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84)
20. 마인 학살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학생들의 기숙사를 관리하던 메이드들이 병장기를 들고 도열한 모습은, 생도들이 보기엔 참으로 낯선 광경이었다.
하지만 저마다 애병을 손에 그러쥐고 프릴이 하늘거리던 치맛단마저 짧게 뜯어낸 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그들 또한 예비 전력이라는 사실을 절절히 실감하고야 만다.
메이드단의 가장 큰 임무는 생도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지만, 사실 그녀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하게 여기는 사명이 있다.
생도들의 안전.
프리마관의 메이드들은 가장 가까이서 생도들을 보호하는 자들이었다.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풍겨내는 기세를 보고 있자면 어느 마신군도 쉽사리 뚫고 들어가 생도들을 해코지하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사관학교 전체 메이드들을 관리하는 수석 메이드이자, 프리마관의 메이드장을 연임하는 앤 메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책임감 넘치는 인사로 평가받는다.
다이크가 보기에도, 그녀는 참으로 유능했다.
사관학교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인재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다이크 교수님.”
속으로만 생각하는 다이크의 극찬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로, 앤 메이는 프리마관을 향해 걸어오는 인영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이 닿는 곳에서 걸어오는 인영은 마법부 연구교수 데이몬이었다.
“…….”
삽시간에 다이크의 감정이 서늘하게 식어 내려간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특별반 장학생 중 한 명인 러셀 애시그린이 건네었던 마인 명단.
이 습격 사태를 예견했던 사관생도였다.
다이크는 러셀 애시그린의 말을 신뢰했지만, 건네받은 명단마저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는 합리성에 의거하여 움직이는 인물이었으니까.
저명한 연구교수가 인류를 배신하고 더러운 마신군에 빌붙는다는 건, 그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하나 사관학교가 백척간두에 놓인 이 시국에 사전 협의도 없이 프리마관을 방문하는 상황 또한, 다이크의 기준에선 불합리 그 자체였다.
입맛이 쓰고 기분이 착잡했다.
부디 이 명단만큼은 오류가 있기를 바랐으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는 법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다이크는 뾰족해지려는 말투를 애써 가다듬고 용건을 물었다.
데이몬 연구교수는 꼿꼿한 다이크마저 존대를 할 정도로 사관학교에 오래 몸담았던 명사였다.
“프리마관의 결계를 점검하라는 지시를 받았네. 잠시 지나가도 괜찮겠나.”
데이몬은 그리 언질하고는 다이크를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다이크가 옆으로 뻗은 팔이 데이몬의 앞을 가로막는다.
원로 교수를 대하는 태도로서는 상당히 불손한 행동이었다.
“……?”
“불가합니다. 출입을 엄금하라는 총장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농담도 지나치군. 시급한 일이니 양해를 부탁하네.”
“저는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제게 농담을 운운하는 이가 많은지 모르겠다.
다이크는 일평생 유머 감각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고, 제 의지로 누군가에게 농담을 건네 본 적도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럼 진심으로 날 돌려보낼 셈인가.”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받은 명령은 사관생도를 제외한 누구도 프리마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 그리고 사관생도의 안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총장께서 직접 명령을 정정하시지 않는 한, 설령 여왕 폐하가 오셔도 이곳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일견 불충하기까지 한 다이크의 단호한 대답에도 데이몬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사관생도의 안전을 위한 일이네.”
본인은 본인의 사명을 다할 뿐이라는 나긋나긋한 대답에, 만약 러셀에게 명단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를 이대로 들여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릿속에 한번 생긴 미혹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러셀 애시그린이 주었던 명단 가장 최상단에 있던 데이몬이라는 이름.
그 이름을 가진 자가 전투 중에 굳이 홀로 떨어져 프리마관의 결계를 점검하러 왔다는 사실이 기이하지 않나.
“불가합니다. 지나가시겠다면 막겠습니다.”
무력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듯 소울까지 뿜어내며 강경하게 나오는 다이크의 행동에 데이몬이 고개를 저었다.
“공문을 들고 올 걸 그랬군.”
“죄송하지만, 그러셨어도 출입은 불가합니다.”
“딱딱한 인사 같으니. 그래도 자네 같은 자가 있어서 안심이야.”
데이몬은 털털하게 웃으며 다이크에게 칭찬을 건네곤 몸을 틀었다.
프리마관의 수비선에서 점점 멀어지는 데이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이 투명해졌다.
[인비저블] [부유]마법으로 전신을 투명하게 만든 뒤 허공으로 떠오른 데이몬은 프리마관 결계의 허점을 찾아 파고 들어갔다.
애초에 사관학교 부지의 모든 결계에 관여한 건 바로 데이몬 자신이다.
학사 내에서 누구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입지를 다진 그였지만, 다이크 로필런이라면 자신을 문전 박대할 거라 예상했다.
의도했던 바였다.
굳이 억지로 그들을 돌파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결계에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구멍을 내 두었으니까.
바깥에서 귀환하는 마인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결계에 구멍을 만든 것도 자신이고, 프리마관의 습격을 위해 보안장치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제 역할이었다.
이대로 프리마관 안에 들어가 보안장치를 모두 무력화시킨 뒤, 그에 대한 책임을 다이크 로필런 교수에게 뒤집어씌우면 적절한 결말이다.
데이몬의 몸이 프리마관 옥상 부근에 안착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보안장치를 유지시키는 프리마관 가장 깊숙한 곳, 기계실로 걸음을 옮겼다.
데이몬이 손끝을 들어 올렸다.
세밀하게 설계된 기관진학.
여기에 마기 한 방울을 집어넣어 균열을 일으키면, 십여 분 후 결계는 자동으로 꼬이고 오작동을 일으킬 거였다.
“움직이지 마라.”
불현듯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데이몬의 몸이 멈칫했다.
어느새 나타난 다이크 로필런이 그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부디 이번에는 그 녀석이 틀리길 바랐건만.”
다이크는 깍듯하던 존대까지 집어 던진 채 그를 향해 살벌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데이몬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이자는 처음부터 제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상함을 눈치챈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뚜렷하게 그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대응이다.
데이몬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기관장치를 향해 마기를 쏘아 보냈다.
아니, 쏘아 보내려 했다.
데이몬은 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접근한 다이크가 제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내리찍은 탓이었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데이몬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더러운 마신군의 끄나풀 같으니. 즉결 처형하겠다.”
데이몬이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했으나, 다이크가 뻗은 장격에 그의 몸이 속절없이 날아갔다.
데이몬의 몸이 기계실 반대편으로 날아가 바깥까지 밀려났다.
[칠흑]순식간에 뻗어 나온 어둠이 다이크의 몸을 휘감았다.
먼저 시야를 빼앗고 거리를 벌려 차근차근 다이크를 제압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다이크는 시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오로지 기감만으로 데이몬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그를 내리쳤다.
쾅!!
사라졌던 시야가 금세 돌아온다.
다이크가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패기까지 실린 권격에 복부를 얻어맞은 데이몬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커헉―”
다이크는 물소처럼 몰아붙였다.
마도사를 상대할 때는 절대 거리와 캐스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가 생도들에게 몇 번이고 주지시켰던 그 단순하고도 중요한 원칙을, 다이크는 스스로도 절대 어기지 않았다.
“잠깐―”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마도사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전위가 받쳐 주지 않는 마도사 하나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다이크는 그리 외치듯 데이몬을 반죽해 대기 시작했다.
사관생도들을 상대할 때는 적당히 조절하던 힘도 마음껏 발산했다.
임관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그를, 총장이 직접 사관학교로 불러들이고 애지중지하며 중요 보직을 맡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난장판이 된 기계실 앞 복도에 여기저기 부서진 벽면의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다이크의 발아래에 곤죽이 된 채로 널브러진 데이몬.
다이크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인류의 배반자를 내려다볼 뿐이다.
* * *
“죽어죽어죽어!!”
소악마 라비는 사정없이 라인하르트의 방패를 두드렸다. 하지만 좀처럼 뚫리지 않는다.
분명 존재 자체의 격만 따지면 자신보다도 한참 아래의 미물인데도,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하는 영웅의 방벽을 뚫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것만 없었어도…!”
라비는 분통을 터트리며 뒤쪽에서 라인하르트에게 집중적으로 보호 권능을 쏟아붓는 도리스 교수를 노려보았다.
찐득거리며 달라붙는 이 영웅을 빨리 치워 버리고 한심한 여신군들을 학살하고 싶은데, 이 사내에게서 벗어나기도, 그렇다고 뚫어내기도 어렵다.
더더욱 그녀의 신경을 긁는 건 세크레트의 행동이었다.
세크레트는 어째선지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적을 학살하는 것보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쳐내는 데 집중하려는 것처럼. 둘이 힘을 합쳐 뚫어내면 금방 뚫어낼 것 같은데도.
“야. 제대로 안 할 거야?”
“……? 뭐가 문제지?”
“아까부터 계속 방어만 하고 있잖아! 나는 빨리 쓸어버리고 싶은데!”
“네 공격은 너무 움직임이 커. 그래서 보완해 주고 있는 거잖아. 자칫해서 네가 죽기라도 하면 우리에겐 큰 타격이니까.”
“누가 죽는다고 그래?!”
라비가 라인하르트의 방패를 쳐내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이 곰 같은 남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무시하고 지나치려 해도 끈덕지게도 따라붙는다.
“질척거리는 남자는 질색이라고!”
라비가 사관학교 수비진에서 멀찍이 떨어져 착지했다.
그러고는 세크레트를 문책하듯 몰아붙였다.
“별동대에서 신호가 안 와.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겠어?”
“내가 언제.”
“계속 그렇게 어물쩍거리면 테네브리아 님께 보고할 거야. 네가 여신군 상대로 소극적으로 싸웠다고.”
“…….”
라비의 협박 어린 말에 세크레트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애초에 그녀는 여신군을 학살하기 위해 사도를 따르는 이가 아니다.
제 주군이었던 자가 준 사명을 지키기 위해, 뜻을 이루기 위해 사도 카일론을 따르는 마족.
불필요한 살인은 내키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작전의 책임자가 이렇게까지 강경하니 다른 수가 없었다.
“포지션을 바꾸자.”
“진작 그럴 것이지.”
사실 두 사람의 성향과 실질적인 능력은 상반됐다.
날카로운 패기를 다루는 세크레트는 수비적인 움직임을 좋아하고, 단단한 투지를 다루는 라비는 도리어 공격적인 움직임을 선호하니까.
하지만 그 역할이 뒤바뀌었을 때, 두 사람의 능력은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빠르게 뚫는다.”
“똑바로 하라구!”
세크레트가 사뿐하게 도약하고 라비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라인하르트가 방어 권능을 펼치며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데빌 드라이브]먼저 라비의 양날도끼가 붉은 빛을 뿜으며 라인하르트가 펼친 수비지역 전체를 타격했다.
반복적으로 겪었던 패턴. ‘공포’, ‘출혈’ 상태이상이 퍼지자마자 도리스 교수의 저항 권능이 펼쳐진다.
“소용없다!”
라인하르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반사적으로 권능에 소울을 더 담아냈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세크레트의 낫이 회전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격이 반원을 그렸다.
넓은 면적을 보호하느라 한결 얇아진 보호막 한 점을 세크레트의 낫이 찢어발겼다.
[길로틴]기다란 낫이 대각선으로 그어진다.
보호막이 베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주 가느다란 실선이 생겨나고, 라인하르트의 상체가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다.
“……!”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는 라인하르트.
그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하강하고, 뒤늦게 고통이 쏟아졌다.
“도망―”
라인하르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뒤를 받치던 교수들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정령학 수석교수 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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