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11)
22. 유령 해협
“쟤들 대체 뭐 하는 거야…?”
크라우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사브와라든, 이제라든, 타라노르든 틈만 나면 자신에게 후학 양성을 부탁해 오는 통에, 타그헬 유적지로 영웅 후보생들을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꽤 많은 후보생을 데리고 훈련을 시켜 봤어도 이런 결과가 튀어나온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크라우의 물음에 다이크는 난처하다는 듯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외람되지만… 세 사람은 러셀 애시그린 생도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사로운 감정.
아마도 연정을 뜻하는 것일 터다.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크라우가 묻고 싶은 것은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한가’였다.
“잠깐만. 그게 강해지고 싶은 욕망보다 우선한다는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단언하듯 튀어나온 대답에도 크라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쟤들 전부 사관학교 최상위권이잖아?”
“민망스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강함이란 늘 향상심을 동반한다.
위로 올라가려는 지독한 향상심이 있어야만 불세출의 재능도 꽃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상황은… 옛 전우의 말을 빌리자면, 저 세 사람은 머리가 꽃밭인 상황에서도 오로지 재능만으로 저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진정 그렇다면 참으로 마신도 울고 갈 악마의 재능이라 할 수 있다.
“…허 …참.”
“일단 떼어놓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야겠지. 자칫하다간 마신 침공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겠어. 아니,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 선생.”
크라우는 흡사 동물의 왕국 같은 참사를 끝내려던 다이크를 말렸다.
생도분대원 중 욕망의 항아리에 지배당하지 않은 분대원, 빌레나 모드리안이 러셀의 앞에 선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빌레나에게 향했다.
“명색이 영웅 후보생이자 차기 계승자라는 애가 질질 흘리고 다니니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더러워.”
차마 동기생에게 할 수 없는, 그것도 그 성질 포악하기로 유명한 러셀 애시그린에게 떨어진 어마어마한 폭언에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 * *
상황을 차분히 관조하던 빌레나가 이 상황에 끼어든 이유는 단순했다.
계승자 크라우의 모든 시선이 이쪽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자신이 가장 큰 경쟁자라 생각하는 귀족 영애.
그녀와는 달리 가문의 인정을 받은, 재능을 물려받고 가문의 지원을 한 몸에 받는 진짜 귀족 영애, 리지 로즈 뎁.
리지는 빌레나에게 부러움을 주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열등감을 주는 원망의 대상이었으며.
가짜 귀족 영애인 자신을 비추는 면경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자 하나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문과 재능과 환경을 모두 가지고도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를 제 손으로 직접 무너뜨리고 싶었다.
종국에는 그 결과로 계승자 크라우에게 인정받아 로즈 뎁을 뛰어넘는 마도사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명색이 영웅 후보생이자 차기 계승자라는 애가 질질 흘리고 다니니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더러워.”
“뭐, 인마?”
하지만 막상 그 현장 앞에 서니,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이 솟구친다.
그것은 호기심이었다.
빌레나의 폭언에도 러셀은 강하게 반발하지 못했다.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맞을 터다.
그는 마치 먹잇감을 한입에 삼키려는 뱀 같은 두 동기에게 휘감겨 있었으니까.
리지 로즈 뎁은 얼굴이 새빨개져선 가쁜 숨을 내뱉으며 러셀 애시그린의 몸을 더듬는 중이었고, 미마는 하악질하듯 그런 리지를 계속해서 쳐내며 러셀의 옷가지를 뜯어내려던 중이었다.
러셀은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만 비틀고 있었다.
“참으로 꼴불견이네.”
빌레나는 순수한 감상을 그대로 내뱉었다.
이것도 묘한 일이다.
평소였다면 쓸데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욕망의 항아리가 부추긴, 요동치는 감정 때문일지도.
“시비 걸러 온 거 아니면, 얘네들 좀 떼어 줘 봐!”
러셀은 보기 드물게 유순한 말투로 빌레나에게 요청했다.
차라리 소 닭 보듯 하는 녀석들이었다면, 꿀밤 한 대씩 갈겨서 정신을 번쩍 들게 했을 텐데… 하필 이 녀석들에게 가진 그의 애착이 항아리의 볼모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꿀밤은커녕 떼어낼 힘도 생기지 않았으니까.
그저 팝콘이 되기 직전의 옥수수처럼 몸을 튕겨댈 뿐.
“옷 벗기지 마, 미친 자야!”
러셀은 제 앞섶을 풀어 젖히는 미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명색이 스승이란 작자들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방조할 뿐이다.
미친 스승들이 자칫하면 이곳 어린이들의 동심이 다 파괴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도와줘?”
“제발, 빨리!”
러셀은 느긋하게 묻는 빌레나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급한 것은 러셀이지 빌레나가 아니다.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 할 말을 이어 갈 뿐이다.
“그럼 한 가지만 대답해 봐.”
“뭐! 빨리!”
“비결이 뭐야?”
“……이건 또 뭔 뉴메타 염병이지?”
“그냥 학구적인 궁금증이야. 저 정도 되는 애들이 왜 저렇게까지 됐나 싶어서. 네가 성격이 다정하길 하니, 품행이 단정하길 하니. 신실한 것도 아니고 얼굴도 딱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적당히 반반하긴 해도 딱 그뿐인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하냐… 뭣이 중헌디….”
“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거든. 저 멍청이들이 죽고 못 살고 이 지경까지 된 게 궁금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의아하긴 해도, 그냥 말초신경에 뇌를 지배당한 어리석은 온실 속 화초들이라 치부했을 뿐.
하지만 그녀 또한 항아리 안에 들어와 있다.
단순한 욕망이라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환경.
그래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가장 큰 감정은 바로 호기심이었다.
“일단 이것들 좀 떨어트려 봐. 그럼 내가 설명해 줄게.”
“진짜 네 입으로 설명할 수 있어? 그건 또 대단한 자신감이네.”
“…….”
“나르시시즘?”
“너 진짜 뒤질래?”
“응, 수고.”
“미안해, 한 번만 도와줘!!”
곧바로 러셀의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저, 리지 로즈 뎁이 애걸복걸하고 있는 남자가 제게 애원하는 상황이라.
빌레나는 어쩐지 묘하게 차오르는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설명해야 해.”
[속박] [염동력]빌레나가 [속박]으로 두 동기의 움직임을 멈추고, [염동력]으로 러셀의 몸을 꺼내 제 옆으로 가져다 놨다.
러셀은 거꾸로 뒤집힌 채 둥둥 떠서 날아오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빌레나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러셀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됐지?”
“좀 더 곱게 꺼낼 방법은 없었냐…?”
“응. 손 닿는 건 좀 더러워서.”
“도와줬으니까 방금 건 꿀밤 하나 빼 준다.”
“제멋대로긴.”
뒤늦게 올라온 호기심을 위한 사전작업은 끝냈다.
‘빚을 하나 달아 두었으니 이야기는 천천히 듣기로 할까.’
빌레나는 애초의 목적이었던 ‘리지 로즈 뎁 박살 내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마도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지성이다.
그녀를 꺾기에 절호의 기회인 것은 맞으나, 고민되는 건 상태가 저래서야 도리어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아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무방비한 상태에 공격하기는….’
너무 비겁한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 러셀 애시그린이 쌩하니 언덕 위로 도망쳐 버렸다.
빌레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없는 걸까?
어떻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련 중 도망을―
“…내게서 러셀을 빼앗아 갔어?”
“넌 뭐야.”
그 순간, 빌레나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강렬한 적의를 온몸으로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지와 미마.
두 생도가 광기 넘치는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찰나 동안 두 짐승이 달려들어 제 전신을 갈가리 찢는 상상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학기 말 평가에서 두 사람의 싸웠던 모습도 뒤이어 지나간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듈 변경 완료.] [Serial Number:4-Machine Gun] [소울 에너지 출력 : 50%]“괜히 도와줬….”
[마력 폭풍]“으이이익!”
빌레나는 황급히 방어 마법의 술식을 전개했으나, 두 천재의 광기가 그녀를 먼저 집어삼켰다.
* * *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 인생은 무엇인가….”
일련의 소요로 훈련은 잠정 중단되었다.
생도분대원들은 욕망의 항아리 밖으로 죄 끌려 나왔다.
동기들은 실려 온 빌레나의 주변에 걱정스럽다는 듯 모여 있고, 정령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치료 권능을 쏟아붓고 있었다.
미마와 리지는 모포 위에 초주검이 된 채 기절한 빌레나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채였고.
나는 조금 전 언덕 아래 항아리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사태의 여파로 정신적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내 옆에는 유일하게 나를 챙기기 위해 앉아 있는 아카샤가 있었다.
동기 된 도리로서, 특히나 빌레나 모드리안을 두 짐승에게 제물로 바친 인간으로서 동기의 상태를 확인해야 마땅했으나.
이대로는 도저히 내 정조를 탐했던, 두 정신 나간 짐승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는 뜻이다….
“너도 가 봐….”
“에휴, 완전히 고장 났네. 아니에요.”
아카샤는 혀를 쯧쯧 차다가, 이내 복잡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 나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솔직히 이 훈련, 이렇게 위험한 것일 줄은 도저히 상상도 못 했다.
소설 속에서도 고작해야 한두 줄로 묘사해 버리고 끝냈던 구간 아니던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나는 졸지에 두 스승과 모든 분대원이 보는 앞에서 두 짐승에게 덮쳐져, 차마 말로는 그 장르를 설명하기 힘든 드라마의 주연이 될 뻔했다.
‘훈련, 재개될 수 있는 건가….’
나도 나지만, 그 녀석들도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거다.
지금이야 자신들이 반 죽여 놓은 빌레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그 속내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는 창피함 때문일 터.
적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미마야 버틸 수 있다지만, 자신이 고고한 귀족 영애라고 귀 아프게 떠들고 다니던 리지에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대단한 용기다.
나보다 더 죽고 싶어 할,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리지를 생각하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외따로 떨어져 먼 산을 바라보며 명경지수를 되찾기 위해 한참을 애를 쓴 결과 간신히 바스스 부서진 멘탈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동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일단 빌레나의 상태가 궁금했던 탓이다.
“잠깐만요! 어디 가요?”
“가 봐야지. 그래도 애가 다쳤는데 상태는 확인해 봐야 도리 아니겠냐.”
“아니, 지금은 좀…….”
“왜, 괜찮아. 대충 멘탈 수습했어.”
“그게 아니라요!”
“괜찮다니까. 야, 붙잡지 마. PTSD 오니까.”
나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려는 아카샤를 반사적으로 펄쩍 뛰어 털어낸 뒤 동기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빌레나, 괜찮냐…?”
나는 조심스레 파와 휴고 사이를 벌리고 얼굴을 내밀고 빌레나에게 물었다.
“히익―!”
하지만 반응한 것은 리지였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는 [인비저블] 마법을 걸고 사라져 버렸다.
미마는 그대로 돌이 된 듯 굳어 버렸고, 에뜨랑제는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사라져 버렸다.
“…….”
스무 명 넘게 모인 좌중이 한없이 고요했다.
“죄 많은 인간….”
나는 그제야 아카샤가 날 걱정한 게 아니라, 붙잡고 있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