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94)
2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영웅 육성 특별반.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는 계승자 크라우.
그것은 정사대로 진행되는 에피소드였기에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두 마족 군단장의 목숨 유지를 대가로 여왕 디에네가 특별히 내건 조건일 테지.
크라우의 지도 아래 혹독한 훈련으로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중요 에피소드.
나를 포함해서 한동안 동료들이 데구루루 구르는 시간이 될 거였다.
‘크라우라….’
개인적으로 게임을 할 때부터 애정을 주던 캐릭터였지만, 사실 크라우의 성격은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였다.
원작에서도 당장 시급한 상황에 주인공의 자격을 시험하겠다며 무턱대고 검을 들이밀었던 에피소드 하며, 과거 견습 수녀들을 대상으로 보여 주었던 막무가내의 모습들 등등.
내 소설에서도 그러한 캐릭터를 본떠 호쾌하지만, 다소 자기중심적인 모습도 지닌 입체적인 인물이 만들어졌다.
다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인류 최강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지녔을 정도로 강한 인물이다.
그만한 힘을 지녔기에 동시에 그만한 책임과 의무를 이고 살아가는 존재.
다소 오만하고 막무가내의 모습이 있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싫게 보이지 않는 이유였다.
내게 무력을 사용한 것도 뒤끝은 없다. 애초에 선빵을 갈긴 건 나였으니까.
그저 저주에 당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의 공격을 받아낸 나 자신이 대견할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하며 카페테리아에서 떠드는 동기들을 지나쳐 개인실로 올라갔다.
프리마관 안이 사건 수습으로 한창 어수선한 어느 봄날이었다.
* * *
“오랜만이군.”
4막이 끝난 뒤 보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학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유해와 사상자, 실종자를 수습하고 부서진 건물과 파괴된 기관 장치들을 점검했다.
그리고 이제라 국경 인근에서 연락이 두절되었던 3, 4학년들의 참사 현장이 발견되었고, 전장에 나가 있던 고학년 담당 교수들이 복귀했다.
애써 몇 년 동안 가르쳐 놓았던 생도들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너지던 교수들의 모습은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요람은 유지되어야 한다.’
이제라 왕실에서 내려온 공문에 따라 생도들은 여전히 사관학교에 똬리를 틀었지만,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다만 생도들이 한없이 어둡게 가라앉은 것만은 아니었다.
동료들의 죽음을 더없이 애도하지만, 동시에 꿋꿋이 이겨내고 나아간다.
그렇기에 학원물이고, 그렇기에 청소년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창 바쁜 학사의 분위기에도 생도들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충분한 휴식과 충분한 개인 정비 시간이 주어졌고, 그렇게 저마다의 상황을 이겨낸 보름의 시간 뒤.
다시 모인 프레스티지 카뎃 클래스의 전용 강의실의 분위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클래스와 달리 사망자가 한 명뿐이었던 것도 한몫했을 터다.
“얼굴들을 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다이크는 특유의 화술로 서문을 열었다.
“먼저 올해의 커리큘럼에 관해서 설명하지. 너희들도 느꼈겠지만, 기존의 정규 교육과정은 모두 폐기될 것이다.”
생도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원래는 2학년 내내 진행되어야 할 고급반 강의들은 3개월 동안 속성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에 따라 수강 시간이 오전, 오후로 2시간씩 늘어난다.”
원래의 사관학교 수업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이후는 대부분 개인 훈련 시간이다. 7시간이었던 교육 시간이 11시간으로 대폭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 및 각종 행사는 모두 취소될 것이다. 또한 여름방학도 사라진다.”
“…….”
생도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딱히 티 내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교수들과 생도들이 대거 죽어 나간 와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하 호호 화기애애한 학교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기존 3, 4학년 과정에서 진행했던 출장 임무 수행을 6월부터 진행하게 될 거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너희는 바로 소년병 예비군으로서 전장에 투입된다.”
4년짜리 커리큘럼을 2년으로 대폭 축소하는 대대적인 개혁.
그제야 생도들은 이곳이 ‘아카데미’가 아닌 ‘사관학교’라는 사실을 절절히 실감한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전한 모양이군, 다들 입에 똥 한 바가지씩 물고 있는 표정인 걸 보니. 좋은 소식도 전해 주겠다. 앞으로는 모든 과정에서 성적 평가 및 시험이 없다.”
와아아!
그제야 그 나이대다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시험, 평가, 줄 세우기를 싫어하는 건 만국 공통이다.
“대신 낙제는 존재한다. 그러니 낙제하지 않도록 강의에 최선을 다하도록.”
그때 수다쟁이 주디가 번쩍 손을 들었다.
역시 저 녀석은 강의가 시작되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캐릭터라니까.
“주디 아리스포델입니다. 혹시 낙제하면 어떻게 되나요?”
“한 과목이라도 낙제하면 곧바로 부사관으로 전장 발령이다. 별일 아니지.”
“…….”
주디는 침울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오늘은 전달사항이 많군. 아홉 개 사관학교에서 생존 생도들이 이쪽으로 통폐합되어 넘어올 것이다. 3, 4학년 시설을 쓰기 때문에 딱히 너희들과 접점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불화를 일으키진 말도록. 특히 러셀 애시그린.”
“아무렴요. 친하게 지내야죠.”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딱히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수준 차이도 심할 테니까.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이 먼저 건드려도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라.”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다이크의 덧붙임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먼 산을 바라봤다.
“아이고, 날씨가 참 좋네….”
와락 인상을 구기는 다이크의 모습에 생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마찬가지로 곧 입학할 1학년 후배들도 괴롭히지 마라. 선배다운 행실을 보이도록.”
다이크는 이번에도 나를 바라보며 호명했다.
“러셀 애시그린.”
“아니 제가 무슨 맨날 애들만 괴롭히고 다니는 줄 아세요?”
“호메르 트릴리언. 요즘도 러셀 애시그린이 널 괴롭히나.”
“예, 교수님. 심신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아니 저 새끼가….”
“호메르 트릴리언은 훈련병 시절부터 행실이 불량하였으니 자승자박이라 여겨 적당한 기강 잡기도 용인하고 있지만, 다른 생도들에게는 그러지 말도록.”
“예! 호메르, 넌 뒤졌다.”
“…….”
다이크의 일장 연설 잔소리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 뒤로도 커리큘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쭉 설명한 다이크는, 조회를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러셀, 휴고, 루트비히, 너희 셋은 근시일 내로 티렐 왕성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의외의 설명에 휴고가 손을 들고는 물었다.
“티렐 왕성을요? 무슨 일이죠?”
“여왕 폐하의 호출이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세 사람은 모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일정은요?”
“사관학교 통폐합과 신입생 입학식이 끝난 뒤, 대략 3주 후가 되겠군.”
“혹시 다른 동료와 함께 가도 될까요?”
“될 거라고 생각하나?”
“…….”
다이크의 반문에 휴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혼자 남겨질 로벨리아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어릴 적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으니, 불안할 법도 했다.
게다가 로벨리아를 잘 모르는 새 사관생도들이 무더기로 들어온다지 않는가.
혹여라도 그가 없을 때 누군가 로벨리아를 괴롭힐까 봐 걱정되는 듯 보였다.
“로벨리아. 휴고가 없으면 불안한가. 혼자서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렇다는군. 네가 저 생도의 아빠든 애인이든 유모든 집사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만, 여왕을 알현하는 걸 장난으로 생각하진 말도록. 이상이다.”
다이크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선 홱 사라졌다.
신랄한 비판에 축 늘어져 있는 휴고를 로벨리아가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분들이 함께 계시니까요.”
“하지만 로벨리아.”
“마누라가 괜찮다잖아, 인마.”
나는 한 편의 신파극을 찍고 있는 휴고의 등짝을 쳐 주고는 강의실에서 빠져나왔다.
* * *
“한가하네….”
메인 에피소드가 끝난 뒤의 학사 생활은 다소 지루하기까지 했다.
자율 훈련이야 매일 극한까지 몰아붙이곤 있지만, 사실 효율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
혼자서 할 수 있는 훈련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오랜만에 농장에 방문한 차였다.
작년에는 항상 강의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들어 농장이 북적거렸는데, 큰일을 겪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좀처럼 동료들이 한데 모일 일이 드물었다.
상위 마신군과의 싸움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 탓이다.
나는 학신목 아래에서 냇가를 바라보며 나무 기둥에 걸터앉았다.
내가 자리를 잡자마자 하니앤이 방방 뛰며 곧바로 미마의 옹이구멍을 차지한다.
서늘한 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뭔가 기분이 상쾌해진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잡념이 사라진다. 명확히 신성의 힘이다.
학신목이 내뿜는 신성은 이제 명확히 느껴진다.
신성. 소울 에너지 중에서도 좀 더 여신과 가깝게 농축된 힘.
하니앤과 계약한 이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실체가 잡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주변 소울의 흐름을 느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몸속에서 소울이 회전하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소울 번.
그렇게 오래도 나를 괴롭히던 소울 번은 저주가 말끔하게 사라지자마자 사지를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발현됐다.
소울 번은 권능을 더 효율적이고 위력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기술.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실전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언가 내 주변으로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적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동료 중 누군가겠지.
“얍!”
내가 눈을 뜨려고 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내 양어깨를 확 움켜쥔다.
“놀랐지!”
인물의 정체는 리지였다.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모습으로 방긋방긋 웃음 지으며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리지네. 여긴 웬일이냐?”
“러셀 보러 왔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진짜 오랜만에 온 건데.”
“응?”
“어?”
“……?”
“아?”
“스토킹?”
“…아닐걸?”
리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이 녀석은 항상 뭔가 흉계를 잔뜩 꾸미는 느낌인데 어째 하나도 위협적이지가 않단 말이지….
“아 참, 주말에 잠깐 시간 되냐?”
“응응.”
“뭔지도 안 물어보고?”
“응! 무슨 일인데!?”
“잠깐 사관학교 밖 도시로 나갔다 오자.”
카터의 무기점에 마법 결계를 좀 쳐 둘 작정이었다.
결계 마법은 루트비히가 가장 권위자이긴 하지만, 그건 어딘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느낌이다.
결정적으로 녀석에게 사관학교 밖으로 나가자면 ‘학칙 위반은 할 생각 없어요.’라고 샐쭉하게 대답하겠지.
내 말을 한참 곱씹던 리지는 이내 방긋방긋 웃으며 반문했다.
“드디어?”
“…뭔 드디어야?”
“데이트 신청. 우리 집에서 했던 약조를 이행할 생각이 드는 걸까?”
“…친구 아빠라는 위계를 악용한 그 불공정계약은 말도 꺼내지 마라.”
리지는 배시시 웃고는 내 머리 위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떼어 주며 말했다.
복숭아 향 같은 것이 잠깐 코끝을 스쳤다가 사라진다. [먹잇감 등록]과는 좀 더 다른 특색의 냄새였다.
“근데 이제 아예 마음대로 학사 밖으로 나가 버리네…. 학사 규칙 따위는 지킬 생각이 하나도 없구나? 과연 이것이 비행 청소년…….”
그게 뭔 소리야, 라고 반박하려던 나는 틀린 말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러네…?
어쩐지 반성하게 되는 기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