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03)
2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시설동 의무실.
호메르는 비통한 표정으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곤 있지만, 좀처럼 분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것도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영웅 육성 클래스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애초에 특별반 중에서도 하위권에 간신히 걸쳐 있는 재능이었으니까.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고 위의 놈들은 빠르게 치고 나갔으며, 아래의 놈들은 끊임없이 제 자리를 위협하고 올라왔다.
다만 그래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자부심은 진짜였다.
두 번의 큰 사건을 겪으면서 실전 능력만큼은 지지 않을 거라고. 특히나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들에겐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압도적인 패배.
심지어 같은 사수 클래스에게 져 버렸다.
한 발도 맞추지 못했고, 한 발도 피하지 못했다….
‘그만둘까… 사관학교….’
만약 지금이 전시가 아니어서 자퇴 후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퇴소하면 곧바로 부사관으로 전장에 끌려 나가는 상황.
솔직히 전장이 주는 미지의 공포는 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호메르, 괜찮아?”
병문안을 온 훈련소 동기가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녀석도 처음엔 특별반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B클래스까지 추락해 버렸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리들이었던 거다….
“웬일이냐, 네가.”
호메르는 괜히 불퉁하게 대꾸했다.
아무리 왕래가 적어진 동기라고 해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전해 줄 소식이 있어서. 너 러셀 애시그린이랑 친해졌다고 했잖아.”
“……그랬지.”
불현듯 그가 훈련소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떠들어 댔던 게 떠오른다.
러셀 녀석이 자길 인정하고 중요 전투 때마다 도움을 요청했다고.
그래서 과거의 케케묵은 감정은 씻고 서로를 인정했다고 말이다.
물론 동기들이 순순히 믿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놈들이 믿든 말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도 우연히 들은 소식인데, 그 녀석이 편입생 상위권 생도들에게 결투를 신청했대. 혹시 못 들었을까 봐. 전해 주러 왔어.”
“……?”
호메르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러셀이라면 바로 어제까지 여왕 폐하의 초대로 왕성에 다녀온 길 아니던가.
그런 녀석이 갑자기 복귀하자마자 편입생들을 족치러 갔다?
그건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인 행동에 가까웠을 거다.
설마, 나 때문에…?
내 복수를 해 주러…?
흔히 동기들 사이에서 러셀은 ‘한없이 까칠하지만, 그 속은 따스해 누구보다 제 사람을 챙긴다.’라고 평가됐다.
비록 그 얘기를 들었을 당시만 해도 그는 ‘그 망나니가 무슨…. 지 내키는 대로 하고 다니는 미친놈이지.’라고 치부했었지만, 막상 그 ‘제 사람’에 자신이 들어간 순간 먹먹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호메르는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 * *
“그래서, 한번 붙자고 찾아온 거야?”
“그렇지. 뭐, 서열 정리랄까.”
“밥 먹는데 갑자기 와서 왜 분위기 잡나 했더니. 아, 그 튀김도 먹어 봐라. 맛있네.”
“튀긴 건 느끼해. 난 굽네파다.”
“……뭔 파?”
레오는 날 한번 힐끔 바라보고는 한 숟가락 크게 떠 음식을 입에 때려 넣었다.
거, 녀석. 맛있게도 먹네.
먹방 유튜버 했으면 성공했겠어.
나는 레오에게 질세라 입 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었다.
레오가 식사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안전 예방 교육을 해 주러 찾아왔을 때, 녀석은 한창 식사 중이었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려 했건만, 워낙 맛있게 먹어 대는 통에 허기가 느껴져 같이 먹는 중이었고.
“여기는 진짜 천국이네. 아이언월 장학생 식당은 빵, 수프, 샐러드, 그리고 메인디시가 끝이거든. 그래서 나는 라쿠에게 도시락을 배달받았었어.”
레오는 자신의 애완동물 라쿤, 라쿠(라쿤인데 이름이 라쿠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저 라쿤이 신수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저건 그냥 영특한 너구리과 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흐아, 맛있다. 아무튼, 갑자기 왜? 그 호모르인가 뭔가 하는 동기의 복수라도 하게?”
“뭔 소리야. 그런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 같은 놈 챙겨 줄 의리는 없다.”
“풉, 그럼 왜?”
“그냥 서열 정리지. 누가 위고 아랜지는 잡아 둬야 앞으로 생활이 편하지 않겠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불필요한 싸움은 안 해. 악인만 사냥한다는 주의거든. 듣자 하니 너는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 사람마다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나는 소문보다는 사실만을 판단하는 편이라서. 참, 지난번에는 오해해서 미안했다.”
“어?”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레오는 착한 녀석이지만, 자존심도 강하고 나름 제 강함에 대한 긍지도 높은 편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순순하게 굴 줄은 몰랐다.
“뭐,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는 건 못 참지만, 네가 악인이 아니고, 이 구역 대장이라면 굳이 이겨 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어. 학사 생활 중에 무슨 일이 터지면 잘 협조할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러냐? 나도 잘 부탁한다…?”
“혼자 먹기 적적했는데 덕분에 재밌었다. 나중에 훈련 때 보자.”
레오는 웃으며 인사하고는 홱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이게 아닌데…?
* * *
“제가 예비 계승자님과 싸운다구요…? 그럴 수 없어요. 저는 아직 닉시드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없거든요. 닉시드와 계약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지금은 다른 것보다 힘을 다루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니…….”
레오에 이어 도미니엘에게도 퇴짜를 맞았다.
레오는 싸운다면 자신은 있지만, 굳이 나와 척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었다면… 도미니엘은 아예 자신이 강자라는 자각조차도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운 좋게 좋은 가문에 태어나, 운 좋게 닉시드의 눈에 들어 힘을 얻은 부족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듯.
‘시기상 힘을 제대로 각성하기는 전이겠구나.’
도미니엘은 사이드 에피소드인 ‘사브와라의 혹서’ 이후 본격적으로 힘을 각성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스스로를 반편이 취급하는 자존감 낮은 상태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등장인물이었다.
큰일 났다….
안전 예방 교육을 시키려고 왔는데, 수강생들이 이미 가르칠 게 없는 상태였다….
아니 왜 이렇게 하나같이 투쟁심이 없어?
그나마 다행히도, 라드와 소속 사관생도 씨씨는 내 교육 수강을 흔쾌히 수락했다.
“뭐! 결투? 킁,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이탄 부족은 결투를 피하지 않거든! 킁, 으, 그나저나 도대체 인간들의 마을은 왜 이렇게 공기가 탁한 것인가. 코가 간지러워서 살질 못하겠군.”
“지금 바로 할까?”
“좋―지! 그 전에 악수나 한번 해 주겠나? 네 소문은 잘 들었다! 킁, 대륙의 유명 인사를 만나게 되어 반갑구만!”
개의 얼굴에 근육질의 덩치를 가진 씨씨는 내 손을 붙잡은 뒤 손을 뱅뱅 흔들었다.
그보다 꼬리는 왜 풍차마냥 돌리고 있는 걸까.
이게 결투를 앞둔 사람의 자세가 맞는 거야…?
내 생각보다 편입생 탑 삼인방의 성격이 너무 순했다.
그림로어 사관생도들에게 싸움을 걸지 않는 게 적당히 타이밍을 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성격은 내 소설보다 원작 게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모양이다.
“참, 미리 말하지 못했는데, 킁. 나는 아피흐 상단 소속이다. 앞으로 한배를 탔단 소리지.”
“뭐? 언제부터?”
“편입식 전에 사브와라에서 코리 하이만 도련님과 만나 계약을 맺었지. 내가 살면서 그리 후한 대접을 받아 볼 줄은 몰랐단 말이야. 킁.”
…코리 이 유능한 자식.
알아서 침 바르고 감아 놨네…?
시설동 훈련장에 도착할 즈음, 어디서 소식을 들은 건지 생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있었다.
아무튼 싸움 구경 좋아하는 녀석들이라니까. 뭔 결투만 한다 치면 어디서 들었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구경하는 것도 이젠 놀랍지 않다.
힐긋 훑어보니 2학년들 말고도 1학년들이 더 많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 인사 한번 하는 녀석들이 없다.
그저 힐끔힐끔 쳐다만 보는 게 호메르가 기강 잡는다고 날뛰는 게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뭔 인사도 안 하고 꼬나보고 있어? 확 눈깔들을 뽑아 버릴라.”
내 으르렁거림에 곧바로 시선들이 흩어졌다.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안 그러냐?”
씨씨는 뭐가 웃기는지 ‘거친 소년이구만!’하고 소리친 뒤 껄껄 웃어 대기만 했다.
그사이 인파를 헤치고 달려온 미마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언제 왔어?”
“방금.”
“다른 애들은?”
“몰라.”
미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고는 내 왼쪽에 자리 잡고 걸었다.
오른쪽엔 개 퍼리에 왼쪽엔 다람쥐 수인, 어깨엔 은여우 애완신수라.
사관학교가 동물농장이 되어 버린 건에 대하여….
그렇게 도착한 2학년 훈련장.
그곳에는 이미 한 무리의 생도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였다.
“……뭐야, 니들?”
문제는 놈들이 2학년이 아닌, 1학년 후배 놈들이라는 것.
멀쩡히 자기들 훈련장을 놔두고 시건방지게 선배들 훈련장을 점거하고 있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는 내 안에서 요동치는 꼽질 선임 DNA를 내리누르며 다소 삐딱하게 인사하는 후배 놈을 쳐다봤다.
“선배들 훈련장에서 뭐 하냐. 개 빠져가지고.”
“마침 아무도 안 쓰고 있길래 잠시 사용 중이었습니다. 러셀 애시그린 선배님 되시지요?”
“그런데?”
“선배님, 한 수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옆에 있는 미마를 바라봤다. 미마는 관심 없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름이 뭐지?”
“디아스포라 뮨입니다.”
“뮨? 벨로나 경의 가문이네?”
“직계는 아닙니다.”
“그래도 명가 출신이니 싸움은 잘하겠는데. 수석?”
“예. 부끄럽지만.”
나는 그제야 이 상황을 파악했다.
1학년 수석이 2학년 훈련장에 쳐들어와 선배들이 들어오는 족족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장학생들이야 야외 훈련장에 올 일이 없으니 대부분 A클래스 이하의 어중간한 생도들과 부딪혔을 거고 몇몇은 패했을 터.
아무리 1학년 수석이라 해도 후배들에게 깨지는 게 민망한 2학년이 훈련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결국 1학년에게 훈련장 자리를 뺏긴 것이다.
‘요 깜찍한 녀석 보소….’
말은 부끄럽다고 하지만,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다.
아마 가문에 지대한 자긍심을 가진 녀석일 거다. 뮨 가문은 특무대 팬텀 소속 벨로나로 대표되는, 대륙에서도 내로라하는 영웅 명가였으니까.
“저를 꺾으신다면, 1학년들의 도전은 더 받으실 일 없으실 겁니다.”
“근데 내가 2학년 실질적 수석인데, 바로 나한테 달려오는 건 너무 시건방진 것 아니냐. 네 실력이면 저기 병원에 누워 있는 호메르부터 상대하고 와야 할 것 같은데.”
곧바로 디아스포라의 인상이 찡그려진다.
“그 사람이 싸우는 건 이미 보았습니다. 솔직히 제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선배님.”
“그 사람이라니, 걔도 네 선배야 인마.”
“저는 존경할 만한 이에게만 경칭을 사용합니다. 인성이든, 실력이든요.”
아이고 호메르야….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내 전용 샌드백이자 전투력 측정기라지만, 미운 정도 정이랬다.
1학년 풋내기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걸 보는 건 뭔가 마음이 좋지가 않단 말이지….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안전 예방 교육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남아 있어서.
하마터면 실직자가 될 뻔했지 뭐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