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39)
23. 흰 꽃의 맹세
“안 돼!!”
찢어지는 듯한 이세리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 할지라도 니르갈의 상대로 낙점된 용사들이다.
수십, 수백 년 동안 살아남으며 던 블라이아를 위협하는 적들의 심장을 찔렀던,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이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하고 온 자리라 해도, 적어도 이런 식은 안 되었다.
이세리아의 주변에 만들어진 검날들이 사정없이 무덤처럼 쌓인 폭발귀들의 산을 헤집었다.
폭발귀가 최고전사들을 덮친 그 안쪽에서는 아직도 연쇄적인 폭발이 펑, 펑 하고 터지는 중이었다.
[상급 왕실 비전 검술] [낙화(落花)]그녀가 소환한 검들이 꽃잎처럼 흩어지며 떨어졌다.
한바탕 소란스럽게 폭발귀들을 도륙 낸 뒤에야 그 안쪽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
최고전사들이 모두 죽은 게 아니었다.
최초 폭발 시 휩쓸렸던 이들은 끔찍하게 조각나 사라졌지만, 뒤늦게 보호막을 펼친 정령사들이 후속 피해를 막아 준 것이었다.
“말리아! 헤디!”
이세리아가 살아남은 이들을 확인하고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크고 작은 부상들이 보였지만, 보호막 안쪽에는 여섯 명이나 살아남았다.
절반이나 죽었지만, 동시에 절반이나 살아남은 거다.
폭발귀들의 흐름은 그들을 지나쳐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왕궁호위대, 생도분대를 넘어 엘프 본대에까지 저 무지막지한 자폭부대가 당도할 것이리라.
“사르미아. 최고전사들을 부탁해.”
“…어떻게… 하려고?”
“후퇴하자. 전선을 뒤로 물리고 다음을 기약해야 해. 충분히 타격을 입혔고 전력도 보전했어. 하지만 이대로면 모두 죽을 거야.”
사르미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살아남은 여섯 명의 최고전사들을 눈에 담았다.
최상급 정령이 타격도 주지 못하고 역소환된 건 그녀로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정비 후 다시 항쟁해.”
“하지만 너는―”
“지킬 사람이 없으면 내 한 몸은 빼낼 수 있어.”
이세리아는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후퇴 신호를 꺼내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최후미의 전선, 엘프 본대에 후퇴를 알리는 신호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왕궁호위대와 생도분대원들에게도 후퇴 신호를 보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에게 퇴각할 시간을 벌게 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자살 부대의 등장에 그녀는 마음을 돌렸다.
전투 중 저걸 막아내라는 건 죽으라는 거다.
“너희 뭐 하냐?”
니르갈은 그런 이세리아의 행동이 우습다는 듯 촉수로 연신 손뼉 치며 칵칵, 웃음소리를 냈다.
“누가 보내 준다고 했지?”
“내가 막을 테니까. 후퇴해.”
“건방지긴. 너희는 모두 이곳에서 내 간식이 될 운명이라니까.”
뱀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짐짓 살벌한 협박을 늘어놓는 니르갈.
그 순간, 뒤쪽에서 거대한 촉수 하나가 튀어나와 최고전사들을 덮쳤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전사들이 황급히 전투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나타난 이세리아의 어검(馭劍)이 촉수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네 패턴은 지긋지긋하게 익숙하거든.”
“크흐흐. 역시 넌 재밌는 먹잇감이라니까.”
이세리아가 미끄러지듯 니르갈의 본체에 접근했다.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땅 여기저기서 촉수가 튀어나와 지면을 내리친다.
둔탁한 충격음과 땅 울림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니르갈의 입에서 치명적인 독성이 흘러나왔다.
20년 전에는 치명적인 공격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그대로 독 구름을 돌파했다.
[정화 시스템이 최대로 가동됩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 열 감지 센서를 작동합니다.]슈트에서 안내음이 흘러나오고, 거무죽죽하던 눈앞이 맑게 갠다.
니르갈이 폭발귀라는 카드를 준비해 전력을 증강한 것처럼, 여신군도 2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을 보호하는 전투복의 발전을, 아마도 네놈들은 상상하지 못했겠지.
순식간에 니르갈의 뒤를 잡은 이세리아가 춤을 추듯 권능을 흩뿌렸다.
겉으로 보면 마치 인간과 벌의 싸움을 보는 듯한 체격 차이였으나, 장수말벌의 독침은 인간에게도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
[상급 왕실 비전 검술] [검총(劍銃)]벌이 침을 쏘아 보내듯, 검 모양의 소울이 탄환처럼 니르갈의 촉수 하나를 관통했다.
놈은 전혀 타격이 없다는 듯 곧바로 팔을 휘둘러 지면을 내리찍는다.
하지만 이세리아는 가볍게 뛰어올라 뒤로 공중제비한 뒤 착지했다.
콸콸콸―
놈의 반대편 촉수에서 찐득거리는 오물 같은 마기가 쏟아졌다.
이세리아가 집중을 개화해 들고 있던 검 하나를 투척했다.
쏟아지던 마기를 반으로 갈라내고, 검신 부분이 다 녹아 버린 검은 손잡이만 남아 바닥으로 뎅그렁 떨어진다.
그사이 사르미아가 최고전사들을 수습해 니르갈의 촉수가 닿지 않는 곳까지 떠오르는 데 성공했다.
늦지 않게 신호를 보냈으니 휘하 병력은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이쯤 하면 되었다.
정비 후 다시 항쟁을 이야기했지만, 승산이 없다는 걸 모두가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나오는 마신군.
수백 년 동안 담금질 된 최고전사를 한순간에 여신의 품으로 보낸 자살 부대.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생도분대원들마저도 승패를 점하기 어려운 마신군 지휘관들.
전장이 주는 온도는 그들의 전의마저 싸늘하게 식게 할 터다.
20년 전.
니르갈과 싸웠던 전사들은 모두 이세리아에게 동의했고, 한 번도 전장에 나가지 않았던 후방의 전사들만이 사르미아를 따라 남았다.
겪어 보지 않는다면 절망의 깊이는 쉽사리 가늠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돌아간다면, 이제라로 퇴각하자는 제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거다.
모두가 퇴각을 논한다면, 설령 사르미아라 할지라도 거부할 명분과 도리가 없다.
‘최선을 다해 싸웠어.’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존경하는 여왕께서 가서 싸우라 명령하고.
휘하 지휘관과 생도들은 명예로운 싸움을 원한다며 객기를 부리고.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사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죽음을 받아들였다.
오직 저 홀로 이 싸움을 반대했었지만, 그런데도 가장 위험한 곳에 나와 할 일을 다 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패배가 확정된 전투에 나와 싸워 주었고, 그들이 살아남는 선택을 했다.
정말로, 이쯤 하면 되지 않았나.
‘그렇지 않아, 제온…?’
그녀는 대답 없는 물음을 던질 뿐이다.
* * *
후퇴 신호가 올랐다.
그렇다는 건, 놈들이 몰려온단 뜻이었다.
니르갈의 숨겨진 두 개의 카드 중 하나, 등급 미상의 마물 폭발귀들.
놈들은 이 전투에서 딱 한 번 등장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피해가 다소 충격적이었는지 관료들에게 꾸준히 언급되는 마물이다.
이 전투 이후 지휘관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를 폭발귀 떼를 항상 염두에 두었으니까.
나는 두 개의 실만 남아 발작하듯 들이대는 모로이를 공격하던 걸 멈추고 빠르게 이쑤시개로 소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폭발귀의 해일을 지나 보내려면 소울을 충분히 아껴 두어야 했으니까.
드르르륵―!
몸을 둥그렇게 말고 떼를 지어 굴러오는 폭발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하니앤을 불렀다.
“하니앤.”
– 그래.
하니앤이 몸집을 키우고, 내가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그녀가 곧바로 그녀의 신수 능력, ‘회전하는 바람’을 일으켰다.
아래에서 위쪽으로. 상승기류다.
제법 소울을 잡아먹는 능력이었기에,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소울을 느끼며 볼멘소리했다.
“진짜 연비 나쁜 신수라니까….”
– 전처럼 소울 양이 늑대 발톱만큼 작은 것도 아니면서… 너무 구박하지는 말렴.
발아래로 폭발귀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같은 마신군들마저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기괴한 벌레 떼.
휴고는 한쪽에서 방어 권능을 킨 채로 폭발귀의 흐름을 그냥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고대 아티팩트인 ‘타워실드’ 아우리우스를 단단하게 붙들고 투지와 계승자의 방어 권능까지 둘둘 두르고 있으니, 백날 와서 터져 봤자 죽어 나가는 건 폭발귀뿐.
무식하리만큼 터프한 녀석이다. 나는 휴고에 대한 걱정은 접었다.
그러고는 우리의 뒤쪽, 이 흐름을 정면으로 두들겨 맞게 될 생도분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
전장 선두 부근에 돌 기둥이 올라와 있다.
‘말 지지리도 안 듣는 놈들….’
나는 상승기류에 잘못 끼어들어 허공에 떠오른 폭발귀를 향해 [소울 족쇄]로 폭발을 막은 뒤, 복부를 터트렸다.
* * *
이세리아의 명령은 빠르고 정확했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바로 폭발귀의 ‘속도’였다.
니르갈이 소환했을 때만 하더라도 폭발귀는 엉금엉금 기어서 최고전사들을 공격했다.
이 속도라면 충분히 모두가 무사히 몸을 뺄 수 있을 거라 계산한 거다.
하지만 전진 명령을 받은 뒤, 놈들은 몸을 둥그렇게 말고선 구르기 시작했다.
구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을 받아 점점 빨라졌고, 이세리아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생도분대원들이 전투 중인 전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간과한 두 번째 사실.
생도분대원들은 처음부터 폭발귀의 존재를 알았고, 이를 대비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략법을 듣기는 했다.
핵심은 이스칸다와 로벨리아.
대지술사인 이스칸다와 미친 화력의 로벨리아가 이 폭발충의 흐름을 저지할 전력이었다.
다만 선택은 판단의 영역이다.
“만약 두 사람의 상태가 안 좋거나, 둘 중 하나라도 [악의] 중첩이 많이 쌓인 상태라면, 이 작전은 포기해. 바로 카이데스 어그로 끌린다.”
“그런 상황이라면, 그냥 너희끼리라도 한군데 모여서 보호막 치고 버텨라.”
“판단 잘해. 파, 에뜨랑제 선배. 누구 하나 죽이고 질질 짜기 싫으면.”
이스칸다는 [악의] 중첩이 4개나 쌓인 상태고, 로벨리아는 이미 한번 소울을 털어 카이데스를 잡았다.
그러니까, 그 망나니가 경고한 딱 그 상황. 상태도 안 좋고 중첩도 쌓인 상황이다.
– 1분대, 2분대 모두 일선 후퇴하고 한 지점에서 모이세요. 보호막으로 흐름이 지나갈 때까지 버틸 겁니다. 리지 후배님, 공중에서 카이데스들 시선 끌어 주세요. 비행 가능한 마도사 분들도 최대한 폭발귀들을 요격해 주세요.
에뜨랑제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비록 뒤쪽의 엘프들은 모두 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녀에겐 생도분대원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게, 러셀이 자신을 믿고 1분대의 지휘를 맡긴 이유였다.
“로벨리아. 난 첫 번째 작전으로 갈 거야”
“네?! 하지만, 이스칸다 님….”
“혼자라도 갈 거야. 그 망나니는 생도분대만 살리는 데 집중하라고 했지만, 저 많은 사람이 다 죽게 내버려 둬? 꿈에 나올까 봐 무섭네.”
그녀는 비웃듯이 입꼬리를 한번 씰룩이고는 슈트 기동을 시작했다.
“이스칸다 님! 파 님! 이스칸다 님이….”
– 무슨 짓이야! 돌아와!
황급히 파에게 통신을 해 보지만, 이미 이스칸다는 집결지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로벨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그녀 혼자 사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 이스칸다! 로벨리아! 돌아와! 빨리!
이스칸다는 무전 통신기의 음량을 최소로 줄여 버린 뒤 지면을 일으켰다.
발밑의 지면이 돌기둥처럼 높게 솟구친다.
높아진 시야로 전장이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그녀의 시선이 데구루루 굴러 올라오는 벌레 떼를 향했다.
애초에 이 임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저쪽 엘프 본대에나 있어야 했다.
카이데스 사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명가 출신의 귀족 자제인 빌레나 모드리안도, 리지 로즈 뎁도 하지 못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지반 붕괴]쿵.
벌레 떼가 구르던 방향의 대지가 움푹하게 꺼졌다.
[지반 붕괴]쿵.
다시 한번 권능이 발현되고, 거대한 싱크홀은 더 깊숙이, 더 크게 가라앉는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벌레 떼가 미처 방향을 틀지 못하고 속절없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지반 붕괴]쿵.
마침내 거의 모든 벌레를 한 구덩이에 몰아넣은 이스칸다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흘러내린 코피를 닦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