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33)
23. 흰 꽃의 맹세
5막의 전투는 복잡하게 생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다.
이세리아는 게릴라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의 전투가 승패를 가를 것이었다.
말 그대로 양 진영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한방전투. 전력을 다해 끝도 없이 밀려드는 사도 니르갈과 그의 수하들을 막아내는 것이 골자다.
즉, 일종의 디펜스 게임이다.
니르갈의 부대는 총 4개의 웨이브로 이루어져 공격해 들어온다.
번식력 좋고 가성비 뛰어난 중, 하급 마신군들이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1웨이브.
토벌급 마물 ‘파멸의 카이데스’ 수십 마리와 5, 6성급으로 이루어진 상급 마신군이 사단급 규모로 들어오는 2웨이브.
니르갈의 오른팔, 왼팔 격인 군단장 모로이와 리치 킹이 등장하는 3웨이브.
마지막으로 사도 니르갈과 다수의 폭발귀가 등장하는 4웨이브.
이 모든 웨이브를 막아내고 사도 니르갈을 외우주로 역소환하거나 소멸시키면 끝나는 전투다.
‘관건은 피해겠지.’
패배는 생각할 수 없다. 메인 시나리오에서의 패배는 곧 주인공 일행의 사망을 뜻하니까. 미래의 소멸이다.
중요한 건 전투가 끝난 뒤의 피해다.
이 전투가 끝난 뒤 이제라의 우방인 엘프들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생도분대원들 중 혹여 사망하거나 재기 불가능한 피해를 보는 인원이 없는지.
마신군과의 전쟁은 인류들끼리의 전쟁과는 사뭇 다르다.
인간들 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장을 베는 것이다. 적장을 요격하면 지휘체계에 혼란이 오고, 사기가 떨어져 패색이 짙어지면 전투를 포기하는 병사들이 속출하니까.
역사적으로도 수십만 대군끼리의 결투에서도 고작 몇만의 사망자로도 승전과 패전이 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하지만 마신군은 다르다.
놈들은 지휘관이 사망했다고 사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패색이 짙다고 도주하거나 항복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지휘체계가 사라지면, 퇴각 명령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전투는 이어진다.
필연적으로 맞상대하는 여신군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까지만 할까? 너무 체력을 빼도 곤란할 테니까.”
휴고의 제안에 나와 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은 마지막까지 남아 체력단련을 하는 중이었다.
생도분대에는 독종들이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두 녀석이 압권이다.
언제든, 어디에 있든 절대로 체력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크라우의 특훈 당시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도 추가 훈련을 했을 정도니까. 실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정신력이었다.
이 녀석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쪽이다.
갖은 전투 경험을 겪고 이 자리까지 온 기존 주인공 동료들과 달리, 실전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새 동료들.
녀석들이 이번 전투를 무사히 치러 줄는지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저기 미마네?”
숙소로 걸어가는 도중 파가 화톳불을 쬐고 있는 엘프 무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장로 사르미아와 이세리아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미마가 사르미아의 무릎을 벤 채로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장로님을 제법 잘 따르네.”
“그러게. 저 녀석이 저렇게 스스럼없이 구는 건 처음 봐.”
아마도 사르미아가 풍기는 순도 높은 소울 때문일 거다. 그녀는 던 블라이아의 마지막 장로답게 정령들이나 수인들이 좋아할 만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까.
오두막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외출했던 하니앤이 내 침상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은 채였다.
– 왔니?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오냐. 코빼기도 안 비치던데.”
– 알카서스와 함께 제논을 찾아보고 왔단다. 분명 그 녀석, 이 근방에 있는 건 확실한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안 나온다니까 그러네.”
– 그래도… 신수가 수호 지역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니. 제온답지 않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람?
하니앤의 전언에서 희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의외였다. 어떤 전투를 치르든 평정심을 유지하던 신수였는데.
“왜 떨고 있어?”
– 떨다니… 그저 조금 긴장한 것뿐이야. 멀리서부터 사도의 끔찍한 마기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지거든.
“하긴, 너한텐 실시간으로 중계되겠구나.”
– 괜찮겠니.
“뭐가.”
– 사도는 정말 쉬운 적이 아니야. 그를 상대하려면 온전한 계승자와 신수병기가 필요할 거란다. 하지만 저 엘프 전사는…. 솔직히 이제라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구나. 다른 계승자를 보냈어야 해.
“어차피 어차피 현재 왕궁에서 사도를 사냥할 만한 전력은 없어.”
하니앤의 우려는 합리적이지만, 디에네로서도 다른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갓 계승자가 된 유나는 사도를 상대할 수 없고, 크라우는 도저히 몸을 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에 휘말려 있다.
계승자가 아닌 다른 영웅을 보내 봤자 어차피 사도를 상대할 순 없다.
그러니 그나마 가능성 있는 선택지가 던 블라이아의 수호 신수, 제온의 계승자였던 이세리아를 보내 다시 제온이 그녀와 함께해 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여차하면 네가 신수병기 소환해서 아머드폼으로 변신하는 건 어때?”
– 뭐? 절대 안 돼! 정비도, 숙달 훈련도 하지 않고 실전에서 신수병기를 처음으로 운용하는 건 자살행위야.
“역시 그러려나.”
– 게다가 네 소울 양으로는 병기를 소환한다 해도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십분 남짓일 거란다. 그러니 그런 상상일랑 말렴.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니앤의 말은 단호했다.
* * *
던 블라이아 서쪽 접경지역, 안식의 폐원.
니르갈군의 군세에 맞선 여신군의 전력이 한데 모여 넓은 능선의 고지대를 선점했다.
세계수와 엘프 도시가 있는 곳들은 대부분 고원이다. 그리고 이곳, 안식의 폐원은 그 고원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마신군은 그들의 방식대로 싸우고, 인류는 인류의 방식대로 싸운다.
압도적인 생산력과 번식력을 가진 마신군을 상대로도 여신군이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이유.
‘전술’이다.
고지대를 점한다, 같은 기본적이고도 단순한 전술마저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는 마신군들이 태반이다.
마인들이 이끄는 군대는 흡사 인류처럼 전술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사도 니르갈의 군대는 대표적으로 어택땅을 구사하는 군대였다.
전략이고 나발이고 그냥 군세를 들이부어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공격한단 뜻이다.
선선한 바람이 비스듬한 능선을 타고 올라온다.
엘프와 이제라의 연합군에서 총지휘를 맡은 건 이세리아였다.
기실 당연한 결과다.
그녀는 던 블라이아에 있을 때부터 유능한 지휘관이었고, 이제라군은 그녀의 명령만을 따르니까.
“어떠한 상황에도, 퇴각 신호가 오른다면 반드시 페아타 로아까지 후퇴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일만여 명의 병사들에게 당부했다. 그러고는 왕궁호위대와 생도분대원들에게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러분의 퇴각 신호는 신호탄 두 줄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짤막하게 말을 끝낸 이세리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선회하며 비행하는 엘프 마도사들에게 향했다.
그녀도 척후에게 들어 니르갈군이 4개로 나뉘어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거다.
평소에도 차가운 표정이 더더욱 딱딱해졌으니까.
본대를 타격하고 게릴라전을 펼치려면 적어도 본대가 타격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먼저 적의 웨이브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상황, 전투가 길어지고 통제 불가능한 난전이 펼쳐질 공산이 크단 뜻이다.
침묵 속에 시간이 흐른다.
엘프 전사들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왕궁 호위대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며, 생도분대원들은 대부분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평온했던 던 블라이아의 초원 지평선 위로 점점 희미하게 먼지구름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선명해지는 흙먼지와 함께 마신군의 제1 웨이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선으로 보였던 적이 면이 되고, 이윽고 끝도 없는 파도처럼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마어마한 대군.
전의를 불태우던 이들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들도 잇새가 벌어지고 기가 질리는 광경이다.
“오합지졸입니다. 겁먹지 마세요.”
그때, 타이밍 좋게 지휘관 이세리아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귓속으로 파고든다.
목소리에 소울까지 담아 선명하게 내뱉은 말이 떨어지려던 사기를 그대로 잡아채 끌어 올렸다.
‘훌륭하네.’
확실히 그녀는 니르갈 앞에 서면 한없이 약해지는 겁쟁이지만, 트라우마와 상성을 배제하면 지휘관으로서는 훌륭했다.
“궁병, 마도병, 앞으로.”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병사들이 전면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각자 화살을 시위에 걸고, 마법을 캐스팅한 뒤 이세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사격 개시.”
쐐애액―!
펑! 퍼버벙!
수많은 화살과 마법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되고 가장 앞서서 전진하던 마물들을 타격했다. 초원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오르기 시작한다.
“사격.”
펑! 퍼버벙!
“사격.”
꽤 유의미한 타격이었다. 우리는 한 발 뒤에 떨어져 대기하고 있었는데, 엘프 병사 중에서도 제법 실력 있는 마도사들이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쪽수에는 장사 없다고 했다. 너무나도 많은 수 앞에서는 전열이 무너지는 속도가 전진 속도를 늦추기는 어려웠다.
“던 블라이아 병사들. 전투준비.”
폭음과 마신군의 괴성에도 또렷하게 전달되는 이세리아의 명령에, 엘프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들어 올리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산개. 니르갈의 개들을 척결하세요.”
와아아아!
침묵은 사라지고 함성만이 남았다. 만여 명의 병사들이 산개하며 능선 위에서 아래로 마신군을 내리찍듯 덮쳐갔다.
전세는 일방적이었다. 엘프 병사들은 20년 전의 그 지옥에서도 살아남은 일당백의 전사들이 대부분이다.
수만 많은 앙카라나, 놀 같은 하급 마물들이 수십만씩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엘프군은 수적 열세에도 전선을 밀고 내려갔다. 마신군의 사체가 발밑에 쌓이고 괴성과 비명이 한데 뒤섞였다.
처음 병사들이 도열했던 능선 위에는 왕궁호위대, 생도분대, 장로 사르미아와 그녀의 친위대이자 던 블라이아 최고전사라 불리는 12명의 엘프들만이 남아 있었다.
“삭호 중령.”
“네. 경.”
“두 번째 군대가 합류하면 왕궁호위대를 이끌고 상위 마신군을 찍어 사냥해 주세요.”
“예. 명령 받들겠습니다.”
이세리아는 그다음, 나와 휴고를 바라보고 말했다.
“토벌급 마신군은 생도분대가 맡습니다.”
“예.”
“네!”
“단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남으세요. 두 분은 세 번째 부대가 합류하면, 군단장을 요격합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고, 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단신으로 군단장을 요격해라.
얼핏 들으면 가서 죽어라, 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명령이다.
하지만 이세리아는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실패한다면 그다음은 에뜨랑제 델 위오, 파. 두 사람이 임무를 이어받으세요.”
아니, 가능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나는 살짝 실망하긴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애초에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면 맡기지도 않았을 거다. 적어도 버틸 수는 있다고 판단했겠지.
영웅급 전력인 생도분대가 전부 군단장에만 매달려 있으면 일반 병사들의 피해가 막심해진다.
그러니 생도분대원들은 전장 곳곳에서 토벌급 마신들을 솎아내 줘야 했다.
“그럼 니르갈은….”
삭호의 질문에 이세리아는 사르미아와 친위대를 바라봤다.
전 엘프군의 지휘관, 현 엘프 장로. 그리고 엘프족 최고전사 12명이 적장을 베는 칼날로 낙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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