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47)
23. 흰 꽃의 맹세
“너랑 싸우고 싶은 생각 없어, 러셀.”
내 도발 어린 말에도 휴고는 단호했다.
기실 당연한 일이다.
이 녀석은 애초부터 동료에게 칼을 겨눌 성정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유약함이 마지막 순간 녀석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패기를 개화해 월광쌍익을 횡으로 휘둘렀다.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이 정도 짧은 순간 끌어 올린 소울로는 녀석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단지 휴고의 전의를 끌어 올리기 위한 일격이었을 뿐.
쾅, 하는 타격음과 함께 마치 주먹으로 돌을 후려친 듯한 굉굉한 울림이 느껴졌다.
휴고가 본능적으로 투지를 끌어 올려 내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방패조차 들지 않고서 가동파츠인 아머드 건틀릿만 들어 올린 채로.
녀석의 주위로 순도 높은 소울이 왱왱거리며 차오른다.
바로 오늘 극심한 천투를 치렀는데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한 모습.
이 망할 주인공 놈은, 마치 전투 민족 사이어인마냥 군단장과 싸우면서 그새 또 성장한 것이었다.
‘…지겠는데.’
솔직한 말로 저 단단한 벽을 뚫을 자신은 없었다.
맨몸뚱이도 미친 듯이 내구도가 높은 녀석인데, 투지도 단단한 데다 각종 방어 권능으로 떡칠한 방패 인간 그 자체다.
크라우의 특훈을 겪기 전에도 마신군 군단장을 상대로도 몇 합을 막아냈던 놈이었고.
아예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승부를 본다면 모를까, 단순한 힘겨루기에서는 잘해야 무승부.
적어도 이 방벽을 뚫을 만한 더 날카롭고 잘 벼려진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면, 아마 평생을 가도 녀석을 무너뜨릴 수 없을 거다.
“나는 절대 너랑 싸우지 않아, 러셀.”
“그만해라.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사이 파가 끼어들어 나와 휴고 사이를 갈라놓았다. 동시에 다른 2분대 분대원들도 내 앞을 막아선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미마를 위시한 1분대 분대원들이 내 옆에 도열했다.
마치 완벽히 균열된 모습이다.
물론 그사이 쌓은 우애는 결코 낮지 않고 그들로서는 혹시라도 발생할 무력 충돌을 우려한 행동이겠지만, 내가 느꼈던 미묘한 위화감을 방증하는 그림이기도 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찍 깨닫게 되어 차라리 천만다행인 일이다.
“러셀.”
그때 휴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로벨리아를 질책했을 순간보다 다소 누그러진, 마치 부탁하는 듯한 어조였다.
“원한다면 2분대는 네 휘하로 들어가도 괜찮아.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 마음 약하고 물렁물렁한 주인공은 또다시 모든 것을 품으려 들었다.
“애들을 조금 부드럽게 대해 주길 바란 거지 널 의심하는 게 아니야. 적어도 나는, 널 믿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네가 원한다면 죽음도 불사할 만큼.”
긴 호흡의 호소가 흘러나온다.
“레인가르 습격 당시 수많은 마물 떼를 뚫고 유나를 격납고로 데려가라 했을 때도, 군단장 라비와 세크레트를 잡을 수 있다고 외칠 때도, 네가 미궁에서 보스룸에 날 집어넣을 때도, 오늘 리치 킹을 단신으로 상대하라 했을 때도. 난 너를 믿고 움직였어.”
그러니.
“무기를 집어넣어 줘.”
“…….”
말없이 휴고를 바라본다.
녀석은 늘 한결같이 올곧은 눈동자로 날 응시할 뿐이다.
녀석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적어도 이 녀석은 아직까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내가 직조한 인물이, 내게 주는 완벽에 가까운 신뢰는 굳게 마음먹었던 내 각오를 흐리게 만든다.
깊은 고민의 시간이 흐르고.
머릿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가장 합리적인지,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검토를 반복한다.
장고 끝에 결국 난 패기를 흩트렸다.
차후 로벨리아의 문제로 휴고와 부딪히게 될 일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테지만, 일단 지금은 여기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옅게 한숨을 쉬고는 다른 분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나가. 둘이서 얘기 좀 하게.”
한결 누그러진 음성에 안도한 표정을 지은 뒤 분대원들은 하나둘 오두막집에서 빠져나갔다.
둘만 남은 공간에서 나는 먼저 사과했다.
“미안하다. 좀 과한 건 사실이었지.”
“아니야. 일부러 날 자극한 거잖아. 알면서도 괜히 정색해서 미안해.”
“여자친구 문제가 걸리면 눈 돌아가는 건 꼭 고치긴 해야 할 거다. 언젠가 큰 사고 치게 될 테니까.”
“하하… 그게 잘 안 돼. 내겐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서. 아마 러셀도 마찬가지일걸?”
“내가 뭘?”
“러셀도 누군가가 미마를 건들면, 아니 리지인가?”
“야. 뭔 소리야.”
“…에뜨랑제 선밴가?”
“뒤질래?”
“…아카샤였나? 아무튼 소중한 사람… 들을 건들면….”
내가 하렘물 주인공한테 이딴 취급을 받게 되다니… 그리고 아카샤는 또 뭔데?
나는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을 흘린 뒤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생도분대의 향방을 결정해야 할 중요한 순간이다.
“일단 정리부터 하자. 협조한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앞으로 1, 2분대는 독립 노선으로 간다.”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될까?”
“둘이 동시에 여왕께 장계를 올리면 문제없을 거다.”
“장계를?”
“두 분대가 별도의 임무를 받아 따로 움직이도록 허락을 받는 거지. 그 이유로는 이 정도 전력이 함께 움직이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점. 두 분대 간 궁합이 좋지 않아 오히려 서로 방해가 된다는 점을 보고하면 돼.”
여왕 디에네는 합리적인 군주다.
이 두 가지 사유만으로도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기엔 충분하다고 느낄 거다.
실제로도 그게 더 효율적이다.
한동안은 두 분대가 힘을 합쳐야 할 만큼 강한 적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야? 솔직히 나는… 다 함께하는 게 좋은데.”
“놀러 왔냐, 이 자식아?”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 분대가 달라도 친한 애들도 있잖아. 3학년 선배님들도 그렇고.”
굳이 궁금하다는데 말을 아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별다른 구박 없이 장황하게 설명했다.
“첫째. 지금 분대원들은 나와 네 의존도가 너무 강해. 우리가 함께 있으면 솔직히 여러모로 편하지. 나도 웬만한 건 너한테 맡겨 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쟤네들도 결국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군의 지휘관이 되거나 부대장이 되어야 할 예비 장교들이야. 우린 사관생도라고. 우리 둘이 계속 붙어 다니면 애들은 사고하고 판단할 기회를 계속 잃어서 온실 속 화초로 큰다.”
내가 없을 땐 휴고가 거의 완벽하게 나를 대체한다.
휴고는 물렁물렁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유능한 데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내가 폭언 폭행으로 찍어눌러 분대원들을 끌고 간다면, 휴고는 분대원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녀석의 말을 따르게 한다.
괜히 웹소설 주인공이 아니다.
애초부터 위기 대응 능력이 탁월한, 리더의 기질을 가진 녀석이란 뜻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인 것과 둘인 것은 천지 차이다.
우리가 붙어 있는 한, 다른 분대원들이 실전 위기 극복 경험을 쌓을 일은 없다.
“두 번째로, 이게 더 중요한 문제인데. 완벽한 경쟁 체제는 내부 결속을 다지기에 더 좋으니까. 내부가 혼란스러울 땐 외부에 적을 두라고 했다. 하나로 뭉치기에 20명은 너무 많아. 너는 너희 분대원들을 더 똘똘 뭉치게 만들어야 해. 네 말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게.”
“…….”
“앞으로 나는 2분대를 마주칠 때마다 애들을 자극할 거다. 어쩔 땐 좀 과하다 싶기도 하겠지. 투쟁심이라는 건 갈등 상황에서 생기는 법이니까. 한동안 평화로울 거야. 하지만 우리는, 멈춰선 안 돼. 이해했냐?”
평화로운 기간 동안 평화를 누려서는 멸망을 막을 수 없다.
휴고는 내 말을 이해한 듯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 그리고… 고마워.”
“분대뿐만이 아니야.”
나는 무언가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으려던 휴고의 말을 끊었다.
투쟁심을 불태워야 하는 건 다른 녀석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확실하게 널 꺾는 걸 목표로 달릴 거다. 명색이 성약의 조각이면서 계승자한테 털리는 X밥 소리 듣기 싫으면, 너도 날 꺾는 걸 목표로 삼아.”
휴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썅….”
우리는 오두막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분대원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공유해 주었다.
“그렇게 됐다.”
굳이 의도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두 분대장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르기도 하고, 부분대장 역할을 수행할 분대원을 더 키우려는 의도라고만 설명했다.
“잘 이야기되었다니 다행이네.”
“걱정했어요.”
“둘이 싸우면 군단장급 전투가 벌어진다는 건데, 엘프 부족 한가운데에서 그러면 민폐긴 하지.”
“겉은 틱틱거려도 속은 여린 남자니까요, 러셀 님은.”
나는 마지막에 굳이 불필요한 한마디를 덧붙인 아카샤를 끌어내 딱밤형에 처했다.
그런 다음 주디에게 물었다.
“장례는 언제 치른대?”
“부족원들 장례는 내일 해 밝자마자 치를 거구, 이제라 출신 사람들은 왕성으로 복귀해서 한다고 하던데?”
주디는 잠시 머뭇거리며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이스칸다는… 아마도 사관학교에서 하지 않을까? 재직 중 사망자는 대부분 그렇게 진행했으니까.”
“그래.”
한바탕 눈물바다 되고 난리 나겠구만.
장례라는 건 기이하다.
당장 친구를 잃은 녀석들은 조심스럽고 안타까워하긴 해도 비교적 무덤덤한 편이다.
마치 현실감이 없다는 듯.
하지만 사자(死者)의 관을 앞에 두고 장례를 치르다 보면 그간 꾹꾹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괜히 분위기가 가라앉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여기서 할 게 남았거든? 주디. 사르미아 장로한테서 ‘아마릴리스의 로드’ 좀 받아 와라.”
“장로님이 네 친구니? 경어를 붙여!”
우리에겐 던 블라이아에서 얻어야 할 아티팩트 세 종의 파밍 시간이 남아 있었다.
물론 셋 다 쉬운 과정은 아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장로가 직접 사용하는 ‘아마릴리스의 로드’는 사실 어떻게 얻어야 할지 막막하다.
“그리고 그건 대대로 부족 지도자에게 전해 내려오는 마도구인데, 그걸 어떻게 가져오라는 거야?”
“이거 봐봐. 2분대 놈들은 내가 말하면 아예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 휴고야, 어떻게 생각하냐.”
“아니이… 가능한 일을 시켜야지….”
내가 곧바로 휴고에게 따지듯이 물었고, 휴고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자 주디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일단 알겠다.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내가 순순히 포기하자 주디는 도리어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1분대 분대원들에게 눈짓했다.
“1분대. 가자. 앞으로 계획 좀 짜야겠어.”
* * *
“그런 이유로 세 가지 아티팩트를 얻어야 해.”
나는 곧바로 1분대 분대원들만 모아 놓고 작전 회의에 돌입했다.
목표는 던 블라이아 내부의 아티팩트 3개를 탈환(?)하는 것.
굳이 이 과정을 1분대만 따로 불러서 진행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
당연히 앞으로의 경쟁에서 치고 나가기 위해 1분대 애들에게만 과실을 나눠 주기 위함이 첫 번째고.
두 번째 이유가 사실 더 중요한데….
1분대의 바른생활 아이들은 절대 동의하지 못할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설명을 들은 분대원들의 표정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라는 의미가 역력했다.
아무도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있자, 레오가 내게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듯 되물었다.
“그 세 아티팩트가 어디에 있다고?”
“하나는 엘프 장로들의 무덤. 하나는 세계수 뿌리 깊숙한 곳. 마지막 하나는 사르미아 장로가 들고 있지.”
“그러니까 네 말은… 세계수를 훼손하고, 엘프 선조들의 무덤을 도굴하고, 장로님한테서 신물로 여겨지는 물건을 훔쳐 와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정제된 언어로 설명하니까 좀 역하긴 하네.”
“미친놈인가….”
그래도 어떡하냐.
꼭 가져가야 하는 물건일걸….
사관학교의
슈트 입는 영웅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