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199)
2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내가 영웅 육성 클래스에…. 엄마아…….”
조교의 안내에 따라 교수동으로 이동하는 내내, 아카샤는 귀신이라도 씐 듯 중얼거렸다.
“진짜? 진짜로? 진짜로 영웅이 되는 거야?”
참으로 호들갑스러운 반응이긴 했지만, 동기들은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녀의 처지에서는 청약, 로또, 코인 상승 등등과 비견될 만한 천운이 찾아온 셈이었으니까.
물론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귀한 영약을 물처럼 먹인 내 기준으로는 떨어질 뻔한 것도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이었지만.
아카샤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영웅이 되어 꽃길만 걷는 분홍빛 미래가 그리는 듯, 몽롱한 헛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괜히 찬물 뿌리기 싫어 낄낄거리며 그대로 두었다.
어디 훈련이 시작된 뒤에도 저렇게 얼빠진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보자.
“……왜 그런 표정을 짓죠?”
“내가 뭘?”
“표정이 뭔가 흉계를 꾸미는 마인 같잖아요.”
“말이 좀 심하네…….”
크라우의 특별 훈련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은 장난으로 치부될 만큼.
사자 식 자기 새끼 절벽 밀기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로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리지 않는다고 한다.
뭐라더라. 자기 새끼가 아니고 다른 무리를 침공해 왕좌를 차지한 사자가 전임자의 아이들을 학살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크라우는 제 제자를 충분히 절벽에서 굴러 떨어트릴 인사였다.
아니, 문자 그대로 절벽에서 밀어 버린다. 교육 시작 2주 만에 일어날 일이다.
우리는 끝도 없이 호들갑을 떨어 대는 아카샤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하며 교수동에 도착했다.
교수동 시설 공방에 들어서자 한 명씩 다른 연구실로 안내받았다.
내 앞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사수족 여전사가 앉아 있었다.
단련된 근육으로 전반적으로 다부지다는 인상을 풍겼고, 네 개의 팔 모두 내 허벅지보다 두꺼웠다.
어느 만화의 격투타입 포켓몬이 떠오르는 비주얼이다….
“생도의 전투슈트 제작을 맡게 된 라즈라예요. 반갑습니다. 앉으세요.”
“네. 러셀 애시그린입니다.”
“놀라지 않는군요. 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시선 처리를 어려워하던데.”
“사수족을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라서요.”
“그렇군요.”
이제라의 대표적인 사수족은 이단심문관 사도회장 카텐카가 있었다. 로벨리아 납치 사건의 트리거가 되었던 그 인물 말이다.
카텐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수족은 대장장이 일에 전념한다. 판타지 세계의 드워프와 같은 일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예와 과학기술에 모두 능한 일족이면서도 동시에 잘 싸운다. 기본적으로 사수족은 신체 능력이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으니까.
“잠시 외투와 아머드 파츠를 벗고 이쪽으로 서 보세요.”
나는 그녀가 가리킨 곳에 서서 양팔을 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더듬더듬 내 몸을 만지기 시작한다.
“흐음. 보기보다 체격이 있군요. 잘 단련된 몸이에요.”
“간지럽습니다만….”
“흐흐, 사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수치로 재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치수를 판단하는 게 더 편하고 정확해서.”
사수족 대장장이는 재미난 농담을 던졌다는 듯, 허허 웃고는 치수 재기를 이어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서탁 위의 종이에 알아볼 수 없는 언어와 그림을 쓱쓱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어떤 디자인을 원하죠?”
“디자인도 바꿀 수 있나요?”
“색상을 넣는다든가, 상징물을 장식한다든가 정도는 가능하죠.”
“오….”
– 은색. 나는 은색이 좋단다.
“시끄러워. 아, 요 여우한테 한 말이에요.”
나는 갑작스레 끼어든 하니앤의 말을 일축한 뒤 내가 원하는 색깔을 말하려 했다.
영롱한 파랑이 좋겠어.
하지만 그 순간, 하니앤의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 내 아머드폼 색깔은 반짝이는 은색이란다! 영웅의 슈트 색깔과 신수병기의 색깔이 다르면 그만큼 흉한 게 없지 않겠니!!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거야!!
“…….”
뭔가 간절하게 외치는 게 좀 미심쩍기는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깔맞춤을 해 놓는 게 보기도 좋을 것 같고.
“그럼 유광 은색으로 부탁드립니다.”
“클래식한 색깔이군요. 장식은요?”
-여우! 여우를 넣어 줘!
“장식은 괜찮아요.”
-계약자야….
거참 욕심도 많고 시끄러운 애완여우네.
“혹시 강아지용 입마개 같은 것도 제작 가능한가요?”
하니앤을 바라보며 던진 내 진지한 물음에 하니앤이 입을 그대로 다물었고, 라즈라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들리지 않아도 대화 내용을 모두 알 수 있겠다고 덧붙이며.
“슈트는 어떤 타입을 원하나요?”
라즈라는 질문을 던지고선 설명을 부연했다.
전투슈트의 타입은 내장 기능에 따라 4가지로 나뉘었다.
스텔스 기능을 삽입한 은신 타입.
경도와 강도를 올리는 강화 타입.
스피드를 높이는 속도 타입.
권능을 미리 캐스팅해 놓거나, 여분의 소울을 저장해 둘 수 있는 주문 타입.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은신 타입으로요.”
내 [그림자 걷기]와 연계로 활용하면 순간적으로 완벽한 런 각을 잡을 수도 있고, 기습의 효율을 훨씬 올려줄 수 있는 기능이다.
“확인했어요. 가동파츠는 어디로 할까요?”
“건틀릿, 오른손만요.”
“지금 쓰는 건틀릿을 가동파츠로 붙여 드리면 되겠군요. 혹시 뺐으면 하는 기능이 있나요?”
라즈라는 슈트의 대략적인 디자인과 스펙, 그리고 기능들이 들어간 상세설명서를 내밀었다.
무슨 자동차 대리점에 와서 물건을 주문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슈트에는 기본 내장 기능이 꽤 많았다.
카오스게이트 진입이나 수중 전투를 대비한 외부 대기 차단과 산소 공급 기능.
인근 슈트들끼리 음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기능.
마기에 의해 신체가 절단되더라도 소실되지 않도록 잡아 주는 보호 기능.
혹여 영웅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실족사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일시적 체공 기능까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화염, 냉기, 저주, 공포 등 대부분의 상태 이상에 면역까지는 아니어도 저항력을 크게 높여 주는 기능까지 들어 있었다.
고지대, 수중, 용암지대, 카오스게이트, 지저 등등 언제 어디서든 싸울 수 있게 만들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제라에서는 과학기술을 최대한 배제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후후. 정확히는 레인가르의 기술이지만요. 어찌 개인의 의지로 인간의 학구열과 호기심, 그리고 생존본능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전쟁 말고 일상생활에도 과학기술을 좀 접목시켜 주면 좋겠는데요.”
“그건 여왕께 직접 고하시길. 빼고 싶은 기능은 없지요?”
“네. 전부 다 넣으면 안 좋은 점이 있을까요?”
“연비가 나빠지죠.”
“그건 좀 큰일인데…. 체공 기능 같은 건 빼도 되지 않을까요?”
“공습 작전 같은 경우에 종종 쓰이긴 해요. 이를테면 비공정이나 비행선에 영웅들을 태우고 상공에서 그대로 투하해 버리는 작전이요. 없다고 죽거나 하진 않겠지만, 공중에서 그대로 떨어지면… 통증은 꽤 있을걸요?”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냥 다 넣어 주세요.”
연비 나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잘 생각했어요. 그럼 슈트의 코어는 어디로 둘까요?”
코어는 말 그대로 슈트의 엔진이자 약점이다. 코어가 부서지면 슈트는 그대로 기능을 잃고 정지한다.
“심장.”
“좋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보호하기 쉬운, 중요한 부위에 위치시키는 것이 국룰이었다.
“대충 설계는 이 정도면 충분할 듯하네요. 고생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얼마나 걸릴까요?”
“크라우 경의 전담 훈련을 받는다고 했죠. 아마도 그전에는 완성해야 할 듯싶네요. 기존에 있던 슈트를 사이즈만 변경하고 최대한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니 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공방이야 워낙 잘 준비되어 있기도 하고.”
“여기서 제작하세요?”
“그러라고 하네요.”
라즈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집 센 장인들은 자기 공방 외에서는 작업하지 않는다던데… 역시 여왕의 명령은 끗발이 다르긴 한가 보다.
* * *
이제라.
티렐 왕성.
“우와… 여기가 성도구나.”
휴고는 드문드문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철통처럼 솟은 성벽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두리번거렸다.
나는 촌티 내지 말라고 구박하며 휴고의 머리를 앞으로 고정해 주었다.
“티렐은 처음이야?”
“어릴 때 몇 번? 그런데 잘 기억은 안 나.”
“의외네. 이 근방에 살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만 마을 밖을 나갈 일이 적었거든. 사관학교에 비교해서 건물들이 높지는 않구나. 뭔가 분위기도 예스럽고. 그래도 거리가 정말 아름답긴 하네.”
나와 휴고가 떠들고 크라우가 지크프리드의 편자를 다듬어 주는 사이, 뒤늦게 루트비히가 검문소를 통과해서 들어왔다.
“늦었잖아. 그러니까 같이 하니앤 타고 오자니까.”
여왕 디에네에게 초대받은 이는 총 넷.
나와 휴고, 루트비히 그리고 크라우였다.
크라우는 인솔자 겸 계승자로서 따라왔는데, 낯가림이 심한 두 남자 덕분에 여행길 내내 혼자서 크라우의 말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크라우와 친해져야 하는 미션이 있었으니 나쁠 일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좋은 전투 팁들을 얻기도 했고.
아무튼 나는 하니앤을, 크라우와 휴고는 지크프리드를 타고 왔고, 루트비히는 신수는 탈것이 아니라며 홀로 날아왔다.
“…저는 괜찮아요. 신수는 탈것이 아니니까요.”
– 그렇긴 하지. 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렴. 계약자야.
– 나는 딱히 상관없다만.
– 너는 여전히 무던하구나, 지크프리드.
근데 신수병기는 탈것 맞잖아…?
나는 그렇게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제 신수들을 거의 가족처럼 아끼는 계승자에게는 뭔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힐 테니까.
“얘들아!!”
티렐 왕성으로 들어가는 내성 입구에는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에는 검은 갈까마귀를 올려두고, 머리 위에 전투드론을 둥둥 띄운 채 손을 붕붕 흔드는 익숙한 얼굴.
레인가르의 학생회장이자, 카즈란의 계승자이면서, 천재 기계광 우유나였다.
“오랜만이야! 휴고는 여전히 잘생겼네! 러셀은 여전히 무표정하고. 좀 웃고 다니는 게 어떨까? 우리 꼬마 루트비히도 오랜만!”
“꼬마가 아니라니까요….”
질리지도 않는 늘 듣던 놀림과 늘 듣던 반박이 오가고, 유나는 크라우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크라우 님이시죠? 저는 레인가르에서 온 우유나라고 해요.”
“안녕. 말로만 듣던 레인가르의 새 계승자를 만나게 돼서 반갑네.”
-카즈란!
인간들끼리 해후를 나누는 사이, 세 신수도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말과 여우와 갈까마귀가 서로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인사하는 모습은 흡사 브레멘 음악대가 따로 없었다.
“유나도 초청받았구나.”
“응. 그나저나 세 사람도 계승자였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네….”
휴고의 말에 유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알려진 현직, 예비 계승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모아 두니 뭔가 확실히 마신과의 최후 전투가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다.
초대의 객들이 모두 모이고. 성문이 열림과 동시에 분홍 단발머리를 한 여성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나와 크라우를 제외한 그 자리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마족이잖아요?’
루트비히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왕성의 성문에서 걸어 나온 인물의 정체는, 마족. 호문클루스였다.
“안녕하세요, 계승자 여러분. 저는 여왕 폐하의 명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메르세데스라고 합니다.”
마족은 마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신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계승자들은 숨겨 둔 마족 특유의 마기도 감지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 자 특유의 이질적인 느낌이 풀풀 풍기고 있었기에.
빳빳하게 굳은 휴고와 루트비히와 달리 크라우는 익숙한 듯 메르세데스와 눈인사했다.
“아는 마― 사람인가요?”
휴고의 질문에 크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디에네에게 맡겨 둔 아이지. 너희보다 나중에.”
메르세데스는 로벨리아처럼 타라노르에서 크라우가 직접 꺼낸 호문클루스였다.
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트비히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듯 빤한 시선을 보냈다.
“지금까지 호문클루스를 추적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죠?”
“요 꼬마가 직접적이기도 하네.”
크라우는 이것 보라는 듯 혀를 차고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직은 너희가 알아도 될 사안이 아니야. 이건 뭐랄까… 어른들의 사정이랄까? 조금 더 자라고 오면 그땐 알려 주지.”
“저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다고요.”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나는 루트비히의 어깨에 팔을 걸고선 끼어들었다.
“뭘 물어보고 있어. 지금까지 호문클루스 전부 다 타라노르에서 데리고 나왔거나 그곳에서 발원했잖아. 그 왕국이 뭔가 마족을 만드는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거지.”
날 바라보는 크라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틈에 루트비히가 빠르게 내 팔을 어깨에서 쳐냈다.
요 츤데레 녀석….
나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를 단순한 애들로 보고 있는 거라면 마음을 좀 고쳐먹으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크라우 경. 저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자각하고 계신다면 솔직히 공유해 주실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래 봬도 다 계승자들이야.
내 기름칠 섞인 혓바닥에 휘말렸는지, 크라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 대신 특유의 말투로 불평을 내뱉을 뿐이었다.
“넌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제가 왜요? 어제까진 재밌는 녀석이라고 좋아했으면서.”
“난 애들은 애들다워야 한다는 주의거든.”
“애들이 애들답지 못할 만큼 세상이 개 같은데요, 뭘.”
“하하하, 그건 부정하기 어렵군.”
“그리고 곧 스물이면 애들도 아니죠.”
“하긴, 너는 일단 액면가가 청소년으로는 보이지 않지. 혼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너스레를 떠는 크라우의 인신공격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어지며 남은 세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들은 그렇다 치고, 신수들까지 낄낄거리는 모습은 확실히 부아가 치밀었다.
“열받네….”
진짜 세계관 최강자만 아니었으면 곧바로 꿀밤형이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