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97)
2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랜디우스는 변변한 저항조차 못하고 생포당했다.
아무리 불사의 마인이라는 휘황찬란한 별칭을 가졌다고 한들, 고작해야 6성급 마인.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든 교수들과 경비대를 뚫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탐탁지 않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레오와 편입생 에이스들을 향해 한 번씩 웃음 지어 준 뒤, 돌아섰다.
등 뒤로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시선이 쏟아진다.
대부분은 호승심, 그리고 경쟁심.
아무래도 한동안은 덤벼드는 놈들에게 예의범절이라는 걸 주입해 주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으하하, 애늙은이처럼 말하긴.”
나는 싫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파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 * *
“몰골들이 엉망진창이군. 도리스 교수. 치료를 부탁하지.”
“네.”
도리스는 다이크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뒤 퉁퉁 부어터진 생도들의 얼굴을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2학년 생도들의 영웅 육성 클래스 선별 과정을 진행한다고 공지했는데도, 며칠간 의무실이 미어터질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대부분이 학생들 간 결투로 실려 오는 이들.
집단과 집단이 새로이 만났으니 서열 정리가 진행될 거라는 사실이야 짐작했지만….
의무실로 실려 오는 생도들의 면면은 이래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환자 대부분이 편입생들이었고 가해자는 딱 넷. 러셀 애시그린, 파 그리고 호메르와 데나스였다.
손속이 매섭고 호전적이기로는 사관학교에서 손꼽는 네 사관생도가 그야말로 도전자들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다닌 것이었다.
물론 기존 그림로어 사관생도와 편입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결투는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지방에서 위명 자자했던 레오나 닉시드의 정식 후계자라 불리는 도미니엘, 그리고 사브와라의 신성(新星) 씨씨가 러셀 무리를 상대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
다이크는 촌티를 팍팍 내는 지방 사관생도들 사이 홀로 아우라를 뿜어내는 레오를 응시했다.
어릴 적 도적 떼에 부모를 잃고 현상금 사냥꾼의 길을 걸었다고 했던가.
시선에서 강한 기개가 엿보인다.
다이크는 몇몇 생도들을 짧게 일별한 뒤, 결투를 참관할 기회가 있다면 스스로 주관할 거라 다짐한 뒤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영웅 육성 특별반 심사를 시작하겠다. 개인의 컨디션을 핑계로 결과에 불복하더라도 참작할 마음은 전혀 없으니 혹여라도 결과에 이의제기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마라.”
특유의 화법으로 으름장을 놓은 뒤, 다이크가 양옆의 영웅들을 가리켰다.
“혹시 모를 부상을 위해 참관하신 교수 도리스, 그리고 심사에 참여하실 명예교수이자 계승자 크라우라이트 로이힐 경이다. 참관자분들과 심사를 도와줄 조교들을 박수로 맞이하도록.”
다이크의 옆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도리스와 편하게 앉아 있는 크라우. 그리고 다이크의 뒤쪽으로 중간중간 조교들이 늘어서 있었다.
제 이름이 불리자 편하게 손을 드는 크라우. 그에 환호하듯 21기 생도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크라우를 처음 보는 몇몇 생도들을 눈빛을 빛내기까지 했다.
“본 심사는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이번 심사는 오로지 슈트기동 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한다. 심사 방식과 슈트기동 방식은 앞서 배포한 유인물에 공지하였으니, 별도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기갑병기의 이해」 시간에 한 번씩 슈트를 착용해 본 3학년들과 달리, 2학년들은 전투슈트를 처음 착용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이론적인 부분을 공지하였다고 해도, 아머드 무장에 대한 재능이 없다면 심사에 통과하기란 요원한 일일 터다.
“1단계를 시작하겠다. 맨 앞줄부터 10명씩 차례대로 나오도록.”
심사는 지난 학기 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되었다.
심사 방식은 며칠 전 치러진 3학년들과 동일했다.
가동파츠를 착용하고 전투슈트를 작동시켜 깃발을 돌아 오는 것.
단, 시간은 1분이 더 주어져 총 2분이란 시간 안에만 해결하면 되는 미션이었다.
“전원 탈락이다. 다음 조 나오도록.”
널널해진 기준에도 첫 번째 조는 깔끔하게 전원이 떨어졌다.
개중에는 깃발을 향해 달려가는 것까진 성공했으나 유턴을 하지 못해 그대로 뒷산까지 올라가 조교들이 간신히 끌고 돌아온 생도도 있었다.
그 뒤로도 줄줄이 심사에 떨어지는 생도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중위권 성적의 생도들이 심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나둘씩 성공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크라우가 다이크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여기가 중위권이라는 거잖아. 확실히 선배들보다 나은데?”
“그렇습니까.”
“그렇네. 20기 상위권이랑 21기 중위권이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아.”
“상위권 생도들을 보면 더 놀라실 겁니다.”
“몇 명은 본 적 있지. 그 애들이 엄청 특별한 건 아니라는 뜻일까? 하하, 기대되는걸.”
크라우가 도리스를 향해 ‘그렇지, 루튼 아가씨?’라고 묻자 도리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아는 사이이신가 봅니다.”
“아는 사이라기보다는 출신이 같거든. 이 아가씨도 타라노르 출신이라. 아, 이거 비밀인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오, 이제 슬슬 상위권들 시작인가?”
크라우는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오는 A클래스 생도들을 확인한 뒤 앞으로 몸을 당겼다.
* * *
“마지막 조 앞으로 나오도록.”
다이크의 호명에 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오, 뭔 예비군 훈련도 아니고 대기가 엄청나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몸이 다 찌뿌드드할 지경이었다.
나는 1단계 심사를 통과하고 옆쪽에 앉아 있는 생도들에게 한 번 시선을 던졌다.
1단계 통과자는 대략 3백 명 정도.
1단계에서 80%가 탈락한 20기에 비하면 상당한 수가 통과한 셈이었다.
내 옆에는 지난 학기 상위권이었던 생도 10명, 주인공의 동료들과 익숙한 얼굴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시작.”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동시에 나는 가동파츠인 건틀릿을 집어 들고 소울을 불어 넣었다.
건틀릿에서 빛이 발산하더니, 이내 전투슈트가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찰칵거리는 기분 좋은 기계 소리와 함께 묵직한 느낌이 몸을 내리누른다.
슈트가 완전히 착용된 후로는 일부러 소울을 집어넣지 않아도 조금씩 슈트를 통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갑 연구자들이 ‘감응’이라 부르는 현상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슈트기동에 적응했다.
뭔가 몸을 움직인다는 느낌보다는 의식을 통해 탑승한 슈트를 조종하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다.
아마도 전투슈트를 아머드 파츠와 신수 병기를 잇는 중간 단계로 설정해서 더 그런 듯했다.
‘느낌 진짜 신선하네.’
나는 생경한 감각에 이유 모를 희열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분명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데도 움직임이 가볍다.
도약하려는 순간, 마치 슈트의 다리 부분이 내 몸을 튕겨 주는 듯한 기분.
까마득한 높이로 뛰었다가 바닥에 착지했는데도 다리가 아프지 않다. 투지를 발현한 것도 아닌데.
슈트의 헬멧 부분에는 상태창처럼 보이는 여러 메시지와 명령어들이 송출되는 중이었다.
나는 재미 삼아 ‘근거리 통신’이라 적혀 있는 버튼을 발동했다.
“아아, 들리나. 오바.”
내 목소리가 슈트를 통해 전달되었는지, 움직이고 있던 동기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심사에 임하도록 해라, 러셀 애시그린.”
“아아, 옙!”
곧바로 다이크의 지적이 날아들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고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진작 깃발을 통과한 뒤 날듯이 뛰어다니는 슈트 입은 날다람쥐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슈트기동에 적응하며 깃발을 돌아 온 시간은 45초.
꽤 여유 있게 들어왔는데도, 이미 나를 제외한 9명의 생도가 도착지점에 돌아와 있었다.
“마지막 조 전원 합격이다. 곧바로 역순으로 2단계를 진행할 테니 슈트를 벗지 말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도록.”
곧바로 두 번째 심사가 진행됐다.
다음 단계는 조교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것.
슈트를 입은 상태에서 권능을 발현하거나, 투지를 개화할 수 있는지, 혹은 공격을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슈트기동을 펼칠 수 있는지 보는 심사였다.
조교 한 명이 활을 들어 올리고 시위에 세 발의 화살을 건다.
동시에 세 발이 머리, 심장, 그리고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한 발은 유도 화살이네.’
굳이 한 발을 허공으로 쏘았다는 건, 회피하려는 경로를 틀어막으려는 의도일 터.
나는 그대로 [그림자 걷기]를 발동해 다이크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했다.
“실례합니다, 교수님.”
“…….”
그러고는 유유자적하게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전원 합격이다. 심사 자리에 가동파츠를 내려놓고 돌아가서 대기하도록.”
다이크는 프로다운 표정 관리를 보여 주며 심사를 이어 나갔다.
2단계가 끝난 뒤 떨어진 건 고작 8명뿐이었다.
그나마도 권능을 발현할지 회피기동을 펼칠지 제대로 정하지 못해 어리바리하게 굴다 떨어진 이들.
슈트기동을 할 줄 아는 이들을 기준으론 다소 쉬운 단계였던 셈이다.
“그럼, 다시 역순으로 마지막 심사를 시작하겠다.”
대망의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1, 2단계가 기본적인 재능 여부를 확인하는 절대평가라면 3단계는 사실상 상대평가에 가깝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빠르게 미션을 수행하는 작업.
20기 중에서도 단 3명만이 뽑힌 극악의 난이도인데, 그마저도 시간으로서 순서를 매긴다.
3단계가 시작되자마자 한 조교가 ‘기록판’이라고 적힌 바퀴 달린 칠판을 끌고 왔다.
줄 세우기를 하겠다는 명백한 의도였다.
그걸 본 순간 생도들 사이에서 호승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3단계는 한 명씩 심사하겠다. 머큐리 생도 앞으로.”
모든 생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첫 번째 통과자의 심사가 시작되었다.
3단계 심사는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로 전력 주행 구간. 가능한 빠른 속도로 주행하여 300m가량을 주파한다.
두 번째로 점프 구간. 1구간의 끄트머리에서 도약해 20m가량의 붉은 대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붉은 대지에 발을 디디면 탈락.
세 번째로 정밀기동 구간. 중간중간 놓여 있는 장애물과 콘을 건드리지 않고 그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다.
마지막으로 클래스별 미션.
클래스에 따라 사격, 회복, 방어, 공격의 미션을 각각 수행한 뒤 결승점의 조교에게 도달하면 3단계가 끝난다.
10분 안에 실수 없이 모든 미션을 수행해야 통과. 그리고 통과자들 사이에서 시간으로 등수를 매겨 영웅 육성반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머큐리. 탈락이다.”
긴장한 채 출발선에 섰던 첫 번째 생도는 점프 구간을 넘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 뒤로도 생도 대부분이 2구간을 넘지 못했다.
20기들의 심사에서도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21기들에게도 다를 바 없는 통곡의 벽이었다.
“코리 하이만 생도. 출발해라.”
어느덧 상인 놈의 차례가 되었다.
코리는 비장한 얼굴로 슈트기동을 시작하더니 2구간에서 제대로 점프하지 못해 도약 지점 바로 앞에서 데구루루 굴러갔다.
멋쩍은 듯 걸어오는 코리를 보며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뭔 개망신이냐. 차라리 어셔스처럼 1단계에서 떨어지지 그랬어, 인마.”
“진짜 너무해…….”
내 낄낄거림에 코리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어셔스는 진작 떨어졌는데 웬일로 녀석이 3단계까지 올라왔다 싶었다.
통곡의 벽에 가로막힌 생도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끌려 나가고, 키리 엘리엔 사관학교 B클래스 소속 엘프족 생도가 처음으로 성공 스타트를 끊었다.
기록은 9분 58초.
아슬아슬한 성공이었다.
“통과다. 이름표를 조교에게 건네도록.”
엘프족의 이름표가 기록판 가장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는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며 기록판의 이름 위치가 실시간으로 변했다.
마침내 각 특별반 장학생들만 남은 상황.
지금까지의 총합격자는 41명이었다.
“다음. 호메르 트릴리언 생도.”
“옙!”
호명된 호메르가 호기롭게 출발선에 섰다.
나는 동기 된 마음으로 그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 주었다.
“가자, 특별반 꼴등! 퇴출 1순위!”
“진짜 뒤질래?”
“떨어지면 특별반 망신이니까 고민 없이 자퇴하자. 널 대신할 인재가 41명이나 있네.”
“좀 닥쳐!”
내 진심 어린 응원에도 불구하고, 호메르의 기록은 11분 29초. 특별반 최초의 도전자이자 탈락자가 되었다.
“진짜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동기 놈이네….”
나는 호메르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특별반 망신은 호메르가 시킨다.’, ‘호메르 한 마리가 특별반을 흐려 놓는다.’, ‘백로들 노는 곳에 호메르야 오지 마라.’ 등등 여러 속담의 뜻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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