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83)
20. 마인 학살자
마족.
호문클루스.
자아를 지녔으나 영혼 대신 마기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들.
호문클루스는 인간으로부터 탄생한 마족이다.
인간의 시체에 마기를 불어넣어 혼이 사라진 육체를 매개로 새롭게 잉태시킨 생명.
크게는 인간의 시체 전부를 사용하기도, 작게는 일부의 유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태어난 마족 호문클루스는 매개체가 된 인간의 모습을 띤다.
자칫 같은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호문클루스와 매개체가 된 인간은 전혀 별개의 존재다.
일부 호문클루스의 경우 인간이었던 시절의 편린을 조금씩 품고 있는 경우가 있을 뿐.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악마 라비’는 그에 속하지 않은 케이스였다.
그녀는 인간 소녀였을 시절, 사도 테네브리아에게 가족이 몰살당했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복수할 거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던 소녀.
사도 테네브리아를 향해 절규와도 같은 저주를 걸어 대던 라비를 향해 테네브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뒤, 라비를 죽이고 그녀의 시신을 활용해 호문클루스를 제작했다.
‘한때 날 죽이겠다고 악을 쓰던 얼굴로 테네브리아 님~ 테네브리아 님~ 하면서 좋다고 쫓아다니면 얼마나 짜릿한 기분인지 아니?’
이유는 하나.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마족이 된 라비는 과거를 잊었다.
가장 존경하는 존재를 테네브리아라 칭하며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라비의 삶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모두 비극이다.
마족은 인간의 편린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호문클루스의 매개체는 대부분 마신전쟁의 피해자들이다.
하나 마족이 된 순간 본질을 잊고 마신의 충성스러운 사냥개가 된다.
호문클루스들은 어쩌면 이 전쟁의 가장 불행한 피해자인 셈이다.
원수의 사냥개가 되어 버린 존재들.
그것이, 이 세계에서 호문클루스라 불리는 이들의 운명이다.
* * *
“아하하핫! 죽어, 죽어, 죽어죽어죽어!!”
라비의 양날도끼가 사관학교 수비군의 투지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거대한 도끼가 크게 휘둘러질 때마다 라비의 몸은 빈틈 덩어리가 되었으나, 교수들은 미처 반격할 수 없었다.
라비의 등 뒤에 바짝 붙어 그녀의 빈틈을 보완하는 세크레트의 존재 때문이다.
패도적이고 파괴적인 공격형 스타일의 라비.
섬세하지만 신중하고 날카로운 수비형 스타일의 세크레트.
사관학교 수비군에게는 불행히도, 두 마족의 조합은 궁합이 좋았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맞추러 굴지 않아도 한 몸처럼 딱딱 맞아서 떨어졌다.
하지만 수비군도 호락호락한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공격이 아닌 수비.
무리해서 적들을 섬멸하는 대신, 방어에 특화된 영웅들이 두 마족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튀어나오는 이교도들만 쏙쏙 골라 집어삼켰다.
그 덕분에 수비군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마신군도 쉽사리 수비벽을 뚫고 진군하기 어려웠다.
그중 가장 압권인 것은 ‘최전방의 기사’ 라인하르트의 [수호의 방패] 권능이었다.
반경 10m 가까이 펼칠 수 있는 이 권능은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을 때 일시적으로 그 피해를 상쇄시켜주는 지역 버프였는데, 덕분에 수비군이 마족들의 공격으로 일격에 살해당하는 걸 막아 주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다.
바로 등 뒤에 수많은 정령사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원하는 중이었으니까.
“도리스 교수!”
“네!”
특히 레인가르에서 스카웃해 온 저명한 정령사의 활약이 혁혁했다.
지속적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을 회복시키는 [빛의 축사]와 순간적으로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고 대상에게 보호막을 씌우는 [빛의 장막].
두 개의 권능이 라인하르트의 권능과 합쳐져 철벽에 가까운 수비진을 지탱해 주었다.
도리스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는지 일리오스교 명사수들이 그녀를 노리고 원거리에서 화살을 날려 댔으나, 그녀를 호위하는 사설기사 한 명에게 막혀 무위로 돌아갔다.
전황은 빠듯했지만, 두 명의 뛰어난 영웅의 활약으로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무너져도 모래성처럼 와르르 쓸려나갈 수 있는 위태로운 수비벽.
그 사실을 알기에 라인하르트는 철벽을 치고 있으면서도, 불안함에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각.
휴고와 그의 동료들은 전투가 발생한 정문 지역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는 중이었다.
마법이 터지는 폭발음과 냉병기들이 부딪히는 마찰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마신군이 내뿜는 거대한 마기가 점점 피부에 와 닿아 휴고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건물들에 몸을 숨긴 채 전장이 눈에 들어오는 곳까지 이동하자 최전방에서 날뛰는 두 마족이 시선에 들어온다.
‘저게 군단장급 마족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릿저릿하게 떨려 왔다.
라비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세크레트가 낫을 휘두를 때마다 쏟아지는 마기를 느낄 수 있기에, 휴고는 공포에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피식자는 본능적으로 포식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들은 강하다.
아예 경지가 아득하게 멀다 느껴졌던 사도 테네브리아와 달리, 그들의 강함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이었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자그맣게 물음을 던진 것은 주디였으나, 일행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다.
교수들도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자들이다. 한낱 생도들이 떼로 달라붙은들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해내야 한다.
‘솔직히 전력상으로는 어림도 없지. 하지만 너가 있으면 돼. 너는 성약의 계승자니까.’
‘영웅들도 일격에 베어내는 괴물들이지만, 네 방패는 뚫지 못한다.’
‘명심해. 네가 막지 못하는 공격은 없어. 최소한 마신군 중에서는 말이야.’
마기와 상극인 성약의 힘.
어떤 불합리함마저 이겨내고 올라서는 기질.
그게 주인공의 자질이며 자격이다.
휴고는 자신보다 더 자신을 신뢰하는 이의 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해야 한다면 할 뿐이다.
“…키세 님?”
휴고가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옆에서 루트비히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벌리는 루트비히를 향해 파가 물었다.
“왜, 아는 사람이야?”
루트비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족 라비와 함께 라인하르트를 두드리고 있는 세크레트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점점 확장됐다.
눈앞의 호문클루스는 그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죽었으니까.
일족을 떠나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인간과 함께 싸우다, 인간을 위해 죽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저 마족은 키세 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어째서 그분이 사용하던 것과 똑 닮을 무기를 사용하고, 똑 닮은 외모를 하고 있는 거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자리를 버티고 있지만, 루트비히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불안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저 인간들이 마인이라고? 시팔, 사관학교 꼴 개같이도 돌아가네….”
짤막하게 요약된 상황 설명을 들은 호메르가 특유의 걸쭉한 욕을 내뱉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을 비난했다.
“욕 좀 하지 마라. 너는 인마, 말을 좀 예쁘게 하는 습관이 필요해. 특강 하나 추천해 줘?”
“닥쳐. 너한테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개새끼야….”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우리 부모를 개라고 모욕해?”
“내, 내가 언제!”
나는 탈룰라를 시전한 호메르의 콧대를 때려 금쪽이 호메르의 행동을 교정해 주었다.
녀석이 콧물을 훌쩍이며 맹맹한 소리로 물었다.
“근데 저 마인들은 뭐 하는 거야?”
호메르의 말에 따르면, 마인들은 사관학교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결계 밖에서 서성거리는 중이라 했다.
“새벽에 보니까 마법부 교수들이 결계를 이중삼중으로 걸고 있더만. 아마 그것 때문에 못 들어오는 것 같다.”
“그럼 끝났네. 뭐.”
“글쎄, 그러면 좋겠지만.”
이놈의 메인 에피소드란 녀석은 그렇게 상황을 호락호락 끝내 주지 않더라고.
나는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킨 뒤 호메르에게 집중하라고 덧붙였다.
“어, 어어! 뭐야, 들어오잖아! 결계에 구멍이 난 거야, 뭐야!”
호메르는 북서쪽을 가리키며 방방 호들갑을 떨었다.
분명 이중삼중으로 결계가 쳐져 있었는데, 마인들이 큰 소란 없이 그 결계를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인들이 프리마관에 있는 생도들을 어떻게 꺼낼 속셈인지 깨달았다.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 데이몬.
모든 적이 사관학교 바깥에서 침투하는 상황이지만, 단 두 명. 사관학교 내에 똬리를 튼 마인이 있었다.
그 인간이 학사 결계에도 구멍을 내고, 프리마관에 설치된 보안 장치들도 내부에서부터 파괴할 요량이었던 거다.
그라면 가능하다.
사관학교에 침투한 지 제법 오래된 마인이고, 각종 결계와 보안 마법에 능통한 마도사니까.
다이크에게 데이몬의 정체를 공유해 주긴 했다만, 데이몬이 작정하고 침투하면 별도리가 없을 거다.
프리마관의 피습은 막을 수 없다.
‘대가리가 돌머리니 답답하네.’
미래를 모른다는 게 이렇게까지 답답한 일이었나.
그동안 당연하게 정사의 흐름 속에서 움직일 땐 몰랐는데, 변수의 범람 속에서 맨땅에 헤딩하려니 생각을 깊게 할수록 발목을 잡는 기분이다.
“아, 모르겠다. 생각하는 걸 포기해야겠어. 일단 다 잡아 죽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
내 살벌한 결심에 호메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시선을 보냈다.
“미마, 호메르. 놈들을 저격해. 계속 쏴라. 놈들이 흩어질 때까지.”
“응.”
“뭐? 그러다가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라고?”
순순히 대답하는 미마와 달리 호메르는 또다시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그럼 튀어야지. 너 바보냐? 괜히 맞붙지 말고 혹시라도 이쪽으로 달려오면 곧바로 도망쳐라. 미마, 혹시 얘가 발목 잡으면 버리고 너라도 살아.”
“응.”
“옳지. 착하다.”
“개새끼들….”
나는 곧바로 시계탑에서 뛰어내렸다.
머리 위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연달아 불을 뿜는 총구를 확인하고선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 타렴.
마인들이 들어온 쪽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하니앤이 어깨에서 내려와 덩치를 키웠다.
장정 하나는 충분히 태울 만큼 몸집을 키운 뒤 등에 타라는 듯 턱짓한다.
나는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뒤 그녀에게 올라탔다.
“뭐야, 소울 많이 안 먹네?”
– 그동안 제법 힘을 비축했으니까. 오늘은 짐만 되진 않을 거란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렴.
“와 씨, 이건 좀 낭만인데.”
나는 엄습하는 긴장을 풀려고 되레 들뜬 듯 말을 내뱉었다.
– 긴장을 풀렴.
“알겠다고. 너나 무리하지 마. 네 역할은 따로 있으니까. 따로 떨어져 있는 놈이 있어?”
– 응. 둘, 둘, 그리고 하나로 흩어졌네.
호메르와 미마는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주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가자. 떨어져 있는 놈부터.”
– 꽉 잡으렴.
하니앤이 곧바로 도약했다.
그녀의 능력, 마기를 감지하는 힘은 제법 유용하다.
특히나 마인들이 지금처럼 힘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는 더더욱.
하니앤도 딱 사냥꾼의 재질이다. 그래서인지 나랑 궁합이 좀 잘 맞는 느낌이다.
– 금방이야. 오른쪽.
하니앤이 날 태운 채로 벽을 타고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올라갔다.
그러다 가볍게 도약하니, 건물들 사이로 뜀박질하는 마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 타깃.
4학년 라이언이다.
“저 새끼, 상태가 많이 안 좋네.”
나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뛰어다니는 마인을 바라보곤 입꼬리를 씩 끌어 올렸다.
《소악마 라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