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45)
23. 흰 꽃의 맹세
나는 빠르게 인원을 체크하고 자리에 없는 이를 확인했다.
“이스칸다는?”
또다시 침묵.
침묵이 주는 비언어적 메시지는 다양한데, 북적거리던 십수 명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입을 다무는 침묵은 때때론 소란보다 시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나는 근질근질하게 올라오는 불안함을 애써 뒤로하고 물었다.
“본대로 보냈어? 따로 뒤쪽으로 보낼 이유가 없을 텐데. 걔가 뭐 부대 지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 동기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이스칸다의 죽음을 직감했다.
순간적으로 피가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부러 티 내지 않고 곧장 표정을 갈무리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상황이 급하니까.”
더 묻지 않고 눈앞의 니르갈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고, 혹여라도 상황을 설명받은 내가 누군가를 치죄해야 할 상황에 놓여 분대원들의 사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디. 치료 좀.”
“…응? 으응!”
주디는 그제야 내 몸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과 갖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보자마자 치료부터 했어야지. 뭔 정신머린지 모르겠다.
물론 내 불만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회복 권능은 훌륭했다.
상처 대부분이 멀끔히 회복되고, 체력과 소울까지도 조금씩 차올랐다.
HP와 MP를 동시에 회복시켜 주는 만능 정령사라니… 이러니 아무리 난폭하게 굴어도 함부로 할 수가 있나.
이 정도 실력의 정령사가 있는데도 사망자가 나왔다는 건, 아마도… [악의] 5 중첩에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카이데스의 [악의]는 중반부 이후 적 중 등장인물을 급사시키는 가장 큰 고난 중 하나니까.
입맛이 쓰다.
아카데미의 탈을 쓰고 있는 기갑 전쟁물(비록 기갑 전투는 마지막에 거의 다 와서 등장하긴 했지만)인지라, 예상하지 못한 죽음은 언제든 각오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사의 이 에피소드에서는 제법 많은 등장인물이 죽어 나갔었다.
에뜨랑제의 두 동기 중 하나인 엘에이도 이번 전투에서 죽었고, 원래 파 자리에 들어왔었을 클라슈도 여기서 죽었었다.
내 기억에는 씨씨와 아이아나도 여기서 죽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과는 달라졌다.
씨씨는 목숨 대신 손목 하나로 선방했고, 죽어야 했던 등장인물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이렇게 될 거라 충분히 예상도 했었다.
적어도 ‘상식적인’ 선에서 스토리가 진행됐던 결말부 직전까지는 내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판이었다.
또다시 떠오르는 죽음에 대한 사념에 나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눈앞의 적에 집중해야 할 때다.
니르갈은 이세리아의 방어막을 한참이나 두들겨 대더니, 곧 촉수를 하늘을 향해 곧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곧바로 제온이 시즈모드를 풀고 뒤쪽으로 물러섰다.
기본적으로 신수병기에는 웬만한 상태이상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장갑판과 내장갑판이 모두 파열된 상태라면, 그 틈새로 독액이 파고들어 와 완전히 병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기체 내부는 강화 금속이 아니었고 니르갈의 독성은 어지간한 금속도 녹여 버릴 정도로 지독했다.
하지만 내 손에는 카드가 넘쳐흘렀다.
부하들을 모두 잃은 단신의 니르갈 정도는 모든 상황에 대응하고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테네브리아처럼 장거리 순간이동 권능을 가진 것도 아니니 놓칠 염려도 없다.
지금부터 하나씩 놈의 손발을 자르고, 이놈을 이 땅의 거름으로 주리라.
나는 계산을 마친 뒤 지시를 기다리는 생도분대원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빠르게 설명할 테니 잘 들어. 도미니엘.”
“네?”
“네가 신호탄이야. 네 이름을 외치면 저 촉수의 구멍 보이지, 저 입구 부분을 얼려 버려.”
내 입에서 말들이 속사포처럼 후두두 쏟아졌다.
“아이아나. 나랑 미마, 하니앤한테 상태이상 면역 걸어 줘. 미마. 너는 나랑 간다. 우리가 파고들면 때맞춰 리지가 놈의 꼬리 끝부분을 [매직 웹]으로 묶어.”
“응…!”
“빌레나 꼬리 앞부분. 아카샤 중간 부분.”
나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머지 사수랑 마도사들은 최대한 놈이 정신없을 만큼 여기저기 쏴붙여. 휴고, 파, 에뜨랑제.”
마지막으로 검사 삼대장을 호명했다.
녀석들은 이 싸움을 끝낼 마지막 한 발이다.
휴고의 상처도 말끔히 치료된 상태고 소울도 적당히 필요한 만큼은 회복됐다.
전력은 충분하다.
“휴고. 네가 마무리다.”
“응.”
휴고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럴 줄 예상했다는 듯, 믿고 맡겨 달라는 듯.
최근 들어 대부분 중요 순간마다 나는 녀석을 결정구로 사용했으니까.
“두 사람은 휴고를 엄호해. 인근에서 거리 보다가 들어오는 타이밍은, 스스로 정해. 네 직감대로.”
“그럴게.”
“나머지는 대기.”
브리핑을 끝낸 뒤 곧바로 하니앤의 위로 올라타 미마에게 턱짓했다.
하니앤의 몸체가 사뿐하게 도약해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꽉 잡아, 떨어지니까.”
“응.”
내 말에 미마의 손이 허리를 꽉 조여 온다.
두 거체의 싸움터에 접근하는 짧은 틈을 타 미마에게 물었다.
“힘들었냐?”
“세 마리 처치했어.”
짐짓 칭찬을 바라는 듯한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잘했네. 끝나고 머리 쓰다듬어 줄게.”
“…응.”
“네가 가진 모듈 중에 관통력 제일 높은 게 뭐야?”
“스나이퍼 라이플.”
“그걸로 저 각막 부분의 외피 뚫을 수 있겠어?”
“재질이 뭔데?”
“아마딜로 기억나? 그놈 등딱지 같은 거.”
“그럼 레이저건.”
“좋아. 네가 왼쪽 맡아라.”
내 전략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랬다.
작전명-개 정신없게 만들기.
얼핏 보면 조금 없어 보이는 이름이지만, 가진 부대를 전부 어택땅 찍어서 부대가 4개로 갈라질 정도로 단순무식한 적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방식이다.
“도―미―니―엘!!”
나는 최대한 목청을 높여서 소리쳤다.
슈트가 멀쩡했다면 편했겠지만, 어차피 동기들 슈트도 대부분 반파된 상태.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워야 했다.
곧바로 도미니엘의 빙결 마법이 발현되고, 니르갈의 촉수 입구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
이것으로 1차 당황.
제게 빙결 마법 따위가 통한다는 사실이 어이없겠지.
하지만 도미니엘이 얼린 건 니르갈의 몸이 아니다. ‘공간’이다.
사도의 몸을 얼릴 순 없지만, 촉수의 입구 부분 공간은 충분히 얼게 할 수 있다.
훌륭하게 촉수 입구를 틀어막은 도미니엘 덕분에 니르갈의 촉수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신수병기 아래쪽으로 도착한 나는 목청을 높였다.
“경! 놈의 양손을 붙잡아 주세요!”
더는 독액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세리아가 곧바로 달려들어 니르갈의 양손을 꽉 붙잡았다.
뒤늦게 니르갈이 독액 분출을 멈추고 뚱뚱하게 부푼 촉수로 신수병기를 내리쳤지만, 뭉친 독액이 쿠션 역할을 해 타격이 줄어들었다.
[소울 족쇄]내가 펼친 권능이 니르갈의 하체, 특히 지면에 닿아있는 꼬리 부분에 집중적으로 권능을 발현했다.
놈이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투사체들과 정면의 신수병기, 그리고 얼어붙은 촉수 입구 등등 정신없이 쏟아지는 집단 이지매에 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다.
덕분에 [소울 족쇄]는 잘 들어갔고, 리지-아카샤-빌레나로 이어지는 3단 족쇄가 놈의 발(?)을 묶는 데 일조했다.
“크아아아악!”
머리부터 발끝까지 묶어 놓은 채로 몸 여기저기를 두드리는 공격들.
니르갈의 비명이 전투 발발 후 처음으로 다급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역시 다구리엔 장사 없는 법이다.
하니앤이 바람을 타고 도약하고, 그 위에서 소울을 가득 모으고 있던 나와 미마가 양쪽으로 산개했다.
[모듈 변경 완료.] [Serial Number:7-Laser Gun] [소울 에너지 출력 : 40%]미마의 손에서 형광 연두색 빛이 쏘아지고, 동시에 손에 집중을 잔뜩 개화시키고 월광쌍익을 그러쥔 내가 총알처럼 날아갔다.
두 개의 빛줄기는 뭐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동시에 니르갈의 양 눈에 틀어박혔다.
쩌적!
뼈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니르갈의 망막 껍데기 부분이 깨져 나갔다.
시력을 완전히는 뺏을 수 없지만,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셈이다.
전신에 더해 이제 양 눈까지 잃은 니르갈이 제온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어불성설이었다.
제온은 아예 [진지 구축]으로 발을 땅바닥에 고정해 버리고 버텨냈다.
“경! [오메가 블러스터]요!”
나와 생각이 일치했는지 내 말과 거의 동시에 제온의 명치 부근 개폐구가 열렸다.
그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소울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세리아는 모든 소울을 다 끌어모아 이 한 방에 쏘아 보낼 작정이었다.
그것도 니르갈의 바로 코앞에서.
“자, 잠깐―!”
이제는 진짜 엿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니르갈이 그제야 협상을 시도했다.
“무, 무승부로 하자…!”
두들겨 맞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무승부를 외치는 졸렬함은 어쩌면 우습기까지 했다.
이제야 원작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도 중에서도 광대 역할을 담당했던 개그 캐릭터.
당연히 이세리아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이놈의 배때기에 죽어서도 시원할 만큼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어 주겠다는 일념뿐이다.
나는 아직 니르갈의 눈동자에 꽂혀 있는 월광쌍익을 발로 퉁퉁 튕기며 대신 대답해 줬다.
“하겠냐, 새끼야… 그냥 다른 사도들처럼 최후의 전투 때 한꺼번에 튀어나오지 그랬어. 그랬으면 이렇게 다구리 맞고 불쌍한 최후를 겪진 않았을 텐데.”
“이 비겁한 여신군 놈들이….”
“유언 잘 들었다.”
[오메가 블러스터]제온의 결정기가 발현되는 순간, 나는 미마의 그림자를 타고 빠져나왔다.
폭음.
광원.
소향(燒香).
그리고 비명.
이세리아가 쏟아부은 결정기는 니르갈의 몸에 커다란 터널을 만들어냈다.
놀라운 점은, 이 끈질기고도 징글징글한 놈이 아직도 끝장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내가 준비한 선물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제 차례를 깨달은 세 검호가 이세리아와 제온이 만든 터널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에뜨랑제와 파의 검격이 외피보다 연한 내조직을 베어 갈라 길을 만들고.
마침내 휴고가 품은 신성이 니르갈의 몸속 깊은 곳을 찔러 빛을 발한다.
알이 깨어지듯, 새하얀 빛이 불규칙하게 번져 나간다.
마침내 신성이 마신군의 생명, 니르갈이 체내 어딘가에 꼭꼭 숨겨 둔 마핵에 닿아 폭발한 순간, 놈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팟. 하고 신수병기가 역소환되고 그 안에서 이세리아가 떨어져 제온의 품에 안겼다.
허물어진 니르갈의 사체 속에서 피범벅이 된 세 검호가 걸어 나온다.
휴고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여느 때처럼 환하지만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담긴 웃음이다.
나는 말없이 엄지를 들어 올려 주었다.
니르갈이 완전히 소멸했는가는 알 수 없다.
오르비스 대륙에 소환된 사도는 본체가 아니라 외우주의 소환체니까.
그래서 매번 사도들과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역소환시키고 다시 싸우기를 반복한다.
하나 이번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도들은 힘이 다해 역소환되는 게 대부분이지 이렇게 마핵을 깨 먹고 역소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소환체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으면 본체에 타격을 입고 소멸해 버릴 수도 있기에.
저 정도로 심각한 타격이라면 최소 수십 년 이상 잠들거나, 잘하면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본체의 타격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가둬 두었던 [격리 역장]이 사라지고 숨어 있던 하늘이 드러났다.
눈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