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3)
24. 러셀 애시그린 실종사건
혼란스러워하는 사브와라의 상인연합 수뇌부와 유유자적하게 빠져나오는 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하니앤은 금세 나를 따라왔다.
“금방 따라왔네?”
– 당연한 일이란다. 신수가 계약자의 옆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겠니….
이래야 옳게 된 애완 신수지.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녀석이 어깨 위에 올라타도록 허락했다. 꼬리 털을 쓰다듬어 주자 기분 좋은 듯 갯과 짐승이면서 고양이나 낼 법한 소리를 낸다.
그러다 문득 좌우로 빙빙 흔들거리던 꼬리를 멈추고 물었다.
– 계승자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진심이니…?
하니앤의 목소리엔 어쩐지 힘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회동에서 한 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나는 애완 신수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속내를 설명했다.
“그럴 리가 있나. 아직 해치워야 할 적이 산더미인데.”
– 역시 그렇지?!
“신수병기도 제대로 운용할 거고, 사브와라도 똑바로 수호할 거다. 그래야 네 신성이 줄지 않지. 조금 전 일은 앞으로 우리가 편안하게 처신하려면 거쳐야 했을 토대 작업일 뿐이랄까.”
– 그러다 정말로 저들이 너를 포기하면 어떡하려고?
“절대 포기 못 하지. 세상에 자기들을 수호해 주는 계승자를 포기하는 지역이 있어?”
– …없기는 하지.
“만약 저들이 정말로 미쳐 돌아 버려서 나를 내놓기로 작정하면, 코리를 상인연합에서 탈퇴시키면 돼. 뭐, 혼자 비용 감당하기도 어려울 테고 자리 잡긴 더더욱 힘들어지겠지만, 내가 힘 실어 주면 놈은 어떻게든 해내겠지.”
내가 봐 온 코리는 전형적으로 나와 같은 종족이다.
일단 눈앞에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만다.
어설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관 안에는 백 년 묵은 능구렁이와 반드시 승리하고야 마는 고집 센 영웅의 면모가 공존하는 것이었다.
과정이 힘들면 보상은 더욱 달콤해지는 법. 사실 사브와라의 상인연합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설명한 뒤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하니앤을 안심시켜 주었다.
* * *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상인연합 회동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과분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코리는 회동이 끝나자마자 날 찾아와 우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까는 그렇게 하면 안 됐어….”
“왜, 누가 테이블 엎었냐?”
“그런 건 아니지만.”
코리는 핼쑥해진 몰골로 열두 장짜리 계약서를 집무실 협탁 위에 올려 두었다.
“내가 봐야 하는 내용이야?”
“이건 우리 상단이랑 본부 간 맺은 계약이긴 한데 그래도 봐 두면 좋겠지?”
코리는 그렇게 말하고선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에게 너는 대하기 어려운 계승자지만, 나는 신출내기 후배 상인일 뿐이거든. 귀찮아도 직접 담판을 지었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상인연합의 수뇌들이 골치 아픈 나는 그대로 두고 코리의 골수를 쪽쪽 빨아먹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혀를 차고는 계약서를 집어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볼멘소리하던 것과는 달리 계약서상 내용은 평이했다.
“러셀 네가 원했던 내용은 지켜졌어. 계승자는 사브와라의 존속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계승자는 사브와라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시 가능한 빠르게 해결한다. 계승자는 본부의 정치 및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별다른 제약은 없을 거야.”
“훌륭하네.”
“의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아. 제약이나 불이행 대가가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네게는.”
“다른 불이익은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나는 빠르게 계약서를 훑으며 대답했다.
“리스크는 우리 상단이 져.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신수병기 지원에 상단의 지출이 많아졌고, 네가 제대로 이행해 주지 않으면 그때마다 우리 상단으로 들어오는 본부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개편되는 방식이야. 자세한 내용은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최대한 여유 있고 느슨하게 조율했으니까.”
“너를 볼모로 잡겠다 이거구만.”
“하아… 그렇지.”
“그만하면 무난하겠네. 별 걱정하지 마. 그들은 앞으로 깨닫게 될 테니까.”
“뭐를?”
빠르게 내용을 훑어본 나는 다시 계약서를 코리의 서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망나니 계승자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말이야. 지금부터 상인연합 본부를 휘어잡는 건 네 몫이다. 알겠냐?”
자신만만한 내 말에 코리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곧바로 밑 작업에 착수했다.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시간, 장소.
정오의 시장 거리가 그 타겟이었다.
나는 행인들, 상인들, 경비병들까지 꼼꼼하게 [간파안]으로 확인해 마인들을 찾아냈다.
물론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니앤과 크로스체크까지 포함해 두 번 세 번 확인에 확인을 거쳤다.
첫 번째 타겟은 행인인 척 노포에서 술잔을 홀짝거리며 잠입해 있는 하급 마인이다.
“너 이리 와 봐.”
“……? 무슨 일로―”
인상을 찡그리며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던 마인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내 창이 벼락같이 뽑히고, 선혈이 튀며 하급 마인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꺄아악―!
난데없이 벌어진 백주대낮의 살인에 시장이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경비병들이 몰려들고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곧바로 시신에서 뿜어지는 마기에 흠칫해 머뭇거린다.
죽을 때 뿜어지는 검보랏빛 마기. 전형적인 마인의 특징이다.
나는 창끝으로 머리통을 터트려 확인 사살까지 마친 뒤, 경비병에게 처리하라고 턱짓하고선 곧바로 몸을 날려 도망치던 다음 표적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내가 선택한 가장 먼저 할 일은 숙청이었다.
사브와라를 이 잡듯이 뒤져 곳곳에 숨어들어 있던 마인들을 찾아내 사살하는 것.
“생각보다 쥐새끼들이 많네. 하니앤. 놓치지 말고 구석구석 살펴봐.”
– 이렇게 난동을 부릴 필요까지는….
“원래 청소는 요란하게 하는 거야.”
분명 내가 마인들을 간파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났을 텐데, 사브와라 안에는 아직도 쥐새끼처럼 숨어든 마인들이 곳곳에 있었다.
아마도 시민들 속에 숨은 하급 마인까지 하나하나 찾아내서 솎아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겠지.
대략 열 명쯤 수급을 베었을 때, 다급하게 상인연합에서 전갈이 도착했다.
도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하니 곧바로 공개 처형하지 말고 상인연합으로 마인을 인도하라는 청원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요청하는 연합 직원의 태도에, 나는 씩 웃으며 눈앞에서 청원서를 찢어 주었다.
“계승자는 사브와라의 존속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도시를 위협하는 마인 색출이야말로 최우선 과제 아닌가?”
결국 상인연합에서 코리에게 ‘나서서 말려 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나는 공개처형을 끝내고 얌전히 마인들을 본부로 넘겨주었다.
한바탕 청소를 끝낸 뒤 나는 코리를 불러 다음 밑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 사브와라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네가 처리 원하는 순서대로 정리해서 연합에 통보해.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도적단 토벌, 마수 토벌, 뭐 실종사건 같은 것도 괜찮아. 불량배 참교육도 좋고. 크든 작든 상관없어. 오히려 좀 작아도 너희 상단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좀 앞으로 빼도 돼.”
“……너 설마.”
“어제 보니까 이런 내용은 계약서에 없던데.”
코리는 입을 벌리고 경악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내가 두 번째로 할 일은 놈에게 권력을 쥐여 주는 것이었다.
계약서의 빈틈을 이용해 코리에게 청탁하면 계승자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전형적인 밀어주기.
처음에는 별일 아니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브와라 전체에서 녀석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될 거다.
나는 분대원들까지 동원해서 빠르게 이곳의 문제들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자. 가서 문제들 모아 와. 부지런히 움직여. 시민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잖냐.”
“너는 진짜… 이런 쪽으로는 머리 잘 돌아가.”
“이런 쪽으로는?”
중간에 섞인 이상한 워딩을 지적하자, 코리가 곧바로 쌩하니 빠져나갔다.
* * *
코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냉각기 앞에 똬리를 틀고 낮잠 자던 하니앤이 갑자기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 계약자야.
“응?”
– 마인이 나타났다.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어.
그 말에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오늘 온종일 한바탕 마인들을 숙청하고 오는 길이다.
꼭꼭 숨은 쥐새끼들까지 잘 찾아 잡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는 걸로도 모자라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어디쯤인데?”
– 건물 안으로 들어온 듯해. 느껴지는 마기가 강하지는 않다만… 건물 안으로 들어왔구나.
“대놓고 날 찾아왔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오늘 내내 마인들을 찾아 죽이고 다녔던 계승자가 머무는 건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의도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하인 중 한 명이 문을 두드렸다.
“러셀 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쫓아내려다가 말씀드리면 아실 거라고 해서 일단 대기시켜 놓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도 돼.”
무슨 연유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는지 들어 볼 생각으로 접견을 허락하자, 중년의 남자가 문 앞으로 다가왔다.
창을 꺼내기만 해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마기를 지닌 마인.
사내는 나를 보자마자 통성명을 할 새도 없이 사용인이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레몬 님의 전언입니다.”
“…뭐?”
그러고는 밀랍으로 밀봉된 편지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편지 봉투를 뜯어 버린 뒤 내용물을 확인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잘 지내고 있니?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네.
네 소식은 잘 듣고 있어.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데, 가끔 얼굴 정도는 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날 보러 오렴.
만약 오지 않는다면 로즈 뎁 백작의 머리를 벨 거야.
그는 지금 우리가 데리고 있단다.
사실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시간과 장소는 다시 알려 줄게.
만날 날을 기다리며.
보고 싶은 누나가.
추신-너의 주변엔 화목한 가족을 가진 친구들이 많더라. 우리에겐 서로뿐인데. 생각해 보면 가족이란 건 참 거추장스러운 존재야. 그렇지?」
“미친….”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위화감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나는 눈앞의 마인을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할 생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마인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구멍이랑 구멍에서 검붉은 핏물이 잔뜩 흘러내린다.
내게 편지를 전달하자마자 곧바로 입에 물고 있던 극독을 삼킨 것이었다.
무언가 머리를 치고 지나간 것처럼 골이 아파져 온다.
본능적으로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했다.
납치도, 습격도 아니었다.
함정이다.
너무 대놓고 함정이라 어이가 없을 정도의.
레몬은 내 주변인들의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삼아 날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말미에 덧붙인 말은, 내가 거절하거나 딴마음을 품는다면 로즈 뎁 백작을 넘어 한 명씩, 납치하고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원작이나 소설 정사에 없던 새로운 패턴의 빌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적이다.
우직하고 정직하게 상황을 돌파하는 주인공들에게는 최악의 상성인 계략형 빌런. 그야말로 내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마인이 등장한 셈이다.
사관학교의
슈트 입는 영웅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