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78)
20. 마인 학살자
“오늘부터는 다들 꿈자리 조심해.”
건페이를 돌려보낸 뒤, 나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 나가며 동시에 머릿속을 정리했다.
“밤중에 마인이 침대로 기어들어 올지도 모르니 절대로 깊게 잠들지 말고. 혹여라도 습격이 시작되면, 어디에 있던지 전속력으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프리마관 앞에서 집결하자.”
나는 그렇게 설명한 뒤 방학 기간 후반에 코리와 함께 마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기도 해. 왜 그렇게 보냐.”
나는 빤한 시선을 보내는 아카샤에게 물었다.
“그냥요. 뭔가 좀 새삼스럽달까….”
“실없긴. 아무튼 휴고가 묘사해 준 걸로 적의 규모 파악은 가능할 것 같다. 핵심은 시간. 시간이야.”
3막 ‘레인가르 교류전’ 때와는 정반대 의미의 시간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자연히 티렐 왕성으로 소식이 날아들 거다.
서펜섬 때와는 달리, 수준 높은 마도사들이 가득한 사관학교에서 [훼방 장막]은 통하지 않으니까.
즉 일정 시간을 버티면 왕실에서 보낸 지원군이 도착할 거라는 뜻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아군을 살리는 것. 이건 일종의 디펜스 게임과 같은 에피소드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사관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메인 에피소드의 흐름은 대부분 결을 같이한다.
이제라의 주 전력이 모여 있는 티렐 왕도와 일반인 기준 며칠, 기동력 좋은 영웅이라면 단 한나절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는 지리적 입지 때문이다.
“왕성에서 지원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
하지만 괴물 같은 적 앞에서 꼬박 하루를 버틴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레인가르 때보다 더 힘겨울지도 몰라.”
놈들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사살하는 것. 즉, 무자비한 학살을 통한 요람의 파괴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의 표적은 점점 휴고로 바뀐다.
소악마 라비가 휴고가 품은 신성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사관학교를 지키면서도, 그 와중에 벌어지는 라비의 공세로부터 휴고를 보호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군단장급 마족.
그 분류가 주는 위압감은 무거웠다.
마신군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토벌급의 마신군을 현역 영웅 하나를 필두로 토벌대를 만들어야 공략 가능한 수준이라 정의한다. 전투력으로 따지면 1,500 내외.
군단장급 마신군은 2,000, 군주급은 3,000 이상, 사도는 전투력으로 환산 불가능한 적이라 판단하고 있다.
전투력이 모든 걸 말해 주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대략적인 강함의 척도를 수치화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제라 왕국 내에서도 단독으로 군단장급 마신군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극히 드물다.
이제라의 ‘진짜 강자들이 모인 비밀 조직’ 특무대 팬텀.
원로원 조직의 수장인 찰스, 카텐카, 안젤리카.
대장군 빌트레드.
하지만 특무대 팬텀은 카오스 게이트 브레이킹 저지 임무만으로도 벅찬 상황이고, 원로원의 수장들은 대부분 현역 활동이 불가능하다. 왕실 서류 업무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어 서류에 파묻혀 죽어가는 이들이니까.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약하는 이들 중에는 그나마 성검기사단의 양대 에이스, 부단장 이세리아와 망나니 체르미아 정도만이 그에 준하는 전력이다.
다만 그 두 영웅은 홀로 토벌급 마신군까지 잡아낼 수 있는 전력이지만, 군단장급 마신군과 단독으로 마주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군단장급 마족이라는 명칭이 갖는 무게감이다.
그만한 적이 둘이나 나타나 학살을 자행하는 에피소드이니 피해가 불어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레인가르 에피소드에서 가장 강한 적은 사도 테네브리아였지만,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은 군단장급 마물, ‘파멸의 기간테스’였다.
레인가르에 계승자 유나가 없었다면, 그곳은 그대로 지도에서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프네.’
보스가 하나인 것과 둘인 것은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내 머릿속이 의식에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급한 대로 사관학교 내 전력을 퍼즐 맞추듯 끼워 맞춰 라비와 세크레트 앞에 갖다 놓는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는 전멸.
실전은 붙어 봐야 안다지만, 동료들이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불길한 상상을 지워낼 수가 없다.
구상했던 모든 대응이 어그러지고 다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레인가르 쪽에 지원 요청을 해 볼까?’
아니, 4막은 벌써 시작됐다.
레인가르 쪽 지원군보다도 마신군이 당도하는 게 빠를 거다.
게다가 이번 에피소드는 전 대륙의 사관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
그림로어 쪽에 유난히 강력한 전력이 둘이나 포함되어 있지만, 레인가르 쪽도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원은 반드시 필요해.’
최악의 상황엔 현 전력만으로 돌파구를 찾아야겠지만, 보험을 들어 둘 필요는 분명했다.
나는 직감했다.
더는 마신군의 눈에서 휴고와 그 동료들의 존재감을 지울 수 없으리란 것을.
결국 방법은 하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었던, 본격적으로 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선택이었다.
내가 손바닥으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런 침묵 너무 무서워요. 누가 뭐라고 말이라도….”
그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아카샤가 입을 열었지만, 파의 ‘쉿’ 하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는 동작에 입을 뚝 다물었다.
모두가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뒤틀림은 더 큰 뒤틀림으로 대처한다.’
깊은 고민 끝, 결정을 마친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계승자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혀야겠어.”
“뭣?”
“안 돼, 위험해.”
“계승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파와 휴고는 동시에 만류하는 말을 내뱉었다가, 아카샤의 깜짝 놀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졸지에 모두의 시선을 받아 버린 아카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뭐야, 모르고 있었어?”
“다들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내가 하니앤 데려왔을 때 아카샤가 없었나?”
“그랬지. 그땐 아직 프리마관 입실 전이었으니까.”
농담하지 말라는 듯 ‘에이.’, ‘그만 놀려요.’, ‘내가 바보예요?’, ‘안 속을 거야.’를 연발하던 아카샤는 한없이 진지한 동료들의 반응에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소파에 앉아 몸을 틀고 있던 하니앤을 만지던 그녀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그럼 이게, 아니, 이 동물님이 아니…? 이분이? 신수라는 말이에요?”
“맞아.”
제 얘기에 하니앤이 여봐란듯이 콧대를 세운다.
참으로 요망한 여우라니까.
“왜 또 나만 몰라… 왜 나만 따돌려….”
“굳이 숨기려고 한 건 아닌데. 그럼 그동안 저게 뭐라고 생각한 건데?”
“…똑똑한 애완여우?”
“계속 하니앤이라고 이름 불렀잖아. 신수 하니앤 몰라?”
“알죠! 당연히 ‘아, 애완동물에 신수의 이름을 붙이다니, 이 인간이 또 이상한 짓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개열받네….”
– 계속 쓰다듬으라고 전해 주렴. 멈출 필요 없단다.
“멈추지 말고 계속 쓰다듬으래.”
“네? 네, 네…….”
나는 갑자기 양손으로 공손하게 하니앤을 쓰다듬는 아카샤를 향해 낄낄 웃어 주었다.
덕분에 한결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다이크 교수님은 내 정체를 알고 있어. 오리건 총장도 대충 짐작했겠지.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었을 거야. 학사를 통해 습격 예고랑 보호 요청을 동시에 전달하면, 왕실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움직여 주겠지.”
물론 이건 보험일 뿐이다.
왕실에서 보내 주는 전력이 군단장 마족들을 상대하지 못할 수도 있고, 타이밍이 맞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어쨌든 보험은 반드시 들어둬야 해. 휴고의 정체를 밝히는 것보단 내 쪽이 차라리 안전하고.”
“아니, 그렇겐 못 하겠어.”
내 말에 휴고가 굳은 얼굴로 반박했다.
“넌 항상 혼자 위험을 감수해 왔어. 네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건 더 이상 못 해. 만약 밝히려는 이유가 지원 때문이라면, 내가 여신의 예지를 받는다는 사실도 함께 공표하자.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지원받을 수 있을 거야.”
“네 정체를 숨기는 건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잖아. 어차피 내 쪽은 곧 밝혀지게 돼 있어.”
아카샤가 조그맣게 ‘희생만 한다니? 대체 여러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이게 말로만 듣던 평행우주라는 걸까요…?’ 하고 떠드는 소리는 싹 무시했다.
아무래도 녀석이 이 무리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싶다.
“잠깐만, 러셀.”
나와 휴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디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지원군이 오긴 할까? 계승자 사칭범이 많다며. 그냥 헛소문이라고 무시하면 어떻게 해? 마신군에게 정체만 밝혀지고 도움은 못 받게 되잖아.”
“사관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공문을 보낼 텐데 설마 무시할까. 사실 확인을 위해서라도 지원군은 반드시 올 거야. 부디 도움이 되는 전력이길 바라야지.”
불확실성에 기대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못마땅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나는 더 반대가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안건을 마무리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
“물론 지원이 없단 가정하에 움직일 거야. 이번엔 나만 빼고 모두 모여서 움직인다. 나는 빠르게 핵심 마인들을 암살하고 합류할 테니까, 그동안 너희는 두 명의 마족을 각개격파하고 있어.”
마족이라는 단어에 로벨리아가 몸을 움찔했다.
파는 한결 조심스러운 어투로 내게 물어왔다.
“마족이라. 정보는?”
“소악마 라비, 처형자 세크레트.”
“…….”
잠깐의 침묵.
둘 모두 「마신군 분석 총론」 강의 때 등장했던 이름들이다.
“무서운 이름들을 특정하네….”
지금까지 3번의 메인 에피소드를 겪어서 그런지, 정보의 출처에 대해 묻는 녀석은 없었다.
나는 주디를 향해 말했다.
“주디, 적 전력 브리핑해 줘.”
“뭐야, 내가 무슨 분석관도 아니구. 그 정돈 다들 알고 있잖아?”
“복습 차.”
“…정말. 잠깐만. 정리 좀 하고.”
주디는 잠시 입을 오물거리다가 목을 큼큼 가다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소악마 라비. 처형자 세크레트. 둘 다 마족, 그중에서 호문클루스야. 근원지는 알 수 없지만, 첫 목격은 타나노르 왕국이었다고 하구. 마신전쟁 이후 등장한 2세대 마족이지.”
주디의 손을 따라 영롱한 빛의 마력이 두 마족의 몽타주를 그리기 시작했다.
별 신기한 기술을 다 익혀 놨네.
“먼저 세크레트. 사용하는 소울 개화는 패기. 그녀는 긴 사신 낫을 무기로 사용하는데, 리치를 알 수 없는 불규칙한 패기 공격이 특징이라고 해. 공격에 극한의 냉기를 담는 권능이 있어서, 동상에도 조심해야 해. 두 번째로 소악마 라비. 사용하는 소울 개화는 투지. 그녀는 길고 거대한 쌍극을 무기로 하는데, 루트비히만큼이나 작고 어려 보이는 마족이야.”
“잠깐만요. 왜 예시가 저죠?”
“물론, 우리 루트비히는 성장기라 곧 쑥쑥 자라겠지만!”
주디는 루트비히의 항의를 능구렁이처럼 넘기고선 설명을 이었다. 물론 남 놀리는 데 빠지지 않는 나도 한마디 덧붙였다.
“자라기야 하겠지. 한 200년쯤 지나면.”
“……계속 놀리면 저도 가만있지 않아요.”
“내가 미안해… 아무튼 라비는 단단한 투지로 전투 유지력을 가져가면서 흡혈로 상처를 회복하는 마족이야. 게다가 광범위하게 공포, 기절, 관통의 상태 이상을 거는 [데빌 드라이브]라는 권능을 조심해야 해.”
주디는 그 외에도 알려진 특징, 성향, 공격 패턴들을 줄줄이 나열하고는 뿌듯하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다가 ‘참’, 하고 손뼉을 친 뒤 마지막 설명을 덧붙였다.
“두 마족 모두 회복 불가 효과가 붙은 마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령사가 힘쓰기 어려워. 그러니 조심해야 해. 이상이야.”
“자, 훌륭한 조교에게 박수.”
설명을 끝낸 주디에게 두어 번 손뼉을 쳐 준 뒤, 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놈들은 손짓 한 번으로 웬만한 영웅 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상대야. 내가 짠 전략은 큰 그림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움직여라. 우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조건은 하나야.”
나는 강조하듯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힘주어 발음했다.
“두 마족이 한자리에 있을 때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