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
4. 미친개에 물리면 약도 없다
“아무튼 네 말은 최대한 병사들끼리 싸우지 말자는 거잖아? 습격에 맞설 때까지 힘을 합쳐야 하니까.”
“응. 맞아. 5일 중 언제 습격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최대한 마지막까지 힘을 비축해 놓는 게 좋을 거야.”
“훈련소에는 현역 영웅이 둘이나 있고 조교들도 만만한 전력이 아니에요. 일개 훈련병인 우리까지 전투에 휘말릴 일은 없을 텐데요.”
루트비히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 예지 능력을 가진 훈련병을 무시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미래 예지가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 있는 권능인지 누구나 다 아는데. 이번 훈련병 중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들은 적도 없거든요? 가요, 러셀 님. 이 상황은 뭔가 찝찝해요.”
“……그.”
휴고가 당황한 채로 말문이 막혀 있자,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사흘째다.”
“응?”
“네?”
나는 설정을 떠올리며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마지막 주 수요일에 알렉사 교관과 크릭 교관. 그리고 조교 2/3 이상이 사관학교로 가서 자리를 비우니까. 전력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를 노리지 않겠어?”
“교관들이 자리를 비운다고? 왜?”
“사관학교 개학식이거든.”
“……아.”
훈련소 교관과 조교는 대부분 차출직이다.
일 년에 딱 8주 운영되는 훈련소에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상비할 필요는 없으니, 대부분 사관학교 교수와 조교수들이 임시 발령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사관학교 개학식도 중요한 행사.
신입생 입학식보다 먼저 진행되는 일정상, 필연적으로 훈련소에 일시적인 전력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마인들이 시험 장소인 서펜섬을 공격하는 게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다.
“잠깐만요, 러셀 님.”
“엉.”
“그 말은…….”
루트비히는 말을 잇다가 말고 입을 닫았다.
지금부터는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비록 그게 진실일지라도.
“설마…….”
“그래. 내부의 적이야. 정황상 교육기관 관계자 중 마신의 끄나풀로 의심되는 존재 또는 세력이 있다. 그래서 휴고 너, 예지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 예지 능력자가 나타나면 마신 세력의 최우선 타겟이 되니까.”
휴고는 대답 대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요. 애초에 습격이 일어나야 가능한 가정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마신의 끄나풀이 존재할 리 없어요…!”
훈련소의 커리큘럼.
개학식 날짜.
그리고 그 날짜에 훈련소 전력에 공백이 생긴다는 사실까지.
하나하나 놓고 보면 놀라울 것 없는 정보지만, 이 모든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훈련소 관계자나 사관학교 관계자 또는 훈련병, 사관생도 중에 마인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안타깝게도, 그것 또한 진실이다.
빌트레드가 내게 했던 말처럼 마신의 끄나풀들은 아직도 지난하고 지긋지긋한 물밑 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세계의 환부가 깊다.
썩은 살을 도려내려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그런 환부가 말이다.
“두 사람은 내 말을 믿어 주는 거야?”
“믿지.”
“못 믿어요.”
상반되는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야, 저렇게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못 믿는다고? 산골 촌뜨기가 누나들한테 속고만 살았냐, 진짜.”
“제 누님들을 모욕하면 죽여 버릴 겁니다. 저런 말을 덥석 믿어 버린다고요? 당신이야말로 산골 촌뜨기인 저보다 세상 물정을 모릅니까?”
“모르긴 뭘 몰라. 나처럼 닳고 닳은 인간이 어디 있다고. 근데 얘는 거짓말하는 애 아냐. 그냥 한번 믿어라.”
“아니…….”
“손해 볼 것 없잖냐. 너, 훈련소 성적에 관심도 별로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루트비히가 살짝 고개를 틀어 귓속말했다.
‘권능 여부 확인했어요?’
‘어. 대부분 진실이야.’
‘칫….’
내 권능이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임을 알기에, 루트비히는 통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 평화로운 시대에, 교육기관 내 내통자라는 진실과 훈련소 습격이라는 미래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야, 휴고.”
내 말에 감동했다는 듯한 표정을 훤히 드러내던 휴고가 놀라 대답했다.
“으응?”
“누구누구 가담했어?”
“가담이라니… 무슨 모의라도 꾸미는 것 같잖아.”
“사소한 건 대충 넘어가자고.”
“일단 나랑 로벨리아네 조. 그리고 데이빗, 파, 주디네까지. 리지는 너한테 물어보라고 하더라구.”
“7개 조면 대략 30명이네. 뭉쳐 있으면 쉽게 건들진 못하겠다.”
“응. 다른 친구들한테도 합류하진 않더라고 초반엔 힘을 아껴 두라고 신신당부했으니까… 상황은 나쁘지 않을 거야.”
‘날다람쥐 미마’ 쪽 조원들도 무사히 합류할 거다.
애초에 그 조는 수인들로 이루어진 조라 셋째 날까지 숨어서 게으름 부리다 소란을 듣고 전투에 합류하니까.
‘좀비 데나스’ 쪽은 합류하진 않지만 다른 쪽에서 세력을 형성해 제 역할을 다할 거다.
휴고는 지금부터 주말 내내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하려 들겠지.
힘들겠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어쨌든 이 훈련소 내에서 그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합류할게. 걱정하지 마라?”
“진짜, 정말로 고마워. 러셀. 루트비히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좋겠지만… 뭐, 벌어진다면 제 역할을 다하죠.”
휴고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얼굴이 안 좋은 걸 보니 적잖은 고생을 하는 모양.
힘내라 주인공 놈아.
나는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의 주인공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날려 주었다.
그의 옆에서 ‘진심은 통한다고 했잖아요, 휴고 님.’ 하고 그를 격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조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코리는 ‘그렇구나’ 하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골똘했고 어셔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고작 두 달도 안 된 인연인데 제법 신뢰받는다는 게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확실히 예지 종류의 권능은 비밀에 부치는 게 좋을 것 같아. 노출되면 휴고의 신변이 위험해질 거야. 최대한 습격 사실은 숨기고 그냥 힘을 합치자는 이유로 애들을 모으는 게 어떨까?”
코리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섬 내에서 준비할 게 제법 돼. 간략한 정보는 공유하자고. 대신, 예지자가 정확히 누군지는 숨기는 걸로. 휴고한테도 그렇게 말해 놨으니까. 너희도 비밀 지켜 줘라.”
“응.”
“솔직히 말하면, 너희는 여기서 포기해도 괜찮아. 사흘째가 되기 전에 시험을 포기하면 안전하게 수료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아니, 러셀. 난 포기 안 할 거야.”
“나도.”
짧은 침묵 후에 이어진 두 사람의 대답은 결연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좋은 기회를 얻었는걸. 이대로 포기하는 건 우릴 고생해서 이끌어준 너와 루트비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우리도, 제법 노력했고.”
“그러냐. 딱히 노력한 실력은 아닌 것 같….”
“너무해….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어.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
“그래라. 뭘 새삼스럽게 허락은.”
그렇게 갑자기 자리를 비운 코리가 되돌아온 건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문제는 그 녀석 혼자 돌아온 게 아니란 점.
“저희 왔습니다! 형님!”
“…뭔 뉴메타 지랄이야, 이건?”
생활관 복도 쪽으로 일렬로 늘어선 훈련병들을 보고선 기겁했다.
얼굴 하나하나가 낯이 익은 게, 훈련 기간 중 한두 번씩 훈련을 빙자한 참교육을 시켜 줬던 동기들이었다.
“설마 네가 모아 온 거야?”
“모아 왔다는 건 조금 그렇구. 솔직히 이야기했더니 다들 자발적으로 참여해 줬어.”
사회성도 이 정도면 진짜 병 아니냐.
미래의 대상인이 될 떡잎답게, 녀석은 그동안 친분을 쌓았던 동기들을 모조리 싹 다 긁어모은 것이었다.
문제는 이놈들이 왜 날 형님으로 부르냐는 건데.
“아무튼 너네도 우리 계획에 참여한다 이거지?”
“예, 형님!”
생활관 입구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다부진 소년 하나가 대표로 대답했다.
“잘됐네. 근데 같은 동기끼리 뭔 형님이야.”
“저흰 이게 편합니다!”
“……?”
나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으로 코리를 바라봤다.
“저 친구 기억나?”
“페이 뭔데, 카카오페이였던가?”
“건페이잖아…. 웨더릭무어 출신인데, 그 지역 문화가 좀 그런가 봐. 자신보다 강하면 형님으로 모시는? 그래서 싹 다 서열 정리하고 러셀을 대형님으로 모신다나.”
“누구 맘대로.”
“허락해 주십시오, 형님!”
“지랄 났다. 진짜. 형님으로 모시는 건 됐고 계획에 참여한다니 일단 환영해.”
“영광입니다!”
건페이의 인사에 우르르 따라 고개를 박는 소년들.
진짜 내가 설정한 거지만, 내가 봐도 오글거려 죽겠네. 누가 손발 좀 펴 줘라.
아무튼 이 녀석도 사관학교 입학까지 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실력자이니 당장 도움은 될 거다.
입학 이후에도 가끔 등장해 주인공을 따르는 역할도 했었고. 뭐, 후반에는 거의 병풍 엑스트라에 가까워지지만.
그렇게 건페이를 따르는 40명의 훈련병이 추가로 계획에 동참했고, 코리는 잠시 기다려 보라며 또다시 생활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말 동안 코리 녀석이 끌어모은 동기의 수는, 자그마치 120명에 달했다.
참고로 주인공인 휴고가 추가로 모은 인원은 고작 16명이었고.
진짜 미쳤네.
네가 주인공 해라…….
* * *
대망의 마지막 주가 밝아왔다.
‘준비는 충분한가?’
솔직히 그 질문에 대답은 하기 어려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곤 했지만, 훈련소라는 환경상 한계가 분명했다.
왜 주인공 세대 동료들이 훈련소를 그저 놀이터 정도로만 여겼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빈약했다.
하지만 적어도 창술, 방패술, 투창술만큼은 숙달된 수준까지 끌어 올렸고 체력과 근력도 맨몸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끌어 올렸다.
본의 아니게 나를 따르는 형님충 놈들도 생긴데다, 콘레드의 발작 덕분에 실전 경험도 충분하다.
말 그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긴장이 되는 건, 메인 에피소드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한다. 조교의 통제에 따르도록.”
훈련소장 콘레드는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자기가 직접 추천장을 쓴 데나스가 된통 깨진 후로는 아무래도 나를 반쯤 포기한 듯싶었다.
뭐, 훈련소를 떠나면 이제 놈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휴고에게로 옮겨지겠지만.
“1분대! 앞으로― 가!”
착착착.
잘 훈련된 병사들이 한 몸처럼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진짜 정규군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군기.
한 명 한 명이 적어도 하위 마물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감당할, 소중한 국가의 전력이 된 셈이다.
“행군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멋진 성녀님!”
“멋있는! 수녀님! 많고 많지만!”
진짜 개 같은 짬뽕 세계관 같으니.
내가 욕설 섞인 립싱크로 잡탕 부대찌개 세계관을 욕하는 사이, 한 시간가량 행군해 시레니아 해안 부두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한 분대씩 수송선을 타고 인근 무인도로 이동을 완료했다.
통칭, 시험의 섬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