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85)
20. 마인 학살자
이 세계에는 시너지라는 개념이 있다.
러셀, 그러니까 진세진이 이 세계관의 조형자이던 시절 이스터에그처럼 구상해 놓은 개념이다.
특정 조합 시너지를 가진 두 인물이 한데 모여 본연의 힘을 다했을 때 개인의 무력을 합친 것보다 더 폭발적인 위력을 보여 주는 현상.
실제로 소설 속에는 적용시키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이런저런 뒷설정을 정리해 둔 건 그저 그가 글 쓰는 것보다 설정 만드는 데 더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만들 때 혹시라도 생길 오버 파워를 막기 위해 억제 설정도 넣어 두었다.
혹여나 시너지 인물들이 한데 모여 싸우더라도 쉽사리 그 폭발성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 두는 설정적 제한.
가령, 라비와 세크레트의 경우에는 각자의 성향이다.
다만 그 성향이라는 제어 장치가 ‘신수 확보 실패’라는 이변으로 인해 풀리게 될 거라는 사실은 러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저명한 현직 영웅조차도 일격에 무너지게 만든 시너지 효과.
그 결과로 사관학교가 자랑하던 철벽이자, 믿고 있던 방패, 수비진을 지탱하던 두 개의 축 중 하나가 무너졌다.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라비의 양날도끼가 마치 날개라도 달린 양 교수들 사이를 종횡무진 헤집었고, 거대한 도끼가 만들어낸 틈 사이로 세크레트의 낫이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크레트의 패기는 흡사 사신의 사형 선고였다.
“막아!”
전투부 교수들이 후위를 향해 돌파하려는 두 마족을 둘러쌌다.
곧바로 십여 개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두 마족을 향해 내리꽂혔다.
[분쇄]세크레트의 낫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교수들의 몸이 조각나 무너져 내린다.
실로 폭력적인 패기였다.
무너진 균형 아래,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되기 직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교수 디챈.
라인하르트의 부관을 맡아 비상시 차기 지휘관으로 낙점되었던 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전선을 물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수비군은 저지력을 잃었다.
하나 이곳에 있는 건 전력(全力). 그들이 모두 몰살당하면 최종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마관이 모든 걸 짊어지게 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후퇴해! 수비선을 물린다! 놈들을 교수동으로 유인해!”
디챈이 선택한 것은 전장의 변화였다.
놈들을 교수동으로 유인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
교수동은 프리마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기관 장치와 설치형 아티팩트들이 준비되어 있다.
국지전을 펼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 수비군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2안이었다.
마신군 중 일부가 프리마관으로 향할지도 모르지만, 다이크 교수를 믿기로 한다.
본대가 전멸해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고.
“크릭 교수! 후위를 후퇴시키시오!”
디챈은 결정을 끝마치자마자 마법부 교수들을 통솔하던 크릭에게 소리쳤다.
크릭은 곧바로 앞장서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수비선을 부수고 쏜살같이 달려든 라비가 도리스 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비군의 두 축 중 하나인 도리스 교수를 노린 습격.
그녀는 눈엣가시처럼 권능을 뿌려 대던 정령사다. 이 여자를 여기서 놓치면 분명 대단히 귀찮아질 거였다.
“아가씨!”
하지만 라비의 도끼질은 벼락같이 그녀를 가로막은 한 기사에 의해 막혔다.
“아로웰!”
도리스의 전속 호위기사 아로웰이 곧바로 권능을 펼친다.
[호위] [방어태세 유지]호위기사를 먼저 쓰러트리지 않는 한, 호위 대상에게 해를 가할 수 없는 수호자의 권능.
라비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기껏 멧돼지 같은 인간을 쓰러트렸는데, 또다시 자신을 가로막을 수 있는 기사가 튀어나왔다.
시원시원하게 다 부숴 버리고 싶은데 자꾸만 앞을 턱턱 가로막히는 기분이 불쾌했다. 자신이 뚫지 못해 세크레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도.
정말이지 이 교수란 작자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가씨. 모시겠습니다. 여긴 위험합니다.”
“어딜 도망가려구!”
재빠르게 도리스를 둘러업고 튀어 나가려는 아로웰을 향해 라비가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갑자기 그녀를 기습한 한 노기사에 의해 가로막혔다.
라비는 신경질적으로 노기사의 목을 쳐냈다.
한눈을 판 건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미 아로웰과 도리스는 교수동 방향으로 멀찌감치 후퇴한 뒤였다.
“으― 짜증 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세크레트의 물음에 라비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흩어지자. 나는 교수들을 사냥할게. 너는 목표물을 확보해.”
“그래도 괜찮겠어?”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너나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제대로 해.”
“…….”
“야! 저것들 다 죽여 버려. 빨리 처리하고 쫓아와!”
라비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힌 수비군을 향해 턱짓하고는 교수동을 향해 먼저 몸을 날렸다.
곧바로 라비의 친위대가 그녀를 따라 달려 나갔다.
마법부 교수들은 비교적 빠르게 후퇴할 수 있었으나, 전투부 교수들과 경비대는 참극을 피하지 못했다.
후위를 대피시키기 위해 마족과 이교도들의 발을 붙잡으려 들었던 게 원인이었다.
전투 불능인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보복이라도 하듯 바닥에 쓰러진 교수와 경비대를 참수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저항의 여지마저 사라진 부상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휴고와 그 동료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휴고는 이성을 잃을 채, 뛰쳐나가기 위해 네 발로 바닥을 밀고 있었고 그런 휴고를 막으려 파와 에뜨랑제가 달라붙어 양팔과 양발, 입을 틀어막은 채였다.
1년을 함께했던 교수, 조교수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오며 가며 인사했던 경비대원들도 숨이 끊어져 간다.
친하진 않았어도, 자신들에게 늘 편의와 친절을 베풀던 이들이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바로 오늘 아침에도 힘차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었다.
세크레트의 낫이 처형하듯 쓰러진 경비대원들을 향해 휘둘러지려던 찰나였다.
“키세 님! 멈추세요!”
결국 사달이 터지고야 말았다.
동료들이 휴고를 틀어막으려 애쓰던 사이,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람이 사고를 쳐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평소 과묵하고 조용하던 마도사, 루트비히였다.
늘 묵묵히 제 맡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던 엘리트 마도사가 처음으로 대기하라는 러셀의 지시를 깨고 앞으로 나섰다.
부상자들을 처형하려던 세크레트의 낫이 허공에서 멈추고 걸어 나가는 루트비히를 확인한 동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리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일행을 쳐다보았다.
“어어어어어떻게 해?!”
“칫, 어쩔 수 없어. 혼자 보낼 순 없잖아. 두 마족이 흩어졌으니까 최악의 상황은 아니야. 일단 휴고를 보내고 놈이 휴고와 루트비히한테 시선 팔린 사이 기습하자. 다른 작전 있는 사람?”
파의 말에 동료들이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들이 붙잡고 있던 [광폭화] 상태의 정의 멍청이부터 풀어 줘야 했다.
이러다간 싸우기도 전부터 체력이 고갈되리라.
“후우. 할 수 있다. 우린 할 수 있어. 셋 세면 놓겠습니다. 선배님.”
“네.”
“하나, 둘, 셋.”
파와 에뜨랑제가 동시에 휴고를 놓았다.
그러자 휴고가 물소처럼 튀어 나가 세크레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리지를 중심으로 동료들이 하나로 뭉쳤다.
리지가 [인비저블] 마법을 발동한 뒤 빠른 걸음으로 마족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쾅!!
튀어 나간 휴고가 세크레트와 충돌했다.
세크레트는 당황한 상태였다.
갑자기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더니, 웬 덜 자란 소년 하나가 자신을 향해 몸통을 부딪쳐 온 것이다.
소년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곧바로 도약해 양손검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세크레트는 낫을 휘둘러 소년을 날려 보냈다.
단번에 그를 반 토막 낼 만한 힘은 아니었으나, 분명 치명상을 피하진 못했을 거다.
괴성을 지르며 날아가는 소년을 일별한 뒤, 이번엔 그보다도 더 어린 남자아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고작해야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리디어린 소년.
하지만 소년이 입에 담은 이름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당신은… 키세 님이 아니군요.”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세크레트는 낫창을 들어 뾰족한 창끝 부분을 소년에게 겨눴다.
그러나 소년은 하나도 겁먹지 않은 얼굴로 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분의 일족이니까.”
“…….”
복잡한 심경을 담은 시선이 두 사람에게서 교차했다.
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루트비히였다.
인간을 사랑했기에, 일족을 떠나 인간 세계로 떠났던 밤의 일족 키세.
그녀는 계승자로서 복구되기 전 마신전쟁에 참여했었고, 죽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분의 유해로 눈앞의 이 호문클루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세계가 복구되면, 계승자들의 존재는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이 온전히 루트비히에게 남아 있고, 그녀의 유해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밤의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밤의 일족’은 생명의 여신 디체가 아닌 달의 여신 루나리스의 축복을 받은 존재들이었으니까.
“누가 감히… 당신을 만들었습니까.”
루트비히는 분노했다.
정확히 소년의 마음에 생긴 감정을 정의하자면 슬픔, 그리움, 분노, 안타까움이었으나, 그중 가장 큰 것은 어찌 밤의 일족으로 호문클루스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책이다.
어째서 세계를 위해 삶 전체를 헌신하는 일족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일족, 일족이라….”
세크레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호문클루스의 운명은 복잡하다.
분명 그들의 매개체가 되는 인간은 존재하나, 만들어진 호문클루스와 매개체인 인간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이니까.
설령 매개체와 관련된 존재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해 줄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너는 보내 줄 테니, 이 전쟁에 끼어들지 마.”
한 줌의 자비를 베푸는 것은, 이 신체 속 깊숙한 곳 어딘가에 소년에 대한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살생을 그리 즐기지 않는 것도, 문득문득 무언가 이유 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것도 전부 이 매개체의 흔적일 따름이라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찾아갈 테니.”
세크레트가 낫을 거두었다.
이 소년과는 정리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더 가로막는다면 벨 것이다. 내 사명을 방해하지 마.”
루트비히가 그 말에 뭐라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접근한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다발적으로 세크레트를 덮쳤다.
[중급 왕실 검술 비전] [발아]가장 먼저 에뜨랑제의 검이 세크레트의 심장을 향했다. 에뜨랑제의 검은 세크레트의 창대에 막혔으나,
[정신 집중] [그림자 일족 발검술]그 뒤로 파의 발검술에 담긴 패기가 세크레트의 하반신을 노리고 파고든다.
[마력 폭탄] [블레이저]동시에 리지와 로벨리아, 두 마도사가 펼친 마법이 세크레트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 틈에 주디와 아카샤가 몸을 날려 세크레트와 붙어 있던 루트비히를 건지듯 잡아끌었다.
[바위 가르기]마지막으로 어느새 돌아온 휴고가 양손검에 거대한 소울을 담은 권능을 발동했다.
루트비히가 말릴 새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습격.
‘…분명 최소한 중상이었을 텐데.’
너무도 멀쩡한 휴고의 모습에 세크레트가 당황한 사이, 권능들이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