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4)
24. 러셀 애시그린 실종사건
현재로서는 레몬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나름대로 권위 있는 마도사인 로즈 뎁 백작을 납치한 게 사실이라 가정하면, 적어도 ‘군단장’이라는 등급에 어울리는 저력을 갖췄을 거라 예상할 뿐이다.
그럼에도 단신의 무력으로 맞붙으면 이길 수 있을 거다.
나는 군단장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적인 모로이까지도 제압했으니까.
문제는 정말로 백작이 납치됐고, 일이 잘못 풀려 인질이 사망했을 때다.
리지의 부친이 사망한다는 것.
그건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변수였다.
리지 로즈 뎁.
이 개복치같이 여린 사춘기 소녀는 상실을 경험한 적이 없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원작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극단적인 상실이 미래를 어떻게 뒤틀어 버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리지는 명실공히 멸망 공략의 가장 중요한 퍼즐 중 하나.
이 음흉하고 소중한 소녀는 애지중지 키워야 하는 것이다.
친구의 가족을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은 그다음 문제다.
‘아픈 곳을 찔렸는데.’
제법 날카로운 수다. 레몬의 행방은 혓바늘처럼 거슬렸지만, 설마 그만한 영웅을 소리소문없이 납치할 정도로 강해졌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세력이든, 실력이든.
‘일단 진위부터 확인하자.’
백작이 진짜로 납치된 게 맞는가.
가장 먼저 그걸 확인해야 했다.
* * *
며칠 뒤.
나는 여러 가지 산재한 문제로 복잡한 머리를 뒤로하고 상인연합 본부로 향했다.
코리 상단과 상인연합 간 최종 계약이 마무리되고, 신수병기 싱크로 작업을 시작할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번 사브와라 원정의 핵심은 신수병기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고민과 일들을 다 제쳐 두고 본부로 향했다.
신수병기 격납고는 본부 지하에 있었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수병기 보관은 그 지역의 가장 으슥하고, 깊숙하며, 안전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제라는 티렐 왕성 정중앙에 여왕궁보다도 더 삼엄한 성역에 병기를 보관했고, 던 블라이아는 세계수 안쪽에, 레인가르는 현자의 탑 지하에 병기를 숨겨 두었다.
병기가 직접 드나들 통로를 만들 필요 없이, 신수라는 매개체를 토대로 병기를 소환하는 방식을 채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각보다는 허술하네.’
내 솔직한 감상은 그랬다.
나름대로 꼭꼭 숨겨 둔다고 했지만,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걸어 두고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다소 허술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래 이렇게 허술했냐?”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하니앤에게 물었다.
– 항상 이렇지는 않았단다. 근래 들어 신수병기에 대한 관심과 관리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지. 황금왕이 사브와라를 통솔하던 시절에는 단합도 잘 되고 그만큼 병기 관리도 철저했으니까.
“20년 전 이야기네.”
– 사브와라의 세력이 6개로 갈라지면서 지역 전체의 이익보다는 상단 개개인의 사정을 더 중요시하기 시작했지. 물론 상단주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야. 그들은 사적 이익이라는 달콤한 과실 앞에서도 최소한의 사명을 지키려 한 이들이니.
“흐음. 그런가.”
– 오로지 이익만을 좇는 상인들이 사명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 온 건 그들에게는 대단한 일이란다. 그러니 그들을 너무 적대시하지는 말아 주렴.
“적대시하지는 않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 그러니? 안심이구나.
내 말에 하니앤이 푸스스 웃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지역의 수호 신수인 모양이다.
은연중 말투에서 사브와라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걸 보면.
“여긴가.”
나는 경비병의 안내에 따라 계단을 타고 내려와 거대한 철문 앞에 도착했다.
신수병기가 드나드는 문이 아닌데도 통로와 문의 규모가 제법 거대했다.
아마 부품 운반 때문일 거다.
“격납고 개방하겠습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내 기갑병기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그리고 나는 부실하다는 감상을 취소했다.
적어도 격납고 내부만큼은 확실하게 갖출 건 갖춘 모습이었으니까.
여유 있는 공간 안, 문이 열리자마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용접 소리, 망치질 소리, 도공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파찰음까지.
건물 밖의 사브와라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문 하나를 두고 세계가 뒤집히는 느낌.
준비 완료된 완성품의 기갑병기가 날 맞이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격납고는 병기 수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온 격납고 관리자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부연했다.
“죄송합니다. 계승자님. 부끄럽지만, 오랫동안 운용할 일이 없어서 손볼 곳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오늘 방문하신다고 하여 부지런히 마무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천천히 마무리해도 돼.”
나는 경비병의 사과에 괜찮다며 격려해 준 뒤 터벅터벅 걸어가 신수병기 앞에 섰다.
“작네.”
신수병기 하니앤은 내가 지금껏 봐 왔던 다른 병기들 중에서도 가장 작았다.
대형에 속하는 제온이나 지크프리드는 고사하고, 중형급인 카즈란보다도 작았으니까.
관리자는 내 말이 질문이라 생각한 듯 곧바로 대답했다.
“하니앤은 현존하는 신수병기 중 유일한 소형 병기입니다. 파괴력보다는 기동력과 적진 침투에 목적을 둔 기체이기 때문입니다.”
“불평한 건 아니야. 오히려 내 스타일엔 이게 더 맞지.”
– 역시, 내 계승자다운 판단이구나!
내 말에 하니앤이 옳다구나 동조한다.
“잠시 인원을 소개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응. 그 전에 내 친구 좀 내려오라고 해.”
나는 격납고 트레일러에 매달려 무언가 열심히 설명 듣고 있는 레오를 가리켰다.
그는 내 요청으로 사브와라 소속 기술자들에게 기갑 관련 기술을 전수받는 중이었다.
어차피 전용 수리 장비와 전문 기술자가 없으면 기체 정비는 어림도 없지만, 적어도 팀 내에 응급처치라도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있었으면 해서였다.
레오와 기술자들 모두 흔쾌히 허락했고 그 결과 며칠 전부터 이곳에 나와 부지런을 떠는 중이었다.
“러셀. 왔냐?”
“어, 고생 많다.”
레오는 새로운 걸 배우는 과정이 즐거운지 온몸과 얼굴에까지 검댕을 잔뜩 묻힌 채로 싱글벙글 웃으며 트레일러에서 뛰어내렸다.
십수 미터는 될 법한 높이에서 풀쩍 뛰어내리는 그를 보며 관계자들이 기겁했다.
“고생은. 어차피 나도 계승자가 될 텐데. 알아 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지.”
그러고는 어깨에 매달려 있는 라쿤을 일별한다.
영물은 그새 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있다.
레오는 애완 영물이 신수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가만히 지켜본 결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 녀석은 영물 주제에 행동거지가 너무 신성하지가 못하단 말이지….
“일단 가장 중요한 게 DG 동력로(차원게이트 동력로) 파손이라고 하더라. 장갑판이나 콕핏처럼 다른 부위가 파손되는 건 역소환해서 정비하면 되는데, DG 동력로가 파손돼 버리면 아예 격납고로 기체를 보낼 수가 없다고.”
레오는 신수와 격납고 간 이동 매개 역할을 해 주는 게 이 차원게이트 동력로라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엔 최대한 이 부분을 긴급 수리하는 기술 위주로 전수받는 중이야. 적어도 고장 난 병기를 격납고로 되돌려 보낼 수는 있어야 하니까.”
“일정 수준 이상 익히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어?”
“하하, 글쎄… 솔직히 하루 이틀로 될 일은 아니긴 하네. 네가 준 [중급 기갑 도공술]이 아니었다면 반의반도 못 따라갔을 듯싶다.”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마라. 동력로까지 파괴될 일이 설마 얼마나 있을까. 정 못하겠으면 여기 기술자들이 와서 들고 날라야지, 뭐….”
내 말에 격납고 안의 관계자들 얼굴이 일순 새파랗게 질렸다.
레오가 재밌는 농담이라며 낄낄 웃었고, 나는 마주 웃으며 농담이 아니라고 정정해 주었다.
잠시 정비 과정이 멈추고 기술자들이 일자로 도열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계승자님.”
“굳이 뭘 그렇게까지? 그냥 편하게 할 일들 해.”
– 받아들이렴. 이제 그들은 공식적으로 계약자의 휘하 공무자들이잖니. 지킬 건 지켜야 한단다.
“그래?”
나는 하니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기갑 기술자들은 그 활동 지역이 어디든 무조건 이제라 소속의 공무원이 된다.
그러다 담당 계승자가 탄생하면 그의 휘하 지원부대로 편성되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내 부하들이다.
그들은 가볍게 소개하며 이름과 직책을 설명했지만, 솔직히 너무 많아 누가 누군지 파악도 제대로 못 했다.
대충 마지막에 소개한 사람 정도만 기억하면 될 듯싶다.
“저는 격납고 관리총책 이드라입니다. 많은 인원을 모두 파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와 여기 둘, 개발팀장 드레드, 유지보수팀장 킨 정도만 기억해 주셔도 충분합니다.”
“셋 다 기억 못 할 것 같은데, 노력은 해 볼게요.”
“하하. 저는 이곳의 보안 및 경비와 계승자님께 상황을 보고하고 허가 및 지시받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드레드는 계승자님이 원하는 기능을 추가 개발하거나, 성능 업그레이드 쪽을 총괄 담당하고 킨은 기체 수리 및 보수점검을 총괄 담당합니다.”
이드라, 드레드, 킨.
안 그래도 마주치는 인물들이 많아 동기들 이름도 헷갈리는 와중이지만 나는 최대한 머릿속에 박아 넣으려 애썼다.
“근데 새로운 기능이라 하면 어디까지 가능한 거야? 막 손이 발사되고 그런 것도 되나?”
“물론 가능하죠.”
“오?”
“다만 발사된 부위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괜찮으신지….”
“하니앤, 혹시 이제라에 말하면 관리총책 자리는 바꿔 주냐?”
내 말에 이드라가 농담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그런 기능 같은 경우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저희 내부에서 할 수 있는 건 어느 파츠의 강도나 경도를 강화한다든가, 전용 무기를 제작한다든가, 그런 정도의 개발이죠.”
“대충 무슨 소린지는 알아. 기능 추가는 마이스터급 연구원, 외형 변경은 병기 디자이너가 있어야 하잖아.”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현존하는 유일한 연구원이자 기술자이자 디자이너는 레인가르에 계십니다.”
“유나 말이지?”
“네.”
오랜만에 꺼내는 이름에 반가움이 들었다.
슬슬 신수병기 전투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승자 유나가 재등장할 것이다.
쓸데없이 에너지 넘치고 명랑해 활약이 기대되기도 한다.
기술 잠재력과 성장이 엄청나게 빠른 인물이니, 다시 만나면 깜짝 놀라게 되리라.
“그럼 싱크로 작업에 앞서 간단하게 기체 설명을 진행해 드려도 될까요?”
“간단 요약 부탁해.”
나는 빨리 병기를 타 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지만, 최대한 기술자들을 존중했다.
“하니앤은 전고 12m, 전장 4m, 전폭 6m의 소형 기체입니다. 기갑병기들 중에 소형이라는 의미이지 보시다시피 웬만한 거대 마신군쯤은 내려다볼 수 있는 크기죠.”
나는 이드라의 설명을 들으며 처음보다 깨끗해져 광택이 나는 기체를 눈에 담았다.
확실히 날씬하고 민첩해 보이는 기체다.
딱 운신하기 좋은 인간 형태의 모습에, 기체 전반적으로 흐르는 윤기 나는 은색은 마치 중세시대 중무장 기사를 확대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병기의 대표적인 권능은 총 세 가지입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장 기대하는 영역, 가장 중요한 영역. 심지어 나도 잘 모르는 영역.
하니앤의 신수 권능.
“첫 번째로 순간적인 출력으로 기체를 튕겨 내는 [가속]입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얼마간의 공중 비행도 가능합니다. 마치 비공정처럼요.”
사관학교의
슈트 입는 영웅님
오