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4)
4. 미친개에 물리면 약도 없다
“어딜 가는 건가요.”
“날다람쥐 잡으러. 그러는 너는 왜 따라오는데?”
나는 내 뒤를 졸졸 따라붙는 루트비히에게 물었다.
볼일 다 봤으면 생활동에 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왜 따라오는 거야?
“생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게 왜?”
“다른 사람들은 좀 부담스럽거든요.”
“나는 니가 부담스러워, 인마.”
루트비히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뒤를 쫓아왔다.
최근에는 종종 있던 일이라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선 원래 목적지로 움직였다.
훈련소 생활동 뒤편으로는 정돈되지 않은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산지로 향하는 초입 오프로드를 워낙 많이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처럼 만들어진 형국이었는데, 훈련병이 행군하는 경로도 이 길이고 내가 처음 입소 시험을 치렀던 곳도 이 길이다.
경사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펜스가 처져 있다.
이 펜스는 행군 시기에만 열리지만, 사실 이 정도 높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멀리서부터 도움닫기 해 펜스를 훌쩍 뛰어넘었다.
“제정신이에요? 거길 넘으면 무단 탈영이라고요!”
“걱정하지 마. 멀리 안 나갈 거니까.”
“멀고 가깝고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루트비히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따라 훌쩍 펜스를 뛰어넘었다.
애초에 탈영이 목적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탈영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는 게 맞겠다.
이 정도 높이의 펜스는 훈련병 대부분이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탈영해 봐야 내년에 또 들어오는 게 확정이기 때문에 탈영하는 훈련병은 없다시피 했다.
특히나 7주 차면 집에 가기 직전인데 누가 포기할까.
그냥 이 펜스는 대충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훈련소 경계입니다.’ 하고 그어 놓은 선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굳이 여길 넘어온 것은 그런 훈련소의 분위기를 이용해 본인만의 쉼터를 마련한 수인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체 어딜….”
“야, 나 왔다.”
훈련소 펜스에서 머지않은 숲길 한가운데 곧게 뻗은 느티나무 한 그루.
시대를 알게 해 주는 고목 위에 수인족 여자애 하나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부스스하고 복슬거리는,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머리 위에 반원 모양으로 삐쭉거리는 귀, 그리고 허리를 두르고 있는 풍성한 꼬리털까지.
마치 자연과 한 몸이라도 된 듯 자연스러운 광경을 연출하는 모습이었다.
“나 왔다니깐.”
“…….”
몇 번 부르자 나무에 매달리듯 웅크려 있던 소녀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다시 눈을 감는다.
“저건 누구인가요.”
“미마. 수인족이지.”
“처음 본 것 같은데.”
“너는 애초에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잖아.”
루트비히는 맞는 말이라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 꼬마 녀석과 저 날다람쥐 녀석은 비슷한 점이 많다.
타인을 귀찮아 한다는 점, 혼자 있기 좋아한다는 점, 무심한 덤덤충이라는 점 등등.
차이점이라면 이 녀석은 싸가지가 없는 거고, 저 녀석은 말 그대로 무심하다.
정확히는 루트비히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애정결핍 츤데레고 미마야말로 제대로 된 무심 덤덤충이라 할 수 있겠다.
“빨리 안 내려오면 나무 베어 버린다.”
내 말에 미마가 다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작디작은 손을 휙 내밀었다. 나는 그 손바닥을 향해 챙겨 온 봉지를 휙 던졌다.
봉지 안에는 도토리 가루로 만든 쿠키가 들어 있었다.
거상 코리를 통해 공수해 온 밀수품이었다.
“…별 해괴한 걸 부탁한다 싶더니.”
“조금만 떨어져 있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루트비히는 여전히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이었으나, 얌전히 거리를 벌렸다.
비교적 과묵한 게 녀석의 장점이었다.
“물건 확인했으면 내려와.”
미마는 쿠키 하나를 꺼내 입속에 휙 털어 넣은 뒤, 꼬리를 가지에 건 채로 몸을 거꾸로 한 바퀴 돌렸다. 그러고는 날 듯이 사뿐히 뛰어 바닥에 착지했다.
“이번에도 5분이야.”
“그래, 이 자식아.”
내 동의가 떨어지자마자 미마의 몸이 피겨 선수가 악셀을 밟듯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그녀의 꼬리에서 털이 바늘처럼 변해 날아들었다.
나는 예상했다는 듯이 라운드실드를 들어 털침을 막아낸 뒤 창을 내던졌으나, 이미 녀석의 몸은 나무를 밟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마치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바른 듯한 신묘한 발재간이다.
“간다아.”
철컥.
미마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팔 아래쪽에서 합금 판피(鈑皮)가 열리더니 제 몸집보다 훨씬 품이 넉넉한 옷소매 사이로 반짝이는 총구가 드러났다.
“……?”
팔뚝에서 총이 튀어나오는 기괴한 모습에 루트비히의 눈이 부릅뜨였다.
날다람쥐 미마.
그녀는 정확히 말하자면, 반쯤 개조된 안드로이드 수인이었다.
물론 이것도 몇몇 고위 관계자들만 아는 비밀이었지만.
“이번엔 막는다.”
내 자신만만한 말에 헹, 하는 코웃음 소리와 함께 미마의 품속 총구가 불을 뿜었다.
나는 정신을 온전히 집중한 채로 그 탄환의 궤적을 눈으로 좇았다.
총알을 눈으로 좇는다는 게 괴상하지만, 그녀가 쏘는 총알은 그게 가능했다.
왜냐면 일반적인 탄환보다 눈에 띄게 느렸으니까.
탄환은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것 같더니 공중에서 급격하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마치 뱀 같기도, 마법학교 영화 속의 날개 달린 구슬 같기도 한 모습.
급격하게 눈으로 좇기 어려워지는 궤도에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자, 리모콘 달린 듯 총알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크허억.”
나는 돼지 멱따는 소리 비스무리한 걸 내면서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이번에도 완벽한 실패였다.
저 신묘한 총알 컨트롤은 도저히 따라갈 영역이 아니었다. 애초에 총알을 컨트롤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하지만.
“끝. 그만해 이제.”
“와 진짜 예상하고도 못 막겠네. 이거.”
미마는 볼일을 끝냈다는 듯 다시 나뭇가지 위로 쪼르르 올라가 자리 잡은 뒤 꼬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축객령이었다.
“내일 또 온다.”
휘릭휘릭.
대답 없이 꼬리만 두어 번 흔들린다. 해석하자면 ‘오든지 말든지. 근데 올 거면 올 때 도토리빵.’ 정도 되시겠다.
나는 짧은 외출을 끝내고 훈련소 경계 펜스 안으로 되돌아갔다.
“방금 본 거. 너라면 피할 수 있겠냐?”
“제 보호막을 뚫을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어요.”
“녀석도 위력은 적당히 죽인 걸 거야. 문제는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느냐지.”
“제 보호막은 그리 쉽게 안 뚫려요.”
“…말을 말자.”
“하지만 놀랍긴 하네요. 마도사 클래스도 아닌데 벌써 소울 에너지를 다룰 줄 안다는 건.”
“뭐, 애초에 범인들에겐 재앙 같은 재능이니까.”
루트비히가 걸음을 멈추고 빤한 시선을 보냈다.
“알고 있었나요?”
“소울 에너지? 알고는 있지. 쓸 줄은 몰라.”
소울 에너지.
생명력의 일종으로 이 세계관에서 권능과 더불어 강함의 척도로 사용되는 힘이다.
자신의 클래스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는 에너지의 근원.
그것이 소울이다.
예를 들어 마도사나 정령사들에게는 마력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된다.
하지만 그건 사관학교 수준의 영역이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개화하고 조기 교육으로 단련된 마도사, 정령사들을 제외한 다른 클래스들은 소울 에너지 발현과 사용법을 사관학교 1학년 수업에서 익히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한 명.
추후 ‘백수의 왕 미마’라고 불리게 될 날다람쥐 미마.
수인족 역사상 최고로 축복받은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는 주인공의 미래 동료뿐이었다.
이질적인 외모와 숨기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훈련소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정사대로라면 녀석이 바로 21기 사관학교 입학생 수석이다.
첫 번째 등장인 ‘시험의 섬 습격 참사’ 에피소드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는 게 무대의 데뷔.
“여기들 있었구나.”
생활동 쪽으로 걷던 우리의 앞에 나타난 건, 우리의 주인공 휴고와 그의 단짝 로벨리아였다.
“한참 찾았어.”
“우릴? 왜?”
“잠깐 시간 괜찮을까?”
루트비히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네 사람은 생활동 구석진 부근, 낡은 벤치 근처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이나 머뭇거리는 휴고.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되었기에 나는 잠잠히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입을 열려다 마는 행동이 반복되자 루트비히 쪽에서 먼저 인내심이 떨어진 모양이다.
“사람을 불러 놓고 뭐 하는 상황이죠? 할 말이 없다면 돌아가겠어요.”
특유의 톡 쏘는 말투에 휴고의 몸이 움찔했다.
“신경 쓰지 마. 원래 말투가 이런 녀석이니까. 악의는 없어. 이상한 녀석일 뿐 나쁜 녀석은 아니거든.”
“뭐라고요?!”
“으응. 아냐. 내가 미안해. 사실 부탁이 있는데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서.”
“동기끼리 뭘 그리 어려워하냐. 뭔데? 말해 봐. 돈 빌려달라는 것 빼곤 웬만하면 들어줌.”
“아하하… 그런 건 아니고.”
“솔직하게 말씀하셔요, 휴고 님. 진심을 다해야 타인의 호의를 얻을 수 있어요.”
로벨리아가 옆에서 그를 격려했다.
“네 말이 맞아. 로벨리아. 그러니까 너희 둘, 혹시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어?”
“도움이라면 정확히 뭘?”
“우리와 함께 싸워 줘. 힘을 보태 줘. 부탁할게.”
휴고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빛.
녀석의 권능 [성약의 계승자]는 미래 예지 효과를 가진 권능이다.
미래 예지라곤 해도 세세한 수준까지는 아니고, 메인 에피소드 위기 상황의 편린 정도를 엿보는 기능이다.
이 시점에서 휴고가 아는 것은 최종 시험 중 습격하는 와이번을 탄 마인, 그리고 물속에서 튀어나오는 마물들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다.
그래서 휴고는 일단 훈련소 내의 강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한다.
마지막 시험에서 지나친 경쟁으로 힘을 빼는 대신, 힘을 합쳐 습격에 대응해야 한다고.
물론 동기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평소 그가 쌓아놓은 인맥들만 협조적으로 나왔을 뿐, 시험장은 혈투가 반복되는 경쟁의 장이 되었으니까.
이번에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거다.
내가 말이 없자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휴고가 말을 덧붙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너희 혹시 예지를 믿어?”
기이한 단어에 우리 둘의 눈빛이 스치듯 마주쳤다.
“나는 미래의 일부를 볼 수 있어. 내가 가진 권능의 힘으로. 며칠 뒤 마지막 시험에서… 마인에게 훈련소 시험장이 습격당하고 동기들이 죽는 미래를 보았어…….”
“그게 정말이라면 저희가 아니라 교관들에게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루트비히의 질문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말해 봤지. 믿는 시늉도 하지 않았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곳에 있는 조교와 교관들이 다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영웅들의 저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했겠지.”
갑작스럽게 끼어든 내 말에 휴고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어, 맞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 대단하다 러셀!”
그야 당연하지. 내가 쓴 대사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