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91)
20. 마인 학살자
지크프리드의 계승자 크라우라이트 로이힐.
그가 쌓아 올린 업적은 활자로 나열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지만, 대표적인 활약상들은 리타니아 대륙에는 익히 알려져 있다.
단신으로 격퇴한 마신군 군단의 수만 다섯 개.
홀로 격살한 군단장 여섯.
추정되는 처치 마신군 최소 사천 이상.
사도 아엘다드를 타 대륙으로 패퇴시킨 장본인이자 마신을 상대로 자그마치 사흘간 버티며 전투를 이어간 명실공히 마신전쟁 승리의 주역.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인류 최강의 기사.
타라노르 국왕 프리드리히의 막역지우.
이제라 여왕 디에네의 맹우.
상인연합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자.
레인가르와 그림로어의 명예교수.
던블라이아 엘프족의 명예 장로.
뒤셀노크트의 귀빈.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이 대륙 내에서 이제라의 디에네 여왕만큼이나 절대적이었다.
그런 만큼 이제라의 기둥이라 불리는 대장군마저도 그에게 연락을 취할 때면 극진한 예를 갖추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크라우는 이제라 군부에서 보내온 전서매에서 꺼낸 쪽지를 꺼내 눈으로 훑었다.
「크라우라이트 로이힐 경께.
귀경의 무궁한 안녕을 바랍니다. 최근 마족 세크레트를 추적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해당 마족이 그림로어 사관학교로 향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표적은 신수 하니앤과 그 계승자라 판단됩니다. 공사다망하시겠지만, 지원이 가능하시다면 요람의 방어에 힘을 보태 주시길 간청합니다.
-이제라 대장군 빌트레드 다이에른 배상.」
“흐음.”
크라우는 단정한 필체로 적어 내린 쪽지를 읽어 내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세크레트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싶더니, 그림로어로 향했다라.
“사관학교가 태풍의 중심지가 되는 느낌인걸.”
그의 말대로였다.
현재 그림로어 사관학교에는 자신이 후원자로서 데려다 놓은 차기 성약의 계승자, 마신군이 마신 소환의 그릇으로 이용하려 했던 호문클루스, 또 다른 계승자 후보인 마지막 밤의 일족까지 존재한다.
그런 사관학교에 이번에는 신수 하니앤과 계약한 계승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 까칠하고 사무적인 대장군이 자신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며 부탁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크라우 자신으로서도 쉬이 넘길 수 없는 문제인 건 확실했다.
무엇보다 세크레트와 라비.
두 마족의 탄생은 타라노르에 그 기원이 있었다.
아직은 조사 중인 사안이지만, 조사 내용 중엔 대륙이 발칵 뒤집힐 만큼 중차대하고도 예민한 징후들이 가득했다.
그러니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자신이 수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크프리드, 좀 서둘러서 가야겠는걸.”
– 목적지는?
“이제라. 그림로어 사관학교로 가자.”
– 알겠다.
그의 신수 지크프리드가 투루루, 하고 투레질했다.
곧장 크라우를 태운 지크프리드가 화살처럼 사막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 *
정상적인 상행이라면 일주일은 꼬박 소요될 거리였지만, 영물일 때부터 세계 최고의 명마라 불렸던 지크프리드는 그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했다.
크라우와 지크프리드에게도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관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그는 소울 소모를 감수하더라도 발길을 재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관학교는 이미 반파된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쓰러진 시신들이 즐비했고, 학사 전체에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폭음이 울리고 냉병기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사관학교가 마신군에 의해 명맥이 끊겼을 정도의 피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의 피해였다.
그때 크라우의 눈에 거대한 유성이 떨어지는 전장이 목격됐다.
[유성 낙하]거대한 유성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지금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곳을 가리키는 표지판일 터다.
그는 곧바로 박차를 가해 유성이 떨어진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고, 마침내 지금까지 추적해 왔던 마족들에게 다다를 수 있었다.
기절한 세크레트.
그런 그녀를 어깨에 메고 있는 라비린시아 비잔.
허공에 떠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마인 하나.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져 있는 어린 사관생도들.
전황을 파악한 크라우가 곧바로 지크프리드에게서 뛰어내렸다.
“지크프리드.”
짧은 명령어와 동시에 지크프리드의 몸체가 빛나기 시작한다.
한 마리의 말이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번쩍, 하는 광채와 함께 거대한 신수 병기로 변해 바닥에 떨어졌다.
쾅―!!
충격과 함께 지크프리드의 아머드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체는 인간 형태, 하체는 말 형태를 한 켄타우로스 형상의 신수병기.
전고 22m, 전장 26m, 전폭 10m의 거대 기체가 바닥을 움푹 패고선 마족 라비를 향해 포효했다.
크라우는 빠르게 뛰어올라 지크프리드의 콕핏 안으로 들어섰다.
“크라우… 당신이 여긴 어떻게…?”
눈앞에 나타난 거대 신수병기를 목도한 라비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반대로 그의 등장을 환호하는 존재도 있었다.
기절해 버린 생도들을 어떻게 구출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신수 하니앤.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 신수의 등장에 환호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 크라우! 지크프리드!
“오, 하니앤이네? 오랜만이야. 반갑긴 하지만 인사는 나중에 나누자고. 일단 거기 바닥에서 누워 있는 아가들 좀 챙겨 주겠어? 찬 바닥에서 자면 입 돌아가니까.”
신수병기에서 흘러나온 크라우의 목소리에 하니앤이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움직여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생도들을 입으로 물어 그녀의 등 위로 차곡차곡 올려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라비는 뒷걸음질을 치며 크라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치는 것은 마신군에겐 수치가 아니다.
하물며 상대가 사도마저도 상대하기 껄끄러워하는 인류 최강의 기사이니 오죽할까.
이제 막 군단장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비명횡사하는 일은 죽어도 사양이었다.
“으, 으이익…. 이건 도망치는 게 아니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도망가게 둘까 봐? 얌전히 무기 내려놔. 라비린시아 비잔. 나도 레이디를 함부로 대하고 싶진 않거든.”
“우, 웃기지 마…….”
라비는 입술을 짓씹듯이 깨물고는 양날도끼를 그러쥐었다.
마신군 입장에서 최악의 적이 나타난 이상,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그래도 요람 타격이라는 제일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저 은여우 신수가 등에 메고 있는 애송이 계승자들만 없애고 빠져나간다면 임무는 완벽하게 달성한 셈이다.
“기스! 받아! 후퇴해!”
“예.”
계산을 끝낸 라비가 세크레트를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뛰어올라 양날도끼를 뒤로 젖히고는 신수 하니앤을 향해 집어 던졌다.
[데빌 드라이브]동시에 발현되는 권능.
양날도끼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툭 건드리면 싹 다 죽어 없어질 상태의 녀석들이다. 아무리 악명 자자한 크라우라 한들―
쿵!
그러나 라비의 도끼는 지크프리트가 던진 거대한 방패에 막혀 지면에 처박혔다.
“말로 해선 안 될 녀석이네.”
뒤이어 신수병기 지크프리드가 육중한 몸을 돌진하며 라비를 향해 돌격했다.
신수병기 중에서도 선봉대 역할을 맡는, 적 진형을 뚫어내는 것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크프리드.
장갑 강화를 통한 돌파력 향상으로 적진을 꿰뚫고, 네 개의 다리를 이용한 빠른 기동으로 적 진형의 내외부를 헤집고 다닌다.
아무리 단신으로 사관학교를 반파시켰던 군단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체급 차이를 메꿀 순 없었다.
신수병기는, 인류가 마신을 상대로 승리해 올 수 있었던 원천이었으므로.
라비는 황급히 [무기각인]으로 양날 도끼를 회수하려 했지만, 크라우의 방패가 얼마나 깊게 박혀 고정하고 있는지 도끼는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당황하여 몸을 피하려던 라비의 단신에 지크프리트의 기체가 부딪혔다.
가가가가각―!
어떻게든 휩쓸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마기가 폭발하듯 투지로서 발현됐다.
“괴물 같은 깡통 로봇 같으니….”
지크프리드의 돌진을 막아낸 라비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지면으로 착지했다.
단 한 번의 공방이었는데 마기는 마기대로 때려 부었고, 몸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긁혀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정상적인 몸 상태였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았을 텐데….
교수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너무 많이 뺐다.
곧장 달려든 지크프리트 기체의 오른쪽 앞다리가 라비를 찍어누른다.
더럽게 큰 덩치인데도 기체의 속도는 믿기지 않게 빨랐다.
아니, 기체의 전장이 넓어 보폭이 크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따라잡히기 마련이다.
“이, 이이이익!”
이대로면 승리는커녕 살아서 도망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지경이다.
라비는 지크프리드의 앞발을 양손으로 튕기듯 올려 치고는 오른쪽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몇 번을 굴러 제 무기가 있는 곳에 도착한 라비는 신경질적으로 크라우의 방패를 집어 던진 후 양날도끼를 손에 그러쥐었다.
그런 다음 광기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권능을 발동했다.
[핏빛 폭소]깔깔깔깔.
흡사 악마의 울음소리 같은 괴기한 음성이 상공에서 터져 나왔다.
이판사판이었다.
마지막 남은 마기를 샅샅이 긁어모아 권능을 발동시킨 순간 대지가 울리기 시작한다.
쿵, 쿵쿵, 지크프리드의 말발굽이 지면을 내리찍을 때마다 움푹 팬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라비는 몇 번이나 다이빙하듯 뛰어 허겁지겁 피해냈다.
그렇게 몇 번의 공격을 흘렸을까.
흩어져서 사관학교 관계자들을 사냥하던 일리오스교 교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이것은 군단장 라비의 권능.
같은 전장 안에 있다면 언제든 군단장이 있는 곳으로 이교도들이 집합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라비는 깔깔 웃으며 도끼를 번쩍 들어 지크프리드를 가리켰다.
“저 깡통을 공격해! 날 위해! 영광스럽게 죽어!”
그 명령에 이교도들이 집단 광기에라도 물든 것처럼 거체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라비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반드시 이 지긋지긋한 여신군 놈들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하며.
“이교도 놈들이 왜 허겁지겁 빠져나가나 했더니.”
그러나 그때 위에서부터 날아온 영웅 하나가 라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양팔에는 후퇴시켰던 기스와 기절한 세크레트가 들려 있었다.
“뭐야, 넌…!”
그는 대답 없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뒤쪽으로 잠깐 물러났다가 튕겨 나가며 라비의 관자놀이를 향해 발등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투지를 두르려던 라비가 울컥, 검은 피를 토해냈다.
탈진 현상.
이미 몸속의 마기를 탈탈 털어내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강화된 전투 슈트의 발등 부분이 라비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녀의 머리가 그대로 지면을 부수며 땅에 박혀 들었다.
“커, 헉…!”
평범한 수준의 영웅이 아니었다.
아무리 마기가 바닥났다 한들, 웬만한 영웅은 맨손으로도 제압할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일격을 얻어맞았다고 온몸이 고장난 듯 삐걱거린다고?
찰칵, 하고 영웅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슈트가 벗겨지고 그의 안면이 드러났다.
“너, 너…!”
영웅의 정체는 다이크 로필런.
프리마관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자신을 괴롭혔던 그놈이다.
분명 총장 늙은이와 함께 반쯤 죽여 두었는데, 어느새 상처를 회복하고 부활한 것이다.
라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다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녀의 팔다리에 구속구를 채웠다.
라비를 제압한 다이크는 이교도들을 제압한 크라우를 향해 다가갔다.
“다이크 로필런입니다. 크라우라이트 로이힐 경을 뵙습니다.”
“아아, 낯이 익네. 반가워.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좀 늦은 모양이군. 수고했어.”
“아닙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살았습니다. 경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교도들의 신병과 다친 생도들을 수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 물론이지. 근데 두 마족은 내가 좀 데려가도 될까?”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그래? 그럼 오리건 할아범한테 물어봐야겠네.”
크라우는 시원스레 대답하고는 신수병기에서 강차했다.
“참. 노파심에 얘기하는데, 하나는 내가 처리한 게 아니야. 내가 왔을 땐 이미 이 녀석들이 한바탕 한 뒤더라고.”
크라우가 세크레트와 기절한 생도들을 번갈아 가리키자 다이크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생도들이, 군단장을 말씀이십니까.”
“그렇더라니까. 하하. 나도 놀랐지 뭐야?”
“일단 녀석들이 깨어나면 자초지종을… 러셀! 멈춰!”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듯했던, 그 순간이었다.
붙잡혀 있던 기스의 눈동자에서 검은 마기가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기절해 있던 러셀 애시그린이 어느샌가 크라우의 등 뒤에 나타나, 그의 뒷덜미를 향해 단검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