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26)
23. 흰 꽃의 맹세
“러셀, 요키가 선명해졌어…?!”
리지는 제 품에 쏙 안긴 포동포동해진 너구리개를 번쩍 들고선 외쳤다.
확실히 전에 봤을 때는 불투명한 유령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생명체처럼 선이 선명해졌다.
더 놀라운 건 녀석이 품고 있는 영기가 보다 상서로운 기운으로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흐릿했던 오염수가 정화된 것처럼.
“신성에 가까운 힘을 품은 것 같네.”
“으응?”
“아마도 녀석은… 신수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같아. 마치 변태를 준비하는 번데기처럼.”
나는 내가 설계한 세상의 설정을 주워섬기며 설명을 이었다.
“녹나무 초원목에 계속 있었으니 신성에 오래 노출된 데다가, 신수들과도 함께 생활했으니까 분명 영향을 받았을 거야. 그리고 녀석은 동기가 선하고 분명한 영물이니까.”
“분명한 동기라니?”
“널 지켜 주고 싶어 했잖아, 이 녀석은. 너한테 받은 은혜를 갚으려고.”
“으응.”
내 말에 리지가 요키를 쓰다듬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못생긴 영물이 뭐 그리 사랑스러운지,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이었지만, 그래. 취향은 존중한다….
“영물이 신수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하고 분명한 동기니까.”
– 확실히 신수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더구나. 착한 아이야. 꼭 꿈을 이루길 응원한단다.
하니앤의 첨언을 내가 그대로 리지에게 전해 주었다.
“잘 보살피다 보면, 너도 계승자가 될지도 모르겠네.”
“우와.”
“혹시 모르니까 왕실에 보고해야겠다. 신수병기를 미리 제작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적합한 파일럿과 신수가 될 가능성이 보이는 영물의 발견.
여신군에 있어 큰 전력 상승을 가져올 거다.
물론 신수병기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 준비는 미리미리 해 둬야겠지만.
“축하드려요 리지 님! 근데… 신수병기를 만들다뇨? 신수가 있으면 그냥 변신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아카샤가 과장되게 리지를 축하해 주며 내게 물었다.
그 몰상식한 질문에 내 인상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뭔 소리야?”
“아, 아니에요…? 보통 신수병기가 나타날 때 무슨무슨 폼으로 ‘변신’한다고 말하길래….”
“이래서 이론교육이 중요하네. 커리큘럼이 실전 위주로 바뀌니까 해괴한 소리를 하는 애들이 생기잖아.”
내가 한탄하듯 내뱉은 말에 몇몇 분대원들이 찔린다는 듯 몸을 움찔했다.
아카샤와 같이 신수병기가 단지 신수가 변신해서 생기는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녀석들이 절반은 되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했다.
“신수병기는 신수가 변신하는 게 아니야. 정확히 표현하면 만들어진 기갑병기를 소환하는 거지. 크라우 경이 신수 병기 소환할 때 ‘지크프리드 소환’이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
“아… 그렇네요? 네. 기억나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근원적인 힘, ‘프리마의 조각’을 에너지원으로 병기를 만들면 신수와 싱크로를 맺을 수 있어. 그럼 신수가 어디에 있든, 병기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신수를 매개체로 병기를 소환할 수 있게 되고.”
마치 강의를 듣는 듯 눈을 반짝이는 분대원들을 일별한 뒤 말을 이었다.
“신수는 병기와 파일럿, 즉 계승자를 이어 주는 징검다리 같은 거야. 신수병기는 대륙의 주요 국가나 도시 격납고에서 기밀로써 관리되지. 만약 신수병기가 반파된 상태라면 신수가 멀쩡한 상태여도 소환된 병기는 부서진 그대로야. 그러니까 병기를 관리하고 수리하는 기갑부대가 필요한 거고.”
“아… 신기해요. 처음 알았는데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긴 해. 쓸데없이 격납고에 침입해서 부품을 노린다거나 하는 좀도둑들이 많아질 테니까.”
“그럼 하니앤의 신수병기도?”
“사브와라 상인연합 본부 지하 격납고에 있어.”
몇몇 분대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심드렁한 반응이었고, 다른 분대원들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즉, 신수병기는 신수, 계승자, 병기 중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운용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전력이다.
그만큼 귀하게 취급되기도 하고 전장에서 발휘되는 활약상은 더 부연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상 현 전시상태에서 크라우와 지크프리드, 신수병기 한 기만으로도 여신군이 감당 불가능한 적을 대부분 틀어막아 왔을 정도니까.
– 그러고 보니 계약자야. 네 소울 양이 엄청 늘어났구나. 어쩌면 신수병기를 소환할 정도도 되겠는걸?
“느껴져?”
– 물론. 안온하고 마음 놓이는 정도랄까…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겪었는지 능히 짐작 가능할 정도란다.
“그러니 살만 뒤룩뒤룩 찐 너를 보고 좋은 말이 안 나오겠지?”
– 미안하다고 했잖니….
“아무튼 병기 소환이 가능하다면 이참에 한 번 소환해 볼까?”
– 아직은 안 돼. 사브와라의 격납고에 들르는 게 먼저란다. 갑자기 신수병기가 사라지면 그들도 깜짝 놀라지 않겠니?
“그렇긴 하네. 안 그래도 코리가 그러더라. 상단 연합 수장들이 나를 한번 뵙고 싶다 전했다고.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그때 계약도 정리하고 신수병기도 타 봐야겠다. 흡사 쪽도 봐야 하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사브와라의 격납고와 기술자들을 이용하려면 그들과 계약을 체결할 필요도 있고, 주의사항이나 운용법 등등 교육받아야 할 것도 있을 테니까.
대부분 기체에 탑승하면 자연스레 알게 되기도 하지만, 굳이 앞으로 협력해야 할 세력에 밉보일 필요는 없을 터다.
“아무튼 기대되긴 하네.”
나는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내뱉었다.
곧 이 세계관의 하이라이트인 기갑 전투를 할 수 있게 된다.
길고 길었던 빌드업인 만큼, 짜릿한 기분이 아닐까?
하니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 나도 기대되는구나. 어서 화려한 모습으로 전장을 누비고 싶어.
“근데 설마 신수병기도 살찐 상태로 소환되는 건 아니지?”
– 너는 진짜 너무하다….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 * *
모처럼의 휴식이었다.
지옥 같았던 크라우의 특별 훈련 여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프리마관.
모처럼 가동파츠도 벗어 둔 채로 편안하게 체력과 소울도 회복했다.
중간에 날 소환해 서운한 티를 팍팍 내는 오리건 총장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총장은 ‘별도의 상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자율 훈련하며 대기하라’라는 말로 날 돌려보내 주었다.
애초에 지금 우리의 수준이면 사관학교 교수들에게 뭘 배운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특히 전투 직군들은 더 그랬다.
분대원 대부분이 웬만한 교수는 한 시간 안에 제압할 수 있는 괴물이 됐으니까.
정령사들이나 마도사들은 아직 배울 게 더 남았다며 자진해서 훈련에 나간 모양이지만, 내가 볼 땐 동급생들의 사기만 꺾는 짓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껏 뒹굴었다. 프리마관 앞 후원을 빙빙 돌며 다이어트 중인 하니앤을 기꺼운 마음으로 구경하면서.
물론 몸이 편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놓아 버린 건 아니었다.
이제 곧 메인 에피소드 5막이 시작될 거다.
성검기사단 이세리아가 사관학교에 들러 생도분대를 소집, 사도 니르갈을 토벌하기 위해 던 블라이아로 향하는 일정.
5막. ‘흰 꽃의 기사’의 서막이다.
여느 메인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개처럼 구르는 핏빛 굴렁쇠 미래가 마련되어 있지만… 지금까지처럼 잘 넘길 거다.
애초에 이 세계관은 마지막 에피소드를 빼면 대부분 할 만한 난이도니까.
내가 궁금한 건 그다음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메인 에피소드들을 쭉 나열했다.
1막, ‘시험의 섬 습격 참사’
2막, ‘카오스 게이트 전투’
3막, ‘레인가르 교류전’
4막, ‘마인 준동’
5막, ‘흰 꽃의 기사’
6막, ‘폴리티아의 추적자들’
7막, ‘이교도 소탕’
8막, ‘만월의 묘지’
9막, ‘로벨리아의 실종과 마신의 그릇’
10막, ‘마신 부활’
‘중간이 비어 버렸어.’
원래의 정사대로라면 5막이 시작되는 지금쯤 리타니아 대륙으로 넘어온 자동인형들이 미마와 클로에를 찾기 시작하고, 6막에서 충분히 성장한 휴고 일행과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그런데, 6막의 에피소드는 훨씬 더 전인 2막에서 이미 해결해 버렸다.
그리고 7막 ‘이교도 소탕’.
‘마인 준동’ 에피소드 이후에도 사관학교에 남아 지긋지긋하게 마인들을 심던 데이몬과 마신의 끄나풀들을 일거에 소탕하는 에피소드다.
원래대로라면 3학년이 되자마자 장기 미해결 의뢰를 해결하려 ‘마리하 무기점’에 갔다가 데이몬을 추적하게 되고, 끝까지 파고 들어가다 이교도의 본거지까지 찾아내 어마어마한 수의 끄나풀들과 치열한 전투 끝에 모조리 소탕하게 된다.
하지만 4막 ‘마인 준동’ 에피소드 때 데이몬을 잡아 버리면서 이것도 이미 해결해 버렸다.
겸사겸사 이교도 본거지는 내가 다이크를 통해 왕실에 보고해 싹 소탕해 버렸고.
즉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에피소드가 모두 사라져 버린 셈이다.
사실 에피소드가 사라져도 과실은 남아 있을 테니 성장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사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며 실전 감각을 키울 수도 있고.
문제는 과연 [개발자 노트]가 이 상황을 그대로 놔둘까 하는 점이다.
뭔가 큰 게 터질 것 같다.
이게 내 불안의 근원이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 코리에게 대륙 정세를 최대한 꼼꼼하게 파악하고 뭔가 이상 징후가 보이면 싹 공유해 달라고 부탁하긴 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무전기가 울려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의 주인공, 휴고의 소집이었다.
메인 에피소드를 앞두고 권능 [성약의 계승자]가 발동한 것일 터다.
“러셀, 어서 와!”
1층 카페테리아에는 생도분대원 전체가 모여 있었다.
휴고가 성약의 조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굳이 동료들에게 예지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바글바글하네. 다음부턴 그냥 분대장 둘이서 얘기하고 각자 전달하는 게 어때?”
“하하, 그래도 되지만 이왕이면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쓸데없이 착해빠져서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선 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휴고가 차분히 예지로 본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한다.
이세리아의 지휘 아래 사도 니르갈의 군대와 격전을 벌이는 던 블라이아 엘프들과 생도분대원들.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엘프들, 위험에 빠지는 분대원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주디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던 블라이아가….”
그녀의 고향이 피로 물든다는 미래가 충격적이었는지, 그녀답지 않게 침묵하는 모습이다.
주변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가 이어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위로라니… 어쩐지 손발이 오글거려 곧바로 찬물을 들이부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까 막을 수 있어, 수다쟁이야. 기죽지 말고 할 일 해.”
“수다쟁이라고 부르지 마!”
“알겠고, 사도 니르갈에 대한 설명 시작한다. 실시.”
“……진짜 너는 피도 눈물도 없어.”
주디는 글썽거리던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는 사도 니르갈에 대한 정보를 설명했다.
‘미식가’라 불리는 사도 니르갈.
놈은 다른 사도들과는 다르게 거대한 몸집, 그리고 인간이 아닌 마수의 외형을 지녔다.
놈은 예쁜 종족, 특히 엘프들을 잔인하고 잔혹하게 사냥하는 걸 즐기고 타인의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잔혹한 사도였다.
던 블라이아 엘프들에게는 사도 니르갈은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릴 정도의 적이었다.
주디가 그놈이 얼마나 잔혹한지, 흉포하고 끔찍한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그냥 평범하게 개 같은 마신군이잖아?”
“뭐어? 아니야! 놈은 진짜 끔찍하다구! 생긴 것부터 목소리, 말투까지 다!”
“그렇기야 하겠지만. 근데 너, 마치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봤지… 너무 어려서 싸우진 못했지만.”
“……? 20년 전이라며? 그럼 지금 나이가… 혹시 누나… 라고 불러야 하나?”
내가 슬그머니 끼어들어 레오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인간 기준으로 따질 거면 이모라고 불러야지. 쟤, 사십몇 살이거든.”
발끈한 주디가 양손으로 나와 레오의 등짝을 내리쳤다.
역시 이모님이라 그런지 손이 맵다 매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