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37)
23. 흰 꽃의 맹세
니르갈 휘하 언노운 군단의 군단장.
고통의 추종자 모로이.
놈은 실체 없는 존재였다.
머리 위에는 작은 균열이 일어나 있고, 그 균열에서 뻗어 나온 하얀 실들이 모로이의 온몸에 연결된 하나의 공허 덩어리.
그게 내가 소설에서 묘사했던 모로이의 서술이다.
내가 직접 마주한 모로이는 흡사 인형극의 마리오네트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의 적이었다.
머리 부분에는 여섯 개의 가면이 원형으로 둘려 있고, 등 뒤에는 날개 한 짝이, 해골이나 다름없는 팔에는 푸른 세검을 쥐었다.
놈의 몸통은 텅 비어 있었다. 내장, 코어, 살가죽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생명체.
그저 처음 딱 보는 순간 낯선 존재. 외계의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다.
그런 모로이를 처치하는 공략법은 하나뿐이다.
놈을 감싸고 있는 모든 실을 끊은 뒤, 움직이지 못하게 완전히 조각내는 방법.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저 실은 전력을 다한 패기로도 실 하나를 끊을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강한 경도를 지닌 외우주의 물질이었으니까.
원래 저 하얀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하얀색인지도 알 수 없다.
놈의 실을 하얗게 보이게 하는 건, 내 권능 [포획의 눈]이었으니까.
즉, 모로이를 홀로 상대할 때 그나마 승산이 높은 건 나였다.
놈에 대한 공략법을 정리한 뒤, 나는 그대로 허공에서 월광쌍익을 내리찍듯 투창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녀석의 등 뒤로 움직여 내 주특기인 [그림자 걷기]-[석섬광]-[백어택]의 3단 권능으로 놈을 기습했다.
두 번째 창이 모로이의 후방을 직격하고.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타격감, 그리고 위화감에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기름칠 안 된 기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백어택]이 안 터져?’
적의 후방을 공격했는데도 권능 특유의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시에 나는 놈의 뒤통수 부근에서 날 내려다보는 가면과 눈이 마주쳤다.
길게 찢어진 붉은 눈동자. 그리고 괴이쩍을 만큼 묘한 모양으로 새겨진 입 구멍.
녀석에게는 ‘등’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백 어택]은 말 그대로 적의 시야 밖에서 공격했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하지만 놈은 6개의 가면으로 6방향의 시야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사각이 없는 적.
‘까다로운데.’
정사 속 이야기를 통해, 모로이가 휴고와 상성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쉬운 군단장인 리치를 녀석에게 맡기고, 모로이를 내가 잡으러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상성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사냥하기 어마어마하게 까다로운 적이었다. 휴고뿐만 아니라 내게도.
끼끼끼끼!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역설하듯, 모로이의 입에서 기괴한 음성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 슈트 내의 상태이상 차단 기능이 붉게 점등하며 녀석의 권능을 막아냈다.
‘공포’는 내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
슈트가 없는 상태였다면 그대로 상태이상에 걸려 허우적거렸을 터다.
하지만 슈트는 일반적인 상태이상, 그러니까 공포나 독, 속박 따위는 대부분 차단한다.
나는 놈의 빈틈을 포착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사냥의 시간] [4단계]곧바로 권능을 발동한 뒤, 소울 번까지 일으켰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열감에 순식간에 몸이 땀으로 젖어갔다.
“하니앤!”
외침과 동시에 어디선가 튀어나온 하니앤이 입을 쩍 벌리고 모로이의 허리 부분을 깨물었다.
그 틈에 횡으로 내지른 창이 가장 앞쪽으로 보이는 실 하나를 베어 들어간다.
끼기기긱!
이게 실을 벨 때 나오는 소리가 맞는 건가?
창날과 부딪힌 실에서는 마치 철판을 날카로운 날붙이로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실은 거의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으나, 결국 끊어내지 못하고 내 창이 도리어 튕겨 나왔다.
놈이 반격할 차례였다.
허공에서 균형을 잃은 내 심장을 노리고 얇고 짧은 푸른 세검이 찔러 들어온다.
나는 곧바로 투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려 심장 부분을 보호했다.
콰과과광―!
어마어마한 충격이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고 그대로 날아와 지면에 몇 번이나 부딪혔다.
화들짝 놀란 하니앤이 곧바로 물고 있던 모로이를 놓고선 내 앞에 착지했다.
– 괜찮니?!
“어. 괜찮아.”
짤막하게 대답하곤 몸을 일으켰다.
투지는 전부 부서지고 슈트에까지 흠집이 났다.
그래도 막아냈다는 건 호재다.
내 투지로 놈의 공격을 어느 정도는 소화할 수 있다는 거니까.
군단장쯤 되는 적이라면 아무리 견고한 투지라도 일격에 꿰뚫기 마련이다.
그러니, 특훈의 결과가 나쁘지 않다.
‘해 볼 만해.’
끼끼끼끼!
여전히 놈에게는 생채기도 내지 못한 상황이지만.
놈의 주력 권능은 아직 하나도 보이지 않은 상황이지만.
체급이 비슷하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고양된다.
끼에에엑!
나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달려든 언노운 한 마리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그러자 놈이 품고 있던 마력이 빨려 들어와 내 소울을 채워 주었다.
[그림자 걷기]로 만만해 보이는 언노운 몇 마리를 사냥해 방금 전 소모했던 소울을 완전히 복구했다.그런 뒤 이번엔 놈의 치마 안쪽, 그러니까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노리고 집중을 사출했다.
총알처럼 뻗어나간 소울은 충격음조차 내지 않고 사라졌다.
이번엔 놈의 두 다리가 화살처럼 휘어지며 날아와 내 몸을 두드렸다.
놈의 하반신은 치마, 그리고 두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제는 치마와 다리가 연결되지 않았다.
안에 아무것도 없는 치마 아래로 두 다리만 둥둥 떠 있는 것이다.
“…썅. 진짜 어떻게 되먹은 몸뚱이야?”
여전히 [포획의 눈]은 놈의 약점이 실뿐이라는 걸 흰색으로써 알려 주는 중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모로이의 인형체 어디를 때려도 타격감이 아예 없다.
그저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느낌이다.
결국 저 실을 끊어내야 한다.
“하니앤, 엄호 좀.”
– 그래!
나는 최대한 놈과 거리를 벌린 채로 손가락을 권총 모양으로 쥐었다.
그런 다음 반대쪽 손바닥으로 그 아래를 받치고 소울을 집약시킨다.
“‘영환’이라고 들어 봤냐?”
나는 어릴 적 애정했던 만화를 떠올리며 계속해서 소울을 끌어 올렸다.
한 방에 체내 모든 소울을 쏟아붓더라도 일단 하나는 끊어내야겠다.
소울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언노운들을 잡아먹어 채우면 되니까.
나는 ‘마인 사냥꾼’이니까. 전장에서 내 소울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 이 말이다.
모아 놓은 소울을 압축하고, 그 위로 다시 소울을 덧씌운다.
계속해서 횡으로 움직여 모로이와의 거리를 벌린다.
중간중간 덤벼드는 언노운들은 하니앤이 입으로 물어 멀찌감치 던져 버렸다.
슬슬 눈앞이 어지러워질 즈음. 내 오른손 검지에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의 소울이 응축되어 있었다.
끼끼끼끼…
무섭게 나를 추격하던 모로이도 그 순간만큼은 몸이 움찔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공격이 올 거라 직감한 듯.
‘집중하자. 집중.’
이걸 이대로 쏘아 보내면 백이면 백 피해낼 거다. 놈은 제법 날렵한 언노운이니까.
이 상태를 유지하고 그림자를 타야 한다.
할 수 있다.
그동안 충분히 연습했으니까.
[그림자 걷기]나는 그대로 모로이의 그림자를 타고 나타난 뒤 그대로 모아 놓은 소울을 집중으로 개화해 사출했다.
쏘아 보낸 소울이 실 하나와 맹렬하게 충돌했다.
마치 스파크가 튀듯 열기와 연기를 잔뜩 일으키던 소울은 그대로 실 하나를 끓고 상공으로 날아갔다.
끼끼끼끼끼끼!
언노운의 기분 좋은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놈의 반격을 의식해 하니앤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려 했다.
내가 몸을 빼려는 찰나, 그보다 빠르게 모로이의 가면이 옆으로 두 간 움직이더니 군단장의 권능이 발동했다.
그리고.
[그림자 걷기]가 발동하지 않는다.“…….”
모로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팽이처럼, 어쩌면 드릴처럼 회전하며 내 몸에 떨어졌다.
– 계약자야!
* * *
한 10초 정도 의식을 잃은 것 같다.
“와 씨, 순간적으로 블랙아웃 왔네.”
황급히 투지를 일으키긴 했지만, 놈의 공격은 내 몸이 그대로 지면 밑으로 파묻힐 정도로 강력했다.
나는 기다시피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하니앤의 근처로 움직였다.
녀석이 곧바로 나를 물어 등에 얹고는 모로이에게서 떨어졌다.
– 괜찮니?
“방금은 좀 위험했어.”
슈트가 거의 아작 났다. 여기저기서 스파크가 튀고 스크린에 각종 오류 및 위험 신호가 떠오르고 지랄 난리가 났다.
한 방에 고장 나 버린 슈트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슈트 덕분에 살아남은 거다.
이 얇은 무장이 자그마치 군단장의 공격을 막아 준 거다.
맨몸이었다면 그대로 저 구덩이 속 먼지 1이 되었을 테니까.
나는 바깥으로 튀어나와 스파크를 일으키는 부품 몇 개를 뜯어 던져 버린 뒤 떨어져 있던 월광쌍익 두 자루를 모두 회수했다.
“발이 묶였어. 시간 좀 벌어 줘라.”
놈이 내게 건 디버프는 ‘고립’ 그리고 ‘봉인’이라는 상태이상이다.
고립은 이동기 권능을 무효화하고 나 외에 타인에게서 힐, 버프 등을 받을 수 없는 디버프고, ‘봉인’은 패시브 형태의 권능을 무효화하는 디버프.
즉 나는 [애시그린 일족 비기], [포획의 눈], [그림자 걷기], [백어택]까지.
4개의 주력 권능을 모두 봉쇄당했다.
7개의 실 중 하나를 끊어냈지만, 꽤나 뼈아픈 교환이다. 특히나 마신군을 잡아 소울을 채울 수 없게 됐다는 건 더더욱.
“손발 다 자르고 시작한다는 서술을 참 잘도 구현해 놨네.”
나는 내가 써재낀 적의 묘사를 떠올리며 한탄 섞인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무한정 걸려 있는 디버프는 아니다.
유지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동안만 잘 도망 다니면 다시 맞붙어 볼 수 있다.
물론 슈트도 엉망이 되고 [그림자 걷기]도 막힌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제야 열심히 땀 흘리며 밥값 하는 중인 하니앤의 목덜미를 더 꽉 끌어안았다.
-너무 세게 잡지는 말렴. 꼬집는 것 같잖니.
“네가 선택한 계승자야. 악으로 깡으로 버텨.”
–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조금만 더. 5분? 10분?”
– 으으윽….
하니앤은 날 태운 상태로 이를 꽉 깨물고 전장을 뛰어다녔다.
뒤쪽으로 몹시 상스럽고 포악한 군단장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우리를 추격하는 중이었다.
“하니앤. [이상기류]다.”
– 그것이냐!
내 신호에 하니앤이 곧바로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모로이의 몸이 머리 위에 뜬 균열 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순간. 우리의 위쪽으로 균열이 발생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모로이가 회전하며 내리찍는다.
“지금!!”
곧바로 다음 신호를 주자마자 하니앤이 반대편으로 크게 도약한다.
하지만 놈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뒷다리 위쪽 살이 새빨갛게 파였다.
-으윽… 아팟….
“잘 피했어. 이제 내릴게.”
나는 하니앤의 몸에서 뛰어내렸다. 몸에 걸려 있던 디버프가 풀렸으니, 이제 2차전이다.
곧바로 주변의 언노운들의 그림자를 타고 놈들의 숨통을 끊었다.
마기들이 빠르게 흡수돼 몸속에 쌓이기 시작한다.
‘아직 놈이 보여 주지 않은 권능은 세 개. 아마 실이 몇 개 더 끊어져야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겠지.’
나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스티그마 포션을 입에 넣어 내상을 치료한다.
전투가 길진 않아 체력은 아직 여유 있다.
부서진 송신구로 동료들의 긴박한 외침이 들려오고, 옆쪽에서는 휴고가 치열하게 싸우는 굉음이 왕왕 울려 대지만.
눈에는 오로지 모로이만 담는다.
내 몫의 군단장을 잡아내는 것.
그게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