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15)
22. 유령 해협
언노운이 이토록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예티들이 뿌려 대는 마기가 인근에 자욱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저온에서 움직일 때 마기를 감추는 ‘눈 아귀’의 특징 때문이다.
[그림자 걷기]로 아카샤를 타고 넘어온 나는 곧바로 아카샤를 밀치고는 튀어나온 눈 아귀의 거대한 아가리를 향해 창을 내리꽂았다.두꺼운 살가죽을 찢고 들어가는 감촉.
아귀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아카샤! 조심해!”
눈 아귀는 혓바닥에 창날이 꽂힌 그대로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이놈은 마신군 분류 중 ‘언노운’ 즉, 카오스게이트에서 흘러나온 이계의 생명체다.
그리고 언노운 괴수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질긴 생명력이다.
[석섬광]나는 패기를 싣고 창을 힘껏 휘두르며 눈 아귀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하지만 녀석은 머리가 너덜너덜해지는 타격에도 죽지 않고 달라붙었다.
오히려 네 등분으로 갈라진 머리를 아가리처럼 쩍 벌리고는 다시 한번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나는 빠르게 [사냥의 시간] 4단계를 발동한 뒤 이번엔 녀석의 몸뚱이를 횡으로 갈랐다.
골통을 부순 것으로 죽지 않는다면, 갈가리 찢으면 그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른 눈 아귀 한 마리가 아카샤의 발밑에서 튀어나왔다.
“아악!”
아카샤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슈트로 눈 아귀의 공격을 막아냈다.
동시에 아카샤를 노리던 아귀의 몸통을 내가 던진 창날이 꿰뚫었다.
[회수]나는 월광쌍익 2호기를 회수해 마치 작살로 물고기를 사냥하듯 두 마리째 눈 아귀를 끌어당겼다.
파바바박―!
세 마리째 눈 아귀가 튀어나온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건 언노운 괴수들의 또 다른 특징.
즉, 이놈들이 얼마나 많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빠르게 눈앞의 언노운들을 제압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전장도 아닌데 두 무리의 마신군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사멸의 땅 안에 들어와서 불합리하다 우는소리 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예티 놈들은 시간을 끌수록 더 처리하기 힘들어져.’
처음에는 예티 떼를 씨씨에게 맡기고 두 사람을 불러들일까 했다. 더 까다로운 언노운들을 당장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티 떼의 어그로를 혼자서 받아낼 전력은 씨씨뿐인데, 정작 눈 아귀를 잡는 데도 씨씨의 권능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씨씨, 도미니엘, 레오. 이쪽으로 합류해! 예티들도 끌고 와!”
내 외침에 그제야 뒤쪽의 습격을 확인한 세 사람이 곧바로 되돌아왔다.
“다 이쪽으로 모여. 도미니엘, 아카샤는 안쪽으로, 씨씨랑 레오는 바깥쪽에서 막는다.”
세 사람이 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한데 똘똘 뭉쳐 서로 등을 맞댄 채 달려드는 마신군들을 막아낸다.
“도미니엘. 얼음 계열 마법은 쓰지 마. [닉시드의 가호]로 바닥만 틀어막아. 아카샤 너도 [만연화]를 써. 바닥만 감싸면 돼. 우리는 지금부터 바닥은 배제하고 싸울 거다.”
“예? 하지만―”
나는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손을 뻗어 반으로 갈라져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눈 아귀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놈들은 추위 속에서 더 강해진다.
빙결 계열 마법은 아귀들에게 에너지원을 줄 뿐이었다.
“레오. 범위 공격 뭐 있어?”
“화학 가스탄이 있기는 한데…. 그걸로 괜찮으려나?”
“탄환은 몇 개나?”
“세 발.”
“가연성?”
“그렇지.”
“딱 좋네.”
내 최대의 약점은 범위 공격의 부재다.
강적 하나를 암살하는 데에는 최적화되었지만, 저렇게 질긴 놈들을 한 번에 쓸어 버리는 권능은 전무했으니까.
이 파티엔 로벨리아나 리지, 미마 같은 고성능 대포가 없었다.
하필 상성이 안 좋은 상대를 만난 셈이다.
여차하면 긴급호출로 크라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상성이 안 좋다뿐이지 목숨을 위협받을 만큼 극한의 상황이라 보긴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눈 아귀들은 정말 지독하게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짠 듯이 순서대로 빈틈이 보일 때마다 눈 밖으로 기습해 온다.
“신호 줘.”
“잠시만.”
빠르게 화학 가스탄을 준비한 레오가 다가온 아귀를 쳐낸 뒤 눈을 부릅떴다.
우리는 등을 맞댄 채로 아귀를 계속해서 끌어들였다.
우리의 머리 위로 보호막을 씌우려는 도미니엘을 내가 만류했다.
“이쪽 신경 쓰지 말고 바닥만 확실하게 막으라고.”
“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여요…!”
“괜찮다니까.”
나는 걱정스러운 듯 눈빛을 보내는 그녀를 안심시킨 뒤 씨씨에게 물었다.
“소울은?”
“흐. 아직 여유 있지!”
“레오가 가스를 터트리고, 씨씨가 불 지른다. 뭔 말인지 알지?”
“폭발 쇼네. 생각도 못 했어. 반작용은 어떻게 할 건데?”
“신호 주면 세 사람이 동시에 보호막을 씌운다.”
안 그래도 다름 아닌 정령왕의 불꽃이다. 거기에 화력을 더해 줄 가스까지 가득 채워 놓을 테니, 폭발력 하나만큼은 보장될 터.
한 방에 끝내야 한다.
“처음부터 내가 저 설인들을 단독으로 막고 씨씨가 아귀 놈들을 막는 게 맞는 판단이었을 텐데. 너는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구나?”
내 의중을 파악한 레오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눈 아귀들은 냉기에 강한 만큼 화기에 약하다. 예티를 적당히 붙잡아 두고 씨씨가 천천히 사냥하면 그만일 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문제는 아직도 눈 밑에 튀어나오지 않은 눈 아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정확한 수를 판단할 수 없다면, 이 공간을 통째로 불태워 버릴 수밖에.
“지금.”
내 신호에 레오가 가볍게 도약해 세 방향으로 가스탄을 날렸다.
일순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로 지독한 녹색 가스가 대기를 메우기 시작했다.
“셋 셀게. 둘에 불 지르고, 하나에 보호막 씌워. 동시에 씌워야 해. 알겠지? 셋!”
대답 대신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려온다.
“둘!”
발화 신호와 함께 씨씨의 몸에서 뻗어 나온 불길이 기둥처럼 솟구쳤다.
불길은 주변에 자욱하게 퍼진 가스와 만나 순식간에 지옥 같은 열화를 일으켰다.
“하나!”
나는 바로 다음 순간 보호막 신호를 외쳤다. 가스에 불이 붙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억겁과 같은 시간이었다.
다섯 쌍의 눈동자에 번쩍거리는 불길이 비치고. 그 불길을 세 겹의 보호막이 가로막는다.
불기둥이 가스와 만나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집어삼키며.
그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불태웠다.
실로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 * *
섬.
우리의 주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 단어가 떠오르는 풍광이었다.
온통 잿빛 얼음이었던 대지는 우리가 선 자리를 빼고선 모두 녹아내렸다.
얼마나 많은 얼음이 동시에 녹았는지, 깊게 팬 지면 위로 하나의 호수가 만들어졌고 그 위로는 조각 난 마신군의 사체와 살점들이 둥둥 떠다녔다.
“…하늘석은 못 건지겠네.”
나는 안타까움에 중얼거렸다.
휘익. 시원하게 휩쓸려간 모습을 본 씨씨가 휘파람을 불었다.
씨씨의 얼굴에는 환희와 희열이, 그리고 다른 조원들의 낯빛엔 충격이 물든 채였다.
“말리쿠스 님을 섬긴 지 제법 오래되었지만… 이 정도로 불꽃을 피워 본 건 처음이군!”
“죽는 줄 알았네. 아무튼 멋진 경험이었어. 대단한데?”
“보호막이… 자칫하면 모두 날아갈 뻔했어요.”
세 사람이 한마디씩 거드는 사이, 나는 부상자가 없는지 확인했다.
세 겹의 보호막 중 두 개가 날아갔지만, 아카샤의 권능, 마지막 보호막인 [만연화]가 버텨 주었다.
“뭐 해, 아카샤?”
나는 홀로 말없이 제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카샤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슈트가….”
“슈트가 뭐?”
헬멧에 가려져 있어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상황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직감했다.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아채듯 들어 올렸다.
슈트 파손이었다.
그녀의 왼손 건틀릿 부위가 부서져 스파크가 일어나는 중이었던 거다.
“이거 어쩌다 이렇게 됐어?”
“아까 눈 아귀한테 물렸는데….”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버럭 내지른 소리에 아카샤가 움찔 놀라 몸을 움츠렸다.
사멸의 땅에서 슈트의 파손은 치명적이다.
미약한 실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넘실거리는 마기가 슈트를 뚫고 들어와 심신을 집어삼킨다.
어중이떠중이 마수들로는 슈트의 단단함을 뚫을 수 없지만, 불행히도 ‘눈 아귀’는 어중이떠중이 마수가 아니었다.
등급 외 규격의 언노운 괴수.
그 이빨에 잘못 걸리면 강철도 종잇장처럼 뜯겨 나가는 놈이었다.
나름대로 잘 보호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저, 저 죽어요……?!”
“죽긴 뭘 죽어. 그냥 좀 괴롭고 아프고 정신이 이상해질 뿐이지.”
“…흐에엑?”
“퇴각하자. 일단 크라우 경께 긴급 호출 신호를 보내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제시간에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나는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휴고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그에게 맡긴다.
중요한 일이지만, 보험을 위해 동기의 목숨을 던질 수는 없다.
그렇게 결정하고 출발 신호를 던지려던 때였다.
“기다려 봐.”
어느새 다가온 레오가 내 어깨를 붙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이건 단순 파손이라 응급조치만 하면 충분히 마기 진입을 막을 수 있어.”
“잠깐. 기갑 도공술을 익혔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방패기사단에서 고아들끼리 자랐거든. 그때 어깨 너머로 조금. 워낙 이것저것 만져 보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 폭탄이나 연금술 쪽도 그렇고.”
“진짜?”
“아무튼 용접하려면 불이 좀 필요한데… 털북숭이, 불 좀 써도 되냐?”
“털북숭이라니! 이탄 부족에겐 실례인 단어다!”
“그래? 그럼 짐승은?”
“그건 괜찮다.”
“좋아. 불 좀 부탁해.”
나는 능숙하게 슈트를 수리하는 레오를 보며 놀란 얼굴을 지었다.
슈트의 수리는 단순히 철판을 덧댄다고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명백히 전문가의 영역이지.
[간파안]으로 본 그의 상태창에 대장장이 관련 권능은 없었다. 관련 호칭도 없었고. 당연히 내가 설정한 부분도 아니었다.‘설정 밖’의 영역이다.
안 그래도 전투 대장장이는 꼭 섭외해야 할 동료 1순위였는데, 거기에 무력까지 갖춘 영웅 후보생이라면 금상첨화다.
‘예상외의 수확인데.’
나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레오를 바라봤다.
* * *
“여기가 맞아?”
레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구덩이를 내려다보는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좌표상 북부 사멸의 땅 정중앙. 이곳이 맞다.
하지만 고대도시가 있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흡사 명주잠자리 애벌레가 만든 듯한 개미지옥을 수천 배로 확장해 놓은 듯한 모양새. 다른 곳과는 다른 색깔의 지면.
익숙한 모양새다.
“호오, 이건. 그거랑 비슷하군.”
“사브와라의 쓰레기장.”
“맞다! 알고 있구나! 이건 흡사라고 부르는 구덩이지. 그런데 이런 곳에도 있었다니?”
사브와라에 하니앤을 만나러 갔을 때, 그때 들렀던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것도 엔드스펙에 필요한, 아티팩트를 수급해야 하는 위치에.
나는 먹다 남긴 액체 전투식량의 껍데기를 흡사 한가운데에 던졌다. 쓰레기는 이내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확신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위화감을 넘어 불안감까지 느껴지게 하는 초현상.
지역 전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흉괴한 마기.
이건 사브와라에서 벌어진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사멸의 땅 말이야. 내 기억에는 협곡에서 세 시간 정도 들어가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무 일찍 나타난 것 같아서 말이지.”
불현듯 크라우의 말이 떠오르며, 나는 곧바로 [개발자 노트]를 발동했다.
이건 분명히, 사멸의 땅 확장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확신하며.
변경사항 : 에피소드-「고대도시 타그헬」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원인불명’이라 알려진 사멸의 땅이 발생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세계관에 추가되었습니다.
장기간 방치된 ‘사멸의 땅’ 확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① ‘흡사’에 진입하시오.
② ‘세계의 파편’을 찾으십시오.
변경된 설정값과 마주한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발자 노트]가 이토록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건 처음이었다.그리고 그 방향의 끝에는 완전한 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러셀? 무슨 생각 하냐?”
“내가 저길 들어가자고 하면 미친놈 소리 듣겠지?”
내 질문에 조원들은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