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88)
20. 마인 학살자
파바바방―!
경쾌한 충돌음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사방이 몸을 숨길 만한 엄폐물로 가득한 교수동인데도 찐득한 마기로 이루어진 화살은 끝도 없이 나를 노리고 날아왔다.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언제 쐈는지도 모를 화살이 다시금 눈앞에 도달해 있다.
나는 황급히 몸을 굴러 화살을 피해낸 뒤 뒤이어 날아오는 유도 화살을 투지로 막아냈다.
[그림자 걷기]를 배운 이후 투사체를 피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기관단총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피하기엔 소울 소모가 막심했을뿐더러, 이 정도로 빠른 공격은 [그림자 걷기]로 피하는 것보다 투지를 두르는 게 더 안정적이었으니까.
숨 쉴 틈도 없이 따라붙는 화살들.
이대로라면 말라 죽겠다는 생각에, [그림자 걷기]를 연속 3번 발동해 마인 헤이커의 등 뒤를 잡았다.
“그만 좀 깔짝대고 뒤져, 날파리 새끼야―!”
벼락처럼 날아든 내 창격에 헤이커는 잔상을 남기며 여유 있게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뜨면 또다시 거리는 벌어져 있고, 펼쳐진 그물처럼 나를 노리는 연사가 시작된다.
‘…밸런스가 말도 안 되게 좋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대인 건 분명했다. 4학년인 라이언, 아그너스보다도 더 까다로운 상대다.
마치 순간이동처럼 잔상을 남기고 거리를 벌리는 권능 [잔상 밟기].
얼마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지, 내 [그림자 걷기]로는 도저히 따라붙을 수 없는 지경이다.
정신 차려 보면 쏟아지는 화살비 속에서 수세에 몰린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몸 군데군데 자각하지도 못했던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은회색 피부에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는 헤이커가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고는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저 망할 다크엘프 놈이….”
모든 다크엘프가 마신의 편에 선 건 아니지만, 일부가 일족을 배신했다고 알려진 다크엘프 일족.
막상 눈앞에서 맞상대해 보니 까다롭기 그지없다.
나는 급습하듯 접근한 이교도 창술사의 목젖을 꿰뚫어 버린 뒤 다시금 그늘 안으로 숨어들었다.
전장이 부지 전체로 확대된 터라, 방심하면 이렇게 이교도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종종 교수들도 모습을 드러냈으나, 사관학교 일상복과 사관학교 제복을 입고 싸우는 두 생도의 전투에 당황해 끼어들지 못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어물쩍거리다가 헤이커의 화살에 명을 달리하기를 반복.
이제는 차라리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크와아앙!
한바탕 다시 쏟아지는 화살을 힘겹게 쳐내고 있던 그때였다.
작아진 채 몸을 숨기고 있던 하니앤이 몸집을 키운 뒤 헤이커의 뒤를 덮친 것이었다.
콰직!
하니앤의 이빨이 헤이커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다. 웬만하면 전투에 끼어들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행한 첫 일격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헤이커가 처음으로 인상을 구기며 하니앤을 향해 근거리 사격을 쏟아부었다.
파바바박!
십여 발의 화살이 하니앤의 몸에 이쑤시개처럼 틀어박혔다.
나는 곧바로 삼 단 걷기로 하니앤의 앞을 가로막고 녀석을 건져 내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 있어. 괜히 까불다가 다쳐서 기력 빨아먹지 말고.”
창을 빙그르르 돌리며 화살을 쳐내고 있으니 마치 적벽대전의 촉오 연합군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 정도로 강하고 민첩한 사수를 적으로서 만난 건 처음이라 그런지, 적잖이 당황스러운 전투였다.
– 내가 아머드 폼 변신만 할 수 있다면 이깟 조무래기쯤은…!
하니앤은 화살을 털어내며 분하다는 듯 콧구멍을 씰룩거렸다.
“열심히 연료통 키우고 있다고. 잔소리하지 마라.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아니고.”
– ……흥.
“그래도 방금은 잘했어. 저놈 속도랑 공격력은 훌륭한데, 내구성이 좀 약하네.”
단 한 번.
신수 하니앤의 이빨에 물렸을 뿐인데도 화살의 화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 출혈이 심각하구나. 잠시 후퇴하는 게 어떻겠니.
“안 돼. 저 새끼는 살상 능력이 너무 좋아. 놔두면 피해가 커진다.”
헤이커는 기스와 더불어 대량 학살이 가능한 마인이다. 잠깐 풀어 둔 시간 동안 벌써 사관학교 임직원들을 수도 없이 사냥했을 정도다.
마족 라비가 국지전을 그만두고 마침내 프리마관으로 향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 지금.
이놈이 내 손에서 빠져 나가 자리 잡고 프리마관 저격이라도 하면 방어선이 순식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무리해서라도 잡자. 슬슬 소울 바닥이다.”
– 너….
“피해 있어.”
나는 하니앤의 다리를 툭툭 쳐서 밀어낸 뒤 월광쌍익 두 자루를 모두 창집에 꽂아 넣었다.
이 큰 무기로 사냥하기엔 너무 날쌘 적이었다.
놈의 화살은 정말이지 까다롭다.
몸 전체에 투지를 두르자니, 한 발 한 발이 품은 집중이 너무 예리해 투지가 뚫려 버린다.
그렇다고 화살이 날아오는 곳을 집중적으로 막자니 날아오는 화살의 수가 많고 변칙적이었다.
종종 머리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은 자칫하면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강력한 탓에 맞으면서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사수의 정석, 그 자체를 보여 주는 싸움.
“이쑤시개로 찔러 대면 사람이 기분 개 같다는 생각을 좀 하시지.”
나는 곧바로 양팔과 양발에 착용한 아머드 파츠를 작동한 뒤 가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머리부터 배꼽까지, 맞으면 치명상인 부분만 투지로서 단단하게 보호한다.
그러자 방어가 느슨해진 부위를 귀신같이 파악해 낸 헤이커가 빈틈만 쏙쏙 노려 몸에 작디작은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그림자 걷기]아머드 부츠가 불을 뿜고 내 몸이 튀어나갔다.
반파된 엄폐물들을 밟고 도약하며 빠르게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더 커진 과녁을 향해 수많은 화살이 날아든다.
팅팅팅팅!
몇 발은 투지와 건틀릿에 막혀 튕겨 나가고, 몇 발은 여지없이 몸을 꿰뚫었다.
특히 건틀릿과 부츠로 보호하지 못하는 팔꿈치 위와 무릎 위 팔다리는 거의 환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구멍투성이었다.
바짝 따라붙은 내가 [소울 족쇄]로 녀석의 권능을 틀어박으려 했으나, 딱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바깥에서 녀석의 몸이 사라졌다.
헤이커는 곧바로 [잔상 밟기]로 거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림자 걷기]로 따라붙었다.
거리를 벌리면 그림자를 타고 나타나고, 거리를 벌리면 타고 나타나고를 다섯 번쯤 반복하자 소울 통이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쏟아지는 화살비.
현기증이 돌 정도의 핏물이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진짜 개 같네―’
나는 이를 악물고선 두르던 투지마저 벗어던지고 다시 한번 권능으로 거리를 좁혔다.
안 잡히면 잡힐 때까지 따라붙는다.
네놈이 이길지 내가 이길지 한번 해 보자―
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시 권능을 발동시키려던 차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소울탄 한 발이 마인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
나도, 헤이커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의의 기습이었다.
초 단위로 거리를 벌리고 좁히는 싸움이었기에 둘 다 극도로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던 상황.
누군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른 추격전 속에서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놈을 격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관학교 안에서 그 정도로 실력 있는 사수는 단 한 명뿐이다.
‘휴고한테 합류하라니까.’
나는 말 지지리도 안 듣는 애완 다람쥐를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젓고는 헤이커를 향해 걸어갔다.
비록 독단적인 행동으로 끼어든 상황이라 해도, 그녀의 지원사격은 팽팽했던 전투의 무게 추를 부숴 버린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부들거리는 헤이커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이 징그러운 마인은 소울탄이 머리를 반쯤 관통해 박혔는데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부들대고 있었다.
상처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가 놈의 출혈을 막고 상처를 재생시키려 드는 것이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헤이커의 목을 그대로 그었다. 축 늘어진 시신에서부터 불쾌한 단내가 피어오른다.
“아우, 어지러워….”
스티그마 포션을 한 병 꺼내 반쯤 들이켜고 나머지 반을 상처에 들이부었다.
소모한 소울은 일부 회복되었지만 마인에게 얻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일부 상위 마인들이 가진 ‘상태이상-회복 불가’ 특성 때문이다.
연달아 전투를 치르는 입장에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남은 건 둘.’
이제 메인디시라고 할 만한 마인 둘만이 남았다.
이 전투가 끝나고 한동안 몸을 못 가누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그 두 놈만 잡을 수 있다면 내 임무는 성공이다.
지긋지긋한 저주의 굴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테고.
기현상이 일어난 건 그 순간이었다.
헤이커의 시신에서 칠흑의 마기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내 몸속으로 파고든 것이었다.
“뭐야?”
나는 당황해 한발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마기는 이미 내 몸속으로 들어온 뒤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의 1/10 정도만 남아 있던 소울이 더 차오른 것이었다.
“……?”
나는 기이한 현상에 이마를 찌푸리며 손거울을 들어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기현상의 원인을 파악한 나는 실로 악당이나 지을 법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칭호]①마인 사냥꾼의 후예
② 나태한 염세주의자
③ 마인 학살자
[애시그린 일족 비기(S)(전용):★★☆☆☆☆]비전투 상황에서 ‘간파의 눈’이, 전투 상황에서 ‘포획의 눈’이 발동합니다.
마신군을 처치할 시 ‘마인 학살자’ 효과가 발동합니다.
※ ‘간파의 눈(看破眼)’ : 대상의 본질을 파악합니다.
※ ‘포획의 눈(捕獲眼)’ : 전투 대상의 치명적 약점을 간파합니다.
※ ‘마인 학살자’ : 마기를 사용하는 대상을 살해할 시 마기를 흡수해 소울로 전환합니다.
아무리 영약을 처먹어도 1성에서 머물러 있던 S급 권능, [애시그린 일족 비기]가 마침내 2성을 찍은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마인 학살자’라는 칭호까지.
최근 마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고 다녔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모양이다.
“상처도 좀 치료해 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머리를 어지럽히는 현기증에 구시렁거렸다.
전투 중에 소울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효과긴 했다. 특히 다수의 잔챙이를 상대할 때는 너무도 효율적인 효과다.
이건 표현하자면 무한 동력이자, 창조 소울이며, 마르지 않는 샘이었으니까.
멈춰 있던 메인 권능의 성급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호재다.
“러셀.”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호흡을 고르고 있는 동안, 도착한 미마가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머뭇머뭇 다가오는 날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휴고한테 합류하라는 말 안 들은 건 잘못했지만, 사격은 훌륭했다.”
“…왜 이렇게 다쳤어.”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니까.”
“더 못 싸워. 돌아가자.”
“제일 중요한 놈들이 남았는데 뭔 소리야. 너나 빨리 돌아가서 마족 사냥에 합류해. 말 나온 김에 시작해야겠다. 어휴, 빈혈이야. 피가 모자라네….”
내 단호한 대답에서 미마는 얼굴을 굳힌 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내 양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것이었다.
“뭐야. 왜?”
“못 가.”
작은 몸체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터져 나와 날 구속했다.
[간파의 눈]으로 힘의 원천을 깨달은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덮치기]방학 때 마수 사냥으로 얻었던 그 권능이었다.
“그걸 왜 네가 갖고 있냐? 분명 카로한테 팔았는데.”
“환불.”
“그니까 왜? 아니 그보다 그 권능, 배울 수 있는 종족에 제한이 있을 텐데―”
특성상 거인족이나 네발짐승들이 배울 수 있는 권능이다.
잠깐만, 네발짐승?
…맞네?
“가지 마. 쉬어야 해.”
“이 고집불통 날다람쥐가….”
말 안 듣는 애완 날다람쥐에게 예절을 주입해 주려던 그때였다.
– 조카야. 유산은 너한테 물려주마.
무전기에서 들려온 음성에 나와 미마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삼촌, 삼촌?”
황급히 무전기 발신 버튼을 누르고 카터를 불렀으나, 카터로부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미마가 권능을 해제한 틈을 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몸을 가누기 힘들게 할 정도였고 아직 처리해야 할 마인이 둘이나 남았지만, 카터에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매번 툴툴맞게 굴어도 카터는 엄연히 내 은인이다.
전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떼쓰기나 다름없는 부탁을 못 이기는 척 들어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사관학교 생활은 시작부터 고달팠을 거다.
복수를 미루고 친구들을 구해 달라는 부탁도 고민 없이 들어 준 소중한 인연이다.
– 타렴.
“미마,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마.”
“안―”
나는 미마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하니앤의 등에 올라탔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투의 현장들을 빠르게 돌파해 도착한 사관학교 정문. 첫 번째 수비선.
지친 얼굴로 서 있는 세크레트, 그리고 전신에 자상을 입은 채 이미 숨을 거둔 카터의 모습이 보였다.
“…….”
서 있는 것은 마족 하나뿐. 이곳은 죽음의 대지였다.
대장군의 측근이었던 전직 영웅들이 모두 목숨을 던졌지만, 결국 군단장 마족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미련한 양반… 도망치라니까요.”
– 계약자야. 놈이 날 알아보았다.
나는 하니앤의 말에 세크레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나와 하니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르르르…!
납치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하니앤이 사납게 입질했다.
“개도 아니고 입질은….”
나는 하늘을 향해 부릅뜬 카터의 눈을 감겨 준 뒤, 월광쌍익을 꺼내 그러쥐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