겨울방학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는데도 묘하게 수확이 별로다.
“그나저나 놀랍네요. 카라스크는 산드라 문명 때 발생한 마수라고 배웠는데… 리타니아 대륙에 등장하다니.”
“혼돈의 시기, 말세라는 거지. 전쟁이 났으니 마신 진영도 여기저기 흩어졌던 마신군들을 다 끌어모으는 거 아니겠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미마가 있던 봉우리 쪽 능선을 바라봤다.
멀리서부터 멋들어지게 고글을 낀 다람쥐가 네 발로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달려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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