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04)
21.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나는 선약이 있으니까. 예절교육은 다른 녀석에게 맡겨야겠다. 미마, 네가 후배 교육 좀 해 줄래?”
“내가?”
“어어.”
“강도는 얼마나?”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한 대도 안 맞고 초주검. 알겠어.”
“야, 초주검까지는 아니고.”
“빈사 상태.”
“아니… 뭔가 익숙한 대화인데 이거? 아무튼 네 마음대로 해라. 죽이지만 마.”
“응.”
우리의 대화를 들은 디아스포라가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얘가 직전 학기 전체 수석이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사실상 2학년 한 손가락 안에 들지. 해 볼 테냐?”
“무단 외출 때문에 수석을 놓치셨다 들었습니다. 이분을 이기면 저와 상대해 주시는 겁니까?”
“아니, 뭐 그런 것까지 알고 있어? 스토커냐?”
“선배님의 소문은 워낙 유명해서요.”
“이기고 와라, 이기고. 제발 죽지는 말고.”
내 진심 어린 부탁에 디아스포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그 표정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보자고.
디아스포라의 상태는 대충 호메르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권능 구성이나 전투력을 보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정도.
녀석에게 전투 센스가 있다면 이길 것이고, 없다면 지거나 승부가 나지 않을 느낌이었다.
물론 호메르를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 * *
“크흐, 졌다.”
“화염술사라니. 확실히 신선한 전투 스타일이긴 하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난장판이 된 훈련장을 훑어봤다.
화염계 전투 마도사.
씨씨의 전투 스타일은 사실상 근접 딜러에 가까웠다. 마치 레인가르의 제라토처럼.
녀석은 화염의 정령왕 말리쿠스를 섬기는 가문의 가신이라고 했다. 도미니엘처럼 정령왕의 직속 후계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화염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건 알겠다.
결과적으로 결투는 내 압승이었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씨씨는 내 모든 권능을 다 끌어낼 정도로 잘 싸웠다.
화염 계열 권능들의 위력도 만만찮았지만, 막강한 근력과 맷집으로 압박하는 인파이팅 능력이 일품인 녀석이다.
‘주연급이네.’
파나 에뜨랑제와 붙어도 해 볼 만한 역량의 전력이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니 앞으로 좀 잘 챙겨야겠다.
“그나저나, 저 소년은 그대로 둬도 괜찮은가?”
씨씨의 시선이 디아스포라를 향했다.
녀석은 만용의 대가를 치르듯, 훈련장 한쪽 바닥에 초주검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당장 치료받아야 할 것 같은데, 미마가 기절한 녀석을 깔고 앉아 있어 차마 1학년들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주디. 치료해 줘.”
나는 전투 중에 구경하러 나온 주디를 불렀다. 그녀의 권능이 디아스포라에게 내려앉고, 곧 녀석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허억!”
녀석은 눈앞에 얼굴을 들이민 나를 보더니 앉은 자세로 뒷걸음질 쳤다.
“어이 꼬마야.”
“예, 예?!”
“한 대는 때렸냐?”
“…….”
“그냥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네? 다시 싸우면 이길 것 같아?”
“…….”
디아스포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씩 웃으며 녀석의 뺨을 툭툭 쳤다.
“2학년 중에는 저 미마랑 박 터지게 싸우는 애들이 열 명은 넘거든?”
“저,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심지어 어떤 놈은, 시비 걸면 네 몸을 5등분 시켜 버릴 정도로 잔혹하다고. 그러니 까불지 말고. 앞으로 2학년 훈련장에서 눈에 띄면 너, 변사체가 된다?”
“…….”
“뒤질래? 대답.”
“예!”
“그리고 인사 똑바로 하고 다녀라. 특히 특별반 선배들 보면 대가리 90도로 숙이고. 1학년들이 뭔가 사고 쳤단 소리 들리면, 바로 너부터 소환이야. 알겠어? 네가 늘 대표로 처맞을 거다.”
“아, 아 알겠습니다.”
“보니까 너는 1등 안 놓칠 것 같다. 애들 관리 잘해라.”
“예…….”
“가 봐.”
내 허락이 떨어지자 디아스포라와 1학년 꼬꼬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나는 고고하게 들고 있는 미마의 턱을 살살 긁어 준 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도 선행 스택 잘 쌓았다.
“왜 그렇게들 봐?”
“러셀이 선배들 두들겨 패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라서….”
뭔가 묘한 표정을 짓는 동료들의 말에, 나는 당당하게 잡아뗐다.
“글쎄, 난 기억이 잘 안 나는걸.”
디지털 치매인가.
요새 기억이 자꾸 깜빡깜빡한단 말이지.
* *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작고 소소했던 예절 교육이 있고 난 며칠 뒤.
학사 부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후배 녀석들이 머리를 땅바닥까지 처박고 우렁차게 인사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티를 팍팍 내고 다녔던 1학년들은, 선배들을 보면 누구 가릴 것 없이 대가리를 처박았다.
아아….
이게 옳게 된 사관학교란 것이다.
이제야 혼란스럽고 거꾸로 돌아가던 기강이 바로잡히고, 모든 질서가 원래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모름지기 신병, 신입사원, 새내기 입학생들은 저런 태도를 취해야 하는 법이다.
비록 서로의 얼굴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상황.
1학년들끼리 서로 이름을 모르면 동시에 머리를 처박거나 1학년에게 인사를 받은 동급생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는 우스꽝스러운 부작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미래를 여는 선진 교정 구현.
법과 질서의 확립.
희망과 내일이 있는 교정 등등.
흔한 교도소 캐치프레이즈처럼, 사관학교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게 중요한 거다.
나는 뿌듯함을 느끼며 상큼한 후배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해 준 뒤, 교수동으로 향했다.
내 인사를 받은 후배 한 명이 꺅꺅거리며 돌고래 소리를 낸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아무리 사관학교가 동물농장이 되었다지만, 돌고래 수인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으니까.
“도공 교수님, 저 왔습니다.”
“왔어요?”
내가 향한 곳은 교수동의 기갑병기 제작실.
프리마관 양 싸대기를 때릴 만큼 화려한 제작실 한구석에 내 슈트를 만들어 준 사수족 대장장이 라즈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 이건가요…!”
그녀의 제작실 정중앙에 마네킹 위에 입혀진 은빛 슈트 한 벌이 자리했다.
“맞아요.”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전투슈트는 내 몸과 영혼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살면서 말을 더듬어 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명색이 입을 털어 먹고살았던 과거를 지녔기에, 웬만큼 당황하지 않고서는 말을 더듬지 않는 나다.
그렇지만 내 낭만을 실현해 줄 슈트를 눈앞에 둔 순간, 나는 떡 벌어질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이었다.
“우, 와… 존나 멋있어….”
기실 지금까지 지켜봐 온 슈트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외형이었다.
하지만 저게 내 슈트라는 걸 생각하니, 어딘지 훨씬 멋있고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너무 무겁지 않게 체형에 딱 맞게 달라붙는 외피, 이중으로 합금 처리했는지 살짝 두꺼워 보이는 팔다리, 깔끔하게 마감된 헬멧, 번쩍번쩍 에너지를 뽐내는 원자로 코어까지.
심장부에 달린 원자로 코어는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 물론 저 코어는 여닫이식이다.
전투 중에는 그 위치에 코어가 달렸다는 사실을 적이 알 수 없도록 설계된.
헬멧 부분에는 얼굴 절반이 보이는 반투명한 여닫이 고글이 장착되어 있었고, 귀 뒷부분에는 몇 가지 버튼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은색 톤이었지만, 종종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롭게 섞인 슈트였다.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나는 MK 슈트 시리즈를 만난 아이언맨이었으며, 비브라늄 슈트를 만난 블랙 팬서였다.
“표정이 백 마디 말보다 저를 더 기쁘게 만드네요. 제가 슈트를 제작해 준 영웅 중에서 가장 뿌듯해지는 반응이랄까요.”
“메탈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어떤 시련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 차갑지만 약한 자를 감싸 안는 따뜻함을 가졌을 겁입니다….”
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희대의 명 카피라이트에 샤라웃을 보내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출했다.
“하, 하하. 그래요…?”
라즈라는 상당히 당황했지만, 어쨌든 칭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자, 이제 착용해 보세요.”
“예!!”
라즈라는 전시된 전투슈트를 가동파츠로 바꾸어 주었다.
남은 것은 내가 최초로 마주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건틀릿 하나.
건틀릿을 오른손에 장착한 뒤, 소울을 주입해 슈트를 가동한다.
빛이 짧게 점멸하고, 슈트가 가볍게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묵직하지만, 불편함이 전혀 없는 착용감이었다.
“생각보다 가볍네요…?”
영웅 육성반 심사를 떠올린 내가 묻자 라즈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체형에 딱 맞는 슈트가 아니면 더 무겁고 불편하게 느껴지죠. 지금 상태라면 익숙해질수록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정도까지 편안해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그 정돈가…? 저는 그저 명령을 받고 제 일을 한 것뿐인데. 참,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과격한 인사를 받아 보기도 하네요. 거친 생도라고 소문 자자하던데, 역시 소문은 함부로 믿을 게 못 되나 봐요.”
내가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기능을 만져 보는 사이, 슈트에 달린 외장 송수신기 쪽으로 라즈라의 음성이 들어왔다.
“슈트 정비는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 받아야 해요. 인근에 아머드 마이스터가 있다면 임시 점검은 그쪽으로 받아도 되지만, 1년에 한 번. 정기 점검은 꼭 제게로 와야 합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저는 보통 티렐 왕성의 왕실공방에 상주하고 있어요. 외출하는 경우는 드무니 그쪽으로 오시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슈트를 불법 개조, 분해, 타인에게 양도하는 건 왕국법으로 엄금하고 있어요. 최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대죄입니다. 기술력이 마신군 쪽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꼭 신경 써 주세요.”
“물론이죠.”
“여기. 슈트 폭발 명령어입니다. 암기하고 파쇄하세요.”
“……예?”
라즈라는 밀봉된 메모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처음 듣는 개념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슈트 폭발?
그런 설정이 있었던가….
“만약 죽음이 확실시되는 순간, 당신의 시체를 동료들이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죽기 직전에 이 명령어를 외치세요. 그렇다면 이 슈트는 내장된 폭발 기능을 발동합니다. 그러면 슈트가 마신군으로 넘어가거나, 당신의 시체가 마신군에 농락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살벌하고 무서운 기능이네요….”
“최신 기종에만 내장된 기능이니 자랑스러워해도 좋아요. 물론, 모든 슈트에 해당 기능이 순차적으로 내장되긴 할 거지만요.”
“혹시 폭발에 살상력도 있나요?”
“만약 마신군을 꽉 붙잡고 있다면, 토벌급 한 마리는 날릴 수 있는 폭발력을 내장해 뒀어요.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이라는 물질인데, 레인가르에서 이번에 개발된 합성물질이라 하더군요.”
“……유나의 짓이군.”
유나가 본격적으로 에피소드에 합류한 뒤부터는, 전투슈트에 점점 기괴한 기능들이 탑재되기 시작한다.
정확히 어떤 기능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때그때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싶을 때, 편의주의적으로 매번 유나의 이름을 팔았을 뿐이니까.
그 스노우볼이 지금 구르고 있는 것이었다.
라즈라는 그 뒤로도 전투슈트 이용 시 주의사항을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소년 영웅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지만, 전투슈트 사용자는 매년 최소 사냥해야 하는 마신군 수까지 정해져 있다고 하니… 얼마나 이 슈트를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할 것은.”
라즈라는 마지막이라 덧붙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슈트에 너무 익숙해지지는 마세요. 슈트에 익숙해진 영웅들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시점이니까요.”
* * *
“반갑다. 아가들.”
전투슈트의 배급이 끝난 뒤.
그 다다음 날, 본격적으로 20인의 생도들이 소집되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도열한 생도들 앞에서 크라우는 볼을 긁적였다.
“음. 뭐부터 설명해야 하지? 나는 뭘 가르치는 덴 젬병이라서 말이야.”
크라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 하고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군부에서는 너희를 생도분대(Cadet squad)라고 부르던데. 소속은 사관학교지만, 여차하면 실전 임무에도 바로바로 투입될 수 있는 하나의 전투 집단이라고 보면 된다.”
생도분대.
그것이 영웅 육성 클래스의 정식명칭이 되었다.
“그러니 첫 번째 순서는, 분대장을 정하는 것이겠지? 일단 간단한 테스트를 몇 가지 진행해 보자.”
크라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전투슈트의 헬멧, 생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야 한쪽으로 스크린 모드가 발동됐다.
“뭐,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닐 거야. 지금부터 행군을 시작할 거다. 자 스크린에 떠오른 지도를 봐라. 표시된 목표 지점까지 따라오면 된다. 첫 번째 테스트니까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낙오한 놈들은 지크프리드가 챙겨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도록. 하하!”
“……?”
“실화?”
“고장 났나, 이거.”
스크린에 떠오른 지도를 확인한 생도분대원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떠오른 목적지가….
대륙의 정반대 편.
웨더릭무어 남쪽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